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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18. 2023

도서관이 너무 멀다


왕복 30km

소설 <하얼빈>을 도서관에서 빌리기 위해 오늘 내가 움직인 거리이다.  과천에 살면서 붕어빵이 먹고 싶어 강남역에 다녀온 기분이랄까. 붕세권 앱이 과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붕어빵 가게가 있는 곳이 강남역이라고 했다. 겨울만 되면 붕어빵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지만 그렇다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강남까지 가지는 않았다. 눈물이 또르륵 또르륵 거리지만 붕어빵은 안 먹으면 그만이고 대신 호빵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집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 타박타박이든 뚜벅뚜벅이든 성큼성큼이든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참 좋겠다.


오늘은 문경으로 이사 온 지 처음으로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쓸모없어 보일 수 있는 외출을 했다. 목적지는 문경시립 모전도서관이다. 과천의 봄봄친구들과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날이다. 봄봄 친구들은 얼마 전부터 온라인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 후 오늘에서야 참석할 여유가 생겼다. 몇 장이라도 읽고 참가해야 할 것 같아 도서관으로 갔다. 책을 대출하려면 회원증을 만들어야 한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공지대로 신분증을 가지고 갔다.


“대출증을 발급해 드릴 수 없습니다.”

“왜요? 문경시민은 누구나 가능하다는 글을 보았는데요.”

“주민등록증에 주소 변경이 되지 않아서 발급이 불가능합니다.”

“전입신고할 때 동사무소 직원분이 신분증 뒷면의 주소는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네. 그런데 저희는 문경시민이라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달리 없어서요.”


‘그럴 거면 주소가 수정된 신분증을 지참하라고 공지하셔야지요?’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실수였다. 꿀꺽 삼키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노) 요즘 동사무소는 동사무소가 아니라 ‘행정복지센터’이다. 이름만 거창하게 바꾸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신분증이 있어도 내가 문경시민이라는 사실을 증명도 못하는데 제대로 된 행정 맞나. 누구나 걸어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야 복지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이게 나라야.


아, 너무 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집을 나설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서관까지 차를 타고 ( 나는 자가용도 없는데)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직은 힘들다. 이사 전부터 알고 있었고 각오하고 마음의 준비도 할 만큼 했지만 막상 현실로 확인하니 심란하다. 기껏해야 한 달에 2권 내지 3권 정도 읽으면서 속된 말로 개오바인가. 책방에서 사면 간단한데 유난스럽다고 할지 모르겠다. 책방에서 사야 하는 책이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야 하는 책이 있다. 더불어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웬만하면 줄여야 하니 도서관이 더더욱 필요하다. 책방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라는 말도 있던데, 도서관이 없는 마을도 마을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나에게는 그렇다.


동사무소를 들렀다가 이번에는 호계 작은 도서관으로 갔다. 모전도서관에서 대출증은 만들지 못했지만 사서의 도움으로 문경에는 면소재지 단위로 8개의 작은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계면의 작은 도서관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워 보였다. 상냥한 사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출증을 만들고 책을 5권이나 빌렸다. 1권만 달랑 빌리기에는 엄청나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랬다. 다 읽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1인당 대출한도를 꽉꽉 채웠다. 작아도 도서관은 도서관이었고 상냥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책을 읽고 있던 어린이들도 귀여워 마음이 풀렸다.


집으로 돌아와 네이버에게 도서관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매 번 남편에게 태워달라고 하기 싫다. 어느 날 문득 가고 싶으면 혼자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가 대답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 거리는 8.7km, 대중교통정보는 찾을 수 없단다. 도보로 2시간 18분, 자전거로 39분, 자동차로 10분 걸린다.  작은도서관까지 합치면 11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다. 아이고아이고.  어쩔 도리가 없다. 책은 빌려 보는 것이 아니라 구입해서 읽어야 한다는, 그래서 도서대출증이 필요 없다는 남편 이름의  대출증도 만들었는데 참 잘했구나 싶다. 이제부터 도서관은 함께 가는 것이다. 남편이 나를 태워 주는 것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하얼빈>을 드디어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불쑥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모임 시작 전에 조금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손님접대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모임시작 시간이다. 표지도 넘겨 보지  못하고 봄봄 친구들과 만났다. <하얼빈>을 물고 뜯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다. 모임이 끝났고 평도 좋지 않지만  어떻게 빌려온 책인데 싶어 읽기 시작했다. 불현듯 깨달았다. <하얼빈>보다 다음 주 이야기 나눌 책을 읽는 게 우선이구나. 또 도서관을 가야 하는구나.  으아아아아악. 그래도 오늘처럼 왕복 30Km 거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겨우 10km 정도이다. 까짓 거.


#브라보문경라이프?? #문경일기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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