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천문이의 아들, 소희의 막둥이 희수야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by 윤슬

놈의 눈이 거슬리게 춥츱거린다.

“나는 말이여, 열아홉 살 난 화자년이 나한테로 와서 각시가 되던 날 말이여, 그날 첨으로 내 아부지 이야기를 들었단 말이여. 그날 말이여, 차암 기가 맥혔지. 막 복에 겨운 장개를 갔는디, 그날 폐백을 받던 자리에서 장인어른이 말씀허시드랑께.”

“무슨 말씀을 허셨는디?”

“준섭이, 자네가 오늘 내 딸 화자년이랑 혼인을 했응께, 자네가 오늘 이 시간부텀은 내 아들잉께 양서방이고, 소서방이고 불리는 것을 원치 말여. 인자부터 준섭이 너는 내 아들이여. 라고 말씀허시면서 상 위에 놓여 있던 청주를 쭈욱 들이키면서 웃었지. 참말로 걸판지게 웃더란 말이여.”

“좋았겄구만. 자기 사는 세상에 아버지고 어머니고 안 계시는디가가 형제자매도 없는디, 떡허고 열아홉짜리 처녀한티 장개도 가고, 폐백도 허고, 복이 꽤 많은디.”

“그라제. 어디 그것뿐인가? 장인어른이 방앗간을 하셨지. 그리서 그 인근 마을들은 쌀이고 보리고 간에 찧어야 할 곡식은 다 처갓집, 우리 이화자네 집이서 찧었지.”

“허허이, 복도 많네. 그 못생긴 얼굴에 키는 째깐히갖고, 거 어디 지게나 한번 지어봤겄어? 근디 먼 복으로 그리 장가를 잘 갔당가. 부럽구먼.”

“하아, 짜식. 웃기는 놈일세. 지게? 말도 마라.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는디, 평생을 지게 질라고 세상에 나온 것 맹키로 지고 댕겼구만. 그려, 지게가 내 몸피보담 크고 무거웠제. 그렁게 동네 가시나들이 뭔 사람은 안 보이는디 지게가 혼자서 짐을 지고 간다고 놀리고 까불었었제. 우리 화자년도 지가 내 각시 될 줄 꿈에나 알었겄냐? 많이도 까불고 놀려 먹었제. 부모 형제라고 해 봐야 누이들이지만, 그 누이들마저 내가 여섯 살 무렵에 다 픽 쓰러져서 갔응께, 의지할 데라고는 아무도 없었응께. 참말로 무섭고 징한 세상이었제.”

“그래도 아버지가 그리 잘 살았고, 그곳이 고향이었으면 일가친척들도 많이 있었을 것 아닌가?”

“있었지. 그 먼 옛날에는, 옛날이라고 해봐야 왜정 때 전이겄고, 아부지, 할아부지 때지. 그 때만 해도 우리 집안 그늘을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별로 없었제. 흐흥, 그러면 멋헌가? 왜놈들한티 금광 채굴권이고, 농토고, 다 빼앗겨부렀는디. 그것만이여? 왜놈들한티 붙어서 재산 불리고 권력 얻어먹어가면서 위아래가 바뀌고, 상전이고 뭐고 인정이라는 것이 남어났어야 말이지. 그렁께 그런 본정머리 없는 세상이서 뭣이 남었겄어. 정인들 남었으며, 의린들 남었겄는가? 죽도록 일하고도 피죽 한 그릇 돌아오기 빠듯혔는디, 누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거두기 쉬웠겄는가? 일가도 친척도 다 소용없는 일이제.”

“듣고봉께 고생 많이 했겄구만. 그 모질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었당가?”

“그래도 생면부지 타관 땅보담야 낫었지. 아암, 그래도 내 고향 내 땅잉께, 마을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금광 막일도 허고, 넘들 농삿일 허는디 어릴 때야 심부름이 고작이었지만 열대여섯 되감서는 놉으로도 가고 그랬제. 쫌만 가면 바닷가닝께 염전이 컸어. 소금밭 일, 거 차암 힘든 일이거등. 소금밭에서 품도 팔고 허면서 그러고 저러고 살었제.”

“소금밭?”

“그렇제. 내 고향 볕드는 땅에는 바다가 컸어. 상포, 하포라고 히서, 포구가 큰 항이 있었제. 그렁께 바다 있는디 소금이 왜 없겄는가?”

“그렇제. 내 고향 보배섬 옥주골 소포만에서도 소금을 많이 했제. 우리 마을 소포에서는 화렴을 했어. 소금을 구워서 만들었제. 나중에 천일염을 만들어내면서 화렴이 점차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없어졌는디, 나 사는 마을이 소포인 것도, 흴 소자를 써서 하얀 소금꽃 푸지게 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이여.”

“그렇구만. 그러면 멋허겄는가. 그렇게 죽겄다고 뼈빠지게 일해서 소금을 쌓아놓으면 하얀 옷 입은 사람들 있는 대로 앙앙대고 목놓아 울어서 흘린 눈물보다 더 허옇게 쌓인 소금이 하얀 옷 입은 사람들 등짐에 실려 다아 왜놈들 땅으로 실려가뻐리는디, 그런놈으 소금, 흥, 이름짜도 금이네. 그런 것이 다아 배에 실려 가서 왜놈들 땅에 차곡차곡 쌓여뻐리는디. 노란 금은 뺏어감성 우리 아부지 목숨 쌩짜로 뺏어갔고, 하얀 금, 소금은 뺏어감성 내 등골조차 청춘조차 뺏어가버렸는디 뭐.”

“참으로 서글픈 세월들이었구만.”

“그라제. 새벽부터 밤까지 갱 안으로 들어가서 콱 쳐백혀갖꼬 금 캐낸다고, 노다지 캔다고 두더지 노릇허다가 밖이로 나오먼 옷을 다 벗어서 알몸으로 검사받고 집에 갔응께. 먹을 것이나 지대로 주간디. 배는 주린디 등짝에 솟는 땀으로 등목을 하던 날들이었제.”

“참말로 고생 많이 했구먼.”

“그래도 버틸 수 있었제. 이 버꾸가 있었응게.”

“그렇지. 나도 우리 엄니, 세상에서 젤 이쁜 우리 엄니, 당골네라고 손꾸락질 당히감서 살던 눈물 젖은 세상, 아버지 없는 자식놈이라고 업신여기던 막되 먹은 세상, 주눅 들어 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버꾸 덕분이었지.”

“그라제. 그라제. 우리 장인 영감 때때로 ‘아이, 버꾸야. 그렇게 허면 쓰냐?’라면서 버꾸라고 바보라고 퉁을 주기도 했지만 말이여, 우리 장인 영감, 버꾸 자알 쳤다. 나도 따라 버꾸 배우고 나도 따라 버꾸 치면서 악을 쓰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제. 왜 그리 설운 날들이 많던지, 많이도 울었제. 등짐 지는 일 고되고, 넘의 집 농사일 무릎팍 시리게 물리는 것인디 말이여, 일 끝나고 나면 마을 어른들하고 모여서 떼북 치면서 한 판 걸지게 놀고, 그러고 나면 땀도 솟고 눈물도 솟았지. 금너리에는 치삼이 아재가 살었는디, 그 아재는 꼭 등에다가 박적(박바가지)을 집어넣고는 꼽사등이를 만들어갖꼬 엄벙덤벙 뛰며 놀았지. 낯바닥에는 숯검댕이 묻혀감서나 꾸불꾸불 눈썹을 그리고 눈두덩 위로 아래로는 시커멓게 그림자 그려 넣고는 눈알을 뛰루룩 굴려감서나 캑캑 소리를 내면 그 모양이 하도 우스워서 다들 한바탕씩을 웃곤 했었제. 각자 들고 있는 악기들을 두드리다가 멋이 심심허다고 등어리에 불룩 솟아오른 박적을 텅텅 두드렸었지. 차암 구성지고 재미졌었지. 그렇게 한 판 웃고 나면 가슴 밑이로, 배꼽 밑이로 구렁이 맹키로 시커멓게 도사리고 앉았던 응어리들이 풀썩풀썩 털려나왔지. 들깨참깨 떨려나오디끼 알맹이조차 먼지조차 검불에 달려 나왔지. 흥, 덕분에 살아냈제.”

“그리여. 그렁께 니가 버꾸여.”

“그리서, 너도 버꾸여.”


“버꾸야, 이 노오옴. 버꾸나 한 판 치며 신명나게 놀아보자.”

“얼씨구 ~ 절씨구 ~ 지화자 조옿다 ~ 이화자가 조옿다 ~ ”

“예끼~놈.”


자진가락의 버꾸가 판을 돈다. ‘덩’ 소리가 오른쪽으로 돌고 ‘덩’ 소리가 왼쪽으로 돈다. 그 소리가 다시 한 바퀴를 돌면 버꾸는 짝다리를 한 희수의 손에 들려 어깨 위로 올라가고, 채는 손끝에서 만세를 부르는 모양으로 하늘에 읍(泣)한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웃는 준섭의 얼굴이 희수의 얼굴 속에서 꽃으로 벙그러진다. 별처럼 들어와 박힌다. 희수의 발이 차올린 버꾸를 준섭이 차올리고, 그것은 다시 빠른 걸음으로 뒷걸음치는 희수의 무르팍에서 구부정거린다.

사람들은 자진모리 가락의 사물 소리에 빠지고, 쇄납의 소리에 빠져 첨벙거리다가 어깨를 움틀꿈틀 땅으로 조인다. 오른발 왼발을 툼벙거리며 버꾸를 감싸고 춤추는 희수의 판에서 “조옿다~ 잘한다~” 추임을 하며 박수를 보낸다. 연신 벙글거리며 춤을 추는 희수의 어깻짓과 하나로 녹아드는 준섭의 혼 울림 속에서 영글어가는 가을은 하늘을 저만큼 높이 올려놓고 흰 구름을 뚝뚝 떼어 수제비를 빚는다.

밀폐된 벽 안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살던 대로 춤추며 그림으로 남은 사람들의 모양처럼 버꾸가 놀아난다. 말을 타고 활을 쏘던 사람들의 육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길 없겠으나, 그들의 삶은 벽 속에서 퇴색할 대로 퇴색해버린 빛깔로 남아 춤을 추는 바보 후손 버꾸들의 동작을 내려다본다. 끊임없는 침탈의 역사, 수탈의 계곡에서 죽거나, 살아남거나, 혹은 다시 태어나 잘 살아보려 한 세상을 떠메고 가는 구순한 사람들의 울림을 본다. 궁둥이를 흔들며 어깨를 흔들며 상모를 부들거리는 뒷걸음질을 보며, 벽 속에서 박수를 치다가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주 오래된 혼들이 희수와 하나가 된다. 갈매기 날개 걸음으로 썰물지다가 갈매기 날개 걸음으로 너울너울 밀물져 들어와 쉬미항 파도에 실리는 희수와 함께 벌떡 일어나 버꾸를 발목에 얹고 신명나게 돌아간다.

상모를 돌리며 툼벙툼벙 판 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희수와 한 패가 되어 절정을 향해 간다. 발을 들어 올려 버꾸를 치며 한 바퀴를 돌고, 또 한 바퀴를 돌며 재주를 부리는 희수의 판에서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모두가 강물이 되고, 별이 되어 흐른다. 두둥실 해는 달로 돋고, 쿵덕쿵 방아 찧던 달은 해로 솟는다. 버꾸가 된다. ‘덩 떠덩 덩 덩 덩 ~ 두둥 두둥 딱딱 덩 기덩 기덩 덩 딱딱 ~ ’ 누비며 심장을 두드리는 희수와 혼 울림 패거리들은 얼을 노래하고, 맥놀이 춤을 추며, 하나의 피로 동심결(同心結)을 이룬다. 해가 된 버꾸를, 달이 된 버꾸를 두 손에 받쳐 들고 햇무리로 달무리로 강물로 굽이치며 휘돌아 드는 흰 저고리들과 흰 바지들이 초록으로 굽이지며 돈다. 이마 위에 하얗게 피어난 꽃 학처럼 날고, 하늘 아래 땅 위에 선 사람들이 흥겨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잘한다, 잘했다. 그라제,” 어깨에 손을 얹는다. 노래를 부른다. 고개를 넘는다.

‘둥 둥 둥 ~ ’ 버꾸의 가슴을 두드려 울리며 희수가 판 위를 돈다. 모두가 따라 돈다. 뿌듯하게 차오르는 벅찬 감동을 머금은 얼~골, 그 얼굴에 천문이의 아들, 소희의 막둥이가 맑게 웃으며 판 가운데로 와 우뚝 선다. ‘두두둥 둥둥 ~ 도도동 동동 ~ ’ 허리를 크게 접어 인사를 한다. 함성으로 일어서는 박수 속에서 새가 난다. 나비가 난다.


*대문사진: 광양버꾸놀이 보존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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