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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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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0화. 동박새 겨울사랑 동백숲에서 봄으로 지고

제2부. 떠나온 자리, 꿈꾸는 다락

 몇 개의 칸이 몇 개의 방으로 달려야 하는가. 몇 개의 인생이 몇 필의 베로 짜여야 하는가.     


 막연한 기다림, 오지 않을 사람, 기다리는 여심.

 훠이 훠이 새를 쫓는 여인, 차라리 한 마리 새라면 좋을 것을……. 

    

  굵지 않은 가지, 오래 살아서 투박한 살들이 한데 모였다. 같은 흙살을 뚫고 나와 서로 다른 꿈들을 꾸지만 결국은 같은 흙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무들, 수십 개의 가닥을 풀어헤쳤다. 붉은 꽃 야물게 피워내고 질기게 한 생을 살다 간 백일홍은 흔적이 없다. 꽃보다 먼저 온 잎사귀들은 꽃보다 나중에 길을 떠나고 지금은 빈 가지뿐, 이리저리 휘고 툭툭 볼가진 몰골이 수십 세월을 굶주린 넋의 관절인 양, 껍질은 벗겨지고 무르팍은 앙상하다. 붉은 노을은 추억으로 남은 지 오래, 빈 가지에 새들이 찾아든다. 그러나 봄은 아직 동구밖 서낭당에 이르지 못했고, 백일홍 빈가지들 무리 지어 서 있는 틈 사이로 드문드문 얼어붙은 흙살을 도탑게 안은 작은 꽃이 붉은 여심을 하얀 눈물에 가두었다. 하얀 눈물은 멀리서 비쳐오는 햇살에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혼곤해지는 숨을 차갑게 파고드는 바람으로 씻어내며 안으로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바람의 숨소리, 놈은 왜 거칠게 뜨거운가. 꽃잎이 데이면 어떻게 하라고, 노란 수술의 무더기 한 장의 손수건이 되고 말면 어떻게 하려고, 열아홉 청상의 가슴에 불을 당기는가. 도영, 너는 아느냐. 뜨겁게 데이는 나의 열아홉 순정을 너는 아느냐 말이다. ……  

  대답이 없는 너를 두고 나는 걸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 사이를. 툭툭 떨어진 목숨들이 붉게 타오르는 거리를. 너의 담장은 나를 가두고, 나의 이름 없는 벗들은 흩어진 지푸라기 사이에서 피를 쏟는데, 말없이 걷는 나의 정수리 위로 그늘을 드리우는 벗들이 나의 저고리를 적시고, 치마를 적시고, 버선발 수눅을 적셨다. 그 사이에도 도영, 너는 오지 않았다. 무심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앉은 너럭바위는 거북의 형상을 닮아 달이 뜨는 밤이면 달빛에 젖어 우는데, 어버이들의 우정은 무엇을 바라고 이리도 치밀했던가. 

  용서치 않으리라. 도영,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오늘이 가고 있는 지금, 까치밥 여러 개 매달린 감나무 사이를 오고 가는 새가 홍시의 가슴을 후빈다. 부리가 뾰족하다. 콩알같이 까만 눈동자를 들어 주변을 살펴가며 단맛을 씹는다. 가느다란 다리를 어제 그랬던 것처럼 실팍한 가지에 붙이고 홍시의 터져버린 가슴 깊숙한 곳에 부리를 박고 단맛을 뽑아 올린다. 유록빛 털이 연둣빛으로 퍼지는 대가리 밑 목울대가 위로 솟았다 아래로 처진다. 뱃살이 불룩하다. 꽁지깃에 한껏 힘을 주고 버팅기며 단물을 삼키던 새가 콩콩거리는 발짓으로 날아오른다. 가지의 끝이 흔들린다. 새가 떠나간 자리,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 떠나간 새는 다시 온다. 

  붉은 꽃자리에 깃든 새가 고개를 살짝 틀어 밖을 본다. 무슨 소린가를 들은 모양이다. 호기심에 들뜬 콩알 같은 눈동자가 소리를 향해 반짝, 빛난다. 저를 닮은 새 한 마리가 날아온다. 입에는 무언가를 물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저 앉은 나뭇가지의 틈을 본다. 빛깔이 곱다. 대가리에 얹은 유록빛은 검게 빛나고 눈알은 동글동글, 부리는 날카롭고 목둘레는 진초록에 황금빛 나비를 맸다. 옆구리 살을 잘록하게 덮고 있던 날갯죽지의 속살은 활짝 펴든 부챗살이다. 대나무를 잘게 잘라 맵시 있게 살을 넣은 합죽선의 모양이다. 살짝:궁 내려앉아 지그시 누르는 힘에 화들짝 놀란 꽃 대궁이 옆 가지가 기우뚱 휘다가 낭창거리며 올라선다. 무언가를 물고 있던 부리가 저의 부리를 날카롭게 스치고 저의 목울대에 파문이 이는 사이 틈은 좁아져 꽁지깃이 부딪친다. 아직 겨울눈이를 감싼 아린(芽鱗)에 싸여 잠에 취한 꽃송이가 모르게 틈에서 틈 사이로 오고 간다. 마주친 부리에 놀라 옆으로 비켜서다가, 꽃잎 사이로 비친 눈동자에 놀라 돌아서다가, 콕콕 작은 알맹이 하나를 떼어 저에게 준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지고 동박새의 겨울사랑은 동백꽃 숲에서 봄으로 진다.

  까치밥 붉은 홍시는 모든 것을 게워낸 빈 가지 끝에서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꽃자리에 머물면서 한 생을 살았던 꼭지는 비록 늙어 기운을 잃었으나 마지막 정열 겨울나무에서 굳었다. 

  슬픔도 황량한 심연(深淵)에서 붉은 흔적으로만 굳을 정열, 여자가 손끝에 잡혀 울고 있는 붓을 놓는다. 이 밤이 가면 담장 밖은 술렁이리라. 산머루빛 눈동자의 여자를 옭아매던 낡은 폐습은 유구한 역사의 뒤안에서 걸어 나와 뻣뻣하게 굳어버린 붓에 진하게 베인 먹물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리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그를 찾아가리라. 물으리라. 네가 무어냐고.

  담장 밖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던 밤이면 손에 들려 떨고 있던 푸른 인(燐)의 날이 여자의 손끝에서 미세하게 떨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여자를 담은 방을 환하게 밝히던 불은 꺼지고 여자는 홀로 앉아 어머니의 대청마루에 따사롭게 퍼지던 인정과 결별하며 퉁, 떨어지는 한 방울의 소리를 듣는다. 용서하시라는 말조차 버거운 밤,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은 굳으리라. 촛농이 되리라. 

  ‘스으읍 으윽 츠으읍……아악……’

  번개처럼 스치고 가는 강렬한 무엇이 여자의 손을 치고 간다. 번갯불 같은 번쩍임이 스치고 간 곳에서 비쳐드는 것은 부챗살, 낮에 본 새의 날갯죽지 안에서 빛나던 터럭이 여자 밖에서 일렁이고 있다. 


  합죽선, 그것은 새의 소리인가. 

  달빛, 그것은 난새〔鸞鳥〕의 거울인가. 

  춤을 춘다. 합죽선이 달빛을 끌어온다. ‘~딱 덩~ 퉁~~’ 도포자락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착 가라앉은 숨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마루에서 퍼진다. 

  도포의 숨소리가 눈을 들어 허공을 본다. 무슨 시름에 겨움인가. 빙설의 허공을 뚫는 화살의 촉으로 겨누어 본다. 차가운 마루에 앉는 그림자, 방을 본다. 여자가 숨을 고른다. 그림자를 본다. 테가 넓은 갓을 쓴 그림자,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본다. 숨소리를 누르는 그림자, 팔을 들어 올려 한 점 별을 찍고 바닥에 닿은 부채를 편다. 하얀 종이의 살을 가르는 뼈대들, 그대로 한 권의 책이 되고, 팔을 둥그렇게 위로 올렸다 둥그렇게 쓸어내리며 책장을 넘기는 그림자, 또 한 장의 책갈피를 넘긴다. 반짝이는 별은 세상 밖에서 구름에 갇히고, 그림자 서생의 시름은 책장에 갇힌다. 책장을 접고 반짝이는 별을 응시해 보지만 그것은, 지금의 허상. 여자의 고독한 밤을 본다. 차라리 시나위 느린 진양조에 마음을 실어 저 여인에게 부친다면 고독한 절망은 싸늘한 재속에서 한 조각의 잉걸로 피어날 테지만……. 가여운 사람, 어디를 오겠다고, 나 있는 곳이 어딘 줄 알고 찾아오겠다는 것인가. 찾아온다고 이미 죽은 넋이 몇 백 겁을 같이 산다 한들 이승의 하루에 비길 것인가. 북망산천이라는 것이 생(生)의 마지막 길에서 부르는 만가(挽歌)의 한 구절이라고……. 그것은 회백색, 빛이 아니다. 다만 신기루, 곧 사라지는 것일 뿐.     


  새를 쫓던 날, 하늘은 맑았다. 바람은 선들선들 불어와 붉은 백일홍 가지를 희롱했다. 파르르 떠는 꽃송이들, 그것들은 노루장의 웃음으로 화사하게 퍼져나가 보조개 깊은 곳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씨, 저 꽃들은 어찌 저리 이쁠까요?”

  “그래. 가슴 시리도록 예쁘구나.”

  “아씨, 우리 놀던 그 다락에 두고 온 가지들에서도 저렇게 이쁘게 피었을까요?”

  “다락? 그 다락?”

  “예. 아씨랑 함께 앉아 수를 놓다가 올라가면 바깥세상이 훤히 보이던 그 다락 말이요.”

  “그래. 피었겠지. 뜰 가득 피어서 담장을 둘렀을 것이고, 붉은 꽃물 연못이 되었겠지.”

  “그때는 좋았었는디…….”

  “지금은 안 좋은 게냐?”

  “안 좋다기보다는 심심헌디라우.”

  실의 가닥들을 걸고 선 막대 쇠들 사이에서 손가락을 조물거리며 천조가리를 묶어나가던 서운이가 목에 물기를 적셔가며 종알거린다. 저도 나름으로 지나간 시간들이 적적하고 대문 안에 갇혀 사는 나날이 무료하고 헛헛한 탓이라 짐작하지만 그지없이 안타까운 마음에 속이 에인다.

 “아씨, 우리 그때 왜, 마당가에 키 낮은 우물이 있었잖아요?”

 “우물, 있었지.”

 “그 우물이 연못이라고 하면서 놀았었는디요.”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그때, 이렇게 꽃들이 한가득 피어나갖고 여름 마당에 꽉 들어차면 얼마나 좋았어라우?”

 “…….”

 “그때, 샘물에 꽃잎이 떨어져서 빙빙 돌면 아씨랑 지랑은 너무 좋아서 꽃붕어라고 허면서 놀았잖여라우.”

 “너도 기억하는구나.”

 “아믄요. 그것을 어떻게 잊겄어요?”

  “꿈속이라고 잊어지겠느냐.”

  “왜애, 우리 그 꽃붕어한테 밥준다고 보리 허치고 좁쌀도 허치고 그랬잖요?”

  “그랬었지. 꽃붕어들……, 지금은 누가 밥을 줄거나.”

  “긍께말이요. 언지라도 우리가 가갖꼬 밥준다고 보리 허치고 쌀 허치고……, 멪칠 있다 오면 좋을 틴디요?”

  “꿈에라도 그럴 날이 있겠느냐.”

  “근디요, 아씨. 꽃은 그때 그 자리 꽃이나 여그 이 자리 꽃이나 다 같은 꽃일 틴디 어찌 다르다요?”

  “마음이 다르지……꽃이 다를까.”

  “거그 정읍이 핀 꽃은 아무리 뜨건 낮에 피어 있더래도 물기가 어린 것이 어딘지 촉촉허고 고슬고슬 혔는디이, 여그 핀 저놈으 꽃들은 오살나게 많이도 피어갖꼬 푸석푸석한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썼는가아 흐리멍텅히갖꼬는 사람 기운잡치게 허능구만요.”

  “……. 서운아, 꽃들에게도 귀가 있단다. 마음을 다 비치지 말아라. ……이 꽃들도 두고 가면 곧 그리워질 것들이란다.”    

 

  그 여름날 길은 멀었다. 두고 온 다락의 꽃들이 피고 지는 계절이 다 가도록 두고 온 꽃붕어 아직도 그곳에서 노닐고 있을까. 보리를 뿌렸다고 좁쌀을 뿌렸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아버지한테 들키면 경을 친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식이지만 배고픈 들에서 허리 굽혀 피를 뽑는 사람들에게 민망할 일이라 경계하실 거라고 조심을 시키던, 그날의 정답던 어머니, 그 살가운 꽃샘물이 오늘도 그리운데…… 하얀 명주실은 자꾸 길을 가자고 조른다.  

  날틀에 묶인 가락들, 그 실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길을 나선다.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 젖가슴 가운데에서 팔을 향해 뻗어 있는 뼈마디들,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핏줄들, 그 길을 따라 흐르는 피. 그 피로 물드는 길을 걷는 여자. 그 여자에게서 날실은 태어난다. 꽃붕어 먹이만큼이나 작은 크기의 구멍을 빠져나와 첫쇠 기둥에 묶이고, 열 자의 길이로 길을 나서는 열 가닥의 실마리, 중간쇠를 돌아든다. 곧게 가로질러 뻗은 마당에는 꽃들이 한창이다. 처마 밑 낙숫물이 동그랗게 파문을 일으키던 돌계단 틈서리에는 봉선화가 붉게 피어 흐드러지고, 뒤안으로 돌아드는 모퉁이에서는 오밀조밀하게 돋아나서 퍼지기를 잘하는 솔(부추) 잎 사이 꽃들이 장다리꽃과 키를 재며 몽실몽실 피어 있다. 어미의 젖을 먹으며 피워 올리는 아기의 옹알이처럼 몽글게 피어 뽀글거리는 흰빛깔이 실 가닥을 풀며 가는 소희의 눈길에 가득 찬다. 젖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제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돌을 들고는 둥근 막대기를 흙바닥에 퉁퉁 때려 박던 서운이의 손에서 중간쇠로 자리 잡은 놈이 제 몸을 무심하게 돌아가는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소희가 속엣 비명을 지른다. 무엇 때문인가.

   등이 없다. 돌아드는 길목에서 무심코 눈을 들어 앞을 보던 소희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도도록하게 솟아 있던 가슴패기였다. 뼈마디 가지런히 열 개의 구멍으로 열 가닥의 실을 머금어 뽑아내는 고무대, 사람의 형상으로 서 있다. 그런데 그것에게 등이 없다. 반쪽으로 잘린 대나무는 아주 오랜 시간 등을 잃어버린 채 바람에게 시달려온 것이다. 메마른 가슴은 뽀얗던 속살을 하나씩 차례로 잃어갔을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명명하지 못한 하나의 결은 무리를 이루어 두둥실 어디론가 흩날려 갔을 것이다. 토방 밑 틈에 붙잡히고 토담 덮은 용마름에 붙잡혀 피어나던 민들레도 이제는 홀씨 되어 날아가는 계절, 고무대 속 잃은 사람은 오늘도 등을 잃은 자신을 모른다. 무심코 손을 등으로 가져가 뻗어 올려본다. 어쩐지 가려움이 이는 곳 아래쯤에서 저고리 도련 잎이 잡힌다. 숨을 내쉰다. 등이 시리다.

  등,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인가. 한사코 앞을 향해 가는 가슴은 뒤를 보고 가는 등이 돛인 것을 모른다. 옥은 치(키)를 가진 배에 쟁미 노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종종 잊는다. 벗치, 쟁미 노는 배가 나아갈 길을 트는 것을 종종 잊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를 젓지 않아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돛이 바람을 구슬리며 흘러가게 하는 수고로움인 것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앞을 향하는 가슴은 어쩌면 뒤를 보는 가슴, 등의 속 깊은 정을 아예 모르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한 움큼 밀려드는 마당, 그곳에는 여자의 버팀목이 없다. 시린 등을 기대고 부빌 나무, 소희의 등나무, 도영, 그가 없다. 

  다시, 길을 걷는다. 뜨거운 햇살이 밋밋해지는 오후, 실은 개쇠, 참쇠, 막쇠의 자리로 돌아오고, 고무대 앞에서 열 가닥의 실은 너울춤을 추며 소희의 엄지손가락에 감긴다. 훠이 훠이 새를 쫓는 모양으로 너울춤을 추던 실은 막쇠를 감고 돌아 참쇠에 걸리고, 개쇠를 감고 돌아 중간쇠를 향해 길을 간다. 멀고 먼 길, 열 자의 길, 네 바퀴를 돌아 팔십 올로 감기는 길, 그 길을 열다섯 번 도는 여자, 사십 자 한 필의 길은 등이 없는 여자의 등 찾아가는 길을 하루씩 쪼아 먹는다.   

  

  달빛 속에서 책을 읽던 그림자가 일어선다. 합죽선의 살을 모아 쥐고 일어서더니 오른발을 물리고 왼발을 물리고 도포자락을 바닥에 끌며 뒤로 물러선다. 부채를 든 손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는 코가 위로 솟은 버선발 서너 걸음을 뒤로 물린다. 소희가 일어서려 한다. 붙잡고 싶다. 낯설지 않은, 그리움 저편에서 온 그림자 서생을 낯설지 않은 눈빛으로 쫒으며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마음뿐, 몸은 움직여주지 않고, 그림자 서생이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 어찌한단 말인가 조바심을 치며 바라본다. 마음은 가지 마라 불러 세우지만 몸은 마음과 이미 둘이다. 

  도포자락을 흩뿌렸다가 부채 끝으로 잡아 올리며 빙글 돌더니 등을 보이고 선다. 이대로 가버리면 홀로 남겨지는 밤은 얼마나 무안할꼬. 자꾸 붙잡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뿐, 낯설지 않은 얼굴의 차림이어도 엄연히 이곳은 청상의 수절하는 방이거늘…… 나는 모른다. 소희의 심장이 부끄러움 속에서 붉어진다. 그림자 서생이 두 팔을 쫙 펼치고는 나비의 몸짓으로 맴을 돈다. 도포의 긴 소맷자락은 나비의 날개인 양 하늘거리고 그 날개 속에서 저고리 소매의 끝동은 연지빛 햇물로 돋는다. 날개를 접은 나비는 다시 날고 부채는 먼 허공 한 곳에 점을 찍는다. 어이하리. 점으로 찍힌 그 별이 그림자 서생의 지향점이라면 정처 없는 길이라도 홀연히 떠나는 나그네의 심사로 걸어가지 않겠는가. 부질없는 미련만 남기려는 저 서생의 그림자가 명치끝에 묶은 자주색 술띠를 흩뿌리고 은회색 옥노리개의 수술을 물결치게 한다. 그곳에 합죽선의 살들이 새의 소리로 퍼진다. 달빛을 받아 검은 빛깔 오련하게 돋아나는 갓의 둥근 테 위로 두둥실 솟아 날개를 편다. 서생의 팔이 그것을 안고 도는데 누구의 솜씨인가. 푸른 잎사귀 먹빛으로 넝쿨지게 그려낸 난초, 그것의 꽃모가지가 불쑥 솟아 진분홍 곱게 물린 노란 꽃잎을 먹빛으로 그려낸 화공, 그에게서 천년바위의 모성은 숨겨진 먹빛이라. 안고 도는 서생의 팔 위에서 어깨 위에서 차라리 수줍은 꽃잎이라면 즈믄 해가 또 즈믄 해를 살아도 삶은 온유하리라. 파도가 밀려오듯 달음질로 오는 서생, 그의 부채가 접혀지고……음악은 멈춘다. 술대를 내리치고 비켜 올리며 줄을 퉁기는 거문고의 느린 음조와 장구의 숨죽인 소리가 느리게 울려오던 밤이 이제는 썰물 들어 빠지려 한다. 서생의 춤은 난새의 춤이 되어 거울 속으로 들어가니 칠흑같이 검던 밤이 안갯속에서 희뿌옇게 밝아온다. 달구 놈이 울어 돌아가는 밤, 그림자 서생이 달빛 속으로 걸어간다. 원망의 하소가 혀끝에 머문다. 어느 밤에 다시 오시려오.      


  “질부, 자네도 친정에서야 물레를 돌려보았겠는가, 베틀에 앉어를 보았겠는가. 그러니 모든 것이 눈에 설고 손에서도 터덕거리지.”

  시어머니 최 씨의 눈을 피해 가며 가끔씩 찾아와 위안 삼을만한 이야기들로 말벗이 되어주곤 하던 시고모 복흥댁이 숨을 눌러가며 말을 건넨다. 

  “예. 고모님. 행랑어멈들이 하던 것들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손수 해보지를 않았던 일이라 서툴러 일이 자꾸 꼬이나봅니다.”

  “뭐, 그리 꼬인달 것까지는 없는디, 오고가는 동안 그렇게 멍하고 섰는 모양이 여엉 맘에 걸려서 그렇지.”

  “저는, 괜찮습니다.”

  웃음을 지어 마음을 보인다. 

  “사실, 나도 혼인을 하기 전에는 이런 일 특별하게 해본 일이 있당가? 늘 한다는 것이 방에 들어앉아 수나 놓고, 옷감 마름질이나 푸새하는 것들이나 조금씩 배우고, 어른들 옷 만드는 바느질이나 찬찬히 배웠지, 물레 돌리고 베틀 밀고 당기는 것은 아예 하들 안했어. 근디, 내 신세에 주름이 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구만.”

  “송구스럽습니다. 고모님.” 

  “아니네. 자네 하는 모양을 보다보니까 지난날 내 모습이 떠올라 그냥 해본 소릴세.”

  “…….”

  “내가 무얼 특별하게 잘못 헌 것도 없는디, 언지나 뒤가 돌아봐지고, 뭔 일을 해놓고도 꼭 틀린 것 같고오……차암, 한번 마음에 그늘이 들어놓으니까 맥을 추기가 어렵등만. 그나저나 인제는 바딧살에 실을 끼워야 되는디……시간 잡아먹는 디는 이것만한 것이 또 없네.”

  “…….”

  “바딧살이 꽤나 촘촘한 것이 꼭 참빗만이등마요.”

  저희 아씨 할 말이 궁색한 것을 메우려는 것처럼 서운이가 말참견을 한다. 

  “뭐라고오? 참빗 같다고오?”

  “예에. 대나무 등을 가운데다 놓고 양 끝에 대 기둥을 세운 것이, 양쪽으로 빗살을 두었는디 얼매나 촘촘헌가요? 고걸로 머리를 빗으면 서캐고 이고 다 쏟아지는디……으윽, 징그럽잖요오. 챙피시럽기도 하고요오” 

  “허어, 그래. 그런 것도 같다아.”

  소희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받는 복흥댁의 웃음소리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친정마을로 돌아와 홀로 어린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꼭 말로만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바딧살은 저어기 옹동 근방에 살고 있는 목수 아들 방가 태식이란 사람이 만들었는디. 가늘고 촘촘하기가 귀신같다고 말들을 해쌌드만. 긍께 칠보고 태인이고 장날이면 만들어갖고 나와서 파는디, 값을 배짱 있게 받는다데. 성깔이 좀 있능가벼어. 그 집안에서 예전에는 동학도가 나서 화를 많이 당하기도 했등가빈디, 어쨌든 그 아비고 자식이고 솜씨가 좋아서 많이들 찾는다데.”

 “저도 본 것 같구만요. 왜에, 시장통에 가면 고기 파는 집 있고, 그 옆에 떡집이며 빈대떡 파는 집 있고, 그 옆에 들기름 참기름 짜는 집이 있는디, 그 옆에서 안쪽으로 쑥 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것들 갖고 앉아서 파는 사람 말이지요? 사람들이 좀 둘러서서 사가기는 허등마는, 펑퍼짐한 얼굴에 광대뼈는 툭 불거져갖고 성질은 쫌 있겄든디요? 눈알이 쫌 빤짝이기는 헌디. 이, 동태눈깔은 아닌 거 같드만요.”

 서운이가 눈을 빛내며 말을 받는다. 

 “으잉? 야가 야무지게도 봤네에. 너, 언지 그렇게 살뜰허게도 쳐다봤냐? 허어 차암. 이런 사람은 봐도 모르겄드만, 너,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내주랴?”

 “예에? 그런 것까지는 아닌디라우…….”

 “얘가 점점…….”

 오랜만에 말들이 많아지다 보니 적적한 마당에 웃음이 일고 화색이 돈다. 

 참으로 더디게 가는 시간 속에서 촘촘하게 뽑아 올려지는 두 가닥의 실이 바딧살에 켜켜이 잡혀 늘어진 모양이다. 잘 씻어놓은 파뿌리 같기도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 내린 여인의 백발 같기도 해 보인다.


  방가 태식이는 명주 바디를 만들기 위해 마을 뒤편 대밭에서 삼사 년을 너끈히 자란 대를 잘라온다. 그 두께가 어른의 손아귀에 넘칠락 말락 뿌듯이 잡히는 것이라야 한다. 쉰 자 길이가 다 되게 자란 대통이면서 그 마디도 한 자가 다 되어야 제격인데, 이만한 대통을 얻기 위해서는 대밭 가운데까지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저희들끼리 모여서 이웃을 이루고, 자신의 소리를 넘겨준 만큼 이웃의 소리도 들어서 넘치지 않게 어루만지며 연대를 이루는 숲, 그곳에서 방가 태식이는 푸른 잎 성성한 대나무를 잘라온다. 뿌리는 땅 밑으로 숨어 이웃한 벗들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토담 아래 몸을 숨기고 제 아비어미가 일 년 내내 잡아다 바친 고기의 값을 달라는 말에 돈 대신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꼭 쥐고 떠나는 백정 놈 아들의 거친 숨소리처럼 제 이웃의 몸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피에 젖은 손을 맞잡고 묵묵히 잘려나간 상처를 쓰다듬는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발걸음이 지치지 않고 헤집는 곳, 두텁게 쌓인 댓잎들이 누렇게 떠서 스스로 거름이 된 눅진한 그늘 속에서 굼실굼실 기어 다니는 지네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뱉는다. 뭉툭한 대가리에 뾰족뾰족 붉은 벼슬을 달고 늘어진 붉은 주름 속에 날카로운 부리를 뽐내는 수탉이 암컷을 이끌고 나와 병아리들을 살피는 사이에도, 목에서 가슴께로 흘러내린 깃털의 갈색이 댓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위엄으로 꽁지깃을 한껏 세워 날리는 동안에도 댓잎은 쭉쭉 솟은 가지의 끝에서 속을 비운다. 그러다가 암컷을 호리려 음흉한 눈알을 뛰룩거리는 변방의 수컷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오는 영역 안에서 며느리발톱을 세우며 독기를 뿜는 오후면 대나무 숲은 연대의 함성을 지른다. 솨아아 솨아아 댓잎은 서로 쓸리며 물 흐르는 소리를 내고, 비 쏟아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빽빽하게 들어찬 대들은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돌 구르는 소리를 내고, 탁탁 튀며 피어오르는 불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것이 수십 수백 개로 내는 소리다 보니, 염탐에 노략질을 하러 온 변방의 수탉은 제풀에 놀라 달아나게 된다. 

   이토록 의로운 삶을 살아온 나무들이지만 대는 하루아침에 칼을 맞고 쓰러진다. 방가 태식이놈의 투박한 손이 한 자나 되는 길이쯤에서 굵직한 마디를 앗아놓고 대여섯 개의 마디를 하나로 하여 톱으로 자른다. 놈의 손은 맵차고 눈썰미는 매처럼 예리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른다. 촘촘하게 어긋난 톱니들이 대의 몸을 파고들며 내는 소리는 마른 지푸라기를 작두로 썰어 무쇠 솥에 끓인 쇠죽 여물을 씹는 누렁소의 입소리처럼 매우 경쾌하게 들려온다. 푸른 대의 속은 잣가루마냥 뽀얗다. 푸른빛이 도는 흰 빛깔의 댓밥은 어쩌면 의로운 생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칼을 맞고 쓰러진 목숨의 뼛가루인지도 모른다. 방가놈은 도대체 무엇에 이끌려 바딧살을 만들어 팔아 연명을 하며 대의 소리를 듣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펑퍼짐한 얼굴에 광대가 솟았어도 눈빛은 맑아 서운이년의 마음을 잡아버린 방가놈은 대껍질만 취하고 속대는 바닥에 버려둔다. 톱으로 앗아놓은 자리를 툭 잡아떼어 껍질을 벗기고, 그것들을 다시 잘게 쪼개서는 석칼로 훌쳐낸다. 등잔처럼 생긴 대 위에 등은 무디어도 뱃살은 제법 날카로운 칼을 뉘어 놓고 살짝 뜬 뱃살 밑으로 잘게 쪼갠 대를 쭉 잡아 빼며 살짝 붙어 있는 군살까지 덜어낸다. 그리고는 둥근 나무통 위에 날카로운 칼을 양쪽으로 세운 조름대 사이에 댓살을 넣어 훌치며 옆구리까지도 비뚤어진 곳 없이 반듯하게 조름질 해낸다. 그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다시 고등어 등이 내는 광채 같은 빛깔의 서슬 퍼런 석칼에 여러 번 훌쳐서 빤빤하게 만들어낸다. 

  열 자의 길을 걸어 네 바퀴를 돌아 팔십 올로 감기는 실, 그것이 열다섯 번을 돌아 묶이고, 나란히 서서 바늘기둥에 걸려 일렬횡대로 꽂히는 시간들, 한 개의 살도 빠져서는 안 된다. 방가놈의 치열한 열중이 합사(合絲)의 밤과 낮과 아침을 빼곡하게 채우려 든다. 인정을 두지 않는 놈의 정성은 석칼의 훌침을 받고 조름대의 눌림을 거쳐 다시 석칼에 훌쳐진 대껍질 살을 펄펄 끓는 무쇠 솥에 국수를 삶는 양으로 넣는다. 종대로 횡대로 켜켜이 넣는 모양은 얼핏 떡을 찌는 모양과도 같아 보인다. 그렇게 삶아진 댓살을 서늘한 곳에 볏단처럼 세워 놓고는 마르는 동안 기둥살을 만들기 시작한다. 

  바딧살의 양쪽 가장자리에 세워지는 기둥살은 생대 두 자가 약간 덜 미치는 길이로 잘라 만든다. 두 쪽 두 쪽씩 배를 맞대게 하여 자른 대는 배가 맞닿는 쪽은 납작하게 만들고 등이 맞닿는 쪽은 약간 반원형으로 도도록하게 만든다. 배가 맞닿는 사이로 바딧살이 들어가 물려서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턱을 괴고 앉아 넋 놓고 바라보던 서운이년이 바딧살 매는 모양을 보며 그것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시오, 그 정도는 나도 헐 수 있을 것 같은디, 좀 거들어줄까라우?”

  방가놈이 고개는 바짝 들지도 않고 곁눈질로 살짝 보고는 대꾸도 없이 피식 웃고 만다. 

  “아니, 내가 그것도 못할까 봐서 그렇게 웃는다요?”

  흥 소리가 나게 코에 바람을 넣으며 입술을 앙다물어 삐지는 모양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대껍질들을 전지미대에 대고 툭툭 분질러 꺾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싶지만 기실 툭툭 소리는 나지 않는다. 단번에 꺾이지도 않는다. 팔팔 끓는 무쇠 솥에서 삶아져 나온 것들이 바람을 맞으며 말랐지만 눅눅하게 끈적거리는 이물감이 있다. 가늘게 심 박힌 대의 섬유들이 질긴 목숨을 쉽게 내어놓지 않는 때문이다. 

  “음마,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아니, 긍께에, 그렇게 대답 한 마디 없이……그렇게 그런다요?”

  방가놈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한 번 올려다보더니 말은 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 바디 하나를 내어준다. 

  “싫으요. 지금까지 기다렸는디……싫으요. 나 보는 앞에서 만들어진 놈으로 주시오.”

  “거그 턱 받치고 앉아서 기다린다고 요것이 빨리 되는 것도 아니요. 긍께 인자, 이놈으로 갖고 가시오. 바쁠 틴디.”

  “남이사. 바쁘든지 말든지, 넘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허면 못쓰요이. 죄로 가요이.”

  “죄는 누가 받등가 말등가 냅두고오……, 긍께, 거그를 무시헐라고 히서 그런 것이 아니고오, 고오 참새 혓바닥만한 손으로 이런 일 허믄 손 버링께에 가만히 앉어 있등가아……아니믄 장바닥이나 한 바꾸 삥 둘러보고 오등가아……허시오.”

  말을 하다가는 저도 우스운지 설핏 웃고는 침을 튀기며 말을 한다. 

  “참말로오, 왜 침은 뱉고 그러시오?”

  “나는 뱉은 적이 없소.” 

  “그럼 시방 이것이 침이 아니고 뭣이란 말이요?”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통통한 볼을 닦아내며 말을 뱉는다.

  “지가 튕겨 나갔으면 몰라도…….”

  얼굴을 닦아내는 손가락을 슬쩍 보고는 

  “그렇게 애기 같은 손꾸락으로는 이런 일 허믄 못씅게, 쥔네 부르기 전에 가서 밥이나 챙겨 먹고 헐 일 다 히놓고……그러고 가만히 있다가 생각이 나거든, 그때 오시오.”

  “그렇게 늦어진단 말이요?”

  “참새 혓바닥 같은 손꾸락이 오고갈 것인디, 살 하나라도 꺼지거나 튀어올라 있으면 다치요. 긍께 절기도 잘 절어야 허고, 스피질도 깨끗이 히야 허고, 글고 얼잡기도 해야 됭께에……시간이 좀 걸릴 거요. 다른 놈들보다 공이 쪼깐 더 들어가겄소.”

  “으읍. 알겠소. 잘 좀 다듬어서 해 놓으시오.”  

   

  배시시 웃는다.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나름으로는 사내답게 생긴 얼굴에 정 가게 생긴 구석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손을 돌려가며 바닥을 보고 등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어쩐지 참새 혓바닥 같다는 말도 우습고, 애기 손가락 같다는 말도 싫지는 않다. 피이~, 혼자 웃고 혼자 종알거리며 피향정 모퉁이를 돌아 언덕바지 높은 곳 서낭당 높이 솟은 나무 앞에 선다. 누구의 소원이 이토록 많이 높이도 쌓였을까 생각을 하며 돌을 하나 주워 올린다. 자기의 돌이 무심하게 떨어지지 않게 자리가 넓은 곳에 나름으로 넓적한 돌을 올린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는 저만이 아는 소원을 종알종알 아뢴다. 살짝 감은 눈이 떠지면서 방가 태식이의 슬쩍 보고 웃는 얼굴이 지나간다. 아이구머니나! 저도 모르게 벌어진 일에 민망함을 느끼고는 저희 아씨 있는 마당을 향해 달음질쳐 간다. 

  방가 태식이의 손이 오늘은 어쩐지 느려진다. 습관으로 익은 손이 특별히 마음을 먹지 않아도 저 알아서 고부려지고 펴지고 말리면서 별스럽지 않게 만들어지곤 하던 바디가 오늘은 어쩐지 조금씩 느려지고 세심해진다. 게다가 무슨 병통인지 가슴이 부지불식간에 퉁퉁거리면서 뛰곤 한다. 얼굴은 여름날의 햇살이라 뜨겁기도 하지만 챙을 달아 앞으로 쑥 빼놓은 추녀 덕으로 그나마 시원한데, 훅훅 달아오르고 불그레해지는 것이 어디서 모주라도 한 잔 하고 온 모양새가 되어 있다. 어쩐지 잘 만들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깊어진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명문가의 새아씨에게 매인 씨종인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은, 웃을 때마다 도드라지게 입술 밖으로 튀어나와 하얗게 빛나는 뻐드렁니 때문이라고 탓을 한다. 맹랑하게도 자꾸 귀엽다. 

  방가놈은 어느새 쐐기를 박는다. 고무대 구멍 속으로 들어가 한 올씩 풀리는 날실을 품고 돌아가는 날틀처럼 생긴 바디틀에 기둥살을 끼운다. 배가 맞게 양쪽으로 눕혀 바디틀에 꽂는다.  기둥살이 움직이지 않도록 줄이 달린 쐐기를 입을 벌려 넣는다. 그리고는 일정한 간격으로 바딧살을 맨하던 전지미대로 탁탁 쳐서 쑤셔 박는다. 실실 웃음을 웃는다. 응큼한 놈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인가. 옥난간에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아가씨 사랑노래 베틀에 수심만 진다고 읊어댄다. 양덕 맹산 중세포요 길주명천 세북포라고 중얼거리며 에헤요 베짜는 아가씨 사랑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흥을 실어 부른다. 건들거린다. 언제고 노래라는 것을 멋들어지게 불러보지 않았으랴마는 더디게 돌아가는 일을 앞에 두고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 이빨 사이에 물고 입술을 달싹이며 피우는 담배에서 떨어지는 재처럼 뚝뚝 끊기기도 하지만, 오늘 서운이년 삐죽이는 모양이 새록새록 솟아올라 흥에 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씨, 등이 아프고 눈이 빠질라고 하는디요.”

  “그러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저 간짓대 굴리면서 실 가닥을 끌어 올리는 것도 엉키지 않아야 되고……바딧살 좁은 틈새로 끼워 넣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좀 쉬었다 하자.”

  마루에 앉아 실을 뽑아주고 받은 실을 한 쇠 중앙에 꽂아놓은 바늘 기둥에 올올이 감아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를 잡아도 이틀을 넘겨야 하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뽑아서 신을 삼는다 해도 이보다는 더디지 않으리 싶다.      


  도대체 몇 번을 얽어매어야 하는가. 얼마나 질긴 인연으로 칭칭 감기려는가. 

  날실이 베틀에 올라앉고 씨실이 북에 실려 오고 가는 사이 명주베 고운 올이 속적삼 되고 저고리에 바지가 되고, 홍화물 먹인 도포가 되면 잠자리 날개 같은 소맷자락 나비춤 될 것인데, 거기에 테 넓은 갓을 얹어 태사혜를 갖추면 소희는 직녀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여운을 두지 말고 떠나가야 한다. 만나거든 물어야 한다. 왜 나에게 이토록 가혹해야 했느냐고,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느냐고 물어야 한다. 

  하루가 더디게 흘러만 간다. 바디장이 방가 태식이놈 따위가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다만 타고난 손재주로 심혈을 기울여 좋은 물건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 놈이 무슨 연고로 세심함에 세심함을 더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쐐기를 박아 넣은 곳에 마구리를 끼운다. 쐐기 대가리를 가슴으로 막아 세워놓고는 가운데에 버팀기둥을 세운다. 그리고는 맨 밑에 있는 태기줄을 당겨 전체 바딧살이 단단하게 조여지도록 맨다. 두꺼운 명주실꾸리를 양쪽에서 돌려 감아가며 바딧살을 한 칸씩 절어간다. 반나절이 싸목싸목 지나간다. 밖에서 들어온 실이 안으로 감기며 엮인다. 빤빤하게 훌쳐진 바딧살 하나가 두 개의 실꾸리에 착착 감기며 가시가 되고 버시가 되어간다. 짱짱하게 엮은 바딧살의 면을 칼로 긁어낸다. 스피질을 하는 것인데, 댓살의 각질이 벗겨진다. 기둥대의 배가 맞닿은 마디 부분을 대패로 밀어낼 때 도르르 말려 꽃처럼 피어나던 것과는 다르게 하얗게 일어나 마구 헝클어진 것을 칼로 도려내고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털어내 버린다. 가시가 되고 버시가 되는 초야(初夜)에는 몸에 있던 때도 씻어내고 닦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얼 잡기는 마무리다. 대나무 을대로 살과 살 사이를 들고나며 쓱쓱 문지르면 바탕이 고른 하나의 바디가 되는 것이다. 화룡점정이라던가. 八을 새기든 六을 새기든 붉은 인주를 찍으면 초례청의 수줍던 신부는 화사(花絲)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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