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골이야? 살기 편한 도시를 떠나는 이유가 뭐야?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거야? 농사짓는 건가? 농사를 안 짓는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왜 시골이야?”
시골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모두가 어김없이 묻는다. 남편과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다. 시골로 이사 왔지만 언감생심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것 같다. 남편은 텃밭농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우리 가족이 먹을 푸성귀정도는 가꾸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으면 잡초와 나물을 구분 못하는 인간이라 영 자신이 없다.
귀농이 아니라고 하니 펜션을 운영할 계획인지 묻는 친구가 있었다. 펜션이라니? 사람들 북적이는 것을 피해서 왔는데 펜션은 무슨 펜션이란 말인가. 젊은 나이에 시골로 기어 들어가서 도대체 뭘 해 먹고살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묻는다. 나이 60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젊다는 말을 들었다. 새집 지어 멋지게 이사 왔는데 굳이 기어들어왔다고 한다. 친척 어른들도 친구도 지인도 심지어 나도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 궁금하다.
처음엔 시골이 아니었다. 손바닥보다 작더라도 마당 있는 집에 살아야지 했다. 특히 남편이 그랬다. 남편은 지난 몇 년 동안 불면증, 만성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을 앓았다. 잠도 잘 못 자고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복용해야 하는 약이 늘어났다. 힘들고 지치면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남편은 아파트를 점점 답답해했다. 흙과 최대한 가까운 공간에서 잠을 청하고 주말이 아니어도, 평일 저녁에 마당에서 아주 잠깐 숨을 쉬면 남편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당 있는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 우리 집은 없었다. 파주, 김포, 의왕, 광명, 광주, 용인, 기흥 등등 우리가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집들이 서울에서 점점 멀어졌다. 남편의 직장, 아이들의 학교, 방의 개수, 적당한 크기의 마당 등등 조건에 맞는 집을 서울 인근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마당을 얻는 대신 잃는 것이 많아서 내키지 않았다. 어떡하누.
“시골로 가자.”
결정은 했지만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떡하지?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본가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좋은 스펙 중의 하나라는 말이 있던데, 졸업하고 취업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는데 부모가 시골로 옮겨도 되는 건가. 우리 부부의 노후도 걱정이다. 아직은 도시에 남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면 점점 불행해질 것 같다는 남편을, 가족의 평안을 위해 더 참으라고 할 수 없었다.
팬데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팬데믹 동안 남편은 재택근무,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을 하느라 하루 종일 온 가족이 집에서 복닥거렸다. 지은 지 40년 넘은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어른 4명이 삼시 세끼를 먹으며 지냈다. 화장실이 하나뿐인 집에서 가족들이 돌아가며 독감과 코로나를 앓았다. 콘크리트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이 숨이 막혔다. 외출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기를 하나. 마당이라도 있으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마당이 있고 화장실이 2개 있는 집으로 무조건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시골이면 어떠랴.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물리적 거리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다.
IT 개발자인 남편은 일을 줄였다.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도록 일을 조정했다. 일을 줄인 만큼 수입이 많이 줄었다. 완전히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아이들 걱정은 그만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틈만 나면 주입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내가 말만 그리 했구나 싶다. 아이들은 내 걱정과 달리 잘 지낼 것 같다. 나는 전업주부이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별 차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시골로 왔다.
시골로 이사했다고 하니 거창한 이유라도 있는 줄 아는데 아니다. 그냥 마당의 흙과 잔디 밟으며 여유 있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이사 왔다.
“그래, 시골로 이사 한 이유는 알겠고. 그런데 왜 문경이야?”
“남편 고향이야.”
“…?”
내가 시골로 이사한 이유를 알고 나면 여지없이 문경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 문경을 알려주고 싶은데 아직은 나도 아는 것이 없다. 문경은 중2 때까지 살던 남편의 고향이고 여전히 일가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서울과 가까운 시골이 아니라면 굳이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가는 것보다 고향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고향이라는 나의 대답에 걱정과 응원의 말이 같이 온다. 나도 걱정이 되지만 잘 적응하고 잘 살고 있을 테니 시간 내서 놀러 오라는 말을 돌려준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