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 왔다.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현실자각타임’이다. 밭고랑과 이랑을 구분도 못하던 내가 농사를 지워 보겠다고 이랑을 만들었다. 이랑은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둑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이고 이랑을 쌓기 위해 파낸 골을 고랑이라고 한다는 것을 배웠다. 쉽게 말해 작물은 이랑에 심고 사람은 고랑으로 다니고, 고랑과 이랑을 한 번에 이랑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랑과 고랑을 구분하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랑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달랑 하나 만들고 앓아누웠다. 두 이랑 더 만들어야 하는데 고개가 절레절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이래서야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키우기로 했다. 시골 생활의 시작점으로 이 정도면 소소하고 쉽다고 생각했다. 흙에 씨앗만 송송 뿌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준비 작업이 있다. 흙을 만들어야 했다. 거름을 뿌리고 흙을 뒤적뒤적 거려 섞어 2주일 정도 숙성시키는 것이 좋다고 한다. 흙과 거름을 섞고 밭이랑을 만들기로 했다.
삽질이 쉽지 않았다. 기세 좋게 삽을 흙에 꽂았는데 삽이 떠지지 않았다. 땅이 삽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흡사 내가 삽에 매달린 기분이었다. 삽이 나에게 너무 큰가? 나에게 힘이 이렇게나 없다고? 어라? 남편은 쉽게 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삽질을 군대에서 배운다고 들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삽질을 제법 하는구나 싶었다. 힘이 있으면 그냥 되는 건가? 나보다 힘센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줄행랑을 치고 싶었으나 의리 있는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시골에 오면서 가능하면 일을 함께 하기로 했었다.
삽 대신 호미를 들었다. 호미질도 만만치 않았다. 쭈그려 앉아 있으려니 학교 다닐 때 오리걸음 벌칙을 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 받은 다음날은 걷기 무지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다리에 알이 배이고 뻐근하겠지. 에고.
“밭이랑이 10미터는 넘을 것 같지. 그지? 아닌가?”
“밭에 생각보다 돌이 참 많네. 이런 땅도 농사가 되기는 하는 건가?”
“나는 농사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이랑 만들다가 이렇게 지치는데, 뭘 수확할 수 있을까?”
“역시 사 먹는 게 나으려나.”
“나처럼 힘이 부족한 사람은 시골에 살면 안 될 것 같아.”
밭이랑 달랑 하나 만들고는 호미를 내려놓고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궁시렁궁시렁거렸다. 묵묵히 삽질을 하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자신은 농사지을 마음이 전혀 없는데 텃밭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말한 사람이 나였다고. 나도 알고 있다. 거창한 농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 가족은 아침에 샐러드와 빵 한 조각을 먹는다. 그저 우리 가족이 아침에 일용할 샐러드 채소 몇 가지만 키우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주말농사도 딱 한 번 해보고 포기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밭이랑 달랑 하나 만들고 농사를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이것도 농사라고 말이다. 호미질도 겨우겨우 하는 내가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시골생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