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을 향해 있다. 희수가 서 있는 판은 상쇠 어른을 위시한 소포걸군농악 대원들마저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눈이 되고 말았다. 상쇠 어른의 꽹과리와 징, 장구와 북, 그리고 쇄납이 판을 정리해가며 사람들의 눈길을 모아주는 역할을 하고, 판이 끝날 때까지 갖가지 가락으로 어우러져 주겠으나, 이 판은 온전히 희수만의 세상이다. 희수가 두드리는 버꾸의 세상이다.
‘따당 땅 땅 땅 땅 땅 따다다다다당 따다다다다 ~ ~’
상쇠의 매김 소리가 들려오고, 치배들의 가락이 뒤이어 섞여들며 판은 시작이 된다.
“이놈 버꾸야 ~, 버꾸나 한 번 치고 놀아보자.”
상쇠 어른의 부르는 소리에 줄달음쳐 나오는 모양새로 버꾸재비 희수가 나온다.
“얼씨구 ~ 지화자 ~ 조옿다.”
추임새와 함께 신나게 놀아보는 한 판 속에서 희수의 북소리가 판으로 모여든 눈길들을 휘잡아 모은다.
흰 저고리에 흰 바지를 입었다. 그 위에 초록빛 더그레를 입고 가세침복으로 띠를 둘렀다. 그리고는 오른쪽 어깨를 잡고 내려온 빨강 띠와 왼쪽 어깨를 잡고 내려온 노랑 띠를 허리에서 파랑 띠로 잡아맸다. 감히 상쇠와 같은 옷차림으로 상쇠의 격을 갖추었다. 퉁퉁한 궁둥이에서 한데 어울린 청·황·홍의 띠들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보릿대 춤을 춘다.
쇄납의 소리가 어둠을 찢는 소리로 퍼지자 촐랑거리며 헤 ~ 웃고 나오는 희수의 버꾸가 소리를 한다.
‘덩 덩 덩 따라라 더덩 덩 따라라 ~ ~’ 버꾸를 힘차게 울리며 뒷걸음으로 나아간다. 빙글빙글 웃으며 첫 박에 힘을 주어 두드리고 뒤따라오는 마디들을 주무르듯 어르며 다듬이 소리를 낸다. 버꾸의 심장을 힘주어 때리고 심장과 심장 사이를 가르고 이은 갈빗대와 등판을 두드린다.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 ~ ~ 소리가 더덩 둥 둥 밀려들어오고 더덩 둥 둥 밀려나간다.
처음 다듬이 소리로 들리던 가락은 어느새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되어 나온다. 그 소리가 차츰 익어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 오른쪽으로 달려 땅을 박차고,‘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 왼쪽으로 달려 물을 박찬다. ‘덩기 덩기 덩기 덩따’ 오른쪽으로 걸어 땅을 딛고, ‘덩기 덩기 덩기 덩따’ 왼쪽으로 걸어 물을 긷는다. 그리고는 자진모리 가락을 휘몰아가며 무릎을 반으로 접어 뱅글뱅글 돈다. 상쇠와 치배들의 추임새가 흥을 돋우는 가운데 흰 저고리와 흰 바지 입은 사내의 몸을 감싼 초록빛 더그레가 빨강과 노랑 · 파랑의 물결로 하나를 이루며 뱅글뱅글 돌아간다. 푸른빛의 가을 하늘이 내려다보는 누런빛의 땅에서 버꾸 하나가 판을 다스르며 여울진다. 여울지는 물결 속에서 희수는 버꾸를 면경처럼 해처럼 들어 올린다. 그리고 ‘덩 떠덩 떵떵떵 덩 떠덩 떵떵떵 더덩 떵 딱딱 따라락딱 딱딱 ~ ’ 두드린다. 하늘이 소리를 본다. 그 먼 옛날 땅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던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며 하늘의 존엄을 추중(推重)했던, 그래서 하늘이 수승(秀昇)함을 느꼈던, 그 소리가 버꾸재비 희수의 손에서 차라랑 차라랑 방울 소리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듬이 소리, 말 달리던 소리는 무릎을 펴고서 ‘더덩 따 더덩 따 더덩 따 더덩 따 따’ 북을 두드리며 휘몰아 도는 희수와 함께 거센 물살이 된다. 초록이 햇무리처럼 돌고 이마에 하얗게 피어난 꽃이 검은빛 상모 아래서 방실방실 웃으며 피어난다. 빨갛고 노란 띠가 파랑의 띠와 어우러져 오방으로 거듭날 때, 상모 위의 하얀 부포는 앞으로 뱅글 뒤로 뱅글 돌고 함께 돌돌 말리는 버꾸, 버꾸는 혼돈의 세상, 혼돈의 무질서 속에서 흘러나온 탁류가 울돌목의 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화되는 것처럼 천문이의 아들 희수는 땅의 소리를 하늘에 올리고, 하늘의 소리를 땅으로 전해온다.
처음 버꾸 놀이를 보았던 날 희수의 어린 가슴은 쿵쿵 뛰었다. 우렁차게 울려오는 북의 소리가 주눅 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어린 희수의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커다란 눈망울 가득 검은 물빛 일렁이도록 슬프게 웃곤 하던 하얀 얼굴의 희수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였다. 당골네 자식이라 손가락질을 받고 아버지도 없는 새끼라고 놀림을 받으며 자라왔다. 큰형 기수가 아버지처럼 돌봐주고 가희 누나가 따뜻하게 품어주고 달래주어도 친구들에게는 있는 아버지가 자기에게는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허전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마음을 다치고,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라목처럼 고개를 움츠리곤 했었다.
희수의 판 위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온다. 놈은 몸을 낮추며 기듯이 걸어 들어온다. 땅을 향해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자라목처럼 안으로 몰아넣었다 위로 쑥 빼 올리며 눈을 씀벅거린다. 놈은 터무니없이 못난 얼굴이다. 마마 자국인지 곰보 자국인지 점도 아닌 것들이 자잘한 꽃무리처럼 피어 흩어져 있다. 코는 제법 오뚝 솟아 능선을 이루고 곧게 뻗은 인중 아래 꽉 다문 입술이 거슬리게 검붉다. 뽕나무밭 가운데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검붉게 익은 오디를 따먹고는 소맷자락으로 쓱 문질러버리고서 물로 씻지도 않은 듯한 생김이 꾀죄죄하다.
놈이 축축하게 젖은 입술을 씰룩인다.
“너만 아부지가 없능 거 아녀. 나도 아부지가 없다,”
“…….”
“너는 아부지의 존재를 눈구녁으로 본 적 없어 모른다고 징징대지?”
“……누구냐? 너는.”
“사내 새끼가. 나는 본래 아부지를 알았으나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에 아부지를 잃고, 아부지를 모른 채로 버꾸를 알았다. 백중날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버꾸의 꽃놀이 판굿 속에서 나는 자랐다.”
“너는 모르지. 아버지 없는 공간의 쓸쓸함이나 허전함, 아이들의 숱한 손가락질을 너는 나만큼은 모르잖아.”
“쉰소리 허지 마라. 키가 많이 컸던 아버지, 어깨가 건장하고 허리뼈가 굵던 아버지, 말을 타고 시오 리 길을 달려 활터로 가서 활을 쏘던 아버지, 그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을 꽂아 넣으며 금을 캐러 몰려든 조선 사람들을, 금을 캐서 먹고살던 본정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는 왜놈들과 앞잡이들에게 백중날 죽은 아버지를 너는 모른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가 느닷없는 환란 속에서 두 마리나 되던 말을 빼앗기고, 두리둥실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아오던 집을 빼앗기고, 어디론지 쫓겨가버린 그날을 너는 모른다. 아느냐?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를 잃어버린 누이들이 마당에서 마루에서 뒤꼍에서 픽 쓰러져 맥없이 숨이 지던 그 자리에 혼자 남은 대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의 얼빠진 시간들을 너는 아느냐? 빈자리의 허전함, 쓸쓸함, 아이들의 손가락질……? 그런 것은 배고픈 날 이리저리 걷다가 지천으로 피어난 참꽃의 넋을 허겁지겁 몰아넣는 아이 앞에서, 찔레꽃 새순이 돋으면 손톱 밑을 찌르는 가시에 찔려가면서도 따가운 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대는 아이 앞에서, 멋쩍게 솟아오른 가지를 휘잡아 내려 끝머리에 달린 두릅을 따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 판에 너는 버꾸가 아니잖여?”
“니가 버꾸잖여.”
“으응……?”
“자, 봐. 지그덩 지그덩 사위의 다스름은 지났으니 느린버꾸로 들어가는 거여. 자진버꾸, 진풀이, 된버꾸로 아버지 없는 놈들, 아버지 빈자리에서 목놓아 부르며 울던 한심한 놈들을 한 판 신명나게 울려보잔 말이여.”
‘덩’ 소리와 함께 태평소 날라리의 ‘삐이이 ~ ~’ 소리가 판에 흐르고, 상쇠와 치배들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판으로 퍼져 흐른다. 희수의 버꾸가 판 위로 돌며 엉치뼈 곁으로 서고 북채를 든 손이 왼쪽 어깨 위로 올라간다. 사르르 돌며 버꾸가 춤사위를 실어낸다. 두 발이 같이 모여 점을 찍고, 한껏 치켜 올라간 채가 버꾸의 가슴을 누비며 친다. 그리고는 앉는다. 무릎을 꺾어 앉는다. 어깨를 좁혀 낮게 움츠린다. 흰 바지는 꺾어 앉은 무릎으로 봉우리를 세우고, 초록 더그레는 봉우리를 덮고 앉은 소나무가 된다. 이마 위로 소담하게 피어난 흰 꽃은 한 마리 학으로 날개를 접고, 부포를 매달고 출렁이는 상모는 논두렁 밭두렁 좁은 길을 가득 메울 들꽃의 향기를 머금는다. 버꾸가 오른쪽 땅에 앉고 채끝이 왼쪽 땅을 짚는다. 그리고는 태평소 날라리의 음에 실려 움틀꿈틀 어깨를 비튼다.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고 왼쪽으로 살짝 비틀며 힘을 매기다가 힘을 푼다. 막 깨어난 어린 해가 바다 밑에서 버석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양으로 비비배배 일어서며 ‘덩’ 소리를 낸다. 힘껏 내리치고 숨을 고른다. 다시 힘껏 내리치고 북채를 등 뒤로 숨기고는 고개를 끄덕, 헤식은 웃음, 다시 앞으로 내어 ‘덩 덩 덩 ~ ’ 버꾸의 가슴을 친다. 오른쪽 발을 살짝 들어서 올렸다 내리고, 다시 들어 올렸다 내리며 두 발을 눌러 모은다. 그리고는 버꾸가 땅으로 실리게 휘젓는다. 기지개를 켜고서 밖으로 나오던 해가 물을 휘저으며 문을 여는 모양으로 버꾸도 따라 일렁이더니 또다시 위로 치솟는다. 누렁소가 짧게 걸으며 버꾸를 치면 버꾸는 위로 둥실 솟아 해를 맞고, 다시 내려와 희수가 젓는 누렁소의 뒷다리를 짧게 맞으면 해는 황소걸음으로 버꾸를 놀린다. 황소뒷걸음 사위에 물이 오른다. 빨라지는 장단의 흥이 강물 사이로 비늘을 돋운다. 그 날개를 타고 오른 버꾸가 드디어 가슴을 열고 심장의 붉은 피를 쏟는다. 가슴을 울리면서, 등뼈를 두들기면서 쏟아놓은 붉은 물 위로 심장이 춤을 춘다. 초록물 곱게 먹은 더그레가 수백 년 수천 년을 하늘에 순응하며 땅을 일궜던 사람들의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감싸고, 빨강으로 노랑으로 파랑으로 춤을 추는 띠들이 흰옷 입은 사람들이 심장에 묻어 놓은 둥근 실 뭉치를 풀어낸다. 한 올 한 올 켜켜이 맺혀 있던 설움을 닦아낸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며, 고함을 치고 숨을 씩씩 몰아쉬던 순간들에 쌓였던 미움과 증오, 분노로 일그러지고 찌그러져 있던 사람들의 원(怨)과 한(恨)을 씻어낸다.
* 대문사진은 광양버꾸놀이 보존회 전수관장이신 양향진 버꾸 명인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