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알송알 Jan 12. 2023

방금 시골로 이사했습니다

햇빛 좋은 날 마당 청소를 하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2022년 12월 11일, 20년 넘게 살았던 과천을 떠나 문경으로 이사 왔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과천은 서울 강남을 코앞에 두고 있는 행정도시이고 남편의 고향 문경은 경상북도 북부의 시골이다. 나는 슈퍼울트라 초강력 집순이다. 그래서 과천에 살든 문경에 살든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르지 않기는 개뿔, 많이 다르다.


이삿날 저녁 6시쯤 문경에 도착했다. 도로도 마을도 칠흑 같아서 우선 놀랐고, 놀라고 낯선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무서웠다. 흡사 등화관제훈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두웠다. 깜깜해도 너무 깜깜하다. 어두우면 별이 잘 보여야 하는데 별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날씨 탓인가? 내 마음 때문인가? 별이 빛나지 않는 밤이라니…. 밤에 돌아다닐 일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별일 아니려나. 문경의 밤 6시는 과천의 저녁 12시와 느낌이 비슷하다.


우리 동네는 시내버스가 하루 5번 운행한다고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아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경을 오고 갈 때는 늘 남편과 함께였다. 집안 행사에 올 때도, 이사를 결정하고 집을 짓는 동안에도 그랬다. 이사를 하고 짐을 풀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나는 닥쳐야만 상황을 이해하는 그런 바보인가? 내가 아무리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도 그렇지 말이다. 집에 있고 싶어 집에 머무는 것과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어 어쩔 수 없어 집에 있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외출할 때마다 번번이 남편과 함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이곳의 어른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이든 트럭이든 뭐든 가능하다면 1인 1대이다. 이웃사촌 시누이집만 해도 가족 수만큼 차를 가지고 있다. 동네를 산책하며 보니 대부분의 집 마당에 차가 2~3대가 세워져 있다. 문경시내 주차장이 서울 도심만큼 혼잡한 이유를 알겠다. BMW(Bus Metro Walk)를 애용하는, 나름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뚜벅이 인생을 청산해야 하나. 정녕 그런가. 나는 운전하기 싫은데 어떡하누.


도시와 다른 산책을 꿈꾸었다. 도시에서는 콘크리트 빌딩이 조금이라도 덜 보이고 시멘트가 아닌 흙길을 걸으려면 집을 나와 한참을 가야 한다. 가볍게 조금 걷고 싶은 마음이 시작도 하기 전에 사그라지기 쉽다.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흙길을 밟을 수 있고 나무와 꽃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타박타박 걷는 그림을 그렸었다. 시골에서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웬걸? 산책이 어렵다. 내가 걷는 한 걸음이 신호탄이 되는지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발걸음마다 한 마리씩 짖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합창이 된다. 묶여 있다는 것을 알아도 몸이 움츠려든다. 딱히 개에게 해코지를 당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암튼 나는 개가 무섭다. 시골 동네에서는 개 짖는 소리를 듣지 않고는 걸을 수 없지 뭔가. 첫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에 놀라 금세 되돌아왔다. 이러다가 산책하러 자연휴양림이나 관광지인 문경새재로 가야 할 판이다. 그렇게 되면 산책길을 찾아 헤매던 도시와 다른 게 없잖은가.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투덜투덜 거린다. 왜 시골로 왔어? 농사지을 계획도 없다면서? 책방과 도서관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는데 책방은 보이지 않고 도서관은 멀기만 하네? 내가 좋아하는 야구는 이제 더 이상 야구장에서 보기 힘들겠지? 고속버스 시간에 맞춰 야구장에 가려면 1박 2일은 잡아야겠더라. 친구들도 못 보는 건가? 자꾸만 마음이 어수선하다.


지난밤에 눈이 내렸다. 빗자루를 챙겨 들고 눈을 싹싹 쓸었다. 땀이 조금 났고 하안 풍경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적당히 한 운동에 비해 허기는 꽤 컸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최근 몇 년간 불면과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남편은 요즘 꿀잠을 자고 밥을 예전보다 잘 먹는다. 밥을 먹던 남편이 웃는다.


“우와, 지금 우리 1시간 동안 밥을 먹고 있네? 이렇게 살면 엄청 건강해질 것 같아. 안 그래?”

“나도 두통이 없어진 것 같아.”

그래 뭐,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은 방금 이사 와서 적응하느라 그런 거리라. 

                                                                                                                       2023년 1월 12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