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떠나온 자리, 꿈꾸는 다락
떠나간 자리, 돌아오지 않는 밤, 떠밀려 갔다가 떠밀려 오는 밤들이 셀 수 없이 지나가고 지나왔다. 계절을 달리해서 오고 가는 밤의 시간들이었지만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결행을 강요하는 시간은 이미 댓돌 위까지 올라와 마루에 앉았다. 냉혹한 바람들이 탈바가지 속에서 음흉한 웃음을 띠우며 다가왔다. 선하게 내미는 손들이 무심하게 바라보는 여자의 눈길에 채여 돌아갈 때마다 들려오던 수런거림도 이제는 멈추었다.
소희의 결행은 이미 다짐이 선 것이었다.
어리렁 서리렁 돌아가는 왕챙이 물레의 괴머리 앞에서 기둥에 묶여 올라가 앉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아주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몸채였다. 까만 점, 씨앗 같은 것들을 낳은 어미는 죽은 지 오래다. 까만 점이 시간을 먹으며 자라는 동안 그것을 감싼 막은 점차 부풀어 올랐다. 투명하게 검은 막이 한껏 부풀어 보아야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넘지 못할 것이지만, 그것은 어미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갉작갉작 시간을 축내며 맡겨진 생을 살았다. 뚫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누군가 알려준 적 없어도 주둥이를 내두르며 콕 찍었을지 모른다.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한줄기 빛은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새까만 벌레 한 마리,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느다란 몸, 검은빛 털에 휩싸여 내딛은 땅,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땅이었다. 실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세상, 갉아먹으며 나온 어미의 태(胎)는 사라진 지 오래. 푸른 냄새로 돋아나는 기억, 새까만 콩알 같은 똥이 되어 나온 어미의 몸을 알 리 없는 벌레 한 마리는 쫑쫑 썰어서 펼쳐준 잎을 먹으며 한 움큼씩을 살았다.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만큼 작았던 몸이 쑥쑥 자라면서 희뿌연 옷을 갈아입고, 좀 더 큰 잎을 쉼 없이 먹으면서 머리통의 크기도 커지고 몸피도 커져 어엿한 한 마리의 누에가 되었다. 잠을 잘 때마다 한껏 자라나는 몸피, ‘누구든 나를 건들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반달무늬를 새기고 꽁지 부분도 머리처럼 위장을 하고 겨누지만, 세상에 필요한 것은 너의 몸이 아니다. 네가 아니다. 다만 너의 몸이 뿜어내는 실이다. 실, 질긴 생명, 그것을 잇는 가느다란 줄. 나는 그것을 위해 너를 죽인다.
비대해진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마디마디 굵어진 몸통을 꼭 끼는 껍데기 속에 넣어두고 환생을 준비하는 나는 너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어미가 그러했고, 나의 할미가 그러했듯 껍데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한 올 한 올 벗겨지는 동안 이유 없이 부끄러워지던 순간들, 그 끝에서야 나는 알았다. 네게는 나를 감싸고 있던 껍데기의 터럭이 필요했다는 것을. 불그레하게 변한 몸뚱이 속에 남은 오줌 한줄기까지 쏟아내고 솔가지 푸르게 두툼한 산실(産室), 섶으로 올라갈 때 나에게 환생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가는 사실 모르겠다. 내가 나의 생에 대해 결연한 의지가 있었던가 역시 모르겠다. 내가 만든 고치 안에서 어미의 탄탄했던 자궁의 온기를 떠올리며 지나온 생애 사십여 일을 반추해 보노라면 나도 어느새 어미가 되는 역사, 환생의 순간에 펼치는 날개의 유희가 있겠지, 그것 말고 내게 무슨 욕망이 있었으랴.
비 내리는 열아홉의 늦여름 밤 붙박인 바퀴살들에 부대끼며 돌아간다. 화로 위에서 김을 뿜으며 끓는 물속으로 끌려들어 가 뱅뱅 돌며 감고 있던 터럭이 벗겨지는 고치들, 그것들의 비명 소리가 비에 젖는다. 스물이나 되는가 싶은 고치들이 더러는 쭈그러지고 더러는 버려지면서 생을 접는다. 환생에 대한 꿈들이 물레에 감기며 소희의 밤을 깁는다.
짯짯하고 뻐실뻐실한 채로 물레에서 내려온 누에의 터럭은 이내 소희의 무릎에 안긴다. 밀가루를 찰지게 반죽하여 판 위에 내려치며 가늘고 길게 늘이는 면(麵)처럼 하얗게 풀려나온 가닥들은 소희의 양손에서 착착 이슬을 털며 들메:춤을 춘다.
환생은 이제부터다.
사랑은 이제부터다.
직녀의 사랑은 비가 있어야 영원한 것.
엉겨 붙은 가닥들은 이제 소희의 덜 여문 손에서 째져야 한다. 낱낱이 흩어져서 모여들어야 한다. 고운 손이다. 사내의 손길이 아직은 닿지 않은 순결한 손. 두고 떠난 사람의 속살이 비비고 들어오지 않은, 아무도 범한 적 없는 여자의 몸속에 괴어 있는 한 방울의 피, 앵혈(鶯血)이라던가. 소리 없이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밭에 선연하게 피어난 작은 꽃송이. 그 붉은빛의 수줍음, 그 순수의 여정이 소희의 방, 여자의 방 윗목 의걸이대에 차례차례 걸린다. 순백의 결을 이루며 걸린다.
가락에 감긴 실들은 자신을 잃었다. 다시, 고치의 시간 번데기의 시간으로 돌아가 환생을 꿈꾸는 것은 진실로 잃는 것. 놓아버림으로써 다시 태어나게 되는 그 무엇, 소희는 누에에게서 누에는 소희에게서 직녀가 된다. 합사(合絲)의 밤이 아침을 맞는다.
여보게들, 우리 운수대통해서 대냉기를 했으니 방어소리(쪽대로 고기를 뜨며 부르는 소리)나 하면서 힘차게 당겨보세~.
어~여루 방어야
어이 여차 방어로다
이 방어가 누 방어냐
모씨네 방어로네 어~여루 방어야
우리 운수 대통하여 어~여루 방어야
대냉기를 마쳤으니 어~여루 방어야
힘차게 당겨주소 어~여루 방어야
화장아 술 걸러라 어~여루 방어야
목을 취면서 당겨보세 어~여루 방어야
조구 조구 잘 걸렸네 어~여루 방어야
보기 좋게 잘 걸렸네 어~여루 방어야
여보아라 동사들아 어~여루 방어야
내년에도 내 배 가세 어~여루 방어야
이 정도 실었으면 어~여루 방어야
금인들 못 살쏘냐 어~여루 방어야
옥인들 못 살쏘냐 어~여루 방어야
금도 사고 옥도 사고 어~여루 방어야
가독가독 사가지고 어~여루 방어야
부모처자 선물하세 어~여루 방어야
알마도야 잘 있거라 어~여루 방어야
칠매등아 다시 보자 어~여루 방어야
대냉기를 마쳤으니 어~여루 방어야
내 고향으로 나는 간다 어~여루 방어야
방어소리 하다보니 어~여루 방어야
보물 그물이 다 올랐네 어~여루 방어야
“거기, 거 움츠리고 섰는 거어, 망자님들, 그만들 꾸물거리고오 싸게싸게 타드라고오.”
“거어, 그렇게 말허는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뭔디 타라마라 성화를 대는 거요?”
“아, 보먼 모리겄소? 노 젓는 사공 아니요?”
“뭐여? 거가 사공이요? 아까 저어 너메서 하얗게 옷 입은 여인네가 애터지게 부르고 찾았쌌드만, 워따! 긍께 당신이 사공이여?”
“우라질 놈, 거 참 말도 많네. 타라면 탈 것이지 잔소리는 무슨 잔소리여. 귓구녕 가립게.”
“일면식도 없는 남의 집 선영조상 찾느라고 애통터지는디 실컷 찾어놓고 갈라고봉께 사공이 없어. 될 것이여? 사공! 사공! 허면서 불러쌌는디, 안 뵈여. 꼬라지가 안 뵈여. 주리를 틀 놈, 아마도 허던 버르장머리로 어느 구석에서 자빠져 자다가 기어 나왔을 것이구만.”
“아, 긍께, 구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 허고오 싸게싸게 타드라고오.”
“예끼, 여보시오. 그라믄 못씨요. 사람 애통터지는 것도 모리고 어디 가서 뭣하니라고 꾸물대다가 이제사 와갖꼬 빨리 타라 어서 타라 성이나 가시게 성화를 부리는 것이요?”
“그리서, 탈끼여 말끼여?”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사공의 서슬이 퍼렇다.
“에헴, 말허자면 그렇다는 것이제.”
느릿느릿 걸어온다. 뒷짐을 지고 여덟팔자를 그리며 걷는 폼이 한때 놀아본 왈짜패의 모양새다. 장정 서너 걸음이면 족할 거리를 이리 삐뚝 저리 삐뚝 건들거리며 걸어온다. 함진애비 점잖은 놈 울룽도 오징어 분 발라 덮어쓰고 몇 걸음 재게 걸었는데 다시 보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선 걸음새로 걸어온다.
그런 모양을 아니꼽게 째리던 사공이 배를 밀어낸다. 힘을 준 팔이 불뚝불뚝 불거지고 너부데데한 얼굴에 움푹 들어간 눈알이 끙끙 힘을 쓰는 통에 이맛살이 모아지고 콧잔등 살이 모아지며 눈초리살이 모아지더니 두꺼운 눈꺼풀에 덮여버린다. 고개를 돌려가며 사방을 살피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쏙 몰아넣은 자라 모양이다.
“아니 이런 씨펄노미.”
느닷없는 욕지거리에 망자들의 눈이 사공을 향한다.
“야이, 씨펄놈아, 왜 넘의 궁둥이는 더듬고 지랄이냐?”
냅다 발을 내지른다. 힘을 쓰느라 붉어진 얼굴에 순간 불이 피어오르며 검붉게 변한다.
“솥뚜껑만이나 한가, 꽃 그려진 쟁반만이나 한가, 둥글넙적허언 것이 크기도 왐팡 큰 궁둥짝 밑이서 달랑 달랑거렸쌌는디 고것이 영 거슬리는 게 뭔가 싶어갖고 그냥 한번 푹 쑤셔 넣어 잡어봤을 뿐인디, 흐흐 에에엥……방울 두 개가 영 둥글둥글 말랑말랑 허구마이잉. 그렁게 그것이 꼭 목단꽃 시원허게 그려진 쟁반 욱에 손으로 비벼 떨어뜨려 논 새알심 같고마안.”
빙글빙글 웃어가며 깐죽거린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두꺼운 눈꺼풀에 덮여 있던 눈알이 툭 튀어나와 불을 뿜는다. 빠지직 금이 간 붉은 핏줄들이 얽힌 나무의 뿌리처럼 검은 동자 너머 흰자위까지 넘치게 흐른다.
“어이, 사공, 서둘러 가세나. 저기 강 너머에서 불러대는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가?”
실랑이가 길어지는 것을 막으려 점잖게 보이는 영감이 채근을 한다. 하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노인은 턱 아래로 하얗게 자란 수염을 손으로 연신 쓸어내린다. 선영조상을 찾아와 불러대는 무녀들의 성화가 강 너머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퉤 두고 보자. 내 시러베자식 같은 니놈을 곱게 보내주든 안 헐 것잉게.”
어쩔 수 없이 장대에 붉은 칠을 한 상앗대를 들고 배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씨근거리는 숨을 골라가며 물살을 가른다.
배는 이제 길게 흐르는 강을 거슬러 먼 곳까지 떠밀려 나간다. 강기슭을 따라 보이던 키 큰 나무들이 가물거리고 저승 나루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승 나루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에나 도착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저 강의 한가운데일 뿐이다.
배에 올라 저마다의 인연에 묶인 후손들을 찾아가는 망인들, 선영조상들의 입성도 각기 다르고, 사연도 저마다 다른 배 위에서 노를 저으며 방향을 잡는 사공의 긴장이 아슬아슬하다.
강은 평화롭다. 바람은 불지 않는다. 봉지 안으로 잔뜩 밀어 넣은 숨이 빵빵하게 차올라 빠져나갈 틈을 찾아보지만 결국 안에서만 맴을 도는 것마냥 후텁지근한 것이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런데도 강은 흐르고 배는 나아간다. 이제 포구 가까이 가고 있노라 짐작을 한다. 언제나 겪는 무섬증이다. 몇 백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평화로운 강의 끄트머리도 완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긴 것과는 달리 남모르게 겁이 많은 사공은 곧 맞닥뜨리게 될 낭떠러지가 무섭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거센 힘, 그것에 이끌려 곤두박질치게 되는 낭떠러지. 사공이 지은 죄를 갚아내는 시간 속의 벌이다. 얼마를 죄갚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시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억겁의 연속이다.
‘아 아 아악……’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물살, 그 속에서 치떨리는 두려움이 뼛속까지 밀려들어도 오늘 이승의 인연을 찾아가는 넋들의 형상. 그중 하나의 형상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죄갚음의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공포의 사슬이 끊길 기미도 없이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은 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여 온몸이 후르르 떨린다. 그런데도 미움이 일어 이리 삐뚝 저리 삐뚝 건들거리며 걸어와 아랫도리를 휘저어대던 건달치기를 혼내줄 궁리는 놓지 않는다. 미련스러운 데가 있다.
‘아 아 아악……아아 악……’
이리저리 튄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배의 난간을 붙잡고 돛대의 아딧줄을 붙잡으며 튕겨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형상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뺨을 맞는다. 아찔함을 느낀다. 솟구쳐 와서 삼키려 드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다. 기겁을 하며 정신을 잃는다. 사공의 노는 형편없이 까닥거린다.
닻배만큼이나 큰 배에 화장(배 위에서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 제사를 위한 준비도 모두 담당한다)도 없고 선원도 없다. 이물 쪽에는 오른쪽 왼쪽으로 긴 장대 노가 매달려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선원들이 없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세기에 따라 펼쳐지는 돛대가 길게 쭈욱 솟아 있고, 닻을 내리고 정박한 바다의 한가운데로 그물을 드릴 때 함께 던져지는 묵직한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배 가운데까지 밀려와 있다. 가까스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던 형상들이 널브러진 형상들을 일으켜 앉혀주기도 하고, 엉겨드는 것이 귀찮은 모양으로 발로 밀어내기도 하면서 배는 숨 가쁘게 안정을 향해 나아간다. 형상들은 사시나무 떨 듯 새파랗게 질려 서 있는 사공을 향해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툭툭 치기도 한다.
모든 소리들이 허공에 퍼지는 메아리처럼 떠다닌다. 사공이 푹 고꾸라진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 그물 위로 사공의 형상이 널브러진다.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귓가에서 술렁이던 형상들이 사공을 붙잡고 주무르고 토닥인다. 모두가 사공의 죄갚음을 눈앞에 보면서 끌끌 혀를 찬다. 모두가 자신들의 업보에 따른 죄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셈이 되고 만 것이다. 멀리서 흩어져 날아오는 기름진 냄새들이 코끝에 묻어나고, 맛 좋은 사마주 빛 좋은 강화주라 했던가. 이승의 술 향이 쓰린 속을 데우는데, 어동육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로 잘 차려진 상다리가 눈앞으로 떠밀려온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인연의 끈이 이끄는 곳으로 어서 가자.”
“이 상을 받고 보면 이승의 정에 감개무량하고, 더덕더덕 붙은 죄의 찌꺼기들도 씻겨나가면 죄의 무게도 줄어들리라.”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부르는 저 곳으로……쉬지 말고 가자꾸나.”
그러나 길은 멀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가 보이는 곳을 찾아서 가야 한다.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린 사공이 혼자서 동분서주하며 눈꺼풀에 힘을 모아 멀리 보아도 등잔 밑이 어두우면 낭패인데…….
무엇인가 쿵하고 부딪친다.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윗등에 부딪친 것이리라. 바다에 나가 조기를 잡고 새우를 잡아 풍장을 치며 상고선을 불러본 뱃놈들은 안다.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물속에 잠겨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살랑살랑 꼬여가는 귀신에게 이끌려가서 쿵하고 부딪치는 순간, 그것이 생애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변하는 바다의 위세에 주눅이 든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엎친 데 덮친 시련의 늪에 빠져버린 것인가.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끼이익 끼익 찌그렁 찌그덩 같은 자리에서 철썩이는 파도에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묶이고 만 것이다. 겁에 질린 얼굴들, 흔들리는 눈동자들, 꽉 다물고 있는 입들……이들에게 씻김의 순간, 굿마당의 흥겨움,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처럼 입술을 축이고,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줄기 들어가는 물꼬 같은 좁다란 목구멍을 타고 흘러 심장에 이르면 카아 크아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환희의 절정……그것은 사치인가.
무엇 때문인가. 잔치에 가는 손이 빈손이라 그런가. 씻김에 이르러 닦이는 순간까지도 묻어 있을 죄의 찌꺼기가 눅눅하고 칙칙한 것이 더럽게 무거워서인가. 천도의 길, 왕생극락의 길이 그리 순탄하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 함인가. 무녀는 지극한 마음으로 굿 잔치가 열리는 집안의 내력을 하늘에 알리는 경을 일찌감치 읽어 내리고, 초대되는 망자들의 이름을 불러 아뢰었다. 그리고 이미 신의 반열에 들어간 조상들을 낱낱이 불러 초대하였다.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이미 현생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들이다. 육신이 사라졌으니 정신이 깃들 집이 사라진 것이고, 몸이 떠나고 정신마저 떠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살았든 얼굴을 맞대고 살았든 살아 있는 순간들이 죽음을 맞으면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잊혀지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다니, 나를 부르다니. 보이지 않는 나를 부른다는 것, 그것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미움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고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가, 후회가 도드라지게 되는 것이고,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또다시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리움으로 새겨지는 것이다. 미움도 증오도 혐오도 봄비에 눈 녹아 흐르듯 세월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쁜 오늘, 이렇게 영광스러운 오늘, 왜 배는 턱턱 부딪치며 출렁일 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가. 무엇이 뱃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암초, 도사리는 위험, 그것은 나의 죄업……일어서야 한다. 나아가야 한다. 발목을 잡고 걷어채는 암초덩어리, 그 굳건한 시련을 박차고 나아가야 한다. 장벽,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한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 두울 셋……다시, 하나 둘 셋…… 어기 어차 어기 엉~차……손바닥에 침을 퉤, 뱉어서 비벼 바르고 끄응……,
“거어, 말이여. 싸게싸게 정신 좀 차려보드라고오.”
그물 밑으로 고꾸라져 그물에 매달린 돌들을 감고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가 고꾸라지는 사공의 몸에 눌려 헐떡거리던 건달치가 어느새 일어나 사공을 보고는 재촉의 말을 던진다.
“이래봬도 내가 말이여, 지난 생 어디쯤에선가는 뱃놈으로 살었드란 말이여. 뱃놈의 인생이라는 것이 참 비루먹은 두덕지 같은 것이었드래두 말이여, 만선을 이루고 풍장소리 울리면서 고향 있는 곳으로 처자식 찾어 가는 길에는 말이여, 차암…… 거어, 꾸맨 디 또 꾸매고, 한 달이고 석 달이고 한 번도 빨지 못한 거적때기 같은 옷을 걸치고 거렁뱅이 꼬라지로 이가 꿈질꿈질거리며 기어가는 옷 위에 두덕지 토시를 끼고 말이여, 괴기를 잡었지만서두 말이여, 인생 거어……흐흑, 꿀맛이었드라네. 내게도 만선의 기억이 그물타래같이 묶여져 있는디 말이여……시방 이 자리에서 무장 풀어내봐야 쓰겄구먼.”
건달치가 건들거리며 내뱉는 말에 넋의 형상들이 우줄우줄 일어선다. 사공이 뚜벅뚜벅 쟁미 노가 있는 고물 쪽으로 걸어간다. 쟁미 노는 물길의 방향을 잡으며 꼬나 잡는 사공의 손질에 따라 몸을 튼다. 배가 기우뚱하며 뒤틀린다.
“거봐, 물살을 좀 보드라고. 저기 물이 꼴깍꼴깍 들오잖여.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닝게 좀 지달러보드라고.”
“씨펄놈이 제법인디……, 근디 왜 속이 자꾸 뒤틀린다냐? 그라고 잘 알믄 지가 사공 허든가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잣말로 구시렁거려 보지만 어딘지 개운치가 않다.
“나가 긍께 시방 찾아가는 디도 관매도라는디, 가서 보고 돌아댕겨 봐야 기억이 살아날랑가 어쩔랑가는 모리겄지만, 시방 이 상황에 처항께는 생각이라는 것이 나능구만.”
“나도 진도로 가는디……관매도라면은 거어, 팽목서 배를 타고 한참 가면 조도가 나오고, 거그서도 한참을 가야 나오는 디가 아니요?
“아, 뭐 그거야……뭍이 나갔다가 들오는 사람들 질이고오, 우리 겉은 뱃사람들이야 뱃길따러 댕긴께……상조도 하조도가 따로 있다요? 거그가 거근디…….”
“아, 그러제만도, 거그가 거그라도, 머어, 가찰라믄 가찹고 멀라믄 먼디 아니요? 어쩌다가 진도라도 나올라믄 거어, 솔찮이 챙기야잖소? 아따, 갈라믄 질이 또 멀겄소이?”
“벼얼 시답잖은 소리 그만 허시고오, 진도 살었단께 허는 말인디, 거어, 노젓는 소리, 술비소리 메기고 받는 것쯤은 알지라? 고오거 모리고 진도 살었다고는 못 허겄제에?”
단단히 쑤셔 박는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불러 이물 쪽의 긴 노를 붙잡으라고 시늉을 한다.
“자, 한 번 해봅시다.”
어엉차아! 어엉차아
간다 간다 어엉차아 엉~차
나는 간다 어엉차아 엉~차
이물따라 어엉차아 엉~차
이제가면 어엉차아 엉~차
언제 오나 어엉차아 엉~차
“거차암, 기도 안 차는구마안. 아, 굶었소? 멪날 멪칠 밀기울 죽도 못 얻어묵었소? 메기든 못 히도 받기는 해야 심이 솟아서 메길 것 아니요?”
“아, 누가 몰러? 그러지마는 혼자 헐랑께 맥이 풀려 그라지. 조기잡이 닻배 같이 생겼구만, 적어도 노 한 쪽당 네다섯은 붙어야 배도 나가고 소리도 나오지, 꼴랑 하나씩 붙어갖고 놋소린지 좇소린지가 가당키나 헌다요?”
“인자 물도 다 들어왔는디, 저 사공 믿고는 굿잔치 들기도 전에 파허겄잖소?”
“글먼 쓰간디이? 거어, 장정들, 얼렁얼렁 꿈지락거리지들 말고오 싸게싸게들 와서 붙어보드라고오.”
이내 쟁미 노가 움직인다. 안으로 옥은 옥치(키)는 물살을 거스르며 회전을 하거나 정박을 할 때 힘에 부치는 어려움이 있어 도와주는 손이 있어야 한다, 도와주는 손, 벗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치잎이 밖으로 뻗친 벗치(벋치)인 쟁미 노다. 사공은 배의 길이만도 마흔 자 가까이 되고 너비도 스무 자가 넉넉한데 서른 자가 다 되어가는 노를 두 개씩이나 달고 가는 배에 선원도 없이 화장도 없이 오고 간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에 성깔은 있어 보여도 전혀 무섭지 않은, 때때로 왈짜패를 만나 상앗대를 엇지를 때는 금방이라도 큰 싸움이 날 것 같지만 어쩐지 싱거워 보이는 얼굴의 사공에게 건달치와 얼싸절싸 노를 젓는 넋의 형상들은 오늘, 옥치의 벗치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굿마당을 놓치지 않으려 노를 젓는다. 적어도 승룡이네 권속들이 어우러져 놀던 공수 굿머리가 지나고 씻김에 들어서서 ‘에라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고운 노래 부르며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를 올리던 신녀(神女)들이 하늘에 올리는 춤의 신성함처럼 하얀 옷 정갈하게 입고 백동비녀로 검은 머리카락 갊아 얹은 소희네의 굿마당으로 들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서두르고 싶은 것이다. 두레두레 같은 권속도 있고, 초면의 권속들도 있지만 모두가 한결같은 꿈의 환락을 찾아가는 길이라, 노를 맞잡고 부르는 노젓는 소리가 조기잡이 나선 어선들의 술비소리로 이어지는 것은 흥겨움에 취하는 신명(神鳴)이 되는 것이다.
사월이라 어엉차아 엉~차
망중살에 어엉차아 엉~차
내고향에 어엉차아 엉~차
찾아오세 어엉차아 엉~차
일락서산 어엉차아 엉~차
해는지고 어엉차아 엉~차
월출동력 어엉차아 엉~차
달이솟네 어엉차아 엉~차
아가아가 어엉차아 엉~차
울지마라 어엉차아 엉~차
돈을많이 어엉차아 엉~차
벌어와서 어엉차아 엉~차
박하사탕 어엉차아 엉~차
사다주마 어엉차아 엉~차
“그란디 말이여, 배도 못등 다 지내 왔고, 노젓는 소리 우리네들 가슴 다 적셨는디……어찌 뭔가 허전헌디이……. 빈손으로 가야쓰까?”
“긍게 말이여이.”
“맞으러 가자고 부르는 양은 뭐라도 덕이 되고 복이 되고 자운 것일 틴디……, 여엉 껄쩍지근헌디라.”
“복 태워주고 덕 실어주면 되겄제.”
“그리도 면전인디……, 우덜 모십이 이승 사람 눈에 비치든 안 헐 것이지만 감은 있고, 김은 서릴 틴디, 염치가 좀 없겄는디라,”
“그라믄 저마포 들고 오는 선영조상을 불렀싸닝게 없는 손에 조구라도 술비(조기잡이)소리 섞어 몰고 가볼까나?”
저들끼리 공론이 길다.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 속에는 닦이지 않은 무엇이 있어 잘 풀리지 않는 무언가 있기 때문이리라는 짐작이 선 탓이다.
“거어, 맥놓고 앉아 있는 망자님들, 맥추어 올리고 사방에 둘러봐서 소리 나는 뭣이라도 있으면 찾어갖꼬 올라와서 뚜댈겨봅시다. 반주가 있어야 소리가 나오제.”
“사공, 거어 꽹매기나 북 같은 것이 있을랍디여?”
“밑이 칸에 가보시오. 거 가보면 젓집(잡은 조기를 보관하면서 작업하던 공간)도 있고, 투시칸(멍에와 멍에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밥을 짓는 공간)도 있을 것이요. 뒤져보면 어느 구석에선가는 ‘나 여기 있소.’ 허는 것 맹이로 쏙쏙 비집고 나올 것이요.”
어느새 혼령 태운 저승의 구역을 벗어나 이승의 구역으로 돌아드는 바다 가운데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둥 둥 둥~ 두두둥 둥 둥~~’
북소리 울려퍼지고
‘깨개갱 갱갱 깨개갱 갱갱 ~ ~’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리두리 앉아 있던 혼령들도 하나둘씩 일어서고 이내 혼령들 사이사이를 비집고 서는 뱃마루에는 흥겨운 타령이 ‘지화자 좋네 ~ 에허 어허 ~ 지화자 좋네 ~’ 소리가 긁어내는 소리로 올라온다. ‘따당땅 땅땅 ~’ ‘에허 어허 지화자 좋네~’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혼령, 잠방이라도 깨끗하게 차려입은 혼령, 하얗게 늘어진 석 자 수염을 꺼덕거리며 일어서는 도포 입은 혼령들이 이리저리 어울려 서서 손을 흔들어대며 춤사위를 피워 올린다. 아래 칸에 모여 앉아 내외를 하던 여인 혼령들도 모두 갑판 위로 올라와 흔들흔들 춤사위를 만들어낸다. 춤이랄 것이 별것 없는, 그저 손이나 어깨 위로 올리고 구부정한 몸에 다리나 궁둥이에 붙여 올리며 흔들어대는 것이지만, 솔솔 풍겨 올라오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신명임에 틀림없는데,
“아따 근디 말이여, 북도 있고 꽹매기도 있는디 말이여, 장구가 없잉게 여엉 가락이 안 사네에.”
“나 참말로, 이런 판 속이서도 찬밥 더운밥을 가려버릴라고 그러네이.”
“그럴 것 뭣 있당가? 정이나 서운허먼 저기 오라고 불러쌌는 무녀네 서방놈 장구 장단이라도 끌어다 붙이세.”
“그러세, 그리여.”
지화 좋네 에 허 어 허 ~
지화자 좋네 지화자 좋네
에허 어허 ~ 지화자 좋네
어허어~
(깨개갱 깨개갱 깨개갱
깽깨 갱깨깽~ 좋제!
깽깨 갱깨깽~ 좋다!)
갈바람 불었다 갈바람 불어
칠산바다에 갈바람 불었다
지화자 좋네
에 어 허 어~ 지화자 좋네
(갱 깨갱 갱 깨갱 깨깽깽~ 좋다!
깨갱 갱깨갱 깽깨갱~ 좋다!)
바람이 불어서 뱃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 고깃길 열렸다
지화자 좋네 에허 어허 ~
지화자 좋네
(깨 개갱 깨개깽~깨개갱~ 좋다!
깨갱 갱 깨갱~깽 깨갱~ 좋다!)
칠산바다에 들어온 조구야
우리 배 그물로 다 들어오이라
지화자 좋네
에어 허어~ 지화자 좋네
(갱 깨갱 갱 깨갱 개 깨갱~ 좋다!
깨갱 갱깨갱 깽깨갱~ 좋다!
땅당땅땅다다당땅당~~땅)
뱃동무들
예 ~
칠산바다에 조기잡이 가게 그물 실세
예 ~
(깨개개개개갱 ~갱개갱개갱개갱개)
우여우여우여 워이워이워이~~
어이야 술비야
어이야 술비야
어 허 어 ~ 술비야
어 허 어 ~ 술비야
우리 배 그물은 어이야 술비야
삼천~ 발이요 어허어~ 술비야
남의 배 그물은 어이야 술비야
오백 발이로다 어허어~ 술비야
이제 나 가면은 어이야 술비야
언제나 올거나 어허어~ 술비야
망중살 되면은 어이야 술비야
돌아 올란다 어허어~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기야 술비야 어 허 어 ~ 허 ~
어이야 술비야 어이야 술비야
이 그물 실어 어 허 어 ~ 허 ~
돈하고 사면은 어이야 술비야
우리 배 배임자 어 허 어 ~ 허 ~
어깨춤 추고 어이야 술비야
배임자 마누라 어 허 어 ~ 허 ~
궁치춤 춘다 어이야 술비야
어기야 술비야 어 허 어 ~ 허 ~
어이야 술비야 어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여차 술비야 어여차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앵피리도 걸려주소 어야 술비야
장대 빡대도 걸려나 준다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어여차 술비야 어야 술비야
잘들도 노는 풍경이다. 모두가 살아온 고향이 다르고 불려가는 곳도 다르다. 살아온 삶의 풍경도 모두 다른 혼령들이 어찌 이리 잘들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을 만들어내는가. 참으로 놀라울 일이다. 북, 꽹과리, 징, 장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함께 어우러지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한가지로 맺어지는, 어쩌면 동심결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우러짐의 마당은 각자의 것이다. 해남으로 가는 넋, 목포로 가는 넋, 진도로, 조도로 각기 저마다의 태생으로 모여들 가겠지만, 모든 넋들이 하나가 되어 노를 젓고 술비를 끌어올려 방어소리 대냉기는 양은 선영조상으로 제석거리 돌아드는 길목에서의 체면이겠지만…….
이제 배는 또 한 척의 거룻배다. 웬만한 오막살이 못지않게 덩치가 큰 닻배지만 그 배에 실려 후손들을 찾아가는 혼령들에게는 거룻배가 필요하다. 꿈꾸는 다락, 뒷바람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흰 광목을 돛으로 펼쳐들 여유가 없고,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 산발시키는 앞바람이 불어와도 긴 장대 노를 달지 못하는 배라 해도, 초록빛 구름이 이는 쪽잣여울 같은 거센 물살을 가로질러 가는 혼령들에게는 그만의 칸, 그녀만의 방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