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숨 쉬는 고래에게 입술을 주고

이 상의 「날개」를 읽으며

by 윤슬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묻는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느냐고…….

남자는, 유쾌하다고 말한다. 연애까지가 유쾌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울부짖음으로 들려온다.

문득 한 남자가 떠오른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남자,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가 떠오른다. 빙긋 웃는다. 코에 얌전하게 들러붙어 있어야 할 수염이 눈썹까지 솟아올랐다. 성난 들소 야크의 솟아오른 뿔에 위트와 패러독스가 번져 흐물흐물해진 수염이 바람에 날 듯 솟아올랐다. 무엇에 놀란 것일까, 아니면 무엇에 잔뜩 화가 난 것일까. 동그란 눈동자가 뛰루룩 뛰루룩 퐁~~ 튀어나올 것 같다. 마치 나뭇가지 몸통에 매달린 용수철에 붙어 튕겨 나와서 하 하 하 한바탕 웃고는 다시 쏙 들어가 웅크리고 앉을 것 같은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남자의 그림이 떠오른다. 축축 늘어진 시계가 떠오른다. 기형적으로 구부러지고 늘어진 시계에서 째깍째깍 움직임이 일어나고 소리가 울려온다. 아주 먼 곳에서 열대 우림의 뜨거운 열기에 들떠 오르는 사막일까. 뜨겁게 박동 치던 심장에서 울려오던 ‘피’의 붉음이 식어버린 이내 굳어버린……수없이 내린 눈이 쌓여 녹을 줄 모르던 곳에서 찾아들지 않을 열정을 기다리다 지쳐버린 눈덩이가 폭포수 되어 쏟아져 내리는 빙벽의 어느 계단쯤일까? 어쨌든, 무엇을 어떻게 보든 ‘달리’ ……달링……?! 푸흡, 남자의 그림에서 째깍째깍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시계를 바라본다.

동이 틀 무렵이어도 영원히 싹이 돋지 않을 나뭇가지에 걸치고 앉아 축 늘어진 시계는 여섯 시에 머물고, 발등인지 손등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놓인 시계도 여섯 시쯤의 의식에 잠들어 있다. 탁자 모서리에 붙어 늘어진 시계도 여섯 시를 가리키는데 정각에서 일이 분이 흘렀든 이삼 분이 채 못 되었든 시간은 흐른다. 파리가 앉아 손을 비비며 똥을 싸든 개미들이 오글오글 몰려들어 단물을 놓고 싸우든 시간은 그렇게 무심하게 흐른다.

위트와 패러독스가 니코틴으로 횟배를 앓는 남자를 사로잡는다. 그의 위트와 패러독스가 이야기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이야기 곳곳에 버섯이 솟는다. 아주 오래된 나무의 뿌리를 깊이 감싼 흙더미 옹삭한 곳에서 솟아오른 버섯의 칙칙한 음기에 내려앉은 달리의 시계, 그것의 영속성이 ‘삼십삼 번지 럭키 세븐의 방’에 붙어살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꾿빠이’를 외친다.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두 남녀의 영원히 맞지 않을 발걸음에 '꾿빠이'를 외친다.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난다고 말하고 생채기는 머지않아 완치될 것이라고 말하며 감정의 포즈가 공급을 멈추었으므로 미련 없이 '꾿빠이'를 외친다고 말한다. 남자의 얼굴에 눈물이 번진다. 보이지 않게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기형적으로 흘러내린다.


그 삼십삼(三十三) 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십팔(十八) 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도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버린다. 침침한 방 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낮이나 밤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은 알 길이 없다. 삼십삼 번지 십팔 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십팔 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무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청어) 굽는 내 탕고도란(일제 때 많이 쓰인 화장품 이름) 내 뜨물내 비눗내……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십팔 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져 있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행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만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삼십삼 번지 대문에 그들 십팔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百忍堂)이니 길상당(吉祥堂) 이니 써붙인 한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버렸다.

내 방 미닫이 한곁에 칼표딱지(칼표는 담배의 이름으로 보이며 무늬가 도안된 담뱃갑의 한 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를 넷에다 낸 것만 한 내―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 이상 「날개」(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 이상 단편선 270~271쪽) 이하 동일


-여왕벌과 미망인― 三十三 번지, 흡사 유곽과 같은 곳에 둥지를 틀은 ‘여왕벌’― 그녀는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들과 같이 애초에 미망인이었기에 본래의 미망인으로 돌아가는 것에 모독을 느끼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말하지만 사실은 모독조차 느끼지 못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꾿빠이’로 함축된 ‘이별의 말’ 그것은 오늘도 여왕벌인 미망인에게 슬픔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비범했던 발육을 회고하는 남자에게도 아픔이 되지 않는다. 감정의 포즈에 공급이 멈추었으므로…….

三十三 번지 十八 가구의 전경묘사는 사실적 묘사일까 상징적 묘사일까? 낮에는 비쳐 드는 해를 애써 가리는 사람들, 밤이 되면 이부자리를 거둬들이고 전등불을 켜는 사람들……이들에게 빛은 대낮의 것이 아니고 밤의 것이다. 그럼에도 대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이곳에 남자의 집이 아닌 방이 있다. 이 방에 사는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한 떨기 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꽃을 지키기 위해 십팔 가구에 사는 누구와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꽃에 매달려 살아가는 자기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둑을 두듯 소설의 요소요소에 포석을 깔아놓고 좇아가며 풀어내는 이야기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작가 이상은 자신의 아내 여왕벌에 붙어사는 수벌이면서 아내는 본질적으로 미망인의 성격을 지닌 존재였다고 말한다. 마치 신문에 연재를 하는 것처럼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 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 드는 방이 아내 해이오 볕 안 드는 방이 내 해이오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볕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휴지)를 그슬어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 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놓는 데까지에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치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놓인 고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그러나 그것은 분명치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요기 늘어섰는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이상 「날개」 (이상 단편선 273~274쪽)


방과 방 사이의 칸을 막아 끼우는 문에 바르는 두껍고 질기며 질이 좋은 종이 장지(壯紙)를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남자의 방은 장지(葬地)가 분명하다. 남자의 체온을 유지하기에 어디까지나 쾌적하였고, 남자의 안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할 정도로 쾌적한 방에서 남자는 대문간에서 세어서 일곱째 칸의 방,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은 방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는 자세로 지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생각하거나 계산할 필요가 없는 방에서, 더 이상 서늘할 수도 더 이상 따뜻할 수도 없는 최적의 방에서 날마다 그저 까닭 없이 그냥 펀둥펀둥 게으르게 살고 있었다.

남자는 틈만 나면 아랫방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곳엔 여왕벌이 살고 있었고, 여왕벌의 하고많은 수벌들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수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방, 여왕벌의 방에는 아침이면 책보만 한 해가 들어온다. 남자의 방에는 절대로 들지 않는 해가 여왕벌의 방에는 화사(花蛇)하게 들어온다. 남자는 그 해가 좋다. 비록 책보만 한 해지만 자신의 방에는 영영 들지 않는 해가 너무도 온화하고 따뜻하여 눅눅해진 몸을 안온하게 매만져주고, 볕에 몸을 내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한 마리 고양이처럼 노긋노긋해지면서 나른해지기 때문이다.

여왕벌이 들어 있을 동안에는 가볼 수 없는, 초대받을 수 없는 방에서 남자는 즐겁다. 여왕벌의 외출을 틈타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놓고 여왕벌의 화장대에 늘어선 반쯤 들어 있는 스킨병과 묵직한 로션병, 짐작컨대 눈가에 새겨진 주름을 잡아주는……그때는 없었을지도 모를 아이크림병과 촉촉한 피부 하얗게 만들어주는 에센스 크림병이 줄지어 서있는 화장대, 그곳에서 아롱지며 흩어지는 햇살의 결이 너무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여왕벌이 가지는 체취의 파편에 찔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환장하게 좋은 남자는 돋보기를 꺼내 가지고 여왕벌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화장지)를 그슬어가며 불장난을 하고 논다. 제법 똘똘한 개구쟁이 아이놈처럼 햇볕을 한 점에 모으고는 푸시시 소리를 내며 구멍을 뚫어놓는 동안의 초조한 맛을 즐긴다.

어디 그것뿐이랴. 아내의 화장대에 놓인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노는 맛도 못지않게 좋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볼 때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거울이지만, 여왕벌처럼 아름다운 한 떨기 어여쁜 꽃이 장식되어 있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무기력한 얼굴 뒤로 비쳐 나오는 여왕벌 아내의 가늘게 웃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으로 매력이 있는 일이다.


한 방울의 눈물이 시계의 추처럼 매달려 있다. 반짝, 빛이 난다. 영롱한 빛깔은 책보만 하던 햇빛이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는 들창에 매달려 있다. 아무리 추잡하고 더러운 탐욕의 찌꺼기라도 깨끗하게 씻어서 말갛게 닦아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그 무엇이 될 것 같은 눈물이 한 방울 매달려 있다. 다이아몬드 수십 개 수백 개의 조합이 한 방울에 모여들었다. 시인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소설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할 한 방울의 눈물은 황홀하게 빛을 낸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째깍째깍 소리를 울리며 동쪽 들창에 머물렀던 오묘한 광채는 남쪽 하늘로 흘러가는 구름이던가. 한 마리 새의 대가리에 자리 잡은 둥지 같은 곳에 한 개의 알처럼 둥근 시계가 박혀 있다. 눈동자를 감싸는 눈꺼풀은 쌍을 이루고 속눈썹 하나하나는 백금으로 눅진하게 눅어 있다. 누구라서 탐내지 않을 것인가. 눈두덩과 눈시울 사이를 촘촘하게 메우며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새끼를 품은 어미의 자궁처럼 둥지를 감싸고도는 아비 새의 부성(父性)처럼 흘러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데……초침이 넘어서는 마루에 분침이 걸리고, 분침이 돌아드는 길목에 시침이 걸리는데……사파이어 둥근 동자에서 천사의 눈물이 악마의 미학으로 번지는데……여왕벌 아내는 돌아올 줄 모른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럴 때에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고 한잠 자고 깬 나는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뜅뜅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씩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 이상 「날개」 (이상 단편선 275쪽)


아내는 늘 진솔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이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 방으로 조석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아내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히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윗방에서 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이 없이 주는 모이를 넙죽넙죽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이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 이상 「날개」 (이상 단편선 278쪽)


방과 방 사이 그 남자의 방 장지(葬地)에는 못이 하나도 박혀 있지 않다. 여왕벌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여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리는 것과 달리 남자의 방에는 옷을 걸어둘 못이 하나도 없다. 사실 못은 필요가 없다. 남자에게는 자리옷 겸 통상복 겸 나들이 옷을 겸한 코르덴 양복이 옷의 전부이고,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두루 입는 내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 고무 밴드가 끼여 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팬티)를 입고 아무 소리 없이 잘 논다. 하루든 이틀이든 펀둥펀둥 게으르게 잘 논다.

그곳이 장지이고 보면 문제가 될 것도 없어 보이는데……남자의 방에는 으윽……용서할 수 없어. 어쩌면 좋아! 빈대가 있다. 빈대를 붙었을까, 빈대가 붙었을까. 그저 암울할 뿐 방법이 없다. 침침한 방에서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치 하나의 몸뚱이였던 것처럼 낮잠을 자노라면 참 반가운 마음에 잠이 잘 오는 적도 있지만 몸 곳곳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때도 있다. 축축한 이불속에서 발명도 하고 논문도 쓰고 시도 많이 지어보지만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비누처럼 다 풀어져서 온데간데없고 한잠 자고 깨어나면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뜅뜅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은데 겨울에도 몇 마리씩의 빈대가 나와서 근심이라고 하소한다.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노라면 쓰라리다는데, 그 쓰라림이 쾌감이라 말한다. 책보만 한 해가 들어오는 여왕벌의 방에서 화장품 병들의 마개를 빼고 코끝에 대었을 때 풍겨오는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를 폐로 스미게 했을 때 느끼는 쾌감처럼 빈대에게 물려 가려운 곳을 손톱에 피가 묻어나도록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 속에서 느끼는 쓰라림도 남자에는 쾌감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처럼 빈대가 들끓는 방에 담겨서 남자는 여왕벌 아내가 넣어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다.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먹이를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때때로 여왕벌 아내가 야속한 생각이 들고 밉기도 하지만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남자는 말라간다. 안색이 창백해져 가고 나날이 기운이 줄어들어간다. 그래도 남자에게는 그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판가름해볼 여력이 없다. 다만 모든 것이 귀찮고 무기력할 뿐이다. 그냥 게으를 뿐, 그 게으름이 좋을 뿐 무엇이 어떻다는 것은 아니다. 될 수만 있으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언제라도 꼭 한 번 이 남자에게도 잘 끓은 커피를 마시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아직 남자는 감정의 어떤 포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한다는 눈금까지는 오지 않았다. 겨울에도 빈대가 나오는 축축한 방, 눅눅한 방, 이상의 집 문학의 방에 언젠가 한 번은 다녀갈 법한 시인 동주는 잃어버렸다고 읊조린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가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 그 무엇을 찾아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난 길에서 돌담을 끼고 걸어간 길에서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하늘을 쳐다보면 너무도 푸른 하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한숨짓는다. 풀 한 포기 없는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자신이 있는 까닭이고, 그런 부끄러움을 안고서도 사는 것은 다만 잃어버린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말한다. 생몰 연대가 다르고 삶의 방식과 이유도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문학인, 시인에게서 남자는 감정의 포즈에 감정의 기류가 살짝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몇 년은 늦게 태어났지만 마흔여덟이 가까워질 때까지 제법 장수한 시인 수영은 이상의 집 문학의 방에서 잘 끓은 커피를 마시며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에서 움터오는 푸른 새싹을 보면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는 것을.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도 붉은 파밭에 돋는 새싹을 보게 되면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는 것을.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 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에서 고개를 내미는 새싹을 보게 되면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바둑판에 위트와 패러독스를 뿌리는 감정으로 웃는다. 여왕벌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들은 본래가 미망인이 아니었더냐고 물으며 피식 웃는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고 되받으며 피식 웃는다. 남자의 눈동자를 담은 잔에 커피가 한 방울 매달린다. 시인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소설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면서 황홀한 눈물로 매달려 있다.


뭐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썪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며는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희끄무르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면은

잇몸에서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속이 적잖이 쓰려온다~~ 훅 훅 훅 후우~~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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