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깊고 푸른 바다 그곳에 잘피는 흐르고

현진건의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를 읽으며

by 윤슬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덴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오, 너의 것이냐? //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 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후략)

―이상화, 「나의 침실로」(1923,백조3호)


내 남자의 숨소리가 다른 여자의 귓가에 닿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 남자의 격정이 다른 여자의 귓가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모욕이고 상처다. 살갗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멍이 들게 하고 옴이 슬게 하는 고통, 그것은 처절하게 내리는 징벌이다. 초라한 방에 홀로 앉아 바느질을 하다가 왼손 엄지손가락 밑을 찔리고 만 여인, 실패는 어찌하여 헝겊 오락지를 감추고 내어주지 않는가. 붉은 핏방울이 꽃잎처럼 떨어지는 밤, 여인에게 오락지는 세상 집혀지지 않고 ‘누구 없소!’ 둘러보아도 누구 하나 없는 방, 쓸쓸한 방, 서글픈 밤…… 여인의 남편은 여인의 공상 속에서 격정에 떨다가 환영이 되어 나타난다. ‘검푸른 밤빛이 허연 길 위에 그믈그믈 깃들어 있는’ 골목길……아! 없는 남자, 여인의 남편, 그림자, 다만 그림자일 뿐……


“문 열어라!”

문득 대문이 덜컥 하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부르는 듯하였다.

“네.”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급히 마루로 나왔다. 잘못 신은, 발에 아니 맞는 신을 질질 끌면서 대문으로 달렸다. 중문은 아직 잠그지도 않았고 행랑방에 사람이 없지 않지마는 으레 깊은 잠에 떨어졌을 줄 알고 자기가 뛰어나감이었다. 가느름한 손이 어둠 속에서 희게 빗장을 잡고 한참 실랑이를 한다. 대문은 열렸다.

밤바람이 선득하게 얼굴에 앉힌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다! 온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검푸른 밤빛이 허연 길 위에 그믈그믈 깃들었을 뿐이었다.

아내는 무엇에 놀란 사람 모양으로 한참 멀거니 서 있었다. 문득 급거(急遽)히 대문을 닫힌다. 마치 그 열린 사이로 악마나 들어올 것처럼.

“그러면 바람 소리였구먼.”

하고 싸늘한 뺨을 쓰다듬으며, 해쭉 웃고 발길을 돌리었다.

“아니,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혹 내가 잘못 보지를 않았나?……길바닥에나 쓰러져 있었으면 보이지도 않을 터야……”

중문까지 다다르자 별안간 이런 생각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대문을 또 좀 열어볼까?……아니야, 내가 헛들었지……그래도 혹……아니야, 내가 헛들었지……”

망설거리면서도 꿈꾸는 사람 모양으로, 저도 모를 사이에, 마루까지 올라왔다. 매우 기묘한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번쩍인다.

“내가 대문을 열었을 제 나 몰래 들어오지나 않았나?……”

과연 방 안에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의 기척이 있다. 어른에게 꾸중 모시러 가는 어린애처럼 조심조심 방문 앞에 왔다. 그리고 문간 아래로 손을 대며 하염없이 웃는다, 그것은 제 잘못을 용서해줍시사 하는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었다. 이불이 어째 움직움직하는 것 같았다.

‘나를 속이려고 이불을 쓰고 누웠구먼.’

하고 마음속으로 소곤거렸다. 가만히 내려앉는다. 그 모양이 이것을 건드려서 큰일이 나지요 하는 듯하였다. 이불을 펄쩍 쳐들었다. 빈 요가 하얗게 드러난다. 그제야 확실히 아니 온 줄 안 것처럼,

“아니 왔구먼, 안 왔어!”

라고 울듯이 부르짖었다.

―현진건「술 권하는 사회」(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 66~67쪽),이하 동일


“문 열어라!”

하인이라도 부르는 것처럼 들려오는 소리, 혀 꼬부라진 소리에 이끌려 달려 나가는 아내는 ‘잘못 신은’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질질 끌면서 나갔다. 악마의 소리, 그것에 이끌려 나간 아내, 아무도 없는 차가운 골목길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악마를 막으려 다급히 대문을 닫았지만 이미 악마는 그들 부부 사이에 서 있었다.

“그러면 바람소리였구먼.” 해쭉 웃으면서도 “아니야.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다시 돌아보려다가 중문까지 온 아내는 “내가 대문을 열었을 제 나 몰래 들어오지나 않았나?……” 눈을 반짝 빛내며 “나를 속이려고 이불을 쓰고 누웠구먼.” 이불을 펄쩍 펴 들고는 “아니 왔구먼, 안 왔어!” 울부짖는다.

어른에게 꾸중 모시러 가는 어린애처럼 조심조심 방문 앞에 다가가 하염없이 웃던 아내 ‘용서해줍사’ 어린애같이 웃던 아내가 울부짖는다. 그냥 아무 때나 피잉 날아갔다가 아무 때나 피잉 날아오는 종잡을 수 없는 새처럼 아내의 마음 밖으로만 떠도는 남자, 그 남자는 새로 두 점이 훨씬 지난 뒤에야 기어들어왔다. 이취자(泥醉者)가 되어 돌아왔다.


이윽고 남편이 기막힌 듯이 웃었다.

“흥, 또 못알아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마누라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사회란 것이 무엇인가? 아내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딴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릿집 이름이어니 한다.

“조선에 있어도, 아니 다니면 그만이지요.”

남편은 또 아까 웃음을 재우친다. 술이 정말 아니 취한 것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허허, 기막혀. 그 한 분자 된 이상에 다니고 아니 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야? 집안에 있으면 아니 권하고, 밖에 나가야 권하는 줄 아는가 보아? 그런 게 아니야. 무슨 사회란 사람이 있어서, 밖에 나가면, 나를 꼭 붙들고 술을 권하는 게 아니야……무어라 할까……저어 우리 조선 사람으로 성립된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아니 못 먹게 한단 말이오……어째 그렇소?……또 내가 설명해 드리지. 여기 회를 하나 꾸민다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치고,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그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아니하는 놈이 하나도 없지. 하다가, 단 이틀이 못 되어, 단 이틀이 못 되어서………”

한층 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둘씩 꼽으며,

“되지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가 적으니……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무슨 사업을 하겠소? 회뿐이 아니지, 회사고 조합이고……우리 조선놈들이 조직한 사회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보겠다고 애도 써 보았어. 그것이 모두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요사이는 좀 낫지마는, 처음 배울 때는, 마누라도 알다시피, 죽을 애를 썼지. 그 먹고 난 뒤에 괴로운 것이야, 겪어본 사람 아니면 알 수 없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먹은 것이 다 돌아 올라오고……그래도 아니 먹은 것보담 나았어.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공연히, 그런 말 말아요. 무슨 노릇을 못해서 주정꾼 노릇을 해요! 남이라서……”

아내는 부지불식간에 흥분이 되어, 열기 있는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그는 제 남편이 이 세상에 제일 거룩한 사람이어니 한다. 따라서 어느 뉘보다 제일 잘 될줄 믿는다. 몽롱하나마 그의 목적이 원대하고 고상한 것도 알았다. 얌전하던 그가 술을 먹게 된 것은 무슨 일이 맘대로 아니 되어 화풀이로 그러는 줄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술은 노상 먹을 것이 아니다. 그러면 패가망신하고 만다. 그러므로 하루바삐 그 화가 풀리었으면, 또다시 얌전하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날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꼭 올 줄 믿었었다. 오늘부터는, 내일부터는……하건만 남편은 어제도 술이 취하였다. 오늘도 한 모양이다. 자기의 기대는 나날이 틀려간다. 좇아서 기대에 대한 자신도 엷어간다. 애달프고 원통한 생각이 가끔 그의 가슴을 누른다. 더구나 수척해가는 남편의 얼굴을 볼 때에, 그런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 저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 또한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못 알아듣네그려. 참 사람 기막혀. 본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胸腸)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에엣, 가슴 답답해.”

라고, 남편은 소리를 지르고 괴로워서 못 견디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미친 듯이 제 가슴을 쥐어뜯는다. (73~76쪽)


아내는 남편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첫째는 ‘화증’이고 둘째는 ‘하이칼라’라고 말한다. ‘화증’은 남편 자신의 문제를 일컫는 것이고, ‘하이칼라’는 1920년대 초기 한국 사회의 지식인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일컫는 것이다. ‘남편만 돌아오면!’ 가난도 지독한 외로움도 모두 봄비에 눈 녹아내리듯 사르르 녹아 사라지고, 이를 악물고 견뎌냈던 지난 시간들을 옛 이야기하듯 나누며 다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로 버티며 살아왔던 아내다. ‘공부!’ 그것이 무엇인지 아내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알 필요조차도 없었다. 다만 ‘공부’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귀한 무엇이라 여겼고,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의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라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오고 여러 달이 지나가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의 돈을 축냈으며, 술을 마시고 고심에 고심을 더하느라 몸을 축내가고 있었다. 어느 때는 밖을 나가지도 않은 채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울며 고뇌하다가 밖에 나가면 늦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이런 남편을 보면서 ‘누가 그렇게 술을 권하는가?’라고 묻는 말에 그것은 남편의 가슴속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증’이라 진단하고,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일명 ‘하이칼라’지만 이렇다 할 돈벌이도 하지 못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애국충정도 보여주지 못하는,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쓸모없는 지식인 집단의 별칭 ‘하이칼라’ 그것이 술을 권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은 단호하게 말한다. ‘틀렸다’고. 그리고는 ‘유위유망(有爲有望)한 머리를 알코올로 마비 아니 시킬 수 없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냐?’ 묻고는 말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내를 숙맥이라 비웃고 조롱한다.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며 어이없어한다. 자신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오로지 ‘술’ 뿐이라고 말한다. 창자를 휘돌아가며 이것저것을 잊게 만들어주는 술만이 유일한 위안이라고, 자신은 다만 그것을 취(取)할 뿐이라고 말한다.


공부라고는 해보지 못한 아내 구식 여성은 마치 어린아이 서술자처럼 취급된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숙맥, 우매한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내리는 가치를 포함한 판단은 ‘미숙한’ ‘미성숙한’ 것으로 가치 절하되고 만다. 다만 웃음을 자아낼 뿐,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어린’ 또는 ‘어리석은’ 생각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러나 독자가 무심코 웃어넘기고 마는 무의식 저편에 남는 ‘뼈를 찌르는 의미’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주제가 된다. 어리지만 순수한, 숙맥 같지만 문제의 핵심을 빗겨나가지 않는, 옳지 않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옳지 않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오히려 의표(意表)를 찌르는 전달자가 되고 미약하지만 강력한 메시지 주제를 도출시켜 나간다.


현진건 선생은 남편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남편 본인의 가슴에 내재된 ‘화증’으로 절대로 긍정적이거나 의미 있는 것이 아닌 ‘사회 부적응’으로 인한 불만 같은 것의 표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 당시 지식인인 ‘하이칼라’들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절망, 좌절……좀 더 격하게 진실해지자면 쓰임 받지 못하는 자의 허탈감으로 인한 열등감의 표출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자신이 보듬고 나아가야 할 사람, 오롯이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람……그이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하이칼라들, 사회적 대안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도 제시해주지 못하는 남편, ‘술’ 말고는 취(取)할 것이 없다 말하는 유익하지 못한 남편, 퇴폐적 낭만주의자에 대해 대성일갈한다.


“사회라는 이가 누구요? 도대체 사회는 누구길래 이다지도 술을 권한단 말이요. 왜 나에게서 남편을 빼앗아간단 말이오. 내 삶의 전부를 말이요. 그는 악마요. 내가 그렇게나 빨리 대문을 닫아버렸는데……어느 틈에 비집고 들어와 우리 부부를 갈라놓았단 말이요. 도대체 누구요? 몹쓸 사회라는 이가 누구요?”

눈물에 젖은 탄식이 소설 밖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소설 안에서 밖으로 쓸려나간다.

그 여자의 집 대문 앞에 선 레몬이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퐁 퐁 떨어지는 수도의 물방울 소리를 듣는다. 엉성하게 닫힌 중문을 거쳐 어느새 마루까지 다다른 레몬은 붉은 핏방울 꽃잎 되어 소리 없이 지는 소리를 듣는다. 더욱 쓸쓸하게 들려오는 여자가 지는 소리,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가 한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린다.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

“왜 어데를 가셔요? 이 밤중에 어데를 가셔요? 내가 잘못하였습니다. 인제는 다시는 그런 말을, 아니 하겠습니다……그러게 내일 아침에 말을 하자니까……”

놀라 붙잡고 애원을 했지만 마루 끝에 주저앉아 구두를 신고는 골목 끝으로 사라져 가는 남편의 소리, 그 여운을 놓지 못한 채 상처를 처맬 오락지를 붙잡으려 애쓰는 여인의 절규, 하염없이 검은 밤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인의 상실감, 깊이 각인되어 가는 상실감,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그 밤의 상실감…… 레몬이 다가가 오락지를 집어준다.


붉은 핏방울 떨어지는 상처에 오락지를 둘둘 말아 묶은 여인을 태우고 깊고 푸른 바다로 간다. 청둥오리 날아서 내려앉은 바다, 그 깊은 곳으로 여인을 데리고 간다. 바다로 흘러드는 강이 없어서 무척이나 맑고 깨끗한 바다 홍해에서 아주 작은 풀이 자라고 있는 모래밭으로 간다. 쪽진 머리 흘러내려 물결에 실리고 당목 저고리에 당목 치마를 입은 여인의 청목당혜가 벗겨지고 남모르게 솟아오른 도도록한 가슴의 옷섶으로 푸른 물이 스며들어간다. 치마는 있는 대로 부풀어 오르고 붉은 입술 살짝 벌어진 사이로는 홍해의 맑은 물이 방울방울 퐁 터지고 퐁 퐁 방울방울 퍼진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따단 따단 따다딴따 따단딴딴 따단따~~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여인의 귀에는 너무도 생소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거문고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가야금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금이나 해금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장구나 꽹과리 같은 귀에 익숙한 소리들은 결코 아닌 낯선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심하게 긁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 크고 작은 그릇들을 두들기는 소리 같기도 하다. 휘잉~ 피잉 마구 섞여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혼란스럽기도 하면서 무섭게도 느껴진다. 무언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고 빠르게 섞여 드는 소리들이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다. 심장이 뛰고 맥박이 심하게 고동치게 하는 소리……그 소리에 레몬이 빠져들어 간다. 까만 눈동자를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소리를 찾는 여인은 낯선 것이 두렵다. 검은 장막, 그 뒤에 무엇이 도사라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운 여인, 그 여인이 레몬의 손을 잡는다. 따스하게 퍼지는 온기가 있어 촉촉하게 젖은 손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조금씩 진정시켜 가는 동안 여인의 눈에 더벅머리 하얗게 휘날리는 사내가 들어온다.


하얀 셔츠에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사내가 가느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며 눈을 번뜩인다. 더벅머리 하얗게 들어 올리며 바람에 날릴 때는 마치 끝없는 초원을 달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하얀 빛깔의 말처럼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길쭉하게 뻗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로는 검버섯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꾀죄죄한 모양새가 갈댓잎을 뒤집어쓰고 흙속에 묻혀 있다가 키 큰 소나무 언저리에서 늙은 심마니의 손에 무참히 들려 나오는 송이의 누룩한 얼굴마냥 얼룩덜룩하다. 천하에 못생긴 얼굴이 많고도 많겠지만 손에 길쭉한 막대기를 들고 음악에 취해가는 모양새는 일찍이 본 바 없는 뭐랄까, 장인이랄까?……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여 심취한 끝에 그냥 그것의 일부가 되고 만 사람에게서 느끼는 고집이랄까 집념이랄까. 그것이 말상〔馬狀〕을 지닌 그의 얼굴에 정들어가게 한다.


하늘이 쪽빛을 물고 바다로 내려앉았을까? 멀리 보이는 하나의 점에 이르는 선까지 파란 쪽빛이 곱게 물들었다. 언제라도 여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쪽빛이 하늘처럼 펼쳐지고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에 두둥실 떠가는 잘피는 쪽빛의 여운을 몰고 수십만 수십억 개의 알맹이로 흩어져 하나가 된 모래밭에 뿌리를 내렸다. 뿌리랄 것이 무엇인가. 참새 혓바닥만큼이나 작은 몸체다. 여인의 마을 논두렁에 여인의 마을 밭고랑에 여인의 마음 한구석에 돋아난 작은 풀, 누구도 의미 있는 눈빛으로 이름을 묻지 않는, 그냥 거기서 풀로 살아가는 세 장의 이파리 또는 그 무리에 묻혀 있는 네 장의 이파리……그것을 레몬은 세 잎 클로버, 네 잎 클로버라고 불러주었다. 수많은 세 장의 잎 중에서 어쩌다 네 장의 잎 하나를 뽑아내면 그것이 행운을 불러다 준다고 말하며 살포시 웃는 레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 본다.


금빛을 휘감은 커다란 나팔이 소리를 낸다. 등치가 제법 좋은 사내들이 금빛 나팔 주둥이에 입을 대고는 힘주어 불어댄다. 한 손은 길게 뻗은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몸통 위에 나란히 붙어 있는 단추 같은 것을 누른다. 그러면서 한 순간에 폭발적인 음을 낸다. 그 소리가 웅장한 가운데 얇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따가닥 따가닥~’ ‘따라락 따라락~’ 경쾌한 말 달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하얀 건반과 검은건반을 두드리는 새까만 얼굴의 사내가 새까만 안경을 쓰고 새까만 넥타이를 매고 앉아서 건반을 두드린다. 그 소리가 매우 빠른 만큼 풀밭을 이리저리 달리며 물을 박차는 어린 말들의 햇살 맑은 아침을 떠올리게 한다. ‘투루르 푸르르’ 주둥이에 묻은 물과 갈기에 묻은 이슬을 털어내며 형제들끼리 어우러져 장난을 치는 싱그러운 아침나절의 가벼운 몸짓들을 떠올리게 한다. 참으로 평화로운 아침을 하얀색과 검은색의 건반으로 일구어나가는 새까만 얼굴의 사나이 곁으로는 자기의 키만큼이나 큰 악기를 세워 놓고 줄을 튕기는 사내가 보인다. 키는 껑충하게 큰 사내가 하얀 셔츠 위에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높은 음자리가 절제된 소리로 균형과 조화를 맞추어가는 피아노 건반의 음색들 사이사이로 끼어들어 짙은 음영을 드리운다. 햇살 따갑게 부서지는 여름이 지쳐 우거지는 풀숲 사이에서 연초록과 진초록이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모색해 나간다. 그 사이로 양철북을 엎어놓고 둥근 쇠막대와 부침개를 뒤집을 때 쓰는 주걱 같은 것을 눌러가며 한사코 밑으로 깔리게 하는 사내가 높은 음자리의 경쾌함에 맛을 더한다.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풀숲에 드리운 그늘처럼 음계를 조율해간다.


조지 거슈인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잘피가 흐르는 바다에 물결처럼 흐르고 푸른바다거북이 잘피를 뜯어 오물거리는 바다에 레몬과 여인이 산호초처럼 헤엄치는 모래밭으로 요정이 들어선다. 멀리 보이는 하나의 점에 이르는 선까지 파란 쪽빛 곱게 물들인, 언제라도 여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쪽빛 옷을 입은 요정이 들어온다. 가슴으로 흐르는 물결은 모두 별빛이어라. 등을 타고 흐르는 물결은 삼각지 골짜기마다 흐르고 흘러서 이름 모를 농부의 발목을 적실 생명의 물줄기여라. 어느새 푸른바다거북의 모래밭에 눈은 내려 덮이고 요정은 날이 선 신발을 신고 사박사박 눈밭을 가른다.


피아노 건반은 큐 사인을 울리고 선율은 부드럽게 흘러 요정의 몸에 실린다. 쪽빛 요정은 은빛으로 빛나는 날 위에 발을 올리고 눈밭을 가로질러 한 마리 학(鶴)의 자태로 춤을 빚어낸다. 절대 고독의 순간,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비상(飛上), 스스로 감내하며 스스로 펼치는 몸짓을 시작한다. 눈밭 위를 크게 돌아 평평하게 달래 놓고는 왼발을 감아올리며 솟아오른다. 풀쩍 뛰어올라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고 살풋 내려서다가 다시 뛰어올라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내려선다. 눈밭에 내려서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오고 요정은 두 팔을 올려 날개를 펼친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몸짓, 한쪽 날개깃을 접어 올렸다 펼치며 사박사박 눈길 위를 걷는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절대의 춤사위, 그것은 요정이어도 구현해내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이다. 시선은 약간 틀어 오른쪽 멀리 두고 어깨는 살짝 틀어 왼쪽으로 두었다. 왼발을 실은 날을 살짝 들었다가 내려 돌리며 힘주어 뛰어오른다. 두 팔은 살짝 기울어지게 활짝 펼치고 접힌 무릎에 힘을 모아 뛰어오른다. 등의 줄기를 타고 물이 흐른다. 길을 따라 들어오던 물들이 한 곳에 모인다. 모여든 물들이 서로 섞이며 출렁인다. 출렁이던 물이 샘을 이룬다. 그 샘가에 햇빛이 모여들었다. 반짝, 빛나는 물들이 눈부시게 부서진다. 여인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레몬이 숨을 죽인다. 모든 것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음악이 흐른다. 정제된 선율이 요정의 긴장을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가슴으로 모이고 요정의 얼굴엔 웃음이 퍼진다. 피아노 건반의 높은 음자리가 좌르르 쏟아지는 구슬처럼 튕겨 오르는 잘피 흐르는 눈길 위에서 요정은 한삼자락 흩뿌리는 몸짓처럼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허리를 뒤로 잦힌다. 물살에 실려 오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고 순응하며 흔들리는 감태 숲의 감태 잎처럼 매끄럽게 흔들린다. 부드럽게 흔들린다.


쪽빛 물결이 흔들린다. 요정이 만든 모든 순간들이 잘피 숨 쉬는 모래밭 움푹 파인 곳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뛰어올라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리고는 상체를 구부려 계곡을 만들고 골짜기를 만들어 그곳에 모여든 모든 물들을 휘감아 올린다. 아! 두 손에 모아 쥔 것은 무엇인가. 요정이 두 손에 꼭 쥐고 바라보며 길어 올리는 저 한 줌은 무엇인가. 여인의 가슴이 묻는다. 여인의 가슴이 물든다. 당목 저고리 당목 치마여도, 비록 철 지난 청목당혜를 신었어도 무엇인가 한 톨의 씨앗이 있었더라면 그것을 물에 불려 숨을 틔우고 흙속에 심어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남편만 돌아온다면! 기다림이 아니어도, 남편이 아니어도! 꿈을 길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여인에게 단 한 톨의 씨앗만 있었더라도…….


한 번의 격정은 끝나고 한 마리 거대한 학(鶴)이 되어 푸른 창공을 유유히 날아오르는 요정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푸른바다거북의 잘피 위로, 헤엄쳐 들어오는 사람과도 곧잘 어울려 왈츠를 즐기는 듀공의 잘피 흐르는 언덕으로 스며들어온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삶의 고비고비마다에 도사리고 있던 모든 질곡들을, 붙들고 얽어매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덫들로 칭칭 감겨 있던 족쇄, 그 사슬을 끊어버리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 거대한 새 학(鶴)을 위해 음악이 흐른다.


무시로 칼을 차고 길거리를 오가며 무시로 사람들을 죽이고 위협하는 일본 순사들의 거리에서 주정꾼 노릇밖에 할 것이 없노라고…… 술이 정말 아니 취한 것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말하는 여인의 남편 하이칼라로부터 여인은 결심한다. 만세운동이 벌어지던 거리에서, 환희에 찬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거리에서 함께 만세를 부르지 않았던, 하지만 더 크게 실망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남편, 하이칼라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행운이 닿지 않더라도 희망의 씨앗 한 톨을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어떻게든 얻어내어 숨을 틔우고 싹을 틔워보겠노라고 결심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답답했던 그 시간의 집으로, 버리고 떠난 구두 소리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집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결심을 한다.


※ KBS 걸작 다큐멘터리 <한국의 바다숲>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 선수의 프리스케이팅, 조지 거슈인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를 참조하였습니다.

※ 제목의 삽화는 이청초 화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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