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 집배원 아저씨와 친구가 될 줄 알았다. “편지 왔어요.” “멀리까지 수고해 주셔 감사합니다. 이거 드셔보셔요.” 이러쿵저러쿵하면서 편지를 주고받고 음료수를 주고받고 안부를 나누고, 뭐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옛날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 하긴 집배원 아저씨와 살가운 대화를 주고받던 영화 속 장면은 빨간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옛날 옛적 이야기이다. 요즘은 바이크를 타고 다닌다.
암튼 친구 되기는 힘들다고 해도 우편물이 왔다고 큰소리를 내거나 벨을 울려 알려주는 줄 알았다. 대문도 담장도 없는데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 앞 골목 어귀로 들어서는 집배원 아저씨의 바이크를 보았다. 오호라, 우리 집으로 편지가 오는구나.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집배원 아저씨에게 드릴 음료를 가지러 갔다. 후다닥 음료를 가지고 돌아오니 벌써 집배원 아저씨는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는 우편물은 없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데크 위에 놓여 있었다. 데크에서 서너 걸음만 지나면 현관문이고, 문 옆에 초인종도 있는데 바다 건너 미국 우편배달부들은 벨을 두 번이나 울리기도 하는데 한 번쯤 벨을 울려도 되지 않나.
곰곰이 단독 주택에 살았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 보니 그때도 집배원 아저씨들은 우편물을 대문에 설치된 우체통에 넣거나 아니면 대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우편물이 왔다고 소리를 내거나 벨을 울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편지가 있으면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들락날락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나는 시골 단골주택에 살면 집배원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상상을 했을까? 집배원 아저씨라는 존재가 마냥 반가워서 그런가? 암만 생각해도 옛날 영화 때문이다. 더불어 편지를 기다렸던 나의 설렘과 낭만이 한몫했다.
낭만이 깨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밭을 둘러싸고 있는 개비온 옹벽(철사를 엮어 만든 철망 안쪽에 돌을 채워 만든 벽)에 끼여 있는 수도요금 고지서를 발견했다. 납부 기한이 지난 고지서였다. 고지서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집배원 아저씨가 나름 신경 쓴 것이다. 바람에 날려가지는 않았지만 눈에 쉽게 띄지 않아서 한참 만에 보았다. 월말이 되어도 고지서가 오지 않아 인터넷으로 수소문해서 전자납부를 했다. 안 그랬으면 이사하자마자 연체료를 낼 뻔했다.
대문을 만들었다면 대문이 있을 것 같은 자리에 빨간 우체통을 설치했다. 한 줌 남아 있는 낭만도 지키고 우편물 분실을 막기 위해서이다. 예쁘다. 우체통 앞에 서니 동화책으로 쓱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편지만 오면 되는데 편지가 올까? 고지서만 올 것 같다. 조만간 온라인 고지서로 바꾸면 어쩌면 늘 비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배원 아저씨들이 우리 집 빨간 우체통을 좋은 소식으로 가득 채워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