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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Oct 11. 2024

두껍아 두껍아 헌 집 말고 새 집 다오


문경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한동안 집을 보러 다녔다. 나도 남편도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데다 살고 있던 과천이 문경에서 멀어서 공사현장을 매번 지켜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튼튼하게 잘 지어진 집을 구매하기로 했다. 


“전원주택단지가 왜 이렇게 많지?”

솔직히 말해 시골집은 전부 전원주책 아닌가? 굳이 전원주택이라는 말을 왜 붙였을까? 처음에는 웃었는데 금방 이해했다. ‘전원주택단지’는 마을 토박이들과 상관없이 외지인들로만 구성된 마을이다, 몇 군데 단지를 둘러보았다. 단지 내 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 가까이에 과수원이 많이 있어 농약냄새가 걱정인 곳 등등 딱히 마음에 드는 집도 없었지만 집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매물로 나온 집을 살 돈이면 새 집을 충분히 지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같은 비용이면 오래된 집보다 새 집이 나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사람이 아파트 구조에 맞춰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 생활 방식에 맞는 집에서 사는 게 맞지 않나? 집을 짓기로 했다.


집을 지을 땅을 찾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전원주택단지가 없어 기존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어느 마을로 들어가야 하나?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텃세, 오지랖, 간섭 등등 흉흉한 소문이 좀 많은가? 마을의 초입이나 한가운데에 있는 땅은 피하고 싶었다. 이래서야 땅을 구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작은 시누이 집 옆으로 결정했다. 얼마 전에 집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비어있던 집이다. 땅의 크기도 적당하고 남향이고 마을에서 가장 안쪽에 있어 마음에 들었다. 수도와 전기 설비가 이미 되어있는 데다 길도 잘 정리된 곳이다. 


원래 있던 집을 철거하고 새 집을 짓는 동안 작은 시누이 내외분께서 관리 감독을 해주셨다. 공사하는 동안 우리는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나들이처럼 다녔다. 그랬으니 시누이네가 집을 새로 짓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덕분에 마을사람들도 공사 때문에 생기는 소음과 먼지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분이 고생이 많았다. 


집이 완성되었다. 오매불망했던 화장실이 2개나 있다. 없던 다용도실이 생겨 식자재 보관이 편해졌다. 남편의 일터이자 작업실 겸 서재는 크게 만들었다. 뭐, 집 구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는 마당만 있으면 된다. 


어라? 마당이 있는데 없는 것 같다. 땅의 넓이, 생김새와 경사 때문이다. 마당이 넓지 않다. 숫자로 보면 대지의 3분의 1이 집이고 3분의 2는 마당이어야 하는데. 우리 집 마당이 되어야 할 땅이 많이 사라졌다. 집 앞으로 뒤로 옆으로 마을길에 물려 있는 땅이 상당하다.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가 집을 짓기 전부터 마을길로 사용했던 땅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이제부터 우리 마당이라고 막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경사진 땅이라 계단식 마당이 되었다. 넓지도 않은 마당이 조각조각 나눠졌다, 토목공사와 집의 높이를 감안한 구조이다. 넓은 마당에 파라솔 탁자를 놓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려 보곤 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시골집 답지 않게 탁자를 놓고 둘러앉을 만한 공간이 없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는 마당이다. 잔디를 정성 들여 깔았으니 봄이 오면 좁지만 초록으로 물든 잔디밭을 볼 수 있다. 퇴근 후 마당을 맨 발로 걷는 일상을 꿈꾸던 남편은 소원을 이뤘다. 출퇴근도 없고 하루 종일 밟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날이 따뜻해지면 질리도록 마당을 밟으라고 해야겠다. 손바닥만 한 꽃밭과 코딱지 만해도 텃밭도 있다. 꽃밭에는 어떤 꽃을 심을까? 4계절 내내 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텃밭에서 지은 농작물로 밥을 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비 오는 말 처마 아래에 앉아 마시는 차는 달달할 거다. 햇빛 좋은 날은 빨래를 말릴 수 있다.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이 편안하다. 마을에 파란 지붕이 유난히 많다. 하늘과 어우러져 예쁘다. 초록은 아직 멀었지만 나무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서 있는 앞산이 평화롭다. 어쩌면 남편과 나는 회색 콘크리트로 꽉 찬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되는 마당이면 만족했을 것 같다. 굳이 넓지 않아도 꽃밭과 텃밭이 없는 마당이어도 말이다. 아, 설렌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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