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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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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8화. 오늘같이 좋은 날에

제2부. 떠나온 자리, 꿈꾸는 다락

  모가지 뻣뻣하게 세우며 강짜를 부리던 팔월의 땡볕도 이제는 커다란 나무들의 그루터기에서 내려와 질펀하게 물 흐르는 논두렁으로 내려앉는다. 담배 한참이라도 빨아재끼고 나서는 바짓가랑이를 돌돌 말아 올리고 논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갈 모양새다. 모가지 아직 덜 팬 벼들이 수런거리는 논바닥의 미끄러운 흙을 밟고 서면 발가락 사이로 스멀스멀 파고들어 오는 흙의 차가운 느낌이 뜨뜻미지근한 물의 기운과 겉돌며 한여름 땡볕을 놀려줄 것이다. 벼 포기 사이사이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스르르 훑고 지나갈 땡볕이지만 한 줌씩 뭉쳐 서 있는 푸른 그늘에 숨어 있던 우렁이들이 우당퉁탕 굴러와 발목을 잡으면 마지못한 얼굴을 하고는 한동안 눌러앉아 있을 것이다. 

  마당 구석진 곳에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알들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영글어 가는데, 작년 가을 추수한 골 깊은 대추알보다 더 붉게 쭈그러진 얼굴의 사람들 중 더러는 일어나 집으로 가고, 더러는 궁싯거리며 석구네 마당으로 들어선다. 


  “어이, 춘삼이. 왜 가는가?”

  “으이이, 히이. 소 여물도 좀 줘야 겄고, ……개놈들 밥도 줘야는디, 좀 누웠고도 싶구만.”

  끄윽끄윽 올라오는 술기운에 더운 숨을 내쉬며 건드렁타령조로 걷던 춘삼이 게슴츠레해진 눈을 끄먹거리며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으이, 그렁께. 사람도 먹어야 살디끼 짐승도 먹어야 산께.”

  “그란디, 늦었네에. 술도 많고……흐흐…… 먹잘 것들이 많응께, 거어, 굿도 잔치는 잔친디 말이여……흐응…… 늦었네 그랴.”

  간다는 사람이 가지는 않고 엄벙하게 서서 미련이 남는 듯한 얼굴로 쩝쩝대며 비비댄다. 

  “금메. 논꼬랑에서 뭣잠 험성 들응께는 노래도 불르고 춤도 추능 맹이더만.”

  “한판 걸판지게 놀긴 놀아뿌렀는디 말이여, 으음, 승룡이가 왔던디, 아직 안 갔응께 또 놀랑가만. 어찠든 내 갔다 올랑께 놀고 있더라고이.”

  “그리여. 꼭 오드라고이. 승룡이놈 가기 전에응 와야잖겄는가.”


  ‘이별만은 어렵더라아 이별만은 슬프더라아 더구나 정든 사람끼리이 으으으음~~’


   춘삼이의 굽은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군소리를 부르며 담 모퉁이로 돌아서 간다.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마당으로 소희가 걸어 나온다. 두리둥실 떠 있는 구름에 몸을 싣고 날며 고개를 틀어 포효하던 푸른 용도 소희 앞에서는 한풀 꺾는 모습을 보인다.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퉁방울 같은 눈을 번뜩이며 망자를 싣고 저승으로 가는 작은 배에 현란한 무늬로 솟아오른 용은 갖가지 꽃으로 치장했다. 소희의 정갈한 손에서 하나씩 피어나는 꽃들은 피안의 언덕을 향해 가는 망자들의 넋을 태우고 강을 건널 것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용선을 상 앞에 놓고, 하얀 지전 다발을 손에 든 소희가 잘 차려진 음식 한 상을 받고 흐뭇해하던 혼령들 앞에 절을 한다. 

  천문이와 천수, 종수의 악기들이 소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를 낸다. 말갛게 갠 얼굴이다. 며칠을 두고 내리던 비가 갠 어느 봄날 오후 저 멀리에서 아련하게 번져오는 도화(桃花)처럼 붉은 꽃물이 두 볼을 물들였지만 빗물에 씻긴 꽃들의 잎사귀가 어느새 그네의 얼굴을 스쳐간 것일까. 애잔하게 청초한 모습이다. 

  천문이의 가슴이 쿵 소리가 나게 내려앉는다. 굿마당에 올 때까지도 별다른 내색이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무슨 생각에 붙잡혀 저렇게 허둥대는 것일까 불안감이 스친다. 말이 없는 사람이다. 소리 내어 웃는 것도 무척이나 삼가는 사람이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어느 순간에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내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때때로 속으로는 손이 참 많이 가는 사람이다 생각을 하면서도 그 손이 다른 이의 손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천문이가 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선물처럼 안겨진 사람, 꿈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사람, 예쁜 사람. 천문이의 숨소리가 되어버린 사람, 촛불을 끄던 첫날밤에도 천문이는 동그랗게 오므려진 입술 사이로 바람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 옅은 바람이 좁은 방 초라한 지붕의 섬집에서 소희를 앗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가슴 한켠에 도사리고 앉아 떠나지 않는 생각, 그것은 순간순간 피어오르는 안타까움이었다. 가슴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앉아 사라지지 않는 생각, 아무리 떨쳐내려 도리질을 쳐도 떨어지지 않는 생각, 그것은 이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천문이의 의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납땜 자국이 되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국, 선명한 빛깔, 그것은 벌겋게 피어오르는 덕봉아재의 성냥간 화덕 안으로 밀고 들어가 지글지글 타오르며 녹아내리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을 흔적, 고질이 되어버린 생각이었다. 


  아슬아슬한 목마름, 붉은 꽃신 한쪽은 어디로 간 것일까.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토록 맑던 하늘, 눈이 시리게 푸르던 하늘, 바닷가 외진 곳에서 주운 붉은 꽃신의 한쪽은 누구의 것일까. 조그마한 신발이다. 이런 신발을 신는 여인이라면 발은 조그맣고 볼이 조붓하여 수눅을 눌러 신는 외씨버선을 신었을 것이다. 자태가 아름다울 것이다. 이상하다. 아리따운 여인, 지상의 사람이 아닐 것 같은, 흡사 천상의 여인이 아닐까. 그런데 그 여인은 어디로 가고, 사방은 왜 이렇게 고요하단 말인가. 숨이 막힌다. 바람은 한없이 잔잔하고 밀려드는 물도 저희들끼리 왔다가 저희들끼리 스르르 빠져나간다. 하얗게 퍼지는 포말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자갈돌 사이로 스며들어 축축하게 적셔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가는 오후. 

  어머니는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는가. 다들 어디로 가고 나 홀로 이곳에 떨어져 주인도 없는 신발을 들고 헤맨단 말인가.

  “누구 없소? …… 누구 없소?”

  목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의 끝이 갈라지면서 까마귀 깍깍대는 것처럼 들려와 으스스 소름이 돋는다. 차가운 물이 머리카락 뿌리에서부터 솟아나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더니 이내 손바닥을 흥건하게 적신다.

  “삼촌, 삼촌, 어디 갔소? 장난질 하지 말고 어여 나오시오.”

  아무 대답이 없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인가.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바다의 끝이 하늘의 끝을 물고, 둥둥 떠 있는 작은 섬의 등을 떠밀어 보내는 오후, 태곳적 신비를 감춘 허공 어디쯤에선가 거문고줄 튕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닻배처럼 떠밀려오는 섬이 주둥이를 묶어놓은 하얀 주머니의 허리를 찌른다. 

 툭, 터진다. 와르르 주루룩 쏟아지는 물이 섬의 바닥으로 퍼진다. 하얀 주머니는 밀려와서는 쓸려나가며 흩어지는 하얀 포말 사이로 사라져 가고 섬의 바닥 언저리에는 붉은 기운이 퍼진다. 붉은빛을 머금은 푸른 바다가 붉은 기운으로 솟구친다. 한 떼의 물이 솟구쳐 한 장의 꽃잎을 띄우고, 밀려온 한 떼의 물이 솟구치며 한 장의 꽃잎을 띄운다. 그렇게 밀려와서 솟구쳐 띄운 꽃잎들이 둥둥 떠밀려온다.

  “아, 연꽃이?”

  어머니 성심이가 천문이를 위한 맞이굿을 하던 날 물에 띄우던 연꽃등의 모습이다. 소담하게 피어난 연꽃에 촛불을 띄우던 소원등과 같은 연꽃이 둥실둥실 물결에 실려 천문이에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연꽃에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무엇인가 번쩍 하며 다가들어 가로채가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벌렁 자빠져 있는 천문이의 눈에 하얀빛의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보인다.  

  새는 양 날개를 쫙 펴고는 하늘 끝에서 쏜살같이 내려온다. 날아오는 새의 깃털이 바람에 날린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날개 뒤쪽으로 한껏 뻗어 붙이고 날아오던 새는 목을 길게 뻗어 앞쪽으로 쭉 빼고는 날개를 파닥여 몸의 방향을 바꾼다. 주둥이에는 천문이에게서 가로채간 연꽃등이 매달려 있다. 새가 움직이는 대로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대롱거리는 연꽃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진분홍의 등(燈)에서 촤르륵 츠윽 탁 소리를 내며 심지를 태우는 황촉의 불꽃이 일렁이며 타오른다.

  이제 새는 천문이가 서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서히 다리를 내리며 날개를 퍼덕인다. 천문이의 머리카락이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날리고 저고리의 옷섶이 부풀었다가 가슴팍에 착 달라붙는다. 이윽고 물 위로 완전하게 착지한 새는 왼쪽 날개를 기울여 무엇인가를 떨어뜨리려 한다. 붙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그 무엇이 바싹 엎드려 등에 붙는다. 그러나 새의 몸부림 역시 거세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과 기어이 떨어뜨리려는 것 사이의 실랑이가 바람을 일으킨다. 물이 갈린다. 새가 두 날개를 위로 솟게 한다. 마치 우산을 접어 세우는 모양이다. 결국 등에서 무엇인가 떨어진다. 툭.

  툭, 소리가 박(拍)의 소리인 양 시나위의 곡조가 들려온다. 둥그런 통 안으로 불어넣은 숨이 뱅글뱅글 돌아 나오는 대금의 탁한 소리가 두 다리 사이에 놓고 활을 비벼 내는 해금의 쥐어짜는 소리에 섞여서 들려온다.

  둥그런 대가리의 붉은 혈인(血印)에 검은 깃털을 섞어 얹은 새의 둥그런 눈이 불그레해진다. 그것의 황록색 기다란 부리가 떨어질 때 모양 그대로 웅크리고 있는 물체의 등을 두드린다. 콕콕 두드리는 부리의 끝이 어르고 달래는 모양이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두 다리가 물속에 잠겨 움직일 줄 모르는데, 거문고줄 퉁 튕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새가 두 날개를 펴고는 떨어진 것의 몸을 감싼다. 그리고는 두 다리로 물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치며 날아오른다. 하얀 날개 꽁지의 검은 빛깔이 해의 뒤로 사라진 뒤 구름에 가린 낮달의 표면에서 까만 점 되어 사라진다. ‘끄와아악 끄와아악~’ 슬픈 울음만이 허공에 맴돌더니 이내 그것마저도 삼켜버린 하늘은 무심하게 푸르다.      


  매우 선명한 영상이었다. 반듯하게 누운 몸이 한동안 움직이질 않았다. 초점 없이 허공에 붙박인 눈이 끔벅이는 것조차 잊은 듯 움직이질 않는다. 되새겨본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바다 그곳은 어디였을까? 거대한 새는 분명 학이었는데, 등에서 떨어진 물체는 그 짧은 사이 어디로 간 것일까? 아, 그렇지. 그래, 꽃신, 붉은 꽃신 한 짝, 어디로 갔지? 분명 손에 들고 있었는데…….

  어쩌면 천문이에게 소희는 그날 밤 꿈속에서 날아온 학이 보내준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붉은 꽃신의 주인, 그런데 찾지 못한 한쪽의 신발은 소희를 아내로 맞아 기수를 낳고 가희를 낳아 살고 있는 지금도 늘 궁싯거리며 찾게 되는 잃어버린 물건이 되고 말았다. 


  “아따메, 젠장맞을……. 뭔놈의 비가 이렇게도 사정없이 내린다냐?”

  아무리 기다려도 그치지 않는 빗속을 뚫고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선 천수가 말을 뱉는다. 

  “긍께 말이라. 비도 비도 징허게 내리쌌소이. 아무리 장마라고는 헌다지만 근다고 요로케까지 내린다요? 하늘에 가서 구멍이 뻥하고 나버렸능갑소.”

  핼쑥해진 얼굴에 기미가 가득 눌러앉아 추레해진 중늙은이 성심이가 온몸을 후려치는 빗물에 역정이 나는지 말을 씹어 뱉는다.

  “징허고만. 뭔놈의 장마가 봄이고 여름이고 쉬덜 않고 계속 되능가, 이러다가는 사램이고 곡석이고 다들 녹아버리겄구마이.”

  등에 짊어진 장구를 추켜올린다고 멈칫하며 어깨를 한쪽으로 올려보지만 시늉일 뿐 미끄러지는 느낌은 매한가지인데 짜증이 일어 투덜거리던 천수가 형수의 말을 받으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아이고, 그라고 말이고 욕이고 내뱉을 기운 남았으면 이리 와서 이 구루마나 좀 끌고 가시오. 고갯마루 높으나 높은 디를 끌고 갈랑게 심팽개 죽겄는디 뭔 불만들을 그라고 내뱉어쌌소?” 

  고된 숨을 몰아쉬던 종수가 그런대로 평평한 자리에 닿자 리어카 손잡이를 무릎께로 내려 잡더니 손잡이에 돌아앉으며 볼멘소리를 한다.

  “아, 마음이 바쁘지 않능가 그러네. 천문이 아부지 아프다고 저라고 드러누워 있는디, 비가 퍼붓어댕께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질척거린디, 숨은 목까지 차올릉께 그러는거 아니요.”

  “아, 누가 모리요. 긍께 그냥 입 잔 닫고 조용히들 가믄 쫌이라도 빨리 도착헐 거 아니요?”

  “아야, 그러들 말고 쩌그 초막 밑이 가서 담배나 잔 핌성 쉬어가자. 글다보먼 빗줄기도 좀 가늘어지지 않겄냐.”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발부터 옮겨놓는 천수를 따라 천문이네들은 투덕투덕 초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담배 한참씩을 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말들을 내뱉는 동안에도 성심이는 방 안에 드러누워 앓고 있을 백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니 가슴에서 불이 인다.

  “아이, 천문아, 넌 어찌 요즘 들어 통 말이 없냐?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천수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묻는다.

  “아니여라. 아무 일도 없어라.”

  건성으로 대답하며 피식 웃는다. 그 표정 어딘가에 씁쓸함이 떠오르다 사라진다. 

  “그나저나 아버지 저러고 계신디 얼른 장개를 들어얄 것 아니냐?”

  “장개는 무슨.”

  “그거이 효도허는 거 아니겄냐?”

  “…….”

  스물이 넘고 일곱이 가까워지는데도 장가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천문이에게 급한 성질을 눌러가며 천수가 말을 붙인다. 그런데도 심드렁하니 아무런 염이 없는 천문이는 그저 먼 바다에 눈을 모은다. 거센 빗줄기가 뿌연 안개를 일으키며 드넓은 바닷물에 섞여든다. 

  세방마을이 비를 맞으며 돌아드는 산허리에 움푹 들어가 짙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을 덮어쓰고는 오지도 가지도 않는 시간을 그냥 둔 채 까무룩까무룩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뜬다. 짚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도롱이를 쓰고는 초막 아래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의 입가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온다. 오돌오돌 떨리는 몸을 한껏 움츠려 봐도 올라오는 한기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의 갈 길이 아직 먼데도 속절없이 내리는 장맛비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야,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비 그치기를 지달리다가는 질바닥에서 구신 되고 말겄다. 기냥 가야 쓰겄다. 얼렁얼렁 챙기라.”

  아무래도 집에 누워 있을 사람에 마음이 닳아 안달이 난 성심이가 일어서며 재촉을 한다. 엉거주춤 일어서며 주섬주섬 챙기고 나서려는데

  “워매, 저거이 뭐다냐? 저기 저 허연 것이 뭣이다냐?”

  “사람 아니다요?”

  “아니 뭐여? 금메 시방 쩌어 사램이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작심허는 거 아니당가?”

  “워매, 어쩐디야? 바닷물이 잡어먹을디끼 달라드는디……이이, 뭣 땜시 저러까아? 젊은 사람 같은디이……쯧쯧, 어쩐디야아…….”

  바닷가 모퉁이 깊은 곳을 바라보는 성심이네 푸네기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손짓을 하고 발짓을 해가며 소리를 지르면서도 선뜻 달려가지는 못하고 섰는데, 어느 순간 휙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다. 하얀 바람이 번개불빛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수선한 정신으로 휘뚝거리며 바라보는데, 천문이가 쭈르륵 미끄러져 내려간다. 맹수에 쫓기는 사람처럼 내달리는가 싶더니 사람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절벽을 질퍽질퍽 내려간다. 황톳빛 흙에 갯모래가 섞이어 와삭거리는데 키 작은 나무들의 뻗어 나온 뿌리가 물기를 머금고서 내달리는 천문이의 굵직한 다리를 걷어지른다. 빗물에 씻겨 내려간 벼랑 끝에서 고불고불 말린 뿌리들을 반쯤이나 되게 드러내놓고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들이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연대(聯隊)의 줄에 걸려 고꾸라지려는가 싶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어떤 움직임이 천문이의 팔을 잡았다. 결국 주저앉으며 엉덩이로 내달리던 천문이가 막 바닷물에 쓸려 모래밭에 뒤엉킨 해초들을 밟으며 일어설 때였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린다. 사선으로 휘갈기는 빗줄기가 사선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휘갈긴다. 배가 닿지 않는 곳,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갯가로도 쓰이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솔섬을 떠나온 물은 바람의 성화에 못 이겨 우우우 일어섰다 뒤로 물러서며 주저앉는다. 가사도를 떠나오고, 장사도, 불섬을 떠나온 한 떼의 물이 서로 만나 함성을 지르며 여자가 서 있는 발밑까지 밀려든다. 반들반들해진 돌들이 밀려들어오는 물을 양껏 머금었다 내뱉는 동안에도 여자는 멀리 떨어져 앉은 섬을 바라보고 있다. 포개 앉은 세 개의 섬이 유난히도 다정해 보인다. 세찬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섬들은 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큰형의 등을 감싸고 두 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은 짙푸른 빛깔과 회색빛 안개가 짙게 어우러져 오순도순한 양이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해 보인다.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이마를 스치고 가는 빗물이 뺨 위로 흐르고, 속눈썹 사이로 감겨드는 빗물이 눈꺼풀 사이에서 비비적대다가 눌어붙는다. 수직으로 내리는 빗줄기와 사선으로 휘갈기는 빗줄기가 여자의 옷을 적신다. 저고리 소매가 팔에 달라붙어 속살이 비쳐 나오는데, 깃 사이로 파고든 물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 위로 도톰하게 흐른다. 치마 말기까지도 축축하게 젖어 꼬질꼬질 엉겨 붙는 얼룩들이 섬에서 밀려온 물에 젖고, 자갈들 틈에서 올라온 모래들이 정강이 무릎 위까지 다닥다닥 붙으며 젖어든다. 

  소금기가 배인 짭짜름한 물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밍밍하게 감겨드는 빗물에 섞여 흐르는 것은 여자의 눈물인가. 밀려드는 물의 아우성이 여자가 서 있는 발치에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다시 밀려든다. 하나를 세고 앞으로 왔다가 스르르 뒤로 물러서고, 둘을 세고 앞으로 와서는 철썩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셋을 세고 넷을 세면서 여자가 빨리 뒤로 물러서기를 바라지만 다섯을 세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쏴아아 밀려와 촤악 콰앙 내리치고는 크르릉 처어억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도르르 말려 나간다. 

 여자는 밀려나간 한 떼의 파도를 향해 걸어간다. 물에 쓸려온 조개의 껍데기들이 할랑할랑 몸을 뒤채는 해초에 뒤엉킨 채로 모래에 박히고 여자의 발에 밟힌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멀찍이 앉아 있는 섬들이 대가리에 움푹 눌러쓴 안개 모자를 짓누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천문이를 노려보고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파도는 밀려온다. 여자의 키보다 높이 밀려와서 두둥실 안고 밀려 나간다. 한순간 보이지 않던 여자가 나동그라진다. 성난 파도가 삼켜버린 여자를 뱉어놓고 떠난다. 하얀 물체다. 물이 들어가 부풀어졌던 여자의 치맛자락이 축 늘어져 있다. 다시 파도가 밀려온다. 음흉한 눈빛으로 집요하게 다가서는 파도가 하얀 물체를 덮치려는 순간 억센 두 팔이 다가와 하얀 물체를 안고는 잽싸게 달려 나간다. 움푹움푹 패이는 발자국을 파도가 메우는 동안 위태로운 나무들의 비탈 앞에 선 남자는 자신의 발목을 걷어지르던 뿌리들의 연대를 바라본다. 

  ‘아, 저토록 가는 실뿌리에 걸려 넘어졌단 말인가’ 하얀 물체를 등에 메고서 오르자면 부여잡을 수조차 없는 실뿌리들 앞에서 남자는 실소를 하고 만다.

  “천문아, 이리로 온나.”

  천수와 종수가 뒤따라와 길을 잡는다. 등에 업힌 하얀 물체를 한 번 추어올리고는 바람처럼 길을 따라 올라간다. 초막 위에 물체를 내려놓고서야 거친 숨을 몰아쉰다. 몸을 흔들며 깨워보지만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여자를 다시 들쳐 업고는 냅다 뛴다. 세방에서 소포까지의 거리가 어디라고 여자를 업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뛴다. 뜨거운 열기가 천문이의 등으로 퍼진다. 여자의 자그마한 몸이 머금고 있던 빗물이 업고 뛰는 남자의 등줄기에서 솟는 땀에 섞이며 뭉클거린다. 여자의 등을 덮은 도롱이가 두 사람의 등과 가슴에서 뿜어지는 열기를 한 줄기의 손실도 없이 잡아가둔다. 지름길을 잡아 좁은 논밭길을 뛰면서 다리에 감기는 풀들의 허리춤을 냅다 갈기고, 메뚜기 방아깨비 같은 놈들의 실없는 뜀박질을 내지르며 정신없이 달려간다. 

  맹렬한 기세로 콧김을 뿜어내며 달려가는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 늙은 총각 천문이의 등에서 여자의 몸이 움직인다. 죽은 듯이 업혀 있던 여자가 꿈틀거린다. 뽕잎에 숨어 보이지도 않는 혀를 내밀고 잎을 갉아먹는 누에처럼, 뽕잎에 밀착시키며 허물 속 젖은 몸을 쭈욱 폈다 사르르 접는 누에처럼 여자가 천문이의 등에서 꿈틀거린다. 축 늘어뜨리고 있던 팔이 언제 안으로 접혀 들어갔을까. 여자가 심장의 울림을 감추려는가보다. 길은 밋밋한 산모롱이를 돌아드는 사잇길, 천문이는 더 이상 뛰지 않는다. 콧김을 뿜어내지 않는다. 길들여진 순한 짐승처럼 천천히 걸으며 듬성듬성 켜진 사람들의 불빛을 본다. 옛사람이 고이 잠든 낮은 무덤을 둘러 선 소나무들이 검은빛으로 밤을 준비하고, 꼬투리 아직 비릿한 콩포기들이 엉성하게 줄지어 있는 밭고랑 너머에는 초록빛의 젊은 고춧대가 무리 지어 서 있는 저녁, 그리고 풍경, 그 사잇길에서 천문이는 두 손을 말아 쥐며 몸을 웅크리는 여자의 숨소리를 듣는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일상생기는 이중천이 삼화절채 사중유언

   오상화에 육점복덕 칠화절맥 팔중귀혼 ~~~

   멀고 궂은날 다 버리고 가직하고 생기복덕일날

   남생기 여복덕 이 날을 맞이하여~~

   금일 모년 모월 모씨연의 조상님들 모셔놓고

   야락하고 공드릴적에~~

   안두지 헐어다가 고두약밥 지어놓고

   겉두지는 시루공맥이요~~~

   기름진 남새 장든채소 깊이든건 더덕채

   얕이든건 도라지채 기름진 나물 장든채소

   맛좋은 사마주 빛좋은 강화주~~~

   어동육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로 차려놓고

   양촛대 불밝히고 향로 향합 꽂아놓고

   지극정성 드릴 적에~~~


   뜻먹고 맘먹고 맘먹고 뜻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게 소원성취해 주시고

   칠성바람 조상바람 선산바람 무왕바람 용왕바람 다 잠재워서

   가화만사성으로 이룰성자로 이루어 주시자고 이 정성을 드리니

   오늘 오신 금일 망자씨들 선망조상 오방조상님네

   잠시잠깐 모셔다가 원당 한당 모셔다가 풀어드리고 가봅시다. 그려이~~     


  이제 징은 석구네의 손에 들려지고 마당은 한결 엄숙해진 가운데 소희의 씻김이 진행되고 있다. 쪽진 머리가 정갈하여 곱다. 백동비녀 호사로울 리 없지만 땅거미 지며 어스름이 이는 마당을 비추는 백열등 불빛이 그네의 비녀를 금빛으로 물들게 한다.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창백한 얼굴로 모씨 선영조상들 앞에 서서 후손들 사는 곳의 주소와 이름들을 낱낱이 불러가며 축원한다. 얼마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가슴에 일던 불안감이 아주 먼 옛날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노 저어 오는 집착선에 실려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것인가. 옆자리에 앉아 아쟁을 켜 올리던 천수가 허벅지를 툭 친다. 장구의 바라지 장단이 야물지 못한 모양이다. 

  ‘오늘같이 좋은 날’이라는 말이 앞을 선다. 점바치 석구네의 굿마당에 불려 나와 가슴을 치며 미안해하던 조상들이 저마다 가슴에 묻어 놓았던 말들을 풀어놓으며 흥에 겨워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더니 이제는 후손들의 소원을 듣는 거리로 나와 제각기 자리에 좌정을 한다. 이미 흥은 공수의 파도를 넘어 씻기는 자리에 들어서면서 얼굴들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은 자꾸만 따라주는 술에 취해 건들거린다.

  좌중이 조용해진 가운데 술술 발려 나오는 소희의 사설이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이르게 되면서 아쟁이 끄으 끄으윽 끄 끄으으으으 애 애 애앵앵 앵 애앵 ~~ 시나위 구음의 초성을 틀어 올린다. 산 사람과 불려 나온 혼령들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감정의 앙금을 휘휘 저어 놓는다. 오래된 천식이 기관지의 벽을 마르게 하고 간지럽게 하는 통에 밭은기침을 해대는 모양으로 왼손으로는 줄을 누르고 조율하면서 오른손으로는 활을 낮게 밀착시켜 아래에서 위로 올리고, 가운데 줄의 중동에서 활의 배면을 최대한 밀착시켜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는 점을 찍듯이 가볍게 묵직하게 활을 움직인다. 그 가운데쯤에 천문이의 장구가 끼어들어 딱 따그르르르 더덩 덩 더덩 덩 딱 – 떠덩 덩 덩 떠덩 떠 더덩 ~ ~ 가볍게 음향을 띄운다. 장단의 끝을 맺는 석구네의 징이 가볍게 울고 굿판은 또다시 생(生)의 바다로 돛을 올린다.

  대나무 한 가지를 잘라다가 꽂아놓은 손대백이 그릇에 쌀은 수북하고, 액그릇에도 넘치도록 수북한 쌀 위에는 초를 꽂아 불을 밝혔다. 석구네 공수굿에서부터 바람에 꿈틀거리면서도 활활 타오르던 촛불이 여전히 바람에 일렁이며 불을 밝히고 있다. 

  ‘멀고 궂은 날 다 버리고 가까우면서도 생기가 일어 복이 가득한 날’을 골라 안에 있는 뒤주를 헐고 밖에 있는 뒤주를 헐어 밥을 짓고, 시루에 쌀을 안쳐 떡을 지어 놓고 조상 공덕을 기린다고 왼다. 소희는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하얀 빛깔의 지전을 땅을 향해 흔들고는 양손에 받쳐 든다. 공손한 마음이 지극함을 보이며, 더덕채, 도라지채, 갖가지 나물을 차려 사마주, 강화주를 올리고, 배, 사과, 밤, 대추 같은 과일을 잘 익힌 고기, 생선들과 곁들여 올렸으니, 마음껏 흠향하시고, 한참을 즐기시라고 아뢰며 조상신들의 비위를 맞춘다. 그러니 이번 굿잔치로 인하여 자라나는 후손들이 아무쪼록 건강하고, 뜻먹고 맘먹은 일 모두 막힌 데 없이 술술 잘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비는 말을 한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음전한 몸가짐으로 공손하게 아뢰며 정성을 기울인다. 

  가화만사성으로 이룰 성자로 이루어 주시자고 ~~ 축원 축수의 말자락 끝을 쳐올리는 소희의 목에서 소리가 올라온다. 배 밑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소리가 가슴을 거슬러 올라 목을 타고 흘러 사람들 귓전으로 오른다.     

   굿이로구나

   신이로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신이여~~ 어어허 어

   모씨 명의 선영조상

   굿이로구나


   맞으러 가세 맞으러를 가세

   선영조상님을 맞으러 가세

   한 손에다 저마포(苧麻布)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 취타를 들고 

   너도 가고 나도 가세

   뉘 집이라고 아니를 오시며

   뉘 집 선영이라고 아니를 오시리오

   차례 차례로 오시는구나

   세명장 죽장 우에 

   왕자진은 봉피리 소리를

   새복 받아서 오시는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마야장천~ 오날이로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신이여~~ 어어허 어~ 신이로구나~


   성황당 그늘 밑에 

   슬피우난 저 두견아

   너는 어이 슬피를 우느냐

   나도야 괴아니다 도령 죽은 넋이 아니냐

   처자 죽은 몸패를 만나서 

   낡은집은 잦아지고

   새 잎 나기로만

   슬피를 운단다


   갈매기는 어디를 가고 

   물드난 줄을 모르난고

   사공은 어디를 가고

   배 떠난 줄을 모르신가

   오늘날 모씨 선영조상님네 

   어디 어디를 가셨는고

   다시 오실 줄을 모르네 그리여~


   통일천황 진시왕도

   몇 고개 재왕을 받아 메고

   염라국을 모사와서

   염라축사를 하려는가

   화월요초로 인생이야

   죽음을 면할소냐

   한 번 죽음을 못 면하고

   원통하신 요내 청춘

   원통한 사연으로

   이리 내왕 천도를 하여서

   왕생 극락으로 천인도를 합시다


   에헤에 히이야 허어~ 허어어~

   마야장천 오날이로구나

   에에에 ~~ 에에에 ~~

   허어~ 허어어~ 에헤에 히이야

   선영 신이여 

   신이로구나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소리는 강을 건너 모씨네 선영조상들을 낱낱이 찾아 모시고 오는 소희의 가슴이 떠밀어오는 경계의 나루에서 올라온다. 진양조의 설운 곡조가 흥겨운 축원의 중모리로 풀리는 성주풀이대목으로 돌아드는 모퉁이에 선다. 휘갈기는 장구소리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성대하게 맞아들이는 대활연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껄껄껄 웃는 조상신들의 소리와 황급히 달려 나와 고개 조아리는 승룡이 권속들이 저마다의 자리에 앉으며 신들의 잔에 술을 따르느라 한바탕 소동이 이는데, 소희는 이번에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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