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야구와 헤어지기로 했다. 몇몇 구단의 이해타산에 KBO가 장단을 맞추더니 덜컥 리그가 중단되었다. 공정이 빠진 스포츠에 배신감을 느꼈고 화가 났다. 야구와 이별을 결심하고 말로만 하면 늘 그렇듯이 흐지부지될까 메모장을 열고 ‘야구이별선언문’을 쓰기 시작했다. 원정 숙소에 외부인까지 불러 술파티 하니 재미있더냐? 방역지침을 어겨도 건강해서 코로나와 상관없을 줄 알았냐? 새벽까지 술 마시고도 저녁에 경기를 뛸 수 있는 종목이라 좋더냐? KBO는 특정 팀과 특정 선수에게 맞춰 매뉴얼을 엿가락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부끄럽지 않더냐? 농담처럼 떠돌던 ‘총재존’,’숙부존’,’퇴근존’이 정말 존재하는 것이었냐? 오심은 실수가 아니라 특정 팀을 봐주기 위한 것이었냐? 메이저리그에 견주지도 못할 경기력을 갖고도 팬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말로 최고인 줄 알았냐? 공정하지 않아보이는 우리 야구를 나보고 어떻게 즐기란 말이냐? 나는 이제 야구 고만 볼란다. 이별 선언문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고 있었다. 궁서체로 말이다.
야구를 끊겠다는 말은 나를 비롯한 야구팬들이 삼시세끼 밥 먹듯이 하는 거짓말이다. 전날 야구를 그만 본다고 결연하게 말해놓고도 야구경기 시작 시간이 되면 어느새 TV 앞에 앉아 있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철가루처럼 말이다. 야구 경기하는 동안 야구를 보지 않기 위해 책 읽기, 산책, 운동, 친구와 수다 떨기 등등 이것저것을 해본다 책 한 장을 채 읽기도 전에, 산책을 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운동을 하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야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핸드폰을 흘끔거린다. 하루 저녁을 야구 없이 어찌어찌 버텨내었다해도 다음날 아침 스포츠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야구와의 이별이 이렇게나 어렵다. 내가 등 돌리면 가뜩이나 팬 없다고 놀림받는 우리 팀이 어떻게 될까 봐 너무 걱정된다. 오늘은 꼴찌이지만 내일은 잘할 것 같고 우리 팀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유니폼이 흙투성이 되도록 땀 흘린 선수와 목이 터지도록 응원했던 나는 깐부 아닌가. 깐부끼리 헤어진다는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2017년 난생처음 야구장에서 직접 본 사이클링히트의 환호와 2018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헤어질 수 없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믿고 야구를 좋아하고 팀과 선수에 정들어서 , 우리는 야구를 끊네마네 거짓말을 반복하면서도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일 년 중 7개월 동안 매일 저녁 중계되는 야구 경기를 외면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이번에는 달랐다. 야구가 없었다. 리그 중단으로 야구 경기가 없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도 없다. 암튼지간 좋아! 이대로 야구와 제대로 이별해보자꾸나. 리그 중단으로 야구와 이별을 결심하였는데 이별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우미 역할도 한다. 어머나. 땡큐다. 땡큐.
“서건창 선수가 LG로 트레이드되었다는데?”
엥, 무슨 소리야? 서건창 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이전에 키움히어로즈의 역사이자 심장이다. 그런 선수를 쌍둥이네로 보냈다고? LG 트윈스가 우리 서건창 선수를 탐내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무슨 일이야? 믿을 수 없다. 그럴 리 없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선수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그동안 응원해준 히어로즈 팬과 구단에 감사하다며 우리 서교수님이 울먹인다. 리그 중단의 시발점이 되었던 NC 선수들의 원정 숙소 술파티에 연루된 선수들이 전구단으로 늘어났고. 키움히어로즈의 선발투수 2명도 연루되어 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게 되고, 선발투수가 부족해진 구단은 엘지트윈스의 투수와 우리 서건창 선수를 홀라당 바꿔버렸다. 트레이드 절대불가 선수라고 말해놓고는 이래도 되는 건가. 안돼. 안된다고~
프로 선수들의 소속팀이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모기업이 없어 재정이 열악한 히어로즈 구단은 트레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돈이 많이 필요한 자유계약(FA) 선수를 잡지 못한다. 히어로즈 팬들은 선수와의 이별에 익숙하다. 하지만 히어로즈의 대표선수를 이런 식으로 다른 팀으로 보내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FA 계약의 머니게임에서 진 것도 아닌데 우리 서교수님을 이렇게 보낸다고? 술은 딴 놈이 먹었고, 사고도 딴 놈이 쳤는데 왜?
자신의 응원가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는 서교수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하다.
속상하다.
서교수가 은퇴할 때까지는 응원해야겠다.
응원을 하려면 야구를 계속 보아야 한다.
2021년 7월 야구에게 이별을 선언했지만 이번에도 헤어지지 못했다.
나는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만 하나 더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