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팔월의 더위는 맹렬한 기세를 꺾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시간은 어느새 세 시를 향해 간다. 감나무 아래 모여 앉고 은행나무 아래 모여 앉아 그늘을 탐하던 마을 사람들이 수건을 늘이고, 밀짚으로 엮은 모자들을 쓰며 나름의 그늘을 만들어낸다. 매미소리가 드높아 가는 한낮도 이제는 사그라지면 좋으련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태양은 나무 밑둥치까지 파고들며 구경꾼 행세를 한다.
“히이, 성수, 나여.”
멀뚱히 바라보는 형수의 얼굴을 맞바라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나란 말이여. 내가 승룡이여.”
상 아래 놓여 있던 여러 옷들 중에서 주황으로 물든 노을빛에 은가루 섭섭지 않게 흩뿌린 비단옷을 꺼내 손에 들고는 이승의 형수를 향해 헤벌쭉 웃으며 의자에 앉는다.
“성수, 여기 술 좀 따러봐.”
“이잉? 술을 먹는다고? 살았을 적에는 술도 잘 안 먹더니, 뭐야아? 이제 술도 먹어?”
허물없이 말하며 소주병을 들고 오는 형수에게 술잔을 내민다.
“뭐여. 아이, 왜 술을 따르다 말어? 술은 채워야 맛인디, 얼릉 채워봐.”
넉살이 좋다. 형수는 헛웃음을 치며 내려놓으려던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워준다.
“아, 인제 술 좀 먹을 맛이 나네.”
한 잔을 쭉 들이켠다. 양쪽 눈을 있는 대로 찡그려 감고는 볼을 씰룩인다. 그리고는 형수의 잔에도 술을 가득 부어준다. 분위기가 사뭇 살아 있을 때의 하루치 모양새다. 굿판에서는 천문이의 굿거리장단이 어우러지고, 천수의 아쟁이 느꺼운 소리를 한다. 종수의 뿔피리가 소리를 짜 올리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노래를 하고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떤 이는 박수를 치고, 어떤 이는 목을 늘이고는 눈을 감는다. 그 입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풀벌레 소리에 ~ 말없이 눈물져요
사람들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훌쩍이는 콧물 속에서 술을 부른다. 누구랄 것도 없이 술을 부어주고 접시마다에 놓인 나물 반찬들을 한 젓가락씩 몰아넣으며 술에 눈물을 섞어 마신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얼마일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말하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지금 이렇게 굿마당에 모여 같이 듣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눈물들은, 그러나 황성옛터 달빛만이 감싸고도는 으슥한 곳에서 잠 못 이루는 이의 설운 회포를 점바치 석구네에게만 보이는 것으로, 들리는 것으로 남겨두고 돌아들 갈 것이다.
다녀갈 승룡이의 헤벌쭉 웃는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라온다. 형수가 따라준 술을 마시고 손으로 덥석 집어다 몰아넣어주는 고사리나물을 씹으며 술을 마저 들이켠다. 그리고는 주먹 쥔 손을 위에서 아래로 빗금 지어 내리며 노래를 부른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 그 무엇 찾으러
끝없는 꿈의 거리를 ~ 헤매어 왔노라
흡사 군인들의 모습이다. 병영 앞에 쭈그리고 앉은 어느 늙은 여자의 술집 앞 대로변에 탁자 몇 개와 의자를 되는 대로 가져다 놓고, 벌쭉 벌쭉 술을 들이키며 고향을 그리는 군인의 모습이다. 두고 온 가족들이 있으리라. 누구는 늙은 부모의 병든 침상을 떠올리며 안타까이 눈물지을 것이고, 누구는 바람난 여편네 돌아오지 않는 마음의 모퉁이를 돌며 휑한 가슴을 들여다볼 것이다. 까만 눈동자 별처럼 반짝이며 다가앉아 입 맞추던 영숙이의 설익은 숨소리에 사랑의 말을 내뱉던 한 장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 엽서를 띄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청춘은 술을 마시고, 청춘에게 술을 부으며, 청춘으로 쓸쓸한 가슴을 위무하리라.
승룡이는 재주가 좋다. 다시 살아온 자리에서 주황으로 물든 노을빛에 은가루 섭섭지 않게 흩뿌린 비단옷을 움키어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는 능글능글 말을 한다.
“어허, 우리 성수가 참 멍청허더라. 솔찮이 멍청허드랑께.”
아직 쓰러지지 않은 술병이 여럿 남아 있는데, 그나마 술을 쳐줄 형수에게 속없이 말을 뱉는다. 뜩 뜨르릅 펑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여는 순간이었는데, 형수가 흥, 코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술 없어. 이제 그만 마시고 가.”
샐쭉해진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려는데,
“우리 성수가 멍청히갖고는 맨날 즈그 시어매, 시아배 자리에만 술을 따라주고, 내한티는 술 한 잔도 안 따러주더라. 조카놈들도 오면 고개만 수그리고 눈만 끔벅거리고는 그냥 가부러. 싸가지 없게.”
살짝 꼬이는 혀 마디가 찰지게 돌아간다
“내가 말이요, 이래봬도 나랏밥을 먹은 놈이여.”
장단을 맞추는 천문이네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그 옛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몸이더란 말이여.”
‘쿵 따 쿵 쿵 딱 딱 따그르르르으~ .’
“아하, 그래에?”
금시초문이라는 듯 구음의 끝을 올리는 천문이를 따라 둘러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근디 전쟁이 낭께 군대에 갔는디, 뭐하러 자진해서 갈 것이여. 넘들은 다 안 갈라고 뻗대는디……멋이 그렇게 대단허다고 뛰어들어갈 것이여. 너무나 빨리 가버렸어. 허망허지.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는디. 지금도 생각허면 아까워. 허망하지…….”
“긍께 내가 쩌어 대전에 가 있는디, 우리 성수가 여기 있는 지 시어매 시아버니한테만 술을 따러 주고는 나 한티는 한 잔도 안 따러 준당게. 멍청이여.”
형수는 병을 기울여 천문이네에게 따라주고 남은 술을 마저 부어준다. 병을 있는껏 기울여 봐야 밑바닥을 돌던 몇 방울이 고작이건만, 병 주둥이 끝에 둥글게 말리는 물기는 푸르게 젖고 코끝을 후비는 술향은 가슴을 적신다.
도대체 맺히는 고(苦)는 몇 마디 몇 개이고, 풀어야 할 고(苦)는 몇 마디 몇 개일까? 한 번 맺힌 고(苦)를 풀어낸다고 풀어지며, 끊어낸다고 끊어질 것인가. 저마다 설설이 내려앉은 혼령들이 제 이름으로 마련된 옷가지를 움키어 잡고 후손들을 위해 덕담과 경계의 말을 공수할 때, 손주들의 성공을 다짐받으려는 며느리에게는
“염병헐년, 즈그 오매한티 좋으라는 말은 허기도 전에 내리사랑헌다고 즈그 새끼들부터 챙기고 지랄허네. 으이구, 내가 차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라 그러네에. 차암.”
퉁바리를 내리기도 하고,
“미안허다아. 그때는 내가 너한티 맵짜게 했어도오, 이 날이 가고 나면 좋은 일들이 뭉텅뭉텅 생길 것잉께 너무 서운케 생각지 마라.”
“어머니, 그때 어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구박하고 욕하고 때릴 때, 나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정말 얼마나 많이 죽고 싶었는지 아는가? 왜애 나한테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생전에 너무도 서운했던 감정들을 쏟아 놓으며 울분을 토해내는 이승의 며느리에게 저승의 시어머니는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는 몸짓을 한다.
“아야, 쉿, 쉿, 그렁께에, 다아 지나간 이야그를 멀라고 또 끄집어낼 것이냐? 니가 쌓은 덕은 다아 복으로 올 것이고, 지은 죄는 다아 벌로 갈 것잉께, 맺힌 거는 다아 풀어버리라. 그거 쌓아둔다고 쌀이 될 것이냐 밥이 될 것이냐. 그냥저냥 걍 싹 다 풀어버리라아.”
하며 몸을 비비댄다. 움켜쥔 옷가지로 며느리의 몸을 닦아내며 비글비글 웃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이미 죽은 넋에게도 염치는 나름으로 있는 것이리라.
낯설은 타향 땅에 ~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나를 ~ 못잊게 하네
기타줄에 실은 사랑 ~ 뜨내기 사랑
울어라 추억의 ~ 나의 기타여
흥이 오르는 마당에서 이제 사람들은 우줄우줄 일어선다. 그리고는 남의 집 굿마당에서 자기네 잔치를 벌이는 양으로 춤을 춘다. 순옥이 아버지 술에 취해 게슴츠레 풀어진 눈으로 벌게진 얼굴을 까딱까딱 끄덕끄덕 하며 헤~헤 능글맞은 웃음을 흘린다. 반 깍쟁이 술에도 온 동네 술 혼자 다 퍼마신 것마냥 귓불까지 벌게지는 사람이 오늘은 굿에 취하고, 옛 동무 생각에 취해 양재기 한 그릇을 가득 퍼담아 마셔대니, 끄억끄억 올라오는 게트림 소리도 눈물에 젖어가고, 몸은 굼떠 허수아비 팔을 벌려 들어 올리며 도굿대춤을 춘다. 병준이네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할랑할랑 걸어 나와 기타줄에 뜨내기 사랑을 실어 부르는데, 명숙이네라고 미자네 할매라고 그냥 말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삼동네에서는 모내기 들녘에서 김매는 들녘에서 들노래 구성지게 불러대던 목들이, 육자배기 기름지게 불러내던 걸궁패들이 빈 소줏병 모가지에 숟가락 모강댕이 걸고 나와 유랑 몇 천 리를 퉁긴다.
유랑 몇 천리, 춘심이를 아직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승룡이에게 형수는
“아이구, 그 백여시는 멀라고 찾어? 그 백여시는 차암, 오늘도 잘 살고 내일도 잘 살어. 그 걱정할 힘 있으면 나나 잘 살게 해줘봐아. 으이구, 사나 죽으나 그놈으 춘심이 타령은…….”
퉁을 놓으며 쌩하게 등을 돌린다.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이제 석구네는 승룡이가 움켜쥐었던 옷을 땅에 놓고 풀어헤친다. 그리고는 저고리와 바지 등속을 양손에 나누어 쥐고서 휘휘 젖는다. 천문이네들의 악기 소리와 바라지 소리에 몸짓을 섞어 넣으며 공중 위로 옷가지를 휘휘 내 젖는다. 마치 처음 혼백이 자신의 몸을 나와 창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머뭇거릴 무렵, 혼백의 이름을 부르며 옷가지를 흔드는 고복(皐復) 행위인 초혼(招魂)처럼 승룡의 옷가지를 흔든다.
“어허, 오늘 굿은 제대로 했네.”
껄껄껄, 웃으며 흡족해하는 천문이의 덕담 사이로
“그동안 맺힌 한(恨) 오늘 다 풀고 가네.”
소희의 덕담이 목울대를 긁어서 나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안에서 새로 내오는 음식들에 김이 서려 있다. 따뜻하게 데운 갖가지 부침개와 나물들이 한 접시씩 나오고, 조기나 병어 같은 생선들이 노란 지단 둘러쓰고, 실고추 너울거리며, 풋고추 장식처럼 말아 누워 있다. 이미 자신의 주장이 사라졌으니 할 대로 하라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젓가락이 오고 가는 사이 조기나 병어 같은 생선들은 굵은 등뼈 사이에 갈빗대들을 가지런히 드러내고는 삶을 마친다. 접시 위에서 번들거리는 누런 기름띠들은 어쩌면 남아 있는 대가리와 빼놓고 가는 속창아리들에게 남겨두는 눈물, 마지막 보시인지도 모른다.
석구네 손에 들린 고(苦) 뭉치를 본다. 하얀 광목으로 열두 개의 골을 내어 양쪽으로 묶은 뭉치가 마치 영광굴비 두름처럼 보인다. 바다 멀리 배를 타고 나간 사람들 만선의 깃발을 꽂고 돌아오는 날이면 “파시 구경 가세.” 몰려나온 동네 여인들 웅크리고 앉아 조기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보배섬 가까운 조도(鳥島)에서도 ‘칠산바다서 조구 울음소리 들려온다.’라는 말이 소문처럼 퍼지면 바다에 돛을 올렸었다. 개중에는 소포에서도 닻배에 올라 노다지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 모두 칠산어장으로 몰려가 이른 봄 그득그득 몰려들어 뒤치락거리는 조기를 그물 가득 실어 올렸었다. 황금빛 비늘을 반짝이는 조기들은 영광으로 갈 사람들의 그물에 실려 법성포로 갔고, 보배섬 조도로 갈 사람들 그물에 실려 조도로 갔었다. 이 사람들 다시 해남 뱃사람들 목포 뱃사람들 무리에 섞이어 연평도 바다로 몰려가 노다지 만선의 기적을 일상의 하루처럼 가득가득 싣고 왔었다.
바람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뱃사람들의 노다지가 가마니에 담겨 흥청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닻배노래에 섞이어 아득히 들려오지만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전설되어 저물어 간 지 오래되었다. 앞 다투어 나가던 중선배들이 지금은 포구에 붙잡혀 옛 노래를 부르는데, 만춘옥, 송도관, 향미장 여각의 담장 그늘에 몰려들던 사람들 노랫소리 다시 살려보려 해도 그것은 지나간 날의 영광에 지나지 않고 마는 것이다. 허무한 노래 사설이고 마는 것이다.
연평도 바다 널린 조기
명덕호 불로 다 잡아난다
어어어 허허 어어 에 헤 에요
첫 정월부터 정성 덕에
오월 파시에 북치고 난다
어어어 허허 어어 에 헤 에요
영광의 법성포 아낙네들은 참조기 떼가 어물 창고에 쏟아지면 그것들을 크기별로 따로 모았다. 그리고는 깨끗이 씻어낸 조기를 법성포 앞바다에서 바닷물 일구어 만들어낸 천일염으로 간을 했다. 아가미를 돌려 귀를 열고 그 안에 소금을 넣어 절이는 섶간을 하였다. 그리고는 소금 먹은 조기들을 한 군데 모아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한동안 두어 간이 짭조름하게 시나브로 스며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크기에 맞춰 줄줄이 엮어 간이 밴 물에 헹구어 석 달이고 넉 달이고를 바람 드는 곳에 걸어 두었다. 쏟아지는 햇볕 속에 던져두고는 바닷바람 밀려드는 소리 속에서 말렸다. 최고의 일미 절 받는 생선으로 거듭나게 만들어냈다. 그것이 장질로 한 줄에 열 마리씩 엮이어 스무 마리 한 두름이 되기도 하고, 오가로 다섯 마리씩 두 줄로 열 마리 한 두름으로 엮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 소희의 눈에 석구네가 들고 있는 하얀 광목의 골에 묶여 열두 마디로 엮인 뭉치로 보이는 것이다.
열두 마디의 고가 다 풀리고 나면 다시 아홉 고에 묶이고, 그것이 다 풀리고 나면 다시 일곱 고에 묶이게 되는데, 인간의 삶이 이대도록 얽히고설켜들어야만 하는가 싶은 마음이 인다. 지나온 삶들이 우수수 일어서며 다가선다. 목전으로 다가설수록 그것들의 형체는 흐릿해진다. 등잔 밑이 어두워서인가, 한 마디의 고가 열두 개의 마디보다 커서 그것이 소희의 몸체를 하찮은 지푸라기 제웅으로 떨어뜨려 덮어씌우기 때문인가. 현기증이 인다. 머리가 띵해오며 아찔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