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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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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5화. 희수의 세상, 버꾸의 세상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을 향한다. 상쇠어른을 위시한 소포걸군농악 대원들마저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눈이 되고 만다. 상쇠어른의 꽹과리와 치배들의 징, 장구와 북, 그리고 쇄납이 판을 어우르며 사람들의 눈길을 모아주고, 판이 끝날 때까지 갖가지 가락으로 흥을 돋우어 주겠지만 이 판은 온전히 희수만의 세상이다. 희수가 두드리는 버꾸의 세상이다. 

  ‘따당 땅 땅 땅 땅 땅 따다다다다당 따다다다다 ~ ~’

  상쇠의 매김 소리가 들려오고, 치배들의 가락이 섞여든다.

  “이놈 버꾸야 ~, 버꾸나 한 번 치고 놀아보자!”

  상쇠어른이 부르는 소리에 줄달음쳐 나오는 모양새로 버꾸재비 희수가 나온다. 

  “얼씨구 ~ 지화자 ~ 조옿다!”

  추임새와 함께 희수의 북소리가 판으로 모여든 눈길들을 휘잡아 모은다.

  흰 저고리에 흰 바지를 입었다. 그 위에 초록빛 더그레를 입고 가세침복으로 띠를 둘렀다. 그리고는 오른쪽 어깨를 잡고 내려온 빨강 띠와 왼쪽 어깨를 잡고 내려온 노랑 띠를 허리에서 파랑 띠로 잡아맸다. 감히 상쇠와 같은 옷차림으로 상쇠의 격을 갖추었다. 퉁퉁한 궁둥이에서 한데 어울린 청 · 황 · 홍의 띠들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보릿대춤을 춘다. 

  쇄납의 울음이 어둠을 찢는 소리로 퍼지자 촐랑거리며 헤 ~ 웃고 나오는 희수의 버꾸가 소리를 낸다.

  ‘덩 덩 덩 따라라 더덩 덩 따라라 ~ ~’ 

  버꾸를 힘차게 울리며 뒷걸음으로 나아간다. 빙글빙글 웃으며 첫 박에 힘을 주어 두드리고 뒤따라오는 마디들을 주무르듯 어르며 다듬이 소리를 낸다. 버꾸의 심장을 힘주어 때리고 심장과 심장 사이를 가르고 이은 갈빗대와 등판을 두드린다.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 ~ ~ ’

  소리가 더덩 둥 둥 밀려들어오고 더덩 둥 둥 밀려나간다. 

  처음 다듬이 소리로 들리던 가락은 어느새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되어 나온다. 그 소리가 차츰 익어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 

  오른쪽으로 달려 땅을 박차고,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락따 덩따’ 

  왼쪽으로 달려 물을 박찬다. 

  ‘덩기 덩기 덩기 덩따’ 

  오른쪽으로 걸어 땅을 딛고, 

  ‘덩기 덩기 덩기 덩따’ 

  왼쪽으로 걸어 물을 긷는다. 그리고는 자진모리 가락을 휘몰아가며 무릎을 반으로 접어 뱅글뱅글 돈다. 상쇠와 치배들의 추임새가 흥을 돋운다.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입은 사내놈의 몸을 감싼 초록빛 더그레가 빨강과 노랑 · 파랑의 물결을 이루며 뱅글뱅글 돌아간다. 푸른 가을하늘이 내려다보는 누런 땅에서 버꾸 하나가 여울진다. 여울지는 물결 속에서 버꾸가 면경처럼 해처럼 솟는다. ‘덩 떠덩 떵떵떵 덩 떠덩 떵떵떵 더덩 떵 딱딱 따라락딱 딱딱 ~ ’ 퍼진다. 하늘이 소리를 본다. 그 먼 옛날 땅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하늘을 우러르던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며 하늘의 존엄을 추중(推重)했던, 그래서 하늘이 수승(秀昇)함을 느꼈던, 소리가 버꾸재비 희수의 손에서 차라랑 차라랑 방울 소리로 울린다. 다듬이 소리, 말 달리던 소리는 무릎을 펴고서 북을 달려 휘몰아 도는 희수와 함께 거센 물살이 된다. 청·홍·황 띠들이 어우러져 오방으로 거듭날 때, 상모 위에서 앞으로 뱅글 뒤로 뱅글 거꾸러지던 하얀 부포와 돌돌 말리는 버꾸, 버꾸는 혼돈의 세상, 혼돈의 무질서 속에서 흘러나온 탁류가 울둘목의 돌 틈으로 빨려들어가 정화되는 것처럼 천문이의 아들 희수는 땅의 소리를 하늘에 올리고, 하늘의 소리를 땅으로 전해온다. 


  처음 버꾸 놀이를 보았던 날 희수의 어린 가슴은 쿵쿵 뛰었다. 우렁차게 울려오는 북의 소리가 주눅 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어린 희수의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커다란 눈망울 가득 검은 물빛 일렁이도록 슬프게 웃곤 하던 하얀 얼굴의 희수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였다. 당골네 자식이라 손가락질을 받고 아버지도 없는 새끼라고 놀림을 받으며 자라왔다. 큰형 기수가 아버지처럼 돌봐주고 가희 누나가 따뜻하게 품어주고 달래주어도 친구들에게는 있는 아버지가 자기에게는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허전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마음을 다치고,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라목처럼 고개를 움츠리곤 했었다. 

  희수의 판 위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온다. 놈은 몸을 낮추며 기듯이 걸어 들어온다. 땅을 향해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자라목처럼 안으로 몰아넣었다 위로 쑥 빼 올리며 눈을 씀벅거린다. 놈은 터무니없이 못난 얼굴이다. 마마 자국인지 곰보 자국인지 점도 아닌 것들이 자잘한 꽃무리처럼 피어 흩어져 있다. 코는 제법 오뚝 솟아 능선을 이루고 곧게 뻗은 인중 아래 꽉 다문 입술이 거슬리게 검붉다. 뽕나무밭 가운데로 들어가 검붉게 익은 오디를 따먹고는 소맷자락으로 쓱 문질러버린 듯한 생김이 꾀죄죄하다. 

  놈이 축축하게 젖은 입술을 씰룩인다.

  “너만 아부지가 없능 거 아녀. 나도 아부지가 없다,”

  “…….”

  “너는 아부지의 형상을 눈구녁으로 본 적 없어 아부지를 모른다고 징징대지?”

  “……누구냐? 너는.”

  “사내새끼가. 나는 본래 아부지를 알았으나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에 아부지를 잃고, 아부지를 모른 채로 버꾸를 알았다. 백중날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버꾸의 꽃놀이 판굿 속에서 나는 자랐다.”

  “너는 모르지. 아버지 없는 공간의 쓸쓸함이나 허전함, 아이들의 숱한 손가락질을 너는 나만큼은 모르잖아.”

  “쉰소리 허지 마라. 키가 많이 컸던 아버지, 어깨가 건장하고 허리뼈가 굵던 아버지, 말을 타고 시오 리 길을 달려 활터로 가서 활을 쏘던 아버지, 그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을 꽂아 넣으며 금을 캐러 몰려든 조선 사람들을, 금을 캐서 먹고살던 본정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는 왜놈들과 앞잡이들에게 백중날 죽은 아버지를 너는 모른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가 느닷없는 환란 속에서 두 마리나 되던 말을 빼앗기고, 두리둥실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아오던 집을 빼앗기고, 어디론지 쫓겨가버린 그날을 너는 모른다. 아느냐?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를 잃어버린 누이들이 마당에서 마루에서 뒤꼍에서 픽 픽 쓰러져 맥없이 숨이 지던 그 자리에 혼자 남은 대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의 얼빠진 순간들을 너는 아느냐? 빈자리의 허전함, 쓸쓸함, 아이들의 손가락질……? 그런 것은 배고픈 날 이리저리 걷다가 지천으로 피어난 참꽃의 넋을 허겁지겁 몰아넣는 아이 앞에서, 찔레꽃 새순이 돋으면 가시에 찔려가면서도 따가운 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대는 아이 앞에서, 멋쩍게 솟아오른 가지를 휘잡아내려 끝머리에 달린 두릅을 따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 판에서 너는 버꾸가 아니잖여?”

  “니가 버꾸잖여.”

  “으응……?”

  “자, 봐. 지그덩 지그덩 사위의 다스름은 지났으니 느린버꾸로 들어가는 거여. 자진버꾸, 진풀이, 된버꾸로 아버지 없는 놈들, 아버지 빈자리에서 목놓아 부르며 울던 한심한 놈들을 한 판 신명나게 울려보잔 말이여.”     

  ‘덩’ 소리와 함께 태평소 날라리의 ‘삐이이 ~ ~’ 소리가 판에 흐르고, 상쇠와 치배들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판으로 퍼진다. 희수의 버꾸가 판 위로 돌며 엉치뼈 곁으로 서고 북채를 든 손이 왼쪽 어깨 위로 올라간다. 사르르 돌며 버꾸가 춤사위를 실어낸다. 두 발이 같이 모여 점을 찍고, 한껏 치켜 올라간 채가 버꾸의 가슴을 누빈다. 그리고는 앉는다. 무릎을 꺾어 앉는다. 어깨를 좁혀 낮게 움츠린다. 흰 바지는 꺾어 앉은 무릎으로 봉우리를 세우고, 초록빛 더그레는 봉우리를 덮고 앉은 소나무가 된다. 이마 위로 소담하게 피어난 흰 꽃은 한 마리 학으로 날개를 접고, 부포를 매달고 출렁이는 상모는 논두렁 밭두렁 좁은 길을 가득 메울 들꽃의 향기를 머금는다. 버꾸가 오른쪽 땅에 앉고 채끝이 왼쪽 땅을 짚는다. 그리고는 태평소 날라리의 음에 실려 움틀꿈틀 어깨를 비튼다.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고 왼쪽으로 살짝 비틀며 힘을 매기다가 힘을 푼다. 막 깨어난 어린 해가 바다 밑에서 버석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양으로 비비배배 일어서더니 ‘덩’ 소리를 낸다. 힘껏 내리치고 숨을 고른다. 다시 힘껏 내리치고 북채를 등 뒤로 숨기고는 고개를 끄덕, 헤식은 웃음, 다시 앞으로 내어 ‘덩 덩 덩 ~ ’ 버꾸의 가슴을 친다. 오른쪽 발을 살짝 들어서 올렸다 내리고, 다시 들어 올렸다 내리며 두 발을 눌러 모은다. 그리고는 버꾸가 땅으로 실리게 휘젓는다. 기지개를 켜고서 밖으로 나오던 해가 물을 휘저으며 문을 여는 모양으로 버꾸도 따라 일렁이더니 또다시 위로 치솟는다. 누렁소가 짧게 걸으며 버꾸를 치면 버꾸는 위로 둥실 솟아 해를 맞고, 다시 내려와 희수가 젓는 누렁소의 뒷다리를 짧게 맞으면 해는 황소걸음으로 버꾸를 놀린다. 황소뒷걸음 사위에 물이 오른다. 빨라지는 장단의 흥이 강물 사이로 비늘을 돋운다. 그 날개를 타고 오른 버꾸가 드디어 가슴을 열고 심장의 붉은 피를 쏟는다. 가슴을 울리면서, 등뼈를 두들기면서 쏟아놓은 붉은 물 위로 심장이 춤을 춘다. 초록물 곱게 먹은 더그레가 수백 년 수천 년을 하늘에 순응하며 땅을 일궜던 사람들의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감싸고, 빨강으로 노랑으로 파랑으로 춤을 추는 띠들이 흰옷 입은 사람들이 심장에 묻어 놓은 둥근 실 뭉치를 풀어낸다. 한 올 한 올 켜켜이 맺혀 있던 설움을 닦아낸다. 입을 앙다물며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치고 숨을 씩씩 몰아쉬던 순간들에 쌓였던 미움과 증오, 분노로 일그러지고 찌그러져 있던 사람들의 원(怨)과 한(恨)을 씻어낸다. 


  놈의 눈이 거슬리게 춥츱거린다. 

  “나는 말이여, 열아홉 살 난 화자년이 나한테로 와서 각시가 되던 날 말이여, 그날 첨으로 내 아부지 이야기를 들었단 말이여. 그날 말이여, 차암 기가 맥혔지. 막 복에 겨운 장개를 갔는디, 그날 폐백을 받던 자리에서 장인어른이 말씀허시드랑께.”

  “무슨 말씀을 허셨는디?”

  “준섭이, 자네가 오늘 내 딸 화자년이랑 혼인을 했응께, 자네가 오늘 이 시간부텀은 내 아들잉께 양서방이고, 소서방이고 불리는 것을 원치 말여. 인자부터 준섭이 너는 내 아들이여. 라고 말씀허시더니 상 위에 놓여 있던 청주를 쭈욱 들이키면서 웃었지. 카아! 소리가 거짓말  쪼깨 붙여갖꼬 고샅까지 들리드락 크더랑께. 참말로 걸판지게 웃더란 말이여. 그 까만 눈 가득 눈물을 머금어갖꼬는 안 떨어뜨릴라고 청주잔을 기울였는디, 그것이 어디 가겄는가. 시오 리 길 말 달려 꽂아 넣던 내 아버지 과녁에 가서 빗물처럼 흘렀겠지 말이여.”

  “좋았겄구만. 자기 사는 세상에 아버지고 어머니고 안 계시는디가가 형제자매도 없는디, 떡허고 열아홉짜리 처녀한티 장개도 가고, 폐백도 허고, 복이 꽤 많은디.”

  “그라제. 어디 그것뿐인가? 장인어른이 방앗간을 하셨지. 그리서 그 인근 마을들은 쌀이고 보리고 간에 찧어야 할 곡식은 다 처갓집, 우리 이화자네 집이서 찧었지.”

  “허허이, 복도 많네. 그 못생긴 얼굴에 키는 째깐히갖고, 거 어디 지게나 지어봤겄어? 근디 먼 복으로 그리 장가를 잘 갔당가. 부럽구먼.”

  “하아, 짜식. 웃기는 놈일세. 지게? 말도 마라.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는디, 평생을 지게 질라고 세상에 나온 것 맹키로 지고 댕겼구만. 그려, 지게가 내 몸피보담 크고 무거웠제. 그렁께 동네 가시나들이 뭔 사람은 안 보이는디 지게가 혼자서 짐을 지고 간다고 놀리고 까불었었제. 우리 화자년도 지가 내 각시 될 줄 꿈에나 알었겄냐? 많이 까불고 놀려 먹었제. 부모 형제라고 해 봐야 누이들이지만, 그 누이들마저 내가 여섯 살 무렵에 다 픽 쓰러져서 갔응께, 의지할 데라고는 아무도 없었응께. 참말로 무섭고 징한 세상이었제.”

  “그래도 아버지가 그리 잘 살았고, 그곳이 고향땅이었으면 일가친척들도 많이 있었을 것 아닌가?”

  “있었지. 그 먼 옛날에는, 옛날이라고 해봐야 왜정 때 전이겄고, 아부지, 할아부지 때지. 그 때만 해도 우리 집안 그늘을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별로 없었제. 흐흥, 그러면 멋헌가? 왜놈들한티 금광 채굴권이고, 농토고, 다 빼앗겨부렀는디. 그것만이여? 왜놈들한티 붙어서 재산 불리고 권력 얻어먹어가면서 위아래가 바뀌고, 상전이고 뭐고 인정이라는 것이 남어났어야 말이지. 그렁께 그런 본정머리 없는 세상이서 뭣이 남었겄어. 정인들 남었으며, 의린들 남었겄는가? 죽도록 일하고도 피죽 한 그릇 돌아오기 빠듯혔는디, 누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거두기 쉬웠겄는가? 일가도 친척도 다 소용없는 일이제.”

  “듣고봉께 고생 많이 했겄구만. 그 모질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었당가?”

  “그래도 생면부지 타관 땅보담야 낫었지. 아암, 그래도 내 고향 내 땅잉께, 마을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금광 막일도 허고, 넘들 농삿일 허는디, 어릴 때야 심부름이 고작이었지만 열대여섯 되감서는 놉으로도 가고 그랬제. 쫌만 가면 바닷가닝께, 염전이 컸어. 소금밭 일, 거 차암 힘든 일이거등. 소금밭에서 품도 팔고 허면서 그러고 저러고 살었제.”

  “소금밭?”

  “그렇제. 내 고향 볕드는 땅에는 바다가 컸어. 상포, 하포라고 히서, 포구가 큰 항이 있었제. 그렁께 바다 있는디 소금이 왜 없겄는가?”

  “그렇제. 내 고향 보배섬 옥주골 소포만에서도 소금을 많이 했제. 우리 마을 소포에서는 화렴을 했어. 소금을 구워서 만들었제. 나중에 천일염을 만들어내면서 화렴이 점차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없어졌는디, 나 사는 마을이 소포인 것도, 흴 소자를 써서 하얀 소금꽃 푸지게 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이여.”

  “그렇구만. 그러면 멋허겄는가. 그렇게 죽겄다고 뼈빠지게 일해서 소금을 쌓아놓으면 하얀 옷 입은 사람들 있는 대로 앙앙대고 목놓아 울어서 흘린 눈물보다 더 허옇게 쌓인 소금이 하얀 옷 입은 사람들 등짐에 실려 다아 왜놈들 땅으로 실려가뻐리는디, 그런놈으 소금, 흥, 이름짜도 금이네. 그런 것이 다아 배에 실려 가서 왜놈들 땅에 차곡차곡 쌓여뻐리는디. 노란 금은 뺏어감성 우리 아부지 목숨 쌩짜로 뺏어갔고, 하얀 금, 소금은 뺏어감성 내 등골조차 청춘조차 뺏어가버렸는디 뭐.”

  “참말로 서글픈 세월들이었구만.”

  “그라제. 새벽부터 밤까징 갱 안으로 들어가서 콱 쳐백혀갖꼬 금 캐낸다고, 노다지 캔다고 두더지 노릇허다가 밖이로 나오먼 옷을 다 벗어서 알몸으로 검사받고 집에 갔응께. 먹을 것이나 지대로 주간디. 배는 주린디 등짝에 솟는 땀으로 멱을 감던 날들이었제.”

  “참말로 고생 많이 했구먼.” 

  “그래도 버틸 수 있었제. 이 버꾸가 있었응께.”

  “그렇제. 나도 우리 엄니, 세상에서 젤 이쁜 우리 엄니, 당골네라고 손꾸락질 당히감서 살던 눈물 젖은 세상, 아버지 없는 자식놈이라고 업신여기던 막되 먹은 세상, 주눅 들어 살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버꾸 덕분이었지.”  

  “그라제. 그라제. 우리 장인 영감 때때로 ‘아이, 버꾸야. 그렇게 허면 쓰냐?’라면서 버꾸라고 바보라고 퉁을 주기도 했지만서도 말이여, 우리 장인 영감, 버꾸 자알 쳤다. 나도 따라 버꾸 배우고 나도 따라 버꾸 치면서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제. 왜 그리 설운 날들이 많던지, 많이도 울었제. 등짐 지는 일 고되고, 넘의 집 농사일 무릎팍 시리게 물리는 것인디 말이여, 일 끝나고 나면 마을 어른들하고 모여서 떼북 치면서 한 판 걸지게 놀고, 그러고 나면 땀도 솟고 눈물도 솟았지. 금너리에는 치삼이 아재가 살었는디, 그 아재는 꼭 등에다가 박적(박바가지)을 집어넣고는 꼽사등이를 만들어갖꼬 엄벙덤벙 뛰며 놀았지. 낯바닥에는 숯검댕이 묻혀감서나 꾸불꾸불 눈썹을 그리고 눈두덩 위로 아래로는 시커멓게 그림자 그려 넣고는 눈알을 뛰루룩 굴려감서나 캑캑 소리를 내면 그 모양이 하도 우스워서 다들 한바탕씩을 웃곤 했었제. 각자 들고 있는 악기들을 두드리다가 멋이 심심허다고 등어리에 불룩 솟아오른 박적을 텅텅 두드렸었지. 차암 구성지고 재미졌었지. 그렇게 한 판 웃고 나면 가슴 밑이로, 배꼽 밑이로 구렁이 맹키로 시커멓게 도사리고 앉았던 응어리들이 풀썩풀썩 털려나왔지. 들깨참깨 떨려나오디끼 알맹이조차 먼지조차 검불에 달려 나왔지. 흥, 덕분에 살아냈제.”

  “그리여. 그렁께 니가 버꾸여.”

  “그리서, 너도 버꾸여.”     

  “버꾸야, 이 노오옴. 버꾸나 한 판 치며 신명나게 놀아보자.”

  “얼씨구 ~ 절씨구 ~ 지화자 조옿다 ~ 이화자가 조옿다 ~ ”

  “예끼~놈.”     


  자진가락의 버꾸가 판을 돈다. ‘덩’ 소리가 오른쪽으로 돌고 ‘덩’ 소리가 왼쪽으로 돈다. 그 소리가 다시 한 바퀴를 돌면 버꾸는 짝다리를 한 희수의 손에 들려 어깨 위로 올라가고, 채는 손끝에서 만세를 부르는 모양으로 하늘에 읍(泣)한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웃는 준섭의 얼굴이 희수의 얼굴 속에서 꽃으로 벙그러진다. 별처럼 들어와 박힌다. 희수의 발이 차올린 버꾸를 준섭이 차올리고, 그것은 다시 빠른 걸음으로 뒷걸음치는 희수의 무릎팍에서 구부정거린다.

  사람들은 자진모리 가락의 사물 소리에 빠지고, 쇄납의 소리에 빠져 첨벙거리다가 어깨를 움틀꿈틀 땅으로 조인다. 오른발 왼발을 툼벙거리며 버꾸를 감싸고 춤추는 희수의 판에서 “조옿다~ 잘한다~” 추임을 하며 박수를 보낸다. 연신 벙글거리며 춤을 추는 희수의 어깻짓과 하나로 녹아드는 준섭의 혼울림 속에서 영글어가는 가을은 하늘을 저만큼 높이 올려놓고 흰 구름을 뚝뚝 떼어 수제비를 빚는다. 

  밀폐된 벽 안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살던 대로 춤추며 그림으로 남은 사람들의 모양처럼 버꾸가 놀아난다. 말을 타고 활을 쏘던 사람들의 육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길 없겠으나, 그들의 삶은 벽 속에서 퇴색할 대로 퇴색해 버린 빛깔로 남아 춤을 추는 바보 후손 버꾸들의 몸짓을 내려다본다. 끊임없는 침탈의 역사, 수탈의 계곡에서 죽거나, 살아남거나, 혹은 다시 태어나 잘 살아보려 한 세상을 떠메고 가는 구순한 사람들의 울림을 본다. 궁둥이를 흔들며 어깨를 흔들며 상모를 부들거리는 뒷걸음질을 보며, 벽 속에서 박수를 치다가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주 오래된 혼들이 희수와 하나가 된다. 갈매기 날개 걸음으로 썰물지다가 갈매기 날개 걸음으로 너울너울 밀물져 들어와 쉬미항 파도에 실리는 희수와 함께 벌떡 일어나 버꾸를 발목에 얹고 신명나게 돌아간다. 

  상모를 돌리며 툼벙툼벙 판 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희수와 한 패가 되어 절정을 향해 간다. 발을 들어 올려 버꾸를 치며 한 바퀴를 돌고, 또 한 바퀴를 돌며 재주를 부리는 희수의 판에서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모두가 강물이 되고, 별이 되어 흐른다. 두둥실 해는 달로 돋고, 쿵덕쿵 방아 찧던 달은 해로 솟는다. 버꾸가 된다. ‘덩 떠덩 덩 덩 덩 ~ 두둥 두둥 딱딱 덩 기덩 기덩 덩 딱딱 ~ ’ 누비며 심장을 두드리는 희수와 혼울림 패거리들은 얼을 노래하고, 맥놀이 춤을 추며, 하나의 피로 동심결(同心結)을 이룬다. 해가 된 버꾸를, 달이 된 버꾸를 두 손에 받쳐 들고 햇무리로 달무리로 강물로 굽이치며 휘돌아드는 흰 저고리들과 흰 바지들이 초록으로 굽이지며 돈다. 이마 위에 하얗게 피어난 꽃 학처럼 날고, 하늘 아래 땅 위에 선 사람들이 흥겨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잘 한다, 잘했다. 그라제,” 어깨에 손을 얹는다. 노래를 부른다. 고개를 넘는다. 

 ‘둥 둥 둥 ~ ’ 버꾸의 가슴을 두드려 울리며 희수가 판 위를 돈다. 모두가 따라 돈다. 뿌듯하게 차오르는 벅찬 감동을 머금은 얼~골, 그 얼굴에 천문이의 아들, 소희의 막둥이가 맑게 웃으며 판 가운데로 와 우뚝 선다. ‘두두둥 둥둥 ~ 도도동 동동 ~ ’ 허리를 크게 접어 인사를 한다. 함성으로 일어서는 박수 속에서 새가 난다. 나비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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