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해원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27. 2024

7화. 흑시은장갖은모잽이도

제2부. 떠나온 자리, 꿈꾸는 다락

  이상한 일이다. 어둠이 온 세상을 짙게 누르는 밤, 어디선가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안을 밝히고 있던 불빛도 모두 꺼지고, 소희의 방에도 정적이 내려앉은 지 오래다. 어쩐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그네의 귀에 자꾸만 숨죽여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꿈일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불 홑청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확연한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짓달 그믐이 가까운 밤, 속절없이 긴 밤, 잘못 들은 게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잠에 들어보려 돌아눕는다. 눈을 감는다. 무서운 생각이 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몸에서 땀이 솟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불귀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준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긴다. 오한이 인다. 서리빛 성성한 기운이 열여덟 어린 청상의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베개를 끌어당긴다. 돌아누운 쪽의 귀가 베개에 묻힌다. 귓바퀴가 지나치게 바싹 닿은 것일까? 이이 ~ 잉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느다랗던 소리가 빨라지며 점점 크게 울린다. 눈물이 솟는다. 역류하는 눈물이 뜨겁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후우, 거칠게 숨을 쉬며 이불자락을 홱 걷어 젖힌다. 그리고는 일어나 앉는다. 멀리서 컹컹 짖어대던 개들의 소리가 순간 멎으며 세상은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네의 손이 허리춤으로 다가간다. 아무도 없는, 홀로 앉은 방 안에서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 귀를 끄른다. 손끝이 떨린다. 묵직한 것이 손에 잡힌다. 위안이 된다. 그믐이 가까운 밤, 장도를 뽑는다. 날카로운 칼끝이 빛을 뿜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가늘고 뾰족한 칼의 끝을 노려본다. ‘나를 지키라’ 명을 내린다. 장도를 부여잡은 채 자리에 눕는다. 어깨까지 이불을 덮고는 눈을 감는다. 

  옆으로 누운 몸이 새우처럼 굽었다. 머리털 한 오라기도 삐져나오지 않도록 참빗으로 말끔하게 빗어 땋아 묶은 머리채가 부스스해졌다. 어디선가 조금씩 다가오는 수런거리는 소리에 얼마나 뒤척거렸던가. 뒷방에서 자고 있는 교전비 서운이를 깨워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주인을 대신하여 마음을 졸이며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는 어린 몸뚱이를 부르다니,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염치없는 일이다. 참으로 긴 밤, 아침은 어찌 이리 더디 오는지. 친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늘 아래 살 때에는 넉넉하게 길었던 밤, 오순도순 정겹던 밤, 화로에서 익어가던 따스한 밤들이 오늘에 이르러 이토록 구렁이 칭칭 감은 음습하게 질긴 밤일 줄은 정녕코 생각지 못했었더라. 누운 자리를 돌아 누워보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코허리를 타고 넘어 베갯속 깊이 스민다, 눈 밑이 따갑게 끈적이고, 찍찍하던 코는 꽉 막혀 숨조차 쉬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저러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던가. 부스스 삐져나온 머리카락들이 말라붙는다.


  “누구냐?”

  검은 그림자들이 놀라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웬 놈들이냐?”

  노기 띤 음성으로 호령을 하건만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검은 그림자들이 달려든다. 

  손에 들린 이불이 포획의 그물처럼 펼쳐지는 순간 소희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밀친다. 병풍이 ‘펑’ 소리를 낸다. 

  “서두르시오.”

  마루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사방을 훑으며 급박하게 말한다.

  둔중한 소리가 소요를 일으키는 사이 소희가 장도를 뽑아 든다.

  짧은 순간 쇳소리가 번뜩인다. 어두운 방 안에 칼날이 쏟아내는 분노의 인(燐)이 번개처럼 스친다. 

  “이놈들, 네놈들이 누구관대 이리 무엄하게 구느냐?”

  “어서 서두르라니까.”

  작은 그림자가 이빨을 사리문 소리로 뇌까린다. 

  “이놈들, 한 발자국만 다가서 보거라. 이 칼이 용서치 않으리라. 이 한 몸 죽어도 아까울 것 없는 구차한 목숨이니라.”

  소희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사주단자만 받았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고,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않았느니라. 내 오늘 이 일을 당하여 손끝 하나라도 더럽힌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니, 살아 있은들 무엇하겠느냐? 내 차라리 깨끗하게 죽으리라.”

  검은 그림자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작은 그림자가 고개를 밖으로 돌리며 나가라고 신호를 한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외치는 소리가 밤의 허공을 뚫는다. 

  투두둑 후두둑 이리저리 뛰는 발자국 소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가는데, 사방에 불이 켜지고, 노복들이 달려온다. 밖을 향해 나가던 작은 그림자가 뒤를 살짝 돌아본다. 장도 끝을 가슴에 겨누고 있던 소희를 짧게 돌아보고는 황급히 밖을 향해 달아난다. 훌쩍 담장을 뛰어넘는 그림자가 사라지고, 별당의 마당은 노복들의 손에 들린 횃불로 대낮처럼 밝아져 있다. 

  “……쯧쯧, ……무고한 게냐?”

  묻는 시어머니 최 씨 부인의 얼굴빛이 시리게 푸르다. 사방을 순식간에 둘러보며 상황을 짐작해 가는 부인의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오른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입 언저리가 오종종하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바싹 타들어가게 조여 온다. 소희의 어깨가 아래로 처진다. 고개가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수그려진다. 수치스러움에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누른다. 명치끝에 힘을 주고 입술을 꽉 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은장도를 응시하던 최 씨 부인은 장도를 수습하여 소희 앞에 밀어 놓는다.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더니 쉬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선다. 안채 쪽으로 걸어간다. 중문 앞 앙상한 백일홍 나무 아래 한동안 서 있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채로 들어간다. 

  시어머니 최 씨가 일어서 나간 뒤에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소희 곁으로 다가온 서운이가 은장도를 경대 서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아씨마님, 이리 좀 누우시요.”

  이불을 매만져 펴놓고는 소희에게 말한다.

  “네가 깨어 있었더냐?”

  “잠결에 얼핏 아씨마님의 다급한 소리를 들은 듯해서 깼구만요.”

  “그랬구나. …… 너를 부를 수 없었구나.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뛰어다니느라 고달픈 너의 숨소리를 매일 밤 들으면서…… 때때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눕는 너의 기척을 들으면서 데려오지 말걸 무단시리 데려와서는…… 하는 생각들을 했었더니라.”

  “아니구만요. 그래도 제가 아씨마님 곁에 있음서 아씨마님을 지켜드릴 수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고 다행이다 싶구만요.”

  “그래. 고맙구나. 친정에 있을 때는 너의 재잘대는 소리가 꽃무릇 붉게 피어나는 자리에 내려앉아 땅을 후비는 참새 떼의 소리 같고, 무씨(무 씨앗)라도 뿌려 놓으면 어찌 알고 우르르 몰려와 하루 내내 땅을 후벼 파던 새떼들의 분주한 방아질 같던 너의 방정이, 이제는 묵직하게 철이 들었구나. ……손톱 밑이 까칫거리는 것이 아프구나.”

 “아씨마님…….”

 고개를 수그리며 눈물을 찍어내는 서운이의 모양이 동터오는 새벽녘에 서럽게 젖는다. 


  망설임의 손끝이 머뭇거린다. 정신을 수습해야 한다. 심심한 낯빛으로 걸어서 가야 한다. 큰방으로 들어가 아침 문안을 사뢰어야 한다. 간밤의 불미스러웠던 일을 침묵으로써 아뢰어야 한다. 참담한 심정을 눈물 없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내쉬는 숨소리마저도 죄스러운 까닭에 눌러야 한다. 소금물에 메주를 띄우고 대나무 살을 장독의 전두리 아래로 끼워 둔 것처럼 지그시 눌러야 한다. 붉은 고추 서너 개가 숯 덩어리 사이에서 동동 떠다니는 동안의 적막한 숨소리, 숙성의 숨을 내쉬어야 하는 것이다. 혼례를 보름도 남겨두지 않은 규수의 몸으로 신랑의 신위(神位)를 받든 몸이 되고 말았으니, 그 죄를 어찌 다 씻을 수 있단 말인가. 살아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되는 나날이다. 

  이미 날은 밝았다. 간밤의 혼란이 무덤덤할 수 없는 바깥의 공기가 여과 없이 들려온다.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노복들의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소희의 가슴은 우둔거리고 어깨는 결려온다. 깊은 한숨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눌러 참는다. 

  앉은걸음으로 경대를 잡아 끌어온다. 손에서 자꾸 놓여나는 것을 힘을 주어 잡아끈다. 붉은 주칠을 먹은 경대가 화사하다. 두 개의 판을 하나로 이은 뚜껑의 가운데는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채로 붙박여 있다. 양 끝은 백동이 꽃으로 피어 앉아 있다. 앞뒤 네 곳의 귀퉁이를 백동이 야무지게 감싸고 있어 두 마리의 나비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붙박인 나비가 날개를 접으면 천판의 안쪽에 달린 거울이 세워진다. 비스듬히 세워진 거울에 비친 소희의 낯빛은 창백하다. 산머루빛 눈동자는 밤사이 움푹 들어가 발갛게 물들어 있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이 없어 보인다. 무엇에 부딪쳤을까. 박쥐 문양의 코끝에 걸린 둥근 고리가 달랑거린다. 

  소희의 손이 여닫이문을 연다. 위 칸의 서랍 손잡이를 당긴다. 턱, 무엇인가 걸리며 삐그덕거린다. 까만 빛이 두 개로 나누어진 곳에는 빗살 촘촘한 참빗과 반달 모양을 한 얼레빗이 놓여 있을 것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가르마를 반듯하게 가를 빗치개가 지난밤 뽑아 놓은 백동 비녀와 함께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녀를 가로질러 꽂아두는 곳에는 매화잠과 원앙잠이 기다랗게 꽂혀 있을 것이다. 무엇에 가로막혔을까. 그 아래 칸에는 갖가지 향기를 품은 화장용 그릇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오일장, 칠일장을 돌 듯 때를 어기지 않고 찾아드는 방물장수 초란이나 물목 좋기로 소문난 등짐장수들로부터 하나씩 둘씩 사 모은 어머니 전주이씨의 소소한 즐거움이 깃든 것들이다. 화사하게 들뜬 날들 그 웃음소리들은 이미 빛을 잃었지만, 아직은 푸르고 싱싱한 물 돋는 여인의 향취를 담은 모양으로 들앉아 있을 것이다.

 굴참나무나 너도밤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가루로 빻아 기름에 갠 미묵(眉墨)은 반달처럼 진하고 둥근 눈썹을 만들어주고, 초승달처럼 새침하게 가는 눈썹도 만들어 줄 것이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 속에서 동그랗게 빛나는 산머루빛 눈동자의 웃음을 넘치지 않게 담아내줄 것이다. 그리고 붉은 팥과 유록빛 녹두를 빻아 가루로 낸 것을 고운 채에 걸러 만든 비누, 조두(澡豆)는 여자로 태어나는 소희의 살결을 말갛게 씻어내줄 것이다. 매달 초여드레쯤이면 살이 올라 통통해지다가 보름쯤이면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이 꽉 차오른 둥근달이 스무날쯤이면 조금씩 살을 발라내어 그믐쯤에 닿으면 모두 게워내는 것처럼 몸 안에 가득 차오른 정령의 기운을 붉은 피로 쏟아내느라 눈 밑이 가뭇가뭇해지고, 칙칙해진 살결을 다시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소희의 주칠(朱漆) 먹은 백동 장식의 경대 두 번째 서랍에는 미안수(美顔水)를 담은 그릇도 놓여 있을 것이다. 단지에 달걀 세 개를 넣고 달걀의 표면이 잠기도록 술을 부어 한지로 밀봉해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고 초란이는 말했었다. 서운이가 놋대야에 담아 온 미지근한 물로 정성껏 씻은 낯이어도 민틋하게 솟은 광대뼈와 콧잔등 사이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살결에 톡톡 스며들어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러운 향이 일게 해 줄 것이다. 노른자를 덜어내고 난 후에도 어미닭의 모성(母性)이 껍데기 안쪽에 남아 걸쭉하게 괴어 있는 것을 긁어내어 농축시킨 것이라 했다. 지난날 오라빗댁들과 둘러앉아 향을 맡아보고 발라보며 까르르 웃기도 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돋아오도록 들앉아 있을 것이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들을 빻아 채에 걸러 만든 백분에 백합의 수술가루를 섞어 만든 색분이며, 홍화 꽃잎을 말려서 태웠다가 물에 재워 베수건으로 짠 후 즙을 걸러내 굳힌 연지가 들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턱, 턱, 거리는 것에 서랍이 걸려 나오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낯선, 그 무엇에 두려움이 인다. 소희는 손가락을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는 한쪽 끝이 위로 쳐들려 가로막고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  


  ‘아,……네가 어찌 이곳에…….’

  생각이 떠밀려온다.

  지난 늦봄 단옷날 어머니 이 씨 부인은 며느리들과 고명딸 소희에게 특별한 선물을 내렸다. 사대부가의 여인이라면 향낭에 노리개를 매단 은장도 한 벌쯤 누구나 지녔을 것인데도, 어머니 이 씨 부인은 며느리들과 고명딸 소희에게 새롭게 제작한 삼작노리개와 향낭 그리고 은장도를 반드시 몸에 지니라는 말씀과 함께 선물로 내렸다. 단옷날 세시풍속에 특별히 있는 항목은 아니었으나 창포를 삶아 우려낸 물에 머리를 감고 다과를 먹는 자리에서 각기 맞춤한 것들을 고르게 했다. 친정에서부터 몸에 지녀왔던 것들을 견주어 가며 옛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방 안은 그리움에 눈물짓는 소리와 고운 빛깔의 은은한 자태를 보는 눈동자들이 소담하게 피워내는 웃음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창호지 밖에서 일렁이는 햇살까지 들여와 훈훈했던 기억이 저 끄트머리 어디쯤에서 밀려온다. 


  “어머니……, 오늘처럼 참담한 아침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곧 섣달이 다가서는 날 아침에 단옷날 하얀 이 고르게 보이며 함박웃음을 짓던 어머니를 부른다. 꿈속이 아닌들 대답이 있을 리 없고, 꿈이어도 깨고 나면 허무하게 스러져갈 모습이 대답해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명치끝 아리게 부르는 것은 그 태(胎) 안에서 열 달을 머물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인연이 기억 속 어딘가에 떨군 탯줄, 그 짧은 끈의 당김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와 나 사이를 묶은 끈이라기엔 배꼽 끝에 달려 있다가 도르르 말려서 꼬들꼬들해진 채로 툭 떨어진, 마치 바짝 마른 수박꼭지처럼 생긴 것이 배배 꼬아진 그 끈이 오늘 이 아침에 불러지는 것이다. 

  시어머니 최 씨 부인이 소희 앞으로 은근히 밀어놓고 갔던 장도를 서운이가 치운다는 것이 얼른 손에 닿는 대로 경대 서랍에 넣었던 모양인데, 

  턱, 턱거리다가 끌려 나온 것이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장도다. 

  멀리 전주의 용머리고개 근처에 산다는 대장장이 털보에게서 특별히 주문해 만들어 온 것이다. 평상시에는 삽이나 괭이, 호미, 낫 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밥벌이를 하다가도 사대부가나 부잣집에서 혼사가 있거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어 따로이 주문을 해오면 여러 날을 공들여 만들어낸다는 솜씨 좋은 장인이라고 이름이 나 있었다. 전주의 비경 완산칠봉 아래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털보가 장도를 만들 때 뿜어내는 숨소리는 불에 달구어진 쇠를 두드리는 망치소리에 섞여 들어 거대한 몸뚱어리를 틀고 앉아 잠들어 있는 용을 깨운다는 말들이 소문으로 퍼져, 호남 지방의 사람들은 거리를 재지 않고 와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열망, 

  사람들의 열망은 끝이 없다. 수백 대를 거쳐 와서 수백 대를 거쳐 가도 사람들의 열망은 식지 않는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쇠뭉치도 털보의 손에 이끌려 지글지글 타는 용광로에 들어가 끓어 넘치는 고통을 받고, 차가운 물속에 곤두박질치는 수모를 겪다가 곤지산 전부를 꽝 꽝 울리는 망치를 호되게 맞고 나면 한 편은 부드러워지고 한 편은 단단해진다. 그래서 괭이도 되고 낫도 되어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어 사람을 살리고 소도 살리고 돼지도 살린다. 

  쇠뭉치, 그것에게 무슨 열망이 있고, 무슨 바람이 있었으랴. 태초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사람들에게 붙잡히어 사람들이 피워내는 갖가지 열망을 채워주는 덩어리가 되었을 뿐이다. 어떤 형체도 갖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저 흙속에 섞여 들어 있었을 뿐이고, 강이나 냇가의 바닥에 박혀 있는 돌 틈에서 물살을 헤치며 춤을 추는 연어 떼들과 붕어 떼들, 송사리 떼들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형체 없는 부유물일 뿐이었다. 

  그런 것들이 가늘고 촘촘한 체에 흙조차 돌부스러기조차 한데 엉겨 이리저리 치이다가 불 속에도 들어가고, 물속에도 들어가고, 망치 아래로도 들어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새로운 그 무엇으로 태어난 것이다. 삽으로도 괭이로도 태어나고, 갖가지 장식물로 태어나 장 · 농 · 경대의 나비도 되고 박쥐도 되어 죽지 않는 생애를 거듭한다. 경첩 · 문고리 · 돌쩌귀로 태어나 사시사철 여닫는 문을 지탱해 주며 수수한 생애를 저항 없이 살고, 곳간의 자물쇠통으로 태어나 일생을 여닫히며 굳건하게 지키는 삶을 투쟁 없이 살아간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는 삶의 자락이 있다. 어떤 놈들은 긴 칼로 태어나고 짧은 칼로 태어나 베고 자르고, 튕겨 오르는 핏살을 허공에 뿌리는 삶을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멀리서도 방아쇠를 당기면 조그맣고 단단한 둥근 알을 튕겨내어 마주 선 사람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가슴을 꿰뚫는 삶을 무덤덤하게 살아내야 한다. 이런 놈들의 삶처럼 살지 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쳐들어오는 적군들의 말발굽소리에 치를 떨며 달려 나가 온몸으로 막아내는 결사항전의 용맹이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를 오르내리며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해 주겠지만, 그래도 몇 백 년을 두고 몇 천 년을 두어도 가시지 않는 피의 비린내를, 그 역겨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쇠, 놈의 운명인가, 숙명인가. 수천만 번의 비가 내리고, 낙숫물이 돌을 뚫어도 씻겨나가기는커녕 그 더께만 더해가는 죄의 울림은 아, 쇠의 열망이었구나. 

  은을 입은 장도의 끝이 날카롭다. 어머니의 향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잽이장도의 팔각이 손안에 뿌듯이 잡혀온다. 

  결행을 생각하는 시각. 

  만약 모잽이장도 팔각 끝을 움푹 파고들어 가 송진에 발목 잡힌 칼날의 끝이 소희의 몸을 파고들어 깊숙한 곳에 닿으면 열망은, 아주 오래된 열망의 폐습(弊習)은 한 여인의 죽음을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삶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붉은빛으로 곧게 선 창살들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에 서서 의연한 기상으로 추상같은 가르침을 내릴 것이다.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모, 그 정을 가눌 길 없어 의연히 자신의 몸을 가르며 가노라 먹을 갈고 붓을 적셔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순간들의 떨림은, 순백의 종이에 맺히는 눈물의 통한, 그 비통함은 오롯이 영광을 꿈꾸는 자들의 것이지 폐습에 살해당하는 여인의 것이 아니다. 


  “헤헤, 큰마님, 거, 애기씨께서 고르신 장도는 말입죠, 먹감나무로 만들었습니다요.”

  “으음? 먹감나무로 만들었다고?”

  “예. 그렇습니다요. 헤헤, 거 먹감나무라는 것이 본래, 에, 거어 고욤나무에다가 감나무를 접목 시켜갖고 키워낸 것인디요, 차암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뭅니다요. 이 나무를 그냥 흙속에 파악 묻어놓고는 한 삼사십 년 너끈히 감을, 거 시커먼 감 말인디요, 그놈을 따서는 그냥 먹기도 하고, 곶감을 깎기도 허는디요, 내가 언지 너를 알고 지냈드냐 싶게 둥치를 싸악 비어냅니다요. 그리갖고는 한 석 달이나 되게 물에다 담궈 놓습니다요. 왜냐면 나무 안에 찐득하게 들어 있는 찐을 빼야 되거등요.”

  넓적한 낯바닥에 광대뼈가 불쑥 솟아올라 펑퍼짐한 얼굴에 제법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웃을 때마다 짙은 눈썹이 갈매기처럼 웃고 덥수룩한 털에 가린 두툼한 입술이 사람 좋은 모습으로 웃는데,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을 때는 입 모양도 하회탈처럼 벙그러지는 것이 더없이 선해 보인다. 그런 사람이 손짓을 해가며 허풍을 떠는 양으로 말을 벌인다. 

  “그리여. 그런디, 그렇게 나무를 오랫동안 물에 담궈 놓으면 나무가 썩지 않았겠는가?”

  “아, 예. 근디 그것이 차암 묘헌 것이요, 껍질은 썩기도 허는디 안에 있는 흑시는 안 썩는구만요. 긍께 거어 나무 자체가 고욤나무허고 감나무 놈이 훌레를 붙어갖고 먹감나무가 된 것인디, 본래 고욤은 나이를 먹어감스로 줄기가 흑갈색으로 변해가는디, 긍게 거 머시냐 거시기, 거어, 거북이 등짝맹이로 쩍쩍 갈라지능마요. 근디 그것이 붙어서 하나가 되갖고는 흑시(黑柹)를 배는디, 말허자먼 흑시가 고욤허고 감나무의 자식놈인디요, 물에다가 그냥 석 달 열흘을 담과 놔도 이놈이 안 썩어요. 사람 같으먼 묵지근헌 것이 고집도 징허게 시고, 의지가 대단헌 놈인 것이지요. 그런 놈이라면 지가 무엇을 허든 작정을 허고 나스먼  못헐 것이 없겄고, 잘 가르쳐노먼 충신이고 효자고 안되겄능가요? 참말로 진국입지요.

  “으음, 그렇구먼. 그런데 장도가 오래도록 지녀도 틀어지거나 날이 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겠는가? 감나무가 그리 단단할까?”

  “아믄요. 그렇고말고요. 먹감나무라고 해서 모든 나무에 흑시가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요. 사람도 자식을 풍풍 낳는 사람도 있지만 평생을 가도 못 낳는 사람이 있능거맹이구마요. 흑시가 들어 있다는 것은 나무통 안에 나무가 하나 더 들어 있다는 말이거등요. 어떤 놈은 파도가 굼실거리는 바다를 힘차게 달리는 말의 모양으로 들어가 있고, 어떤 놈은 기린 한 마리가 높이 솟구쳐 서 있는 모양으로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요. 개중에 어떤 놈들은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양 옆으로 앉은 협시보살들이 기거하는 대웅전 앞의 서까래를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틀어잡고 놔주지 않는 기둥에 새겨진 세월이 그대로 찍혀 있구만요. 그런 놈들을 활비비로 뚫어봐가지고 흑시가 까뭏게 들어백힌 놈들로만 일을 하능구만요. 긍께로 나무의 근본은 물을 것도 없는디요, 이놈을 물에서 건져갖고는 말리는구만요. 말린다고 햇볕을 쬐믄 절대로 안되고요, 다 마를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늘에서 말리는구마요. 날이 따숩고 바람이 잘 들먼 쉬이 마르겄지만, 어쩠든지, 반닫이를 만들건 삼층장을 만들건, 요렇게 작으면서도 고급스런 장도를 만들던지간에 시나브로 날이 가고 달이 차야 마릉께, 시간이나 정성이 말로는 다 헐 수 없는 물건이구마요.”

  힘주어 말을 할 때면 콧잔등을 찡긋거리기도 하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코밑을 문질러 가면서 쓰읍 크읍 콧물 들이키는 소리를 내곤 하던 털보의 입술 언저리에 삐져나온 침이 한데 엉겨 보글거린다. 게접스러운 데가 있어 보인다. 

  “그래. 고생이 많았네. 오랜 시간 정성들여 만드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네. 내 서운치 않게 답례를 해줌세. 서운이네, 식혜 한 사발 더 담아주게.”

  “뭐, 그리 생각해 주신다니, 헤헤, 감사하구만이요. 고생이랄 것은 없는디, 그리도 뉘 댁 일리라고 소홀히 했겠습니까요. 할 수 있는 대로는 다 해봤구만요.”

  서운이네가 가득 담아주는 식혜 사발을 손으로 매만지며 헤헤 벙그러지는 웃음을 웃는다. 

  “작은애기씨 장도에는 ‘흑시은장갖은모잽이도’ 라는 이름을 붙이면 될 것 같습니다요. 거기다가 은으로 젓가락을 만들어 붙이고 나비까지 붙잡아 얹어놨으니, ‘흑시은장갖은첨자도’라는 이름까지도 붙여볼 수 있겠구만요.”

  키는 별반 크지 않으나 어깨가 떡 벌어져 기운깨나 쓰게 생긴 털보가 뒤로 질끈 묶어 놓은 머리뭉치를 매만진다. 그리고는 두꺼비등짝 같은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마로 가져가더니  쓸어내린다. 그 손가락 사이로 비쳐드는 여린 햇살에 하늘거리는 털 오라기들이 잡혔다 풀려나온다. 쑥스러운가 보다.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눈으로 방바닥을 훑으며 헤헤거린다. 어, 저기 지네가, 말을 뱉으려다 참아내고는 식혜를 마신다. 어딘지 가벼운듯하면서도 자기 일에 대해서만큼은 눈을 빛낼 줄 아는 장인다운 아집 같은 것이 있어 보인다.    

 

 그것이 엊그제 일이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아, 그곳으로 가고 싶어라. 내 어머니의 인정이 대청마루에 따사로이 퍼지던 그곳으로 가고 싶어라.’

  손에서 맥이 풀린다. 어쩔 수 없는 한숨이 새어 나오며 어깨가 내려앉고 윗배가 아랫배를 누른다.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고인다.

  ‘어찌 해야 하는가. 어머님은 진정 결행을 소망하시는가.’

  ‘지난 단옷날 경건한 마음속에서 빛나게 아름다웠던 장도의 기원이 이런 것이었던가.’

  ‘부질없다.’

  ‘이토록 부질없는 것을 그토록…….’

  ‘내게 무슨 잘못이 있었더란 말인가.’     


  그러나 끝내 장도의 끝은 소희의 가슴을 찌르지 않는다. 늦가을 서리 내리는 마당에 국화만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을씨년스럽던 계절을 어찌 보냈었던가. 꿈만 같던 그 아득한 시간들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서는 시어머니 최 씨 부인의 차가운 눈초리는 언제나 묻는 낯빛이었다.

  “네 저고리 속 깃에는 아녀자의 도리가 없더냐?” 

  “…….”

  “너희 친정에서는 고명딸이라고 부녀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더란 말이냐?” 

  “…….”

  “고리짝 가득 싣고 온 저 책들은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더냐?” 

  “…….”

  소리도 없이 다가서는 그 물음이 바뀌어가는 계절의 바람만큼이나 시리게 와서 박히곤 했었다. 삭전(朔奠)과 망참(望參)의 예라. 매월 초하룻날 아침이면 제사를 지내고는 곡(哭)을 올리고, 매월 보름날이면 사당 앞에 분향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 없으나 죽을 수조차 없는 지극 통절한 마음을 담아 곡(哭)을 올린다. 가슴속 아린 슬픔에 소희의 하얀 손이 때때로 시리고 욱신거리며 도르르 말렸다 도르르 펴지는 불편함이 마음에 걸려도 받아줄 이 없는 적막한 시간들, 그녀의 방 이부자리는 떠나간 자리였다.      


  떠나간 자리, 

  언약은 어버이들의 깊은 우정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으나 이별은 도영과 소희 두 사람의 것이 되고 말았다. 섣달로 기우는 동짓달의 깊은 밤, 담을 넘은 자들의 실패한 거사는 침묵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어 오던 아주 오래된 열망의 폐습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 주었다. 보이지 않는 가면, 그 가면 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던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언어들과 행위들, 그것들 앞에 홀로 남겨진 여자는 이미 한 마리의 슬픈 울음을 우는 산짐승, 나약한 한 마리 산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사냥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고요하다. 숨을 죽이고 발끝 소리를 눌러가며 조여 오는 숨 막히는 포획의 욕구들, 그것을 산짐승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몸뚱이를 덮쳐 가두고는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뜯을 사냥꾼들이 매복하고 있는 숲은 태곳적 원시림의 그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하다. 멀리서 울려오던 늑대의 소리가 언제쯤인지 모르게 멎어 있고,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던 새들의 소리도 순간 멎는다. 진공의 상태, 일시 정지한 시간, 샘물에 비친 산짐승은 노루일까, 고라니일까. 자신이 쓰고 있는 허물, 그것의 껍데기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오고, 막 떨어져 물 가운데를 서성이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며 “넌 누구니?” 물을 때, 사람, 사냥꾼의 번뜩이는 눈빛이 노리는 급박한 시각의 조임을 알 리 없는 산짐승은 쥐어짜는 소리를 듣는다. ‘끄으애액 끄으애액’ 높다란 참나무 늙은 가지 어디쯤에서 숨죽이고 있던 청설모가 진공의 상태, 일시 정지한 시간의 벽을 뜯는다.

  자각, 

  허무한 자각. 

  까만 동공을 들어 청설모를 올려다보려는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촉수의 떨림을 느낀다. 유쾌하게 흐르던 물살이 영하의 칼바람을 맞고 밤새 어지럽게 휘날리던 눈발에 얽히어 속수무책으로 결빙(結氷) 되고 마는 혹한(酷寒)의 살(煞)처럼 굳는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겁박의 시련, 보이지 않는 가면 속에서 쉴 새 없이 만들어지는 갖가지 음흉한 흉계와 모략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열여덟 청상은 산머루빛 눈물을 떨구며 경대를 벽으로 밀쳐버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