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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17. 2023

봉지커피와 다시 친해졌다


250개들이 봉지커피를 샀다. 이걸 다 먹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최소 한 달은 걸리겠지 했는데 3주 만에 똑 떨어져서 또 샀다. 나와 우리 가족들은 봉지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아이들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나와 남편은 핸드드립 커피를 주로 마셨다. 봉지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딱히 구입할 일도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집에 오면 항상 마실 수 있는 음료이다.


시작은 이렇다. 오랫동안 살았던 과천집을 정리하고 문경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했다.  이사 날짜가 어긋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집으로 들어왔다.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얼추 마무리되었다.  입주하고 2주일, 무려 14일 동안 화장실 문도 없는 집에서 지냈다. 싱크대설치, 방문과 화장실문 설치. 창문 몰딩, 빗물받이 설치, 붙박이장 공사, 커튼 설치, 장판 보수 등등. 매일매일 마무리 공사를 위한 인부들이 왔다.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오셨으니 따뜻한 차를 마시며 손이라도 녹이고 일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차 한잔 하시겠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커피를  원했다. 커피 외에 다른 차를 요청한 경우는 한 번 뿐이었고 게다가 콕 집어서 봉지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드릴과 망치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커피를 내리고 있기도 민망했는데 다행이다 했다. 봉지를 뜯어 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 휘휘 저으면 금세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간단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음료가 있으랴. 이렇게 우리 집에 봉지커피가 상주하게 되었다.


나도 한때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봉지커피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가방을 책상 위에 던지듯이 올려 두고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한 잔 마시는 커피는 얼마나 다정했던가. 오늘도 일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맛이었다. 오후 3시와 4시 사이쯤 마시는 커피는 얼마나 달콤했던가. 없는 능력과 있는 성실을 다 짜내어 일하다 보면 몸이 아우성을 쳤다. ‘ 당과 카페인을 보충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있는 능력이 바닥날 것이니 당장 커피를 마셔라.’  직원 중 누군가 내려놓은 원두커피가 있어도 봉지커피에만 손이 갔다. 이렇게 홀린 듯이 꼬박꼬박 마시던 봉지커피가 휴일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퇴사를 하고 내가 봉지커피를 조금씩 잊어갈 무렵 원두커피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봉지커피와 헤어졌다.


매일 우리 집을 위해 애쓰는 아저씨들에게 커피를, 봉지커피를 대접하면서 나도 함께 마셨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줄이야. 하루종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 작업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고 , 작업이 끝나면 제대로 했는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틈틈이 이삿짐 정리하느라 몸도 피곤하다. 당과 카페인을 보충해야 했다. 봉지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뿐인가. 아파트에 살던 때보다 방문객이 많아졌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리라.(제발) 암튼 지간 동네사람들과 친척 어른들이 인사차 들린다. 가끔 차를 우려내기도 하고 드립커피를 준비해 보지만 역시 봉지커피가 빠르고 편하다. 이런데 봉지커피와 어떻게 헤어지겠나. 그냥 쭉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달달하니 맛있다.


#브라보문경라이프?? #문경일기 #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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