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떠나온 자리, 꿈꾸는 다락
어우렁더우렁 술비소리에 노 저어 오던 혼령들은 저마다의 길로 들어서 갔다. 해남이든 목포든 진도든 저마다 부르는 곳, 황감하게도 잊혀진 이름을 기억해 준 곳으로 달려들 갔다. 승룡이네 굿판에도 소희의 부르는 소리에 천문이 일가 굿쟁이들이 비비고 뜯는 아쟁의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마당으로 들어서 가고, 회초리 후려치는 소리로 신명을 일으키는 천문이놈 장구 후리는 마당으로 들어서 갔다. 술비 푸진 뱃놀이 마당의 대냉기는 방어소리는 아직 감추어 두고, 신조상들 놀던 마당에서 새로 차려진 잔칫상 옆으로 떡 벌어지게 차려진 구조상들의 휘어진 상다리 앞으로 가 앉는다. 승룡이네 일가들이 몰려서 온다.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올리고는 술을 따른다. 술이라는 것이 매양 공수마당에서 마시던 뜩 뜨르릅 펑 따지던 소주일 리는 없다. 석 달을 옹기에 담아 물을 내고 가는 채에 걸러 다시 석 달 하고도 열흘을 그늘에서 익힌 술일 것이다. 소희는 그것을 두고 맛 좋은 사마주 빛 좋은 강화주라 했다.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인 술을 받고 입 안으로 털어 넣는 구조상들의 얼굴빛이 감동으로 물든다. 어찌 아니랄 좋을쏘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흥물결 이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오기를 잘했지. 아암, 잘했다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흥청거린다.
신이 실렸는가 보다. 소희가 두 손에 받쳐 들고 있던 지전다발을 양손에 나누어 들고는 빙글빙글 돈다.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으으음~ 나나나나~ 넋이야 넋이로구나 넋이여~ 낙양성 십리허에 영웅호걸이 몇몇이더냐 아아아 아아아~~어어허~~ 한 마디씩 올렸다 내리고 펼쳤다 모으는 구음을 넣으며 장구를 두드리는 천문이의 바라지 소리에 신을 실어 빙글빙글 돈다. 하얀 빛깔의 저고리 고름이 바람을 타고 난다. 버선 신은 발목이 살짝살짝 보일 만큼 하얀 치마의 폭이 한껏 부풀어 난다. 풍성한 지전이 새하얀 바람을 일으키며 소희와 함께 돌아간다. 그것은 소희 것이 아니고 신의 것일진대, 멈추어서 머리 위로 올리고는 동남서북 네 방향을 잡아 절을 하고, 중앙을 잡아 절을 한다. 오방신장을 다스리며 흥청거리는 굿마당이 한껏 고조되는 밤하늘에 팔월의 달은 떠서 밝고, 손 뻗어 닿을 만한 자리쯤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이 저희들끼리 무리 지어 굿마당을 굽어본다.
“어이, 정읍네야, 자네 허는 그 성주풀이 나도 함께 하세나. 우리 자손들 살피느라 고생 많은 성주들을 오늘은 우리도 함께 위로함세.”
우금 명당을 둘러보고
우금 지신을 살펴보세
우금 명당을 둘러보고
우금 지신을 살펴보니
명당 일색도 확실허고 ~ 그렇지
선영 일색도 확실허고 ~ 아암, 확실허고 말고~
제왕 일색이 분명하구나 ~ 얼쑤 좋다~
모씨 가문 모씨 자손
천년 성주 만년 성주
초가 성주 기와 성주
앞에 안산 높은 봉에 팔만장 옥당을 지을 성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버리덕이 정읍네야, 오늘 들어 자네가 오구시황님 딸이더냐 제석님네 딸이더냐? 너의 근본이 무엇이냐?”
성주풀이를 하며 굿마당에 흥이 오른 조상신들이 신·구 할 것 없이 두리둥실 모여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소희의 사설과 추는 듯 마는 듯 애간장을 녹이는 몸짓을 둘러싸고 손뼉을 쳐가며 밤이슬이 녹아들게 춤을 춘다.
그때만 해도 지금 사는 세상과는 댈 수도 없이 궁색했다고, 낮으로 무섭던 날들이 밤으로도 무서웠다고 말들을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천지가 개벽헌 것 맹이다고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곁눈질한다. 아예 눈을 떨군 채로 고개만 끄덕이기도 한다. 취하라고 마신 술이 삭지 않은 채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지 상을 찌푸린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듣고도 흘리고 들으면서도 못 듣는 혼령들은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성주풀이의 집 짓는 대목으로 넘어간다. 태산에 올라 대목을 베어내고 소산에 올라가 소목을 베어내어 다듬고 올리느라고 분주하다.
“춤 잘 추고 소리 잘 하는 정읍네야, 은동우 들고 수양산 큰 바우 밑에서 너를 버린 아버지를 위해 물을 긷던 버리덕이 정읍네야, 오늘 자네도 우리와 함께 옥도끼를 갈아다가 팔만장관 옥당을 지어볼까나.”
천산 초목의 역군들~ 예에
옥도치를 갈아쥐고
태산에 올라서 대목을 비고
소산에 올라서 소목 비어
원근 산에 짚을 떠서
둥글둥실 들쳐 메고
어리둥실 실었구나
여봐라 모목수야 여봐라 모대부야~ 예에
오방신장을 단속허고
옳은 명당에 터를 잡아
지추를 뜯어보세
좋은 낭구는 내가 치고
자손도 발복허고
영세망 위로 올라가
두 칸으로 가려다가
굽은 나무는 잘 다듬고
짧은 나무는 옥다듬어
첫째 기둥을 잘라다가 상기둥을 세워놓고
둘째 기둥을 잘라다가 중기둥을 세워놓고
셋째 기둥을 잘라다가 대들보를 올려놓고
대들보 위에 춘세 세끌을 올려놓고
세끌 위에다 왕대 올려
왕대 위에다 황토 올려
황토 위에다 기와 올려
속기와도 일만장
겉기와도 일만장
억만장을 올렸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우루루 올라가서 잘 자란 나무들 굽어보고 밑둥치 훤칠한 곳에 톱을 넣어 자르는 소리가 흥부네 마당에서처럼 흥이 오른다. 둥글둥글 큼지막한 박을 골라다가 슬근슬근 자르는 모양새다. 불려 온 혼령들, 죽기 살기로 찾아든 고향 마을, 정든 집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선 집들이 서 있지만 그것도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라 한 번 죽은 것이 서러울 뿐이로다. 그래도 한 번은 다들 모여 핏줄 같은 인연으로 흠향을 하고, 춤을 추고, 집을 지어주는 모양도 흉내 내어가며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은 소망을 한 가지쯤은 들어주려 힘을 쏟는 것이리라.
“노릇이라는 것이 힘든 것잉께……”
누구에게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이 상기둥에 새겨지고 중기둥에 새겨진다. 왕대 위에 올라가고, 황토 위에 올라가고, 속기와 겉기와에도 올라서니 일만 장 기와 불사(佛事)의 선업(善業)이 자손만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깊은 샘물 맑은 골에 태어나서 약값 삼년, 뫼값 삼 년, 물값 삼 년 치러내고, 은동우에 만병회춘약물 가득 채운 버리덕이 정읍네야, 죽지 않는 기암초, 살아나라는 환생초, 늙지 마라는 백년초, 눈 뜨라는 독양초, 노랑도화, 홍도화로 우리 혼백 깨끗이 씻어 왕생극락하게 하여다오. 너의 고운 얼굴, 너의 심성 깊은 곳에도 버리덕이의 고매한 정신이 서려 있으려니……사람아 사람아, 어여쁜 사람아, 외손발복 크다시며 상을 내리시겠다 소원을 물으시던 오구시황 전에 군군마다 면면촌촌마다 가문 들어 큰굿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구시루나 하나 전장해 달라던 일곱째 공주 버리덕이의 심성으로 너의 손과 발에 신을 실어 환생의 춤을 추어다오.”
“천왕제석, 일월제석, 삼정제석님이 오신 자리, 산신제석, 용신제석, 당산제석, 가사제석님 오시고, 석가제석님이 오셨으니, 이 모든 것이 버림받은 너의 몸뚱이 추슬러서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자리에 앉은 공덕, 너의 영혼 들이붓는 보시의 나날이 너를 찾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넋에게까지 고르게 퍼진 덕이니, 꽃각시 정읍네야, 천추만대 너의 덕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소중한 모든 생명에게 한줄기 빛이 될 것이니, 일곱째 공주 버리덕이의 심성으로 너의 손과 발에 신을 실어 환생의 춤을 추어다오.”
“어찌할꼬. 어찌할꼬. 너를 낳아 애지중지 기르던 너희 부모 너를 보면 찢어지는 가슴 안고 쓴물 올라오는 목구멍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대다가, 끝내는 한 마리 접동새나 되고 말 터인데……아서라, 아서라. 너 사는 울타리 찾아들어 밤으로 낮으로 접동 접동 울다가 긴 장대 끝에 매달린 솟대 되고 말면 어이 하리야. 아서라, 말어라. 환생의 춤 추지 않았다 하여 서운타 하지 않으리니, 사람아, 사람아, 가엾은 사람아, 춤추지 말고 노래 부르지 말고, 그냥…그냥 살아가는 범부 아낙이나 되어 살아라.”
“저기 섰는 저 사람, 정읍네, 하얀 저고리 치마도 모자라서 쾌자까지 걸쳐 입었네. 허어, 거참, 제석님이 오시고 석가님이 오셨는데, 예복을 입어야지. 머리에 쓴 저것은 무엇인가. 연꽃 아닌가. 연꽃을 머리에 썼으니 제석님의 본을 받고 안철 받을 모양일세. 손에 든 저 종은 또 무엇인가? 은종인가, 금종인가. 쟁그랑 쟁쟁 한 손에는 종을 받쳐 들고, 한 손에는 물고기 지느러미 형상을 한 채를 들어 두들기네. 상아로 만든 채가 긴 줄에 이어져 결국 정종과 한 몸이 되는구만. 청룡 한 쌍이 새겨진 것을 보니, 저 작은 종이 오늘의 용소(龍沼)가 될 모양이구만.”
왕아천아 제석이야~~ 제석이야 제석이야
제석님의 본을 받고 제석님의 안철받세~~
제석님의 근본은 어디메가 근본인가~~
해 섞고 달 섞고 제석님의 본이로구나~~
제석님의 아버지는 해수가람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어머니는 낯선가람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아들은 글문장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딸애기는 인물이 곱다해서 행실이 근본이라~~
솟았드라 솟았드라
나랏님도 솟았드라 석가여래도 솟았드라
아홉 골 아홉 선비 열두 골 열두 선비들이 석삼년이 지났어도
제석님 딸애기 인물구경 못했구나
중 나려온다 중 나려온다 중 하나가 나려오네
검고도 얼근 중 얼거도 검은 중 중 하나가 나려오네
어디 가는 중이요~~
제석님네 딸애기가 인물이 곱다해서
인물구경 왔나이다
제석님네 산문 앞에 무슨 낭기 섰느냐
은송도 섰더라 반송도 섰더라
은송나무 가시나무 대래층층 엮어졌네
맨드라미 봉숭아야 취 같은 반초 잎은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두덕두덕 놀고 있네~~
물 아래 금붕어는 산수 따라 놀고 있네
네 귀의 핑겡이는 바람불면 요란하네
“천문이네 각시 말인디, 금메 저 각시가 참말로 제석님네 딸애길까?”
“뭔 말이래?”
“아, 긍께 안 그렁가아. 인물이 곱다히서 행실이 근본이라는디, 인물 곱기로는 이 섬마을 통틀어 봐도 어디 저만헌 인물이 있겄능가 말이여.”
“이, 인물로는 어디 가서 빠질 인물이 아니제.”
“이런 사람은 거울을 있는 대로 닦어감서나 쳐다봐도 저런 인물이 안 날 것인디…….”
“그람 뭣 히여? 그리봤든들 당골네밖에 더 허겄능가아?”
“아따따. 뭣 땜시 또 그렇게 뿔따구가 난당가?”
“뿔다구는 무슨. 말하자믄 그렇다는 것이제.”
“당골네라 히도 어디 보통 당골넨가? 삼현육각 잽혀감서 굿을 히도 저렇게 소리 좋고 춤 잘 추는 당골네는 이 근방에는 없다든디라.”
“에징간히 굿 잘 헌다고 소문이 짱짱하든 시오매 저리가라허게 잘 헌다고 칭찬들이 자자허드만 그러네.”
“그렁께 신랑 천문이도 저러고 따러댕김성 고인잽이 허고 그런 거 아니겄어? 저 잘생긴 얼굴에 키도 저만 허믄 적잖이 크고, 지 각시 위허기는 세상 더 없다든디.”
“뭐언? 당골네 내력이 어디 각시 것이당가아? 천문이네 것이제. 천문이 안 만내고 다른 디 시집 갔으먼 저런 궂은일도 안 허고 손에 물 가시는 일도 없이 펜허게 살 것이고마는.”
공론이 많다. 굿마당에 구경 나온 호상계꾼들 품앗이 삼아 콩이나 보리, 또는 드문드문 쌀도 가져와서는 얻어먹고 마시며 제 일처럼 상도 차리고 치우면서도 저희들끼리 모여 앉은 곳에서는 궁시렁궁시렁 말을 발라낸다. 여름이어도 밤이면 이슬 내리고 건듯건듯 바람이 일어 썰렁한데,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눈을 비벼가며 하품을 하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려하지 않는다. 공수마당의 점사도 궁금하고 신기한 것들 일색이지만 씻김의 굿마당은 그 호사스러움이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섬마을 사람들의 밤은 기울 만큼 기울어도 굿은 거꾸로 솟아 흥을 돋운다.
왔나이다 왔나이다 중이 시주 왔나이다
정월이라 대보름날 앉힐 것이 없어서
중이 시주 왔소이다
제석님 딸애기 허는 말이~~
청상깨봐 내다봐라 무상깨봐 내다봐라
청상깨비 하는 말이 어떤 중이 시주 왔나이다
아버지도 없다 해라 어머니도 없다 해라 오라비도 없다 해라
네 아버지 어디 가고 시주 줄 이 없다느냐
어머니는 어디 가고 시주 줄 이 없다느냐
오라비는 어디 갔냐~~
아버지는 뒷동산에 화초구경 가시고
어머니는 앞동산에 불공드리러 가시고
오라비는 서울이라 지추달락 낙상가라 나라보양 가옵시고
시주 줄 이 없다 해라
아버지가 계셨으면 앞노적을 내 줄라냐
어머니가 계셨으면 뒷노적을 내 줄라냐
오라버니 계셨으면 곡간노적 내 줄라냐
많이 주면 한 되요 적게 주면 한 홉이요
흘러가는 냇물도 떠주면은 공 된단다
“어찌야 할끄나. 쌓는 것만을 좋게 여겨 덜어주는 것을 마댔더니, 그것이 죄가 되었는가부다. 흘러가는 냇물에 주인이 어디 있으며, 주인이 없는 공것인데, 그것도 한 박적 떠주면 공이 되고 덕이 되어 복으로 쌓인다는데, 아버지 화초구경 가고 어머니 불공드리러 가도, 오라비 나랏일에 이름이 드높아도, 지나가는 대사 알아보고 시주 줄 리 없다는데, 어찌할끄나. 누더기 걸쳐 입고 한 끼 걸식하는 걸인이야 한 홉인들 닿았겠느냐. 그까짓 공 것, 찬물이라도 한 박적 닿았겠느냐. 죄로다. 죄로구나. 그 깊은 누대의 죄가 너에게 닿아 오늘 너는 씻어내고 닦아내는 자리에 앉았구나.”
“그렇다고 너무 설워 마시게. 자네의 대대로 빛나는 가문을 위해 울어주고 빌어주던 천한 피가 지금 자네 뒤에 앉아 하늘의 소리를 듣고 올리는 자리에 있으니, 그의 아낙으로 업혀온 자네가 오늘은 버리덕이의 영광을 입고, 제석님의 딸애기 영화를 입고 섰지 않은가? 제석님의 딸애기 어쩔 줄 모르고 아버지 은밥그릇 은복게 내주는 공덕으로 시주를 하려 했으나 받지 않고, 청산깨비 무상깨비 명을 받아 주려던 시주도 받지 않으니, 다만 팔목 삼세 번 꺾어 쥐어보고 흔적 받고 표적 받은 딸애기 제석님네 아들 낳고 딸 낳게 되지 않았던가.
여보게 정읍네, 자네 꽃다운 열여덟에 청상 되어 스물 꽉 찬 나이에 그 집에서 쫓겨 나와 친정으로 돌아가서 양잿물 앞에 두고 ‘마셔라’ ‘더 볼 것 없는 세상 미련을 두지 말고 가거라’ 소리 듣던 스물하나 그 어느 하루를 잊지 못했을 것이네만, 어쩐다고 칠보(七寶)에까지 나가 그 물 한 그릇을 사 왔을꼬, 두고두고 그날, 칠보 장날을 잊지 못했을 것이네만, 그날의 오라비도 가슴에 생채기가 나서 밥알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삶을 살았더라네. 눈물 삼켜 피로 토해내며 꾸역꾸역 살아냈드라네. 여보게 정읍네, 오늘에 이르러 자네의 정성을 받고 보니 나 죽은 몸이 혼백으로 감사하네만 자네에게 줄 것이 마땅히 없으니 그것이 한이로세.”
어머님이 하신 말씀~~
집터 명당 잡을 적에 길 위에 성주허면 중의 아들 낳는다 하고
길 아래 성주허면 중의 딸을 낳는다 허기에 길 아래 성주허니
중 사위가 나왔구나~~
부모 자식 간에 배 가르고 목 자르겠느냐
칠흑 같은 밤이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절 찾아 가라하자
큰 법당 뜯어다가 큰채 몸채 지어놓고
작은 법당 뜯어다가 사랑몸채 지었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나나나나~~~나나나나난~ 릴리리이 리이릴리 리이리이~~
넋이여~~넋이여~~ 이이이이이~~이이~~
열두 칸 기와집을 헌신같이 버려불고 아홉 칸 대문 앞을 썩 나서니
나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
흐르나니 눈물이요 한탄하니 한숨이라
어디 절로 찾아갈거나~~
천문이의 바라지 소리 서글프게 높아지는 마당에서 소희가 춤을 춘다.
소희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두 팔을 높이 뻗어 올려 합장하여 내려모으고는 허리를 반으로 꺾어 절을 한다.
그리고는 고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 내려앉아 땅으로 퍼지고 땅으로 퍼진 물결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흐른다. 둥그렇게 말린 여인의 하얀 등이 조가비처럼 솟고, 그 등은 다시 솟아올라 퍼지다가 여울진다. 스러지듯 가라앉은 물결은 움푹 솟다가 다시 스러지고 손은 땅으로 쓸리는 물의 소리를 들으며 종을 부여잡고 일어선다. 천문이의 바라지 애달픈 소리를 동구 밖 멀리에서 들으며 일어서려는데, 못 오지야~ 못 오지야~ 구슬픈 설움이 귀에 걸린다. 가슴을 쥐어짜는 소리로 땅 속을 파고드는 가슴애피 한 중발을 종소리 한 번에 올리며 일어서려다 잦아지고, 다시 한 번 종을 울리며 일어서려다 잦아진다. 삼세번에 이르러서야 가슴을 뒤로 잦히고는 종을 하늘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며 일어선다.
용의 눈물인가. 한의 뿌리인가. 그리도 깊이 서렸던가. 하얀빛 여인의 가녀린 몸뚱이가 좌르륵 쏟아지는 눈물의 포말에 젖는다.
그대로 한 마리의 학이 되어 날려한다. 난초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꽃을 잎잎이 날리며 양 옆으로 퍼지는 쾌자의 자락은 숨 막히게 고요하던 바닷물에 떨어지지 않으려 붙잡고 애원하던 하얀 물체를 기어이 떨어뜨리고 마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하늘로 솟던 한 마리의 학이 아니던가. 커다란 깃털을 접었다 펼치며 천천히 맴을 돈다. 부드럽게 돌며 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바람에 신을 싣는다. 두리둥실 솟는 바람을 타고 돌아간다. 굿잔치 마당에 둘러앉은 제석님네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술잔을 잡았던 손이 순간 멈춘다. 숨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일순간의 정지. 환생의 춤 속에서 팔월의 밤은 고요하게 깊어간다.
몰두하던 눈빛들이 손뼉을 친다. 고요의 맥이 끊긴다. 환호성을 지른다. 연꽃 모자 눌러쓰고, 쾌자자락에 감추어진 치마의 폭을 들어 올리며 순백의 학이 되어 춤을 추던 소희가 숨을 몰아쉰다. 사방을 보고 절을 한다. 잠시 쉬미(쉼) 속으로 걸어간다. 길은 아직 멀고 두고 떠난 님은 다시 오지 않는 밤, 소희는 천문이의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