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잘피를 심어요 그대 ‘멍’든 가슴에

현진건의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를 읽으며

by 윤슬

벌써 몇 분째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 생각은 질서가 없다. 사과 생각 중에 레몬이 튀어나오고 레몬 속에서 사과를 생각해보지만 사과는 자꾸 밀려나간다. 레몬이 생각의 범위를 넓혀간다. 겨우 튀어나온 사과의 자리에서 레몬을 노려본다. 잠은 멀리 달아난 지 오래다. 남편의 옆구리를 친다. 살짝 친다고 쳤는데 손의 감각에 힘이 들어가고 아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그런지 잠을 잘 때마다 죽기 살기로 코를 골아댄다. 그러다가 숨을 멈추고 쉬지 않는다. 그것이 자꾸 반복이 된다. 거슬린다. 툭 친다. 그러면 막혔던 숨이 툭 터진다. 그러다가 또……툭 친다.


레몬은 끈질기다. 레몬 속에서 때아닌 오리가 걸어 나온다. 둠벙에서 궁둥이를 맞대며 속삭이던 오리다. 몸뚱이 자체가 크지는 않다. 그냥 살찐 비둘기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크기다. 그러나 뱃살이 옆구리로 퍼져 흘러 통통한 것이 암팡지게 보인다. 대가리는 빛나는 초록, 주둥이는 십자수 실타래 783번의 누런 황금빛, 울음소리 길게 퍼져 나오는 목줄기는 433번의 암갈색……맥심 모카골드 마일드라고 써진 병 안에 절반쯤 담긴 커피 알맹이 빛깔이다. 대가리와 목줄기 사이에 하얀 리본을 매고는 정성 들여 다듬은 깃털을 바람에 날리며 뒤뚱뒤뚱 걸어 나온다. 눈동자가 맑게 빛난다. 혹독한 시련의 시간……몸서리치게 아팠던 지난겨울 그 좁은 가시울타리를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온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다리는 가느다랗다. 720번의 주황색……이 빛깔의 실 두 가닥을 바늘에 꿰어 동그란 수틀 안에서 아래로 밀어내고 위로 뽑아 올리면 수틀의 동그란 판 위에서는 한 송이 매화가 피어난다. 굵직한 가지 위에 피어나고 가느다란 가지 사이에 피어 붉은 꽃 매화와 어우러져 봄을 이룬다. 오리의 몸에 흔적이 없다. 가시울타리 그 좁은 통로에 촘촘히 박힌 날카로운 가시에게 긁힌 흔적이 없다. 매꼬롬할 뿐……몸에 생긴 상처는 어디에 숨겨놓았을까……레몬 속에서 걸어 나온 때아닌 오리가 물을 박찬다. 차르락 촤르르 물결이 일어서고 푸드덕 오리가 날아오른다. 그 곁에 아낙이 있었던가. 하얀 몸통에 435번 433번의 갈빛과 310번의 검정이 783번의 누런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낙 오리……청둥오리가 사람보다 먼저 봄을 준비하는 꽃가지 사이로 날아서 어디론가 울음을 놓는다.


객쩍은 레몬, 그것을 털어내고 일어난다. 도저히 더는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남편의 몸을 더듬고 넘어 침대를 벗어난다.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빗소리가 멈추었다. 지난가을부터 겨울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다. 겨울가뭄이 계속되는 시절 사람들은 비를 바라지만 하늘은 사람들의 마을에 비를 주지 않는다. 흡족하게 내려주었으면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쫄쫄쫄 내리는 소리가 도랑물 소리처럼 들려오더니 언제쯤인지 모르게 그마저도 멈추어버렸다. 두꺼운 창문을 밀고 베란다로 나가 가볍게 밀리는 창문을 열어 텃밭을 내려다본다. 흙이 젖었나? 비에 젖은 것인가? 이슬에 젖은 것인가?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전날에 검불들을 긁어모아 태운 자리에서 풀풀거리던 재들이 눅눅하게 풀 죽어 있을 뿐이다. 징그럽게 오기가 싫은갚다.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온다.


잘피를 심어요 그대 ‘멍’든 가슴에~ 제목이 떠오른다. 며칠째 제목만 달아놓고 한 줄도 써내지 못하던 답답함을 앞에 두고 다시 망설인다. 수를 놓을까, 글을 쓸까?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의자에 놓인 수틀을 보다가 왔다가 갔다가……어지간히 어정거린다. 그리고는 관찰자가 되기로 한다. 세로 길이 짧은 식탁에 노트북을 놓고 가로길이 긴 곳에 수틀을 놓는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내려는 심산이다. 될까? 자신에게 물어본다. 웃는다. 어이가 없는 것이겠지.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병이 놓인 곳으로 걸어간다. 커피포트에 불을 댕기고 큼지막한 컵에 커피 한 스푼, 프리마 한 스푼 하고 쬐금, 노란 설탕 한 스푼을 넣고 팍팍 끓어오른 물을 붓는다. 그리고 젓는다. 으음, 향기가 코끝을 적시고 가슴을 적신다. 쌉싸름하지만 달착지근한 맛이 혀를 달군다. 아침이 온다. ‘모본단 저구리가 하나 남았는데……’ 텅텅 비어 가는 장롱 안을 이리저리 뒤지며 ‘어째 없을까?’ 애를 태우는 K의 아내를 불러낸다. 그 여인에게 이 커피 한 잔이면 눈물이 비처럼 흠뻑 쏟아질 것 아닌가? 사람아, 사람아, 가여운 사람아……그대 고운 눈빛에 가난이 물들면 어찌할 텐가……어여쁜 사람아……그대 슬픈 여인아,


이 순간에 오늘 지낸 일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권연(卷煙) 한 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은행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놀러 왔었다. 친척은 다 멀지 않게 살아도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찾아갈 적마다 무엇을 뀌어내라고 조르지도 아니하였건만 행여나 무슨 구차한 소리를 할까 봐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여 나도 발을 끊고 따라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다만 이 T는 촌수가 가까운 까닭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성실하고 공순하여 설설(屑屑)한 소사(小事)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동년배인 우리 둘은 늘 친척 간에 비교거리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의 평판이 항상 좋지 못하였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모짝에도 못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자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이것이 그네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인지 무엇인지 하는 소리가 까닭없이 그네들의 비위에 틀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네들의 생일이나 혹은 대사 때에 돈 한 푼 이렇다는 일이 없고, T는 소위 착실하게 돈벌이를 하여가지고 국수 밥소라나 보조를 하는 까닭이다.

“얼마 아니 되어 T는 잘 살 것이고 K는 거지가 될 것이니 두고 보아!”

오촌 당숙은 이런 말씀까지 하였다 한다. 입 밖에는 아니 내어도 친부모 형제까지라도 심중으로는 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부모는 달라서 화가 나시면,

“네가 그리 하다가는 말경에 비렁뱅이가 되고 말 것이야.”

라고 꾸중은 하셔도,

“사람이란 늦복 모르느니라.”

“그런 사람은 또 그렇게 되느니라.”

하시는 것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씀이고, 또 며느리를 위로하는 말씀이었다. 이것을 보아도 하는 수 없는 놈이라고 단념을 하시면서 그래도 잘되기를 바라시고 축원하시는 것을 알겠더라.

여하간 이만하면 T의 사람됨을 가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리 집에 올 것 같으면 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며 힘써 재미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단둘이 고적하게 그날그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웠었다.

오늘도 그가 활발하게 집에 쑥 들어오더니 신문지에 싼 기름한 것을 ‘이것 보라’ 하는 듯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분주히 구두끈을 끄른다.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물어보았다.

“저- 제 처의 양산이야요. 쓰던 것이 벌써 다 낡았고 또 살이 부러졌다나요.”

그는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벙글벙글하면서 대답을 한다. 그는 나의 아내를 보며 돌연히,

“아지머니, 좀 구경하시랍니까?”

하더니 싼 종이와 집을 벗기고 양산을 펴 보인다.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이었다.

“검정이는 좋은 것이 많아도 너무 칙칙해 보이고…… 회색이나 누렁이는 하나도 그것이야 싶은 것이 없어서 이것을 산걸요.”

그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살 수가 있나!’ 하는 뜻을 보이려고 애를 쓰며 이런 발명까지 한다.

“이것도 퍽 좋은데요.”

이런 칭찬을 하면서 양산을 펴 들고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히 보인다.

―현진건 「빈처」(40~42쪽), 『한국문학전집』, 문학과 지성사, 이하 동일


K의 마을에도 비가 내린다. 돈 한 푼 나는데 없는 사람들, 언문이나 섞어가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는 것이 겨우 하루 동안 하는 일의 전부인 K의 집에 비가 내린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어도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던 밤, K는 아침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모본단 저고리를 애써 찾는 아내를 본다. 그의 마음에 처량함이 찾아든다. 입맛을 쩝쩝 다시고, 폈던 책을 덮어놓고, 한숨을 내쉰다. 입 안에서는 “빌어먹을 것, 되는대로 되어라.” 자포자기의 말이 터져 나온다.


한성은행에 다니는 동년배 T가 다녀간 뒤 아내는 말했었다.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 핏기 없는 얼굴에 붉은빛을 띄우며 K의 곁으로 다가앉아 하는 말은 뼈가 결리도록 아픈 말이었다. 신문지에 싼 기름한 것을 펼쳐놓고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T의 웃음 뒤에 남겨진 교활한 기쁨은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보며 ‘나도 이런 것 하나 가졌으면~’ 하는 눈빛의 아내에게 내일의 배고픔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서는 그 밤의 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 사람보다 먼저 봄을 준비하는 꽃가지 사이로 날아간 청둥오리를 잊지 못하던 레몬이 양산을 본다. 톡 토독 토도독 톡톡 알루미늄 철판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굿거리장단이라 말하며 즐거워하던 여인의 양산이다. 지난여름 땡볕이 이글거리며 이마에 내려앉아 이미 닫혀버린 모공을 뚫어가며 파고들던 무렵 홈쇼핑에서 원 플러스 원으로 산 양산이다. 실크 원단에 자외선 차단 원단을 이중으로 코팅 마감처리하여 어떤 강렬한 태양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으로 활용해도 된다며 선전하던 양우산이다. 레몬이 여인의 의식 속에 들어앉을 생각조차 없었던 그 해 여름, 여인은 양산을 우산으로 쓰고 빗속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던 사람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빗속에서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자세를 흐트러짐 없이 연마하던 천문이들의 기수련을 촬영하며 썼던 양우산은 참말로 매력적이었다. 분홍꽃, 빨강꽃, 보라꽃들이 자잘하게 촘촘하게 피어 있는 흰 바탕의 실크원단 양우산은 여인을 더욱 여인답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람을 등지고 바람에 떠밀리면서 두 번째 소설을 쓰기 위한 첫 번째 취재의 시간을 함께 했던 양우산을 바라보며 줄기져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본다. 모본단 저고리를 찾느라 골몰하는 궁핍의 방에도 내리는 빗물을 바라본다.

뜬금없는 놈 레몬, 기억해낸다. 마타리꽃 양산……그림이 다가온다.

산이 가까워지고 단풍이 눈에 따가웁던 날, 부르는 소리 웃음소리……마타리꽃 사랑 양산이 되던 날……그 가을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근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폿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움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두 버리지 말어.”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초가집이 몇 집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별로 주위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따가운 가을햇살만이 말라가는 풀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 황순원 「소나기」중에서


여인에게 꽃이 그려진 양산은 황홀한 어제인가 보다.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 실크원단 양우산에 자잘하게 촘촘하게 피어난 들꽃, 소녀의 노란꽃 마타리꽃 양산……모두 빗속에 피어난 향기인가 보다.


우리 집은 천변 배다리 곁에 있고, 처가는 안국동에 있어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천천히 가느라고 가고, 아내는 속히 오느라고 오건마는 그는 늘 뒤떨어졌었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는 꽤 멀리 떨어져 나를 따라오려고 애를 쓰며 주춤주춤 걸어온다. 길가에 다니는 어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었는데 아내는 당목 옷을 허술하게 차리고 청목당혜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양이 나에게 얼마나 애연한 생각을 일으켰는지!

한참 만에 나는 넓고 높은 처가 대문에 다다랐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적에 낯선 사람들이 나를 흘끔흘끔 본다. 그들의 눈에 ‘이 사람이 누구인가? 아마 이 집 차인인가보다’ 하는 경멸히 여기는 빛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대청 가까이 들어오니 모두 내게 분분히 인사를 한다. 그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는 어째 비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여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리었다.

그 중에 제일 내게 친숙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내보다 삼 년 맏이인 처형이었다. 내가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므로 그때 그는 나를 못 견디게 시달렸다. 그때는 그가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더니 지금 와서는 그때 그리한 것이 도리어 우리를 무관(無關)하고 정답게 만들었다. 그는 인천 사는데 자기 남편이 기미(期米)를 하여가지고 이번에 돈 십만 원이나 착실히 땄다 한다. 그는 자기의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자 함인지 비단을 내리감고 치감고 얼굴에 부유한 태가 질질 흐른다. 그러나 분으로 숨기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눈 위에 퍼렇게 멍든 것이 내 눈에 띄었다.

“왜 마누라는 어쩌고 혼자 오셔요?”

그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하다가 중문 편을 바라보더니,

“그러면 그렇지! 동부인 아니 하고 오실라구!”

혼자 주고받고 한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슬쩍 돌아다보니 아내가 벌써 중문 안에 들어섰더라. 그 수척한 얼굴이 더욱 수척해 보이며 눈물 고인 듯한 눈이 하염없이 웃는다. 나는 유심히 그와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분간을 못 하리만큼 그들의 얼굴은 혹사하다. 그런데 얼굴빛은 어쩌면 저렇게 틀리는지? 하나는 이글이글 만발한 꽃 같고 하나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 같다. 아내를 형이라 하고 처형을 아우라 하였으면 아무라도 속을 것이다. 또 한 번 아내를 보며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누른다. 딴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아니하고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시었다. 그래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앉아 견딜 수가 없다. 집에 가려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골치가 띵하며 내가 선 방바닥이 마치 폭풍에 흉흉(洶洶)하는 파도같이 높았다 낮았다 어질어질해서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이 거동을 보고 장모가 황망히 일어서며,

“술이 저렇게 취해가지고 어데로 갈라구? 여기서 한잠 자고 가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안 돼요, 안 돼요. 집에 가겠어요.”

취한 소리로 중얼거리었다.

“저를 어쩌나!”

장모는 걱정을 하시더니,

“할멈! 어서 인력거 한 채 불러오게.”

한다.

취중에도 인력거를 태워주지 말고 그 인력거 찻삯을 나를 주었으면 책 한 권을 사 보련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인력거를 타고 얼마 아니 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현진건 「빈처」(53~55쪽)


그래도 이 날은 명랑한 햇발이 미닫이에 높았던 날이다. 간밤에 내리는 빗속에서 부부는 가난에 치여 슬프게 울었었다. 아내가 애써 찾던 모본단 저고리는 이미 전당포에 들어가 고운 먼지를 쓰고서 찾아올 리 없는 주인을 기다리느라 가슴 먹먹해질 것이었다. 종지 하나라도 차근차근 아랑곳하던 K의 아내가 장 안에서 전당포로 간 저고리를 찾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던 밤, 그 밤에 무명작가 K는 ‘가슴이 어찌 답답해지며 누구하고 싸움이나 해보았으면, 실컷 울어보았으면 하는 일종의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피어오르며 전신에 이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옷이 어째 몸에 끼이고 견딜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그 방에 술이라도 있었다면 양껏 들이마시고 드러누워 누가 듣건 말건 보든 말든 한참을 뒹굴며 울어보기라도 했을 것이지만 다만 술이 없었으므로 무명작가 K는 끝내 울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빈곤이 얼마나 아내의 정신을 물어뜯는지……물어뜯긴 자리의 ‘멍’이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피멍’이 되어 곪아 터지는지……K의 그 밤 그 방 안에는 ‘쓸쓸한 빗소리는 굵었다 가늘었다 의연히 적적한 밤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림 앉은 등피(燈皮) 속에서 비추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는 듯 구차히 얻어 산 몇 권의 양책(洋冊)의 표제 금자(金字)가 번쩍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칼로 물을 베었는지 물로 칼을 베었는지 모르는 그 밤의 상처는 “용서……용서하여 주셔요!……”라는 아내의 북받쳐 나오는 울음이 두 사람의 뺨 사이에 따뜻하게 흘러 흥건히 젖은 후에야 봄눈 슬 듯 스러져 내렸다.


가난한 살림에 골몰하느라 친정아버지 생신마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아내와 함께 간 안국동 처가는 대문마저 매우 넓고 높았다고 말한다. 당목 옷을 입고 청목 당혜를 신고 쭈뼛쭈뼛 들어오는 아내와 함께 처가의 대문 안에 들어섰을 때 흘끔흘끔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이 집 차인쯤으로 여기는 듯하였다고 말한다. 분분히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설마 그랬겠는가마는 자신을 비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여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리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처형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삼 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처음 본 사람은 분간을 못하리만큼 그들의 얼굴은 혹사하였으나 처형은 이글이글 만발한 꽃 같고 자신의 아내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 같은 얼굴’인데, 눈물 고인 듯한 눈이 하염없이 웃고 있어 쓸쓸한 생각에 견딜 수 없어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셨더라고 전한다. 딱 한 가지 분으로 숨기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자신의 눈에 띄어버린 처형의 눈 위로 퍼렇게 멍든 자국만이 일종의 위안으로 남았음을 숨기지 못한다.


얄궂은 시대, 그 시대의 지식인,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무일푼의 무명작가 그리고 구식 여성인 아내……이들의 일상에 미닫이까지 차고 올라온 명랑한 햇발은 정신적 만족감으로 얻는 정신 승리가 주는 위안만 있을 뿐……그것이 “퍽 이쁜걸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 오르게 하는 재주까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매우 욕을 보셨지요? 못 먹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셔요?”

그는 그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앗더니 그 속에서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날 청목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끔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오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 것도 들은 체 만 체하고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양반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하고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자세히는 모르나 여하간 값 많고 품 좋은 비단일 듯하다. 무늬 없는 것, 무늬 있는 것, 회색 · 옥색 · 초록색 ·분홍색이 갖가지로 윤이 흐르며 색색이 빛이 나서 나는 한참 황홀하였다. 무슨 칭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난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다 좋은 것만 골라 샀습니다그려.”

아내ㅡ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을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처형은 자기 남편의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 밉살스럽다는 둥, 그 추근추근하다는 둥, 말끝마다 자기 남편의 불미한 점을 들다가 문득 이야기를 끊고 일어섰다.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모처럼 오셨다가 반찬은 없어도 저녁이나 잡수셔요.”

하고 아내가 만류를 하니,

“아니 곧 가야 돼. 오늘 저녁차로 떠날 것이니까 가서 짐을 매어야지. 아직 차시간이 멀었어? 아니 그래도 정거장에 일찍 나가야지. 만일 기차를 놓치면 오죽 기다리실라구. 벌써 오늘 저녁차로 간다고 편지까지 하였는데……”

재삼 만류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는 총총히 나간다. ―현진건 「빈처」(57~59쪽)


묵묵히 아내의 기뻐하는 모양을 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여자란 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심하였을 따름이다!’ 하매 밤빛 같은 검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면 아까 처형의 옷감을 볼 적에도 물론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나지 아니하였을 따름이다. 겨우 ‘어서 펴보구려’하는 한마디에 가슴에 숨겼던 생각을 속임 없이 나타내는구나 하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도 모르게 새 신 신은 발을 조금 쳐들며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 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켤레를 사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도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처형이 동서를 밉다거니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 놓치면 남편이 기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전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난다.

‘어느 때라도 제 은공을 갚아줄 날이 있겠지!’

나는 마음을 좀 너그럽게 먹고 이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믿어 하는 듯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라고 힘 있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것 같소?”

나도 약간 흥분하여 반문하였다.

“그러면요. 그렇고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준다! 그렇기에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현진건 「빈처」(60~61쪽)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주대를 감고 올라가던 나무의 실팍한 가지에서 늘어져 휘청거리는 가지를 본다. 댕글댕글 열매를 매달고 버티는 나무의 안간힘이 어쩐지 눈길을 끈다. 손을 뻗어 나무의 가지에 대어 본다. 손에 힘을 주지 못한 채 다만 받쳐주는 시늉을 해본다. 자칫 무책임한 관심이 될까 보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을 느껴 무심하게 기다리게 될지도 몰라 살짝 대어보고 손을 떼어낸다. 나무에게 들키지 않게 바라본다. 적당한 거리에 서서 바라본다. 노란 열매 레몬이 익어가는 화원에서 실팍한 가지의 살을 뚫고 나온 가지들이 꽃잎을 떨구고 열매를 피워 올리는 피의 역류를 본다.


작가 현진건 선생의 극사실주의 소설을 본다. 관념적인 요소는 완전 배재한 채 1920년을 살아가는 서울의 빈곤층 지식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활동사진을 본다. 1921년 1월 『개벽』에 발표한 이 소설에서 일제강점기 서울 사람, 조선 지식인 ‘빈처’의 비단구두를 본다. 구식 여성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들여다본다. 춘원 이광수와는 다른, 염상섭과도 다른, 현진건만의 정밀묘사 기법으로 일구어낸 한국의 근대 단편소설이 직시하는 시대와 사람을 본다. 작가의 사상이나 의식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 역시 취하지 않으면서 신경향파들의 시와 소설을 이끌어내는 정밀한 묘사 기법이 보여주는 절대빈곤의 늪을 본다. 자신들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지만 갖가지 비단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의식주마저 해결하기 어려운 극도의 빈곤층에 대한 직시, 현진건 선생의 작가의식에게 묻는다. ― 그대, 술을 권하는 몹쓸 놈의 사회에도 잘피를 심을 수 있는가? ‘그 몹쓸 사회가, 왜 자꾸 술을 권하는고!’ 울부짖는 여인의 가슴에도 잘피는 돋아나겠는가? ―그대, 대답을 해주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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