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후르츠>를 보았다. 이 영화에는 90세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못하는 게 없는 슈퍼 우먼 87세 츠바타 하데코 할머니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식사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린다. 밥과 국 그리고 생선구이를 포함한 몇 개의 반찬. 소량이지만 가짓수는 많다. 할머니는 몇 번을 불러도 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찾아 식탁으로 모셔온다. 식탁에 앉은 할아버지가 김을 찾자, 할머니는 김을 급히 굽는다. 구운 김과 함께 할아버지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할머니도 식사를 시작한다. 우와~ 할머니는 토스트에 쨈을 착착 발라 드신다. 얼마나 맛있게 보이던지 침이 고였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식사를 진수성찬으로 표현한 이유다.
이 장면만 보면 할아버지가 너무 못된 사람 같다. 전혀 아니다. 할머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밖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이 따스하고 귀엽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화면 밖으로 배어 나온다. 어른들에게 귀엽다는 말은 버릇없지만 정말이지 두 분은 귀엽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 ‘는 교육을 받고 자란 할머니는 결혼 이후 할아버지의 응원과 격려를 받아 스스로 행동하며 어떤 말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게 지지한다. 두 분은 역할을 나눌 것은 나누고 함께 해야 할 일은 함께 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1960년대 고조지 뉴타운 계획에 참가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위한 설계안을 제시했지만 선정되지 못한다. 그 후 뉴타운 개발에서 중도에 손을 떼고 자연과 더불어 천천히 살기로 한다. 고조지 교외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숲을 가꿨다. 40여 년 동안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집은 자연의 순환, 인간과 공존이 묻어나는 곳이다.
매실, 체리, 감, 밤을 비롯한 과일 50여 종 아스파라거스, 감자와 같은 70여 종의 채소를 두 분이 함께 가꿔 수확하여 요리를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할머니의 손을 거치면 조림, 쨈, 케이크, 푸딩 등등 맛있는 음식이 된다. 작물들의 이름과 정다운 메모가 적혀있는 노란 팻말을 보며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두 분처럼 살고 싶다. 남편과 나의 관계는 두 분과 비슷하다. 우리 부부도 상대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배려한다. 웅변하는 사람처럼 목청 높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덕질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문화를 이해 못 하고 진절머리를 치는 남편이지만 나의 덕질을 돕는다. 가수 이승윤의 콘서트 티켓팅을 돕고 공연이 늦게 끝나면 데리러 온다. 나도 하데코 할머니처럼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지지한다. 반대대신 질문을 많이 한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남편을 따라왔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부부의 관계는 비슷하게 만들어졌으니 절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연과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다. 두 분처럼 우리가 먹을 채소와 과일을 키우고 싶다. 슈이치 할아버지의 가치관 ‘순환하는 자연과의 공존’ 은 잘 모르지만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내가 가꾸고 싶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두 분의 삶을 보며 용기를 얻고 싶은데 도리어 사기가 꺾이는 것은 왜일까? 남편이 텃밭농사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가? 호미질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 꿈을 꾸는 건가?
영화에서 하데코 할머니와 슈이치 할아버지가 ‘차근차근 천천히’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나 같은 사람도 차근차근 천천히 조금씩 하다 보면 된다는 말이리라. 10년? 40년?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