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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04. 2022

내 나이가 멋지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후후. 여러분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사십 대는 그전보다 돈이 많아. 선생님은 이십 대보다 지금이 더 좋아. 왜냐하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거든.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지금이 제일 부자야! 나는 먹고 싶은 것도 다 사 먹을 수 있어.”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가 아이들과 ‘멋진 __살’이라는 표를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아이들의 두 살은 학교에 안 가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걸 다 해주시는 때였으니까 멋지다고. 열두 살은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게임도 할 수 있어 멋지고. 스물두 살은 공부를 안 해도 되고, 운전도 하고, 어쩌면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여행도 다니고 게임도 실컷 해서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마흔두 살의 멋짐에는 묵묵부답이다. 40대 중반인 김소영 작가가 왠지 발끈해서 멋진 점을 나열하지만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비장의 카드로 사용한 이 말에도 아이들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2살은 힘들 것 같단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작가가 만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독서교실 선생님이다.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마음과 작가의 따스한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니면 본디 타고난 성정일까. 암튼 지간 작가의 마음이 참 예쁘다.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미소를 짓다가, 옛 생각에 빠지기도 하다가, 반성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친구들과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누다가 우리도 ‘멋진 __살’표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는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금요일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는 50~60대 초반의 중년이다. 아이들의 눈에 결코 멋지게 보이지 않는 우리들은 지금의 나이라서 좋은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욕심을 덜 부리게 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항상 무언가를 번듯하게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나는 지금이 편안하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자신을 들들 볶으며 자책하던 날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도전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고, 신체적으로 하기 힘든 없는 일도 생긴다. 처음에는 할 수 없는 일, 해도 잘 안 되는 일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속상했다. 체념과 포기, 순응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외모, 지성, 경제, 건강의 평준화가 이뤄진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남들과 비교도 덜 하고 욕심이 많이 줄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 이 나이가 멋지다.

 

“남편 하고 덜 싸운다.”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 남편과 갈등이 많았다는 친구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좋다고 한다. 여전히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가진 남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덜 싸우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대로 인정한다. 어려서는 너무나 힘들었던 일이다. 무조건 내가 맞고 남은 틀렸다는 생각에 갇혀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다. 설득을 위한 노력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싸움이었다고 웃는다.

 

“내가 이 세상에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은 이들에 대한 불안함이 줄어 좋다.”

부모들의 공통된 소망과 불안이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하며 지지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어린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까 불안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막상 성년식을 치른 아이를 보면 학업을 마칠 때까지, 학교를 마치고 사회초년생이 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옆에서 든든히 지켜 주어야 할 것 같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도 아이가 성년이 되면 부모들의 불안은 어렸을 때보다 많이 줄어든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이 좋다.”

결혼과 출산을 거쳐 〇〇엄마가 되면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쓰기가 힘들다. 전업주부이든 맞벌이 주부이든 〇〇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시부모 혹은 친정 부모를 모시고 살면 더욱 힘들다.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바쁘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엄마 손을 덜 탈 무렵이면, 이제는 부모님들이 아프시다. 돌봄 노동을 하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나이와 더불어 나를 위한 시간이 조금씩 늘어간다는 것은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무시하고 음흉하고 불쾌한 시선이 없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에서 남자 동기생들은 〇〇〇씨, 나는 〇양이라고 불렀다. 너무 약이 올라 남자 동기생들처럼 불러 줄 것을 요구했다가 되려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일에 서투른 미숙한 신입직원인 것은 남자이건 여자인 건 매한가지인데 남자 동기들을 〇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사무실의 꽃이라는 등. 역시 영계가 좋다는 등 그때는 성희롱 인지도 모르고 참아야 했던 시선들이 있었다. 예쁜 미모의 소유자라면 어떻게 해보려고 들이대는 남자들이 많았을 거다. 나이 드니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막 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맞다. 하지만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시선들이 없어져 좋다는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때 받았던 시선은 아줌마를 대하는 시선들로 바뀌었다. 더 무시받는 것 같고 더 불쾌하다. 친구가 지금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시선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힘이 생겨서이지 않을까?

 

“항상 나이 드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더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친구의 말이다. 울컥한다. 2살, 12살, 22살, 32살의 멋짐을 잘만 찾아내던 아이들 눈에도 42살부터는 멋지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진정 멋진 모습일까? 욕심을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들린다. 남편과 덜 싸우게 된 것은 그만큼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걱정투성이인 데다, 어울려 지내던 사람들과 하나둘씩 이별하는 나이를 살고 있는데, 이 나이가 좋다고 어떻게 말해?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다.”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지금은 온라인 모임) 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나눈 지 10년이 넘었다. 책이라는 매개체가 없었으면 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이 아주 많은 어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멋질 것 같다. 42살의 멋짐을 몰라본 아이들도 82살은 멋지다고 말한다. 인생에 여유가 있다나. 아이들의 눈은 정직하고 정확하다. 나는 나이와 함께 멋져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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