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별 선언문을 썼었다

by 송알송알



“오늘부로 야구 끊는다.”

야구 끊는다, 내가 다시 야구를 보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다시는 야구 보나 봐라 등등 시즌 때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야구팬들이 하는 거짓말이다. 응원하던 선수의 음주운전, 도박, 금지약물복용, 승부조작,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취미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기력, 이기는 것보다 지는 날이 더 많은 실력 , 오심 등등 우리로 하여금 야구를 끊고 싶게 만드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야구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우리는 툭하면 이별을 선언하고 번복하고 또 선언하고 번복한다. 2021년 7월은 달랐다. 궁서체이고 ‘시리어스’했다. 말로만 이별이라는 말을 뱉으면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메모장을 열고 이별 선언문을 쓰기 시작했다.


NC 선수들의 방역 위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믿을 수 없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고 싶어서 환장했을 리도 없고 말이야. 프로선수가 시즌 중에, 휴식일도 아니고 경기가 진행 중인데 새벽까지 술파티를 했다니 말이야 막걸리야? 새벽까지 술을 쳐마시고 저녁에 시합을 한다고? 세상에나, 근육돼지들은 그게 가능하구나. 시합 내내 뛰어다녀야 하는 축구, 농구, 배구선수들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을 거다. 그래, 뭐 선수들도 보통사람들처럼 밥벌이의 고단함을 가끔 술로 달랠 수 있는 거라고 수백 번 양보해서 이해해보겠다. 숙소에 여자들을 불러들여 집합 명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노무 자슥들을 확~ 마~ .


숙소에서 외부인과 함께 술파티를 벌인 선수들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두산베어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KBO 매뉴얼대로 하면 두 팀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1군 선수 대신 2군 선수들로 꾸려 경기를 해야 했다. 두산 선수의 밀접접촉자였던 기아 포수 2명 대신 1군 배터리 사인도 모르는 2군 포수를 부랴부랴 불러 기아타이거즈는 경기를 치렀다. 작년에 2 군선수단 전체가 자가격리를 했던 한화이글스는 부상 선수가 나와도 교체할 선수가 없어 2주일을 힘들게 버텼다. 이번에도 당연히 매뉴얼대로 리그는 계속되는 줄 알았다. 설마설마했는데 리그가 중단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고 올림픽브레이크로 2주 쉬는데 1주일 더 중단해도 상관없으며, 팬들이 2군 선수들이 하는 수준 떨어지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었다.


“엿가락 매뉴얼이구나”


리그 중단 없는 시즌을 위해 올해 초에 심사숙고하여 재정비한 매뉴얼이었다. 나는, 우리는, 팬들은 KBO매뉴얼에 따라 야구장 치맥과 육성응원을 포기했고 싸인이나 팬미팅 같은 대면 서비스를 요청하지 않았다. 야구가 없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몇몇 구단의 이해타산에 따라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매뉴얼이라니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BO매뉴얼은 특정 팀을 위한 것이었나?

불공정에 대한 의심은 늘 있다. 팬들 사이에 ‘총재존’,’ 숙부존’,’ 퇴근존’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특정팀에 유리하게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한다는 의미이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심판의 판정에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KBO는 물의를 일으킨 선수와 구단, 심판에게 징계를 내리고 엄중경고를 했다고 발표한다. 팬들의 시선에는 솜방망이 처벌로 보이지만 매뉴얼대로 판단했다는데 별도리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방역 위반에 대한 처리과정을 보면서 ‘총재존’, 숙부존’ ,’퇴근존’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리그를 중단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매뉴얼을 순식간에 바꾸면서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매뉴얼은 지금껏 왜 그대로 두었나. 특정 구단과 선수에 따라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매뉴얼이라서 그랬나. 스포츠에서 공정을 빼면 우리가 그 경기를 즐길 수 있을까?


툭하면 야구를 끊네마네 하면서도 내가 야구와 이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야구를 믿는다. 오늘은 꼴찌이지만 내일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오심은 사람이라서 하는 실수라는 믿음,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은 응당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믿음,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에 대한 믿음, 경기는 공정하게 운영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KBO는 우리 야구팬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호텔 술파티에 연루된 선수들이 전체 구단으로 늘어났다. 이노무 자식들이 확… 마~


2021년 7월 야구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아니, 야구이별선언문을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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