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벗는다.
점바치 석구네가 자기를 벗는다. 자꾸만 목구멍을 배뱅거리며 타는 듯 조이던 소리에 데인 상처를, 상처에서 베어나는 눈물을 수건으로 눌러 닦는다. 굵은 소나무 둥치만한 허리를 기우뚱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땅 따그르르르르 ~ ~’ 장구 장단의 끝을 맺는 천문이의 소리에 섞여 소희의 가냘픈 소리가 징 소리에 물려 나온다.
묻는다.
나는 벗어버리고 싶었던가. 덧입고 싶었던가.
머나먼 세월 저편에서 안갯속을 헤치고 나오는 기억의 꾸리들을 바라본다.
눈을 감는다. 바람이 몰려온다. 구름이 흩어진다. 바람에 쫓기던 구름이 망망한 하늘에 누에가 입에서 뽑아낸 실의 가느다란 얽힘으로 엮어낸 고치의 자궁을 감싼 막처럼 성기게 하늘을 깁는다. 바람이 성을 낸다. 후욱 끼쳐오는 검은 냄새가 성긴 하늘을 휘감는다. 걷어내는 손짓이 사래를 쳐도 성난 바람은 검은 입김을 몰고 다니며 하늘 곳곳에 검은 그림자를 씌운다. 드디어는 검은 그림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하늘이 손을 놓아버리고, 둑 터진 하늘에선 속절없는 물방울들이 줄기져 내린다. 허공을 가르며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들이 사람의 머리맡으로 내리고, 사람의 정수리를 타고 내린다. 그것은 곧 땅으로 굴러 떨어지고, 땅은 제 몸을 깎아내는 고통에 몸을 둔다. 두 손바닥을 나란히 붙이고 둥그렇게 펴 올리는 자리만큼씩 빗방울은 무리져 내리고 땅의 가슴패기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 거꾸로 솟는 눈물이 붉게 흐르는 자리에 피어난 꽃은 잎이 진 자리에서 홀로 피었으니 홀로 질 것이다.
하얀 꽃말을 가진 여자 소희는 여자로 피어날 길 없는 밤을 빗소리로 채우며 등잔 앞에 앉아 빙빙 돌린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레에 감기는 실의 하얀 길이가 소희의 밤을 감는다.
물레야 돌아라
뱅뱅뱅 돌아라
어리렁 서리렁
잘도 돈다
진서방네 큰딸애기
시집가기 원하더니
시집가던 삼일만에
집이 절을 하는구나
물레야 돌아라
뱅뱅뱅 돌아라
어리렁 서리렁
잘도 돈다
병이 났네
병이 났네
시살물레 병이 났네
시살물레 병난 데는
뭣이뭣이 약일런고
시살물레 병난 데는
참기름이 약이라네
참기름을 발라논께
팽팽 잘도 도네
누구도 찾아들 리 없는 밤, 깊은 밤, 물레는 돌아간다. 돌자 하고 돌리니 별 수 없이 돌아가지만 하얗게 감기는 소희의 물레에는 깊어가는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이명(耳鳴)처럼 감긴다. 날이 맑은 밤엔 달빛이 수심(愁心)으로 감기고, 뜰아래 쏟아질 듯 맑은 별들은 자잘하게 감긴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톰방 톰방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추녀허리를 감고 돌아 떨어지는 움푹 패인 자리에서 왕관의 보석처럼 흩뿌려지는 밤에는 끼익 끼익 얼그렁 덜컹 얼그렁 덜컹 뱅글뱅글 돌아간다. 붉은 무릇 고적한 넋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가는 빗줄기 너머에서 물레를 돌리는 소희의 하얀 저고리가 젖으니 치마도 하얗게 젖어 들어 간다.
열여덟이었다.
치자물이 살짝 돌아 노랗게 올라오는 천 위로 농익은 껍질이 툭 터지는가 싶더니 열매가 돋아 오른다. 푸른 물 스민 회색빛 가지는 길게 늘어지고, 검은 물 짙게 베인 회색빛 가지는 굵게 마디져 늘어졌다. 통통하게 굵은 바늘귀에 매달린 실들이 가닥가닥 올라서고 내려서며 음영 짙은 잎사귀를 밀어낸다. 참새가 무리지어 다녀가고 지빠귀가 가지 사이를 톰방거리며 다녔을, 비비새 어미가 먹이를 물고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피다가 박차고 올랐을 가지들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나 우거진 잎사귀들에서 뚝뚝 떨어지는 새콤함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오매, 이쁘요오. 오지게 이쁘요.”
옆에 앉아 하얀 베갯잇에 꽃잎을 수놓던 서운이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모으고는 새살궂게 떠들어댄다. 웃는 그 눈빛이 샘물처럼 맑다.
“니가 피운 꽃도 예쁜데, 뭘.”
“하아아, 이쁘요?”
“그래. 하얀 홑청 위에서 그렇게 빨갛게 피어나고, 노랗게도 피어나니까, 앙증맞은 것이 예쁘구나.”
“히이이 히. 근디요, 저는요, 요렇게 가지빛 돋는 게 더 이쁘구만요.”
“그래. 가지빛 꽃도 예쁘다.”
“쫌 있다가는 엄니한티 말히서 베개마구리도 연습해볼랑마요.”
생글거리며 재깔이는 소리가 여름 마당 안에 퍼진다.
“오매, 아씨, 대감마님께서 오시는구만이요.”
새살맞게 재깔이던 서운이가 무춤거리며 댓돌 아래로 내려선다.
“아버님께서…….”
소희는 들고 있던 바늘을 수틀 한쪽 구석에 꽂고서 일어선다.
“그래, 수를 놓고 있었더냐?”
도포자락을 휘감아 등 뒤로 잦혀 맞잡고 걸어오던 삼산리 양반 장익태가 마루로 올라서며 묻는다.
“예, 아버님.”
“앉거라.”
언제나 살갑고 다정하신 어버이시지만 친히 별당에까지 걸음 하시어 딸을 찾는 부친 앞에서 송구함을 느끼는 소희는 한쪽 손바닥을 바닥에 짚으며 고개를 수그린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앉아 딸을 바라보는 삼산리양반 장익태의 시선은 별당의 마루 뒤로 열려진 문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백일홍 나무의 붉은 꽃에 가 앉는다. 오라비들과 남동생 사이에 고명으로 넣은 듯 끼어 태어난 딸인지라 그 정이 자별하여 따로이 별채까지 지어 기거하게 해 준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가 오늘은 아내 삼산리댁을 동반하고서 걸음 한 것이다.
“얘야, 내가 복이 많아 너 하나를 고명으로 두어 흐뭇하였더니, 이제 너를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흐뭇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던 삼산리양반의 목소리에 물기가 젖는다.
“너의 혼처가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강물 일렁이듯 하시는 모양이시구나. 내내 좋아라 소리 내어 웃으시고 수염을 쓸어내리고 매급시 장죽 늘어뜨려 뻐끔대시더만 때아닌 눈물바람 하시는 양이시구나.”
하얀 이를 고르게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도 흉을 보듯 나무라듯 말을 하는 삼산리댁의 눈가에도 눈물이 인다.
“…….”
“네 나이 열여덟이니, 늦지는 않았다만 빠르다고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얼굴이 귀밑까지 발그레해지며 고개를 외로 트는 소희의 모습을 보는 삼산리댁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삼산리댁의 내려놓은 무릎 위에서 태극선이 흐뭇한 바람을 일으킨다.
“아마도 네가 들어갈 시집에도 우리 집과 같이 별채가 하나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백일홍이 볼 만하다 싶게 피어 있을 것이다.”
“…….”
“너도 짐작하겠지만 저 피향정 가까운 곳에 집을 두고 여름 한 철 낮으로는 백일홍 나무의 붉은 꽃으로 선비의 청빈을 수학하고, 밤으로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탁해진 귀를 씻고 눈을 씻으며 마음을 닦는 선비, 태인(泰仁)의 향반 이명헌 대감의 자재 도영이 네 배필로 정해졌구나.”
한동안 아버지 장익태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사랑채에는 큰사랑이고 작은사랑이고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아 안주인 삼산리댁의 하루는 분주하기만 하였다. 며늘아기들이 있어 수발을 들고, 하인들이 있어 허드렛일들을 발끝 닳게 해내니, 손님들 대접에 소홀함은 없지만 새새 틈틈 생겨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하여 허리 펴고 앉았을 새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아기를 빠지지 않는 곳에 혼인시킨다 하니 한시름 놓을 수밖에 없고, 사윗감 도영은 인근 가깝고 먼 동리들마다에서 한다하는 집안들은 저마다 사돈 맺기를 은근히 바라는 수재였으니, 어머니 삼산리댁으로서는 사뭇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입추가 지나고 삼복더위도 가신 어느 날 태인의 피향정 상연지 · 하연지의 향훈(香薰)에 깊이 물든 사주단자가 도착하였다. 동문수학하던 벗들 중에서도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고, 세상에 대한 이상도 맞아 둘도 없이 지내오던 두 사람이 친구의 아들을 마음에 올리고, 친구의 영애를 마음에 실어 서로 사돈 맺기를 약조했던 것이 이제 동심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직 사주단자가 오는 의례적 행사임에도 혼례를 치르는 날만큼이나 설레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길한 날이라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쾌적한데, 아침부터 까치는 고샅을 살피느라 은행나무 사이를 오가며 울어대고 있었다.
사주단자를 가지고 오는 손님들을 위한 음식과 가까이 사는 친지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 냄새가 고샅으로 퍼져나갈 무렵 드디어 태인 쪽에서 사람이 왔다. 곧게 난 길을 쭈욱 따라오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게 되는 곳, 정읍천이 흐르는 길목에서 조금 들어간 마을 백일홍 향기 그윽한 집에 사주단자가 도착했다.
주인 장익태와 부인 전주이씨가 대청에 화문석을 깔고 앉아 상 위에 정중하게 놓인 사주단자를 받았다.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고 간지에 근봉(謹封)이라 쓰인 띠를 두른 빛깔 좋은 남빛의 보자기를 펼치자 싸릿가지를 젓가락처럼 모두어 물려 놓은 흰 봉투가 들어 있었다.
좋은 간지 한 폭의 겉에는 ‘사주(四柱)’라는 두 글자가 반듯하게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명헌 영감의 가까운 친지 가운데 부부가 함께 해로하면서 자식도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낸 어떤 복 많은 사람의 점잖은 손끝에서 풀려나온 글자이리라. 스스로 겸허해지는 마음으로 공손하게 받쳐 들고 펼쳐본 이면(裏面) 제 이첩(二帖) 안에는 도영의 생년월일시가 가지런하게 쓰여 있었다. 한 줄로 삐진 데 없이 정갈하게 쓰인 사주가 장익태의 눈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였다. 그것을 포장하듯 말아 종이봉투에 담고는 그 끝을 풀로 살짝 붙인 후 싸릿가지를 젓가락처럼 모두어 물려 놓은 것이었다.
이제 날렵하게 벋은 싸릿가지의 머리에 얌전하게 묶인 타래실의 동심결은 또 하나의 날짜를 가지고 다홍빛의 보자기에 싸여 도영의 집으로 갈 것이다.
장익태는 사주단자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내주었다. 사랑채 끝 한 방에 상을 맞대어 놓고는 갖가지 전과 적을 내주고, 맛깔스럽게 버무린 색색깔의 나물과 간이 잘 밴 고기도 넉넉하게 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작년 만추(晩秋)의 그늘 아래서 빚은 술 한 병을 내어 주기도 했다. 걸어서 가는 걸음이 지칠 때쯤 술 한 잔 하고 가라며 노잣돈 몇 닢을 손에 쥐어 주었다. 모든 것은 주자가례에서 얻어낸 예법에 의한 것이고,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 서로 다른 예법에 따른 것이라지만, 어디 그것에만 따른 것이겠는가. 오랜 벗, 동문수학하던 벗의 자재를 사위로 맞는 기쁨과 고명딸을 보내는 아쉬움이 갈마드는 것을 갈무리하려는 아비의 심정이 빚어낸 것이리라.
사나흘의 낮과 밤은 ‘연길(涓吉)’이라는 두 글자 속에서 소희의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음속 충동들, 뱉어낼 수 없는 변덕의 언어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생겨나는 대로 묶어둘 수밖에 없는, 귓가에서만 익숙하던 낯선 도령의 정혼녀 소희는 먹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느껴지고 먹었는데도 먹지 않은 것처럼 허한 느낌이 드는 시간들 속에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연길’은 사주단자가 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도영의 집에서 의혼(議婚)이 있고 난 뒤 사주단자를 보내기 전 택일을 해둘 것을 귀띔했었다. 그에 따라 아버지 장익태와 삼산리댁 이 씨 부인은 심사숙고하여 곱게 물든 단풍이 온 산을 뒤덮는 만추의 어느 날 은행잎이 노랗게 날리는 푸른 하늘에 햇살 고르게 퍼지는 날을 기약해 두었다. 그것이 이제 사나흘을 두고 지속된 불면의 밤을 뚫는 화살이 되려는 것이다.
아버지 장익태는 인동 장씨 문중의 한 어른을 청해 택일단자를 쓰게 했다. 알맞게 두껍고 질 좋은 간지 한 폭을 취해 겉봉투에 ‘연길(涓吉)’이란 두 글자를 썼다. 붓을 잡은 노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평상시 두루두루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집안 간의 대소사에 관한 일들을 의논하며 오가던 푸근한 손길들이 오늘은 어쩐지 진중한 가운데서도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면(裏面) 제 이첩(二帖)을 두 줄로 나누어 첫 줄에 ‘전안(奠雁) 모월 모일’이라 쓰고, 둘째 줄은 ‘납폐는 같은 날 먼저 행합니다. 〔納幣 同日 先行〕’라고 썼다.
집안에서 복이 많은 노인이라 하여 늘 존중하며 공경하는 어른이었다. 항렬이나 촌수에 구애됨 없이 연장자로서 어른이고, 평상시 인품의 후덕함이나 두터운 부부금슬과 자손들의 번창에 손실이 없어 가히 집안의 어르신이라는 신(神)의 칭호를 받는 노인이었다. 정읍 들녘의 한 마을 입암골에 사는 노인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가의 정을 나누며 살아오던 면면들이건만 오늘 붓끝이 흔들리는 것은 분명 상서롭지 못한 징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의 좋은 일이다. 내 혈육의 정을 다른 이의 혈육의 정과 맺어 또 하나의 혈육을 빚어내는 까닭에 미세한 것들은 찰나의 촉수에 맺혀 햇빛에 닿은 이슬처럼 스며지게 하는 것이 덕(德)인 것이다.
사주단자보다 먼저 쓰여진 택일단자는 사나흘을 묵은 아침 도영의 집으로 갔다. 사주단자를 감싸고 온 진한 남색의 보자기가 이번에는 소희네 택일단자를 감싸고 다홍빛으로 되짚어갔다. 지극히 삼가는 마음과 행동이 혹시라도 모를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 조아리고 조아리는 속에서도 마당 가득 퍼지는 웃음소리……. 그러나 열여덟의 가을, 그 깊은 가을날의 상심, 그 기억의 꾸리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레 소리를 삼키는 열아홉 여름밤 빗속에서 가물거린다.
뛴다. 점바치 석구네의 버선 신은 발이 뛴다. 뒤꿈치가 한 뼘 높이로 들리며 앞으로 모아진 발가락들이 땅을 차고 오른다. 젖혀진다. 늙은 여자의 굵은 허리로 떠받친 실팍한 어깨가 굼뜨게 뒤로 젖혀진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지전다발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리고, 청·홍·황·백·녹의 깃발들이 한손에 잡혀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석구네의 몸이 순간 멈춘다. 그리고는 뒷짐을 진채로 상 앞에 펼쳐진 화문석 위를 뱅뱅 돌며
“허어, 차암. 벨일이다. 허어 벨일도 다 쌨다. 메느리 니가 왜 나를 찾냐? 멋할라고 니가 나를 부르냔 말이다아?”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는 몸짓을 하며 배뱅거린다.
앵무새를 부르며 울던 점바치 석구네는 무가(巫歌)를 부르면서 의뢰자의 조상들을 일일이 불러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 오늘 굿에 참례하는 자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그들의 무탈한 삶을 주문했었다. 일 년 열두 달 살아 있는 자손들을 찾아들어 괴롭힐 부정한 액(厄)들을 거두어 가고, 뭐든지 맘먹은 대로 뜻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비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비는 말들 속에서 자진모리 가락으로 빠르게 몰아가는 천문이와 천수, 종수의 장구 · 아쟁 · 젓대, 소희의 징 소리에 맞추어 지전다발을 양 어깨에 올리고는 하늘을 나는 커다란 참매의 모습을 하더니 허공을 가득 메운 구름을 젖히고, 또다시 매의 날개로 훨훨 나는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두 다발의 지전을 한쪽 어깨에 걸고, 깃발들을 모두어 잡고 춤을 추더니, 빠르게 몰아가는 ‘나나나나나나, 아아아아앙아, 으으으으어어……으이어~’ 구음 소리에 휘말려 드디어 의뢰인의 시어머니 혼령을 끌어낸 것이다. 망망한 허공의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한 시대를 살다 간 혼(魂)의 넋들을 굿마당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참, 벨 일도 다 쌨다. 니가 나를 왜 불렀냔 말이다.”
들고 있던 오방 깃발들을 돌돌 말아 그 중에 하나를 꺼내 들더니,
“내가 니 청춘아배다. 정 씨 아배란 말이다.”
다시 깃발 하나를 꺼내 들고는,
“너그 아배가 날마동 너를 들멕임성, 따라댕김성, 늘 니를 잘 살게 할라고 발싸심을 하더마는, 오늘은 이렇게 불려 나왔는디…… 귓구녁 가립다고 구사리 떨지 마라. 니 아배 묏둥으 가서 나무가…… 큰 나무가 뿌리를 쫘악 뻗어갖고 니 아배 귓속을 파고들어강께 그러는 거여. 맨날 귓구녁 가립다고 후빔성 궁시렁거리지 말란 말이여.”
손을 들어 귓구멍을 후비는 시늉을 하고 귓바퀴를 쓱쓱 문질러대더니 두꺼운 입술을 씰룩거리며 뒤뚱거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두 손을 가슴에 합장해 모으고는 석구네에게 말을 건다. 마치 석구네가 자신의 시어머니나 되는 것처럼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묻는다.
“어떡기는 어떡히야? 묏등으로 가서 양쪽으로 크게 뻗어 있는 나무를 캐내고 뿌리를 걷어내야지. 흐응……그란디……, 너는 못히야. 죽었다 깨나도 용기가 없어서 못 히야. 그렁께…… 그냥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죽어. 벨 수가 있간디?”
굿을 주선한 며느리의 얼굴을 스치듯 살피며 핑 돌아선다. 그리고는 흐응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외로 튼다.
“어짤거나……쯧쯧, 문제구마는…….”
둘러앉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서 걱정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온다.
“금메, 지이난번이도 길은리 저티 살던 사램이 언지부터 시나브로 그렇게 허리가 아프다고 허더니마는 아예 드러누워버맀다는디, 아무리 해봐도 안 됭게 이웃 동네 당골네한티 가서 물어봤덩개비여. 아, 그랬더니 저렇게 조상 뫼를 가서 보먼 알겄잉게, 가보라드리야.”
“그리서 어떻게 됐디야아?”
“아니나 다를까. 가서봉께 쑥대가 사람 키만이나 허게 뻗어 있드랑만. 그런디다가 뭔 지랄헌다고 묏등 가차이 참나무가 자라나갖고는 걍 때왈나무(산딸기)허고 엉키갖꼬는 맹감나무 뿌랭이가 좀 찔긴가? 고놈까지 뭣까지 걍 꽈악 지서갖고 묏등이고 멋이고 없드리야아.”
“그리서?”
“아, 그리서는 뭣이 그리서여어? 괭이고 삽이고 멋이고 걍(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갖고 가서 다 캐내고 왔다지. 그랬등마는 허리 아프다고 죽는다고 옴싹도 달싹도 못허든 사램이 걍 뿔떡 일어나갖고 기냥 걸어댕기드리야아.”
“아이고, 나무 뿌랭이 고것 참말로 무선 것이네이?”
“아, 그랑께 저 양반도 자손들 따러댕김서 좀 히달라는 거 아니겄어?”
“아이, 그런다고는 허더만……글먼 멋히여? 거 길쌩이 아배 고 덕으로 뿔떡 일어나갖고 걸어댕기더만……몸땡이 멀쩡해징게 신바람이 들었능가 산바람이 일어났능가 기냥 바람이 나갖고는 큰마누래 눈이서 눈물만 옴싹허니, 한 동우나 되게 뽑아냈다등마안.”
“에이그……그것이 어디 한 동우만 되겄어? 웬수놈이 나갔다 들어만 오면 술을 잘칵 먹고는 마누라를 두둘겨 팼싼께네 두 동우가 넘쳐 세 동우 되드랑마안…….”
“그렁께 그런 일도 헐라먼 잘 봐감선 히야 쓰는디……”
“에그으 쯧쯧……. 글먼 바람나갖고 큰마누래 눈물 빼는 디는 뭣이 약이단가? 어느 묏등을 파야 된당가아?”
“머여? 염병, 지랄헌다아. 거그 양반 바람났능가? 정이나 궁금허먼 가서 붙잡고 물어보시등가아.”
마당가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쭈그리고 모여 앉아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수군댄다.
석구네는 연신 깃발을 들이밀며 뽑아 들게 하고 뭔가 비밀스러운 말을 하는 양으로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여름날 뜨거운 낮이라 땅 밑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석구네 굿마당 공수의 재미에 빠져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훅훅 끼쳐오는 더위에 땀이 삐질거리는데, 멥쌀 위에 꽂혀 제 몸을 태우는 촛불은 바람 따라 일렁인다. 어느 것은 바람이 성급하게 닿았던지 반이 넘게 타들어가 도막초가 되어가고, 어느 것은 자지러지며 타오르고 다시 자지러지다가 끝내 꺼지고 만다. 며느리는 꺼뜨리면 안 될 것을 꺼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성냥을 가져다가 이웃 불을 옮겨 붙인다. 신성한 굿마당에 부정이라도 끼어들까 겁먹은 탓이리라. 촛불이야 타든지 말지든 게의치 않는 석구네는 금강산으로 가고, 설악산으로, 속리산 거쳐 지리산을 가더니 한라산까지 간다. 그리고는 무등산을 돌아 첨찰산까지 온다. 산천 경계 구분 없이 어디든 순식간에 오고 가는 신들의 유람지를 따라가던 석구네가 느닷없는 어린애 탯거리를 한다.
“까까도 없고, 까자도 없고, 나 일 안 해.”
석구네가 의자에 앉으며 혀짧은 소리로 응석을 부린다.
“허허, 까까도 없고…… .”
‘더덩 쿵 따. 흐응.’
천문이가 말을 따라 하며 응석을 받는다.
“까자도 없고 사탕도 하나 없어. 나 일 안 해. 일 꺼구로 해버릴 거야.”
입을 삐죽 내밀고 지전 다발을 매만지며 투정을 부린다.
“그러게. 사탕도 없고, 돈도 없고, 쯧쯧……”
동정을 하는 말로 어르고 달래는 소희의 구음을 듣고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을 빼문다.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돈 쬐깨씩 갖다놓고 점보면서 지만 좋고, 할아버지한테 까자도 안 사오고, 사탕 한 봉지도 안사와. 우리 동자 심심하다는구만.”
결국 굿판에 판돈이 나오고 어디서 나온 것인지 과자와 사탕이 나온다.
그제서야 화가 풀린 듯 신이 오른 석구네는 천문이가 쥐어주는 종이돈을 못이긴 척 받아 이마에 붙이며 황송한 표정을 짓고는 히히 웃는다. 그러다 사탕을 둘러보고는
“사탕도 꼭 지가 좋아허는 것만 사다놓고……어이구, 차암.”
뒤돌아서며 눈을 흘긴다.
“내가 누군지 알어?”
“누군디?”
“내가 6빠여.”
“어? 6빠가 있었어?”
“그람 있었지.”
“나는 5빠 까지는 아는데 6빠가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디?”
“있었어. 내가 어리서 홍역이 들어갖고 죽었어. 우리 어매가 나를 추운디 여기 요렇게 타진 가래바지를 입혀 놓아가지고 내가 추워서 얼어 죽었어.”
의자에 앉은 석구네는 손을 가랑이에 대고 설명을 하며 동정을 구한다.
“야아, 내가 니 할머닌디, 내가 손주메느리 따라댕김서 도와줌서 제삿밥 얻어먹고 댕기는디, 니 에미 그 멍칭이 나한티 독하게 당했어. 내가 아들이 하나였어. 오대독자였단 말이다. 그란디 죽겄다고 공들이서 아들 손지 낳아 노응께 여섯이나 낳았는디, 이년이 내 손지를 가래바지를 입혀갖고 죽였다고오…… 나한티 욕 죽게 듣고, 독하게 당했어. 내가 싸낙단이여. 얼매나 싸난디?”
이제 와서 굿판에 서니 죽어서 넋으로 온 며느리에게 미안한 것인지, 화를 내고 구박하며 괴롭혔던 것이 당연한 처사라는 것인지, 애매하게 말을 하며 애매하게 웃는다.
홍역, 그것이 무엇이던가.
징을 두드리며 넋의 말을 들어주고 얼러대던 소희의 가슴에 불이 인다. 비밀스러운 가슴 골짜기에 불이 붙더니 이내 활활 타오른다.
아, 저것은, 저것은 무엇인가.
저 꾸리, 실꾸리, 기억의 저 실타래를 따라 걸어오는 저이는 누구인가.
“누구요? …… 지금 여기가 어딘데, 또 나를 따라오는 것이요?”
“……. 히잇.”
“누구……당신은, 당신은.……하얀 옷을 입고 밀려드는 성난 파도 앞에 서 있는 당신은…….”
손사래를 친다. 엉겁결에 뒤로 물러서며 손을 내젓는다.
“그대가 죽인 사람, 나는 그대요. 그대가 죽여 묻던 시간에도, 그대를 찾아 헤매던 시간에도, 나는 그대였소.”
소희는 징소리 속으로 도망친다. 천문이의 간드러지는 장단 속으로 숨고, 종수가 부는 태평소 날라리의 귀를 찢는 소리에 숨어보아도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환영, 그것과의 맞닥뜨림 앞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한 발 딛고 설 땅조차 없다.
“잘 살았소?”
묻고는 빙긋 웃음을 친다.
“…….”
눈물이 흐른다. 창백해진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징을 붙들어 안고 콰과광 콰과광 콰과광광콰앙쾅 콰과광쾅쾅쾅 절정의 언덕으로 달려가던 소희, 그네는 그곳이 아직 피안의 언덕이 아님을 본다. 뒤돌아선다. 그네를 뒤쫒던 형상이 마주 선 자리에서 스르르 스치더니 들어온다. 움찔하던 그네가 후르르 몸을 턴다. 묵직한 그네의 가슴이 한 조각의 매듭을 게워낸다.
조가비를 닮았다. 어찌 보면 삿갓모양이기도 한 그것은 그래, 그 여름 그 마루, 저만치에 피어 있던 백일홍 꽃그늘 아래에서 태극선을 부치며 태극의 물결처럼 화안하게 웃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부챗살처럼 짙은 갈색의 비늘 모양 껍질에 덮여 사십 하고도 두어 개의 골로 파인 조가비, 속살은 붉어 피를 머금었다.
“아니, 어떻게.”
삼산리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넋을 놓아버린 모양으로 떠억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곧 점심이라 때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에 혼수로 쓸 옷감 바느질거리를 놓고 무심히 밖을 나오던 삼산리댁은 사랑 앞마당이 술렁거리고 사람들의 소리가 왁자한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섰다가 달려오는 허서방을 쳐다본다.
“큰마님, 저어기 저기…….”
“무슨 일인가? 왜 이리 호들갑인가?”
허리를 반으로나 접고 허둥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허서방을 내려다보며 다그친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이 예삿일이 아닌 듯싶다.
밤새 꿈자리가 시끄럽고 사나워 어쩐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차에 어수선한 사랑에 불길함을 느낀다.
“마님, 큰마님, …… 어흐흐읔 ……. 별당아씨와 정혼하신 도령께옵서 …… .”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는 허서방을 밀치고 삼산리댁은 사랑으로 달려 나간다.
하얀 상복을 입은 사람의 손에 들린 부고장과 위패를 바라보던 삼산리댁은 아악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맥없이 주저앉아버린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장익태는 아들들에게 뒷일을 처리하라 겨우 입을 떼고는 침통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힘없이 방문이 닫히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하던 큰아들 정훈은 어머니 이 씨 부인을 부축케 하고는 별당으로 사람을 보낸다.
서운이네에게 전갈을 받은 소희는 후루루 떨리는 걸음을 주체할 수 없어 붙들려 걸어 나온다. 그리고는 위패를 들고 온 사람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한다. 날카롭게 찌르며 파고드는 가을 햇살에 눌려 어지럼증을 느낀다. 허공이 빙 돌며 감긴 눈꺼풀 안이 하얗게 일렁인다.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린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자신의 얄궂은 운명을 아직은 무어라 규정하지 못한 채 상황을 묻는다.
“무어요?”
황망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채 먼 거리를 온 사람들의 가운데 선 사람이 크음 기침을 하더니, 말을 한다.
“소저의 정혼자이신 이 씨 가문의 자재 도영 도령께서 그제저녁 무렵 하세(下世)하셨습니다. 그러옵기에 정혼녀이신 소저께 이 사실을 알리고저 이렇게 왔습니다.”
“아아, 어찌…….”
“예로써 맞으십시오.”
소희의 흑단같이 검은 머리가 풀려진다. 머리카락의 검은 윤기가 가을의 햇빛을 받아 물 위에 돋는 윤슬처럼 검은 비늘이 돋는다.
“아이고……아이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곡성(哭聲)이 마당으로 퍼진다. 이마가 땅에 닿아 쿵쿵 짓찧어지고, 흙 속에 점점이 박혀 있던 모래알들이 튀며 소희의 고운 이마에서 아물거린다. 빠지직 배어나오는 핏물이 소희의 가슴을 패는 멍이 되고 그 멍은 곧 검붉은 빛으로 변한다.
오라빗댁의 손에 이끌려 별당으로 온 소희는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무엇이 자신을 스치고 간 것인지 알 수 없다. 뒷목을 타고 올라온 한기가 관자놀이를 벗어나 가르마 반듯한 곳까지 이르러 서늘하게 퍼진다. 찌릿찟릿하게 퍼지는 전율을 느끼며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리고는 이마를 가리고 눈을 가린다. 새끼손가락이 맞닿은 곳에서 상처가 만져진다. 와락 눈물이 솟는다. 새로이 솟아 흐르는 눈물이 이미 굳은 자리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 균열의 미세한 틈을 타고 눈물이 새롭게 스며든다.
벗는다.
무어라 형언할 길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찬 소희의 눈빛에 들어오는 흰 치마와 흰 저고리에서 비늘이 돋는다. 부드러운 선이 둥글게 내려간 어깨에 힘이 빠지고, 큰오라빗댁의 떨리는 손이 고름을 풀며 울음을 운다. 꾀꼬리색 곱게 물든 저고리가 벗겨지고, 분홍빛 살짝 도는 속적삼이 벗겨진다.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코 밑 인중으로 흐르더니 턱 밑에 매달려 대롱거리다가는, 벗겨진 가슴 위로 무심코 떨어져 흐른다. 그 눈물을 보며 제 눈물을 삼키던 정훈의 처 마태실댁이 꽉 동여맨 치마의 끈을 푼다. 순간 치마 말기가 느슨해지며 눌려 있던 가슴이 툭 트이는데, 소희의 손이 떨리는 매무새로 치마의 말기를 붙잡는다. 붙잡고는 놓지 않으려 손에 힘을 준다.
“아씨, …… ,아씨…….”
터지는 울음을 목 놓아 우는 서운이네에게
“사위스럽다. 조용히 하라.”
혀끝에 힘을 주어 말하던 마태실댁도 그냥 퍼버리고 앉아버린다.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팔에서 힘이 빠지고, 앉은 다리에서 힘이 빠져 그냥 멈추어버린다.
진달래빛 고운 치마가 가슴에서 풀린다.
양쪽 겨드랑이에서 붙잡는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기다려 줘요. 나 조금만 이대로 있을 게요”
“두어라. 서둘지 마라. 그대로 두어라.”
“어머니……”
눈물이 터진다. 소리가 퍼진다. 슬픔이 흐른다.
“그래. 아가, 천천히 하자꾸나. 바쁠 일이 무엇이겠느냐……”
삼산리댁의 태극선이 잔잔하게 바람을 일으키곤 하던 무릎에 엎드린다. 고개를 묻고 울음을 우는 소희의 등을 쓸어내리는 어머니 이 씨 부인의 손이 한동안 머문 후에야 소희의 진달래빛 고운 치마는 벗겨지고, 열여덟의 봉긋 솟은 가슴 위로 하얀 치마가 입혀진다. 벼들이 수런거리는 논바닥을 휘저으며 느릿느릿 걷는 백로의 깃털만큼이나 하얀 빛깔의 저고리와 치마가 입혀진다.
벗기가 쉬웠던가.
입기가 쉬웠던가.
굳게 닫혀버린 아버지 장익태의 문 앞에서 절을 올린 소희는 택일단자에 쓰인 날짜에 그렇게 연당의 향훈이 깊이 물든 마을로 떠나갔다. 신랑 도영의 혼백이 앞을 서고, 소희의 가마 흰 덩이 뒤를 따라갔다.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렸다. 아버지 장익태는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안채의 뒤쪽에 별채를 짓고 널찍한 뒷마당에 두 사람이 다정히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너럭바위를 두었고, 높직한 담장의 주변으로는 백일홍 나무를 빙 둘러 심었다. 멀찍이 보이는 곳에 붉게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며 커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담아두려 했던 것이다. 조금은 유별나게 수다스러운 면도 없지 않으나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오던 토반이었다. 증조부대까지는 중앙에 관직을 얻어 명망이 높았던 인동 장 씨의 가문이었다. 어지러운 정계에 혐오를 느끼고 낙향하여 오랫동안 향반으로서 살아왔음에도 찾아드는 후학들이 많았다. 학문에 뜻을 둔 젊은이들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고, 어지러운 시국에 대해 토론하며 보내는 시간들은 사대부가 명망 있는 가문의 자손으로서 크게 부끄러움 없는 삶이었다. 게다가 자식도 아들 네 형제를 두었으니, 가운데 말에 딸 하나를 고명으로 두는 것도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으로는 가히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도영 역시 오랜 지기의 아들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고부군(古阜郡) · 정읍현(井邑縣)과 태인현(泰仁縣)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 곳이 아니던가. 결국 한 아버지의 세 아들이 같은 무릎 아래 앉아 오순도순 살아가는 형국의 고장이 아니던가. 저 먼 옛날 삼국시대부터 백제의 영역으로 엮이어, 서로 나뉘고 묶이고, 다시 나뉘는 역사의 굴곡을 겪어 왔으나 결국은 같은 태(胎)를 가진 형제의 고을이 아니던가. 같은 슬하의 고을 태인현의 피향정이 있는 근처에 탯자리를 둔 이명헌 영감의 아들인 것이다. 중앙의 정치에 혐오가 있다 하여도 반가(班家)의 자손으로서 뼈대가 굵은 자존심 강한 유자(儒者)의 집안이다. 그 가문의 아들 중 하나인 도영이 매우 영민하였다. 도영이 세 살일 때 소희가 태어났다. 나이에 차이는 있어도 같은 스승 아래 글을 배우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토란같은 꿈을 키워가던 소년들이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아 집안을 이끌어가던 시절, 자신들의 아들과 딸을 잘 키워 자식 삼기로 약조했었다. 그리고 집 안쪽에 별채를 지어 백일홍을 담장 삼기로 하고 쌍둥이 집을 지어낸 것이다. 그러니 소희가 도영의 집안에 가서 살아도 마치 친정의 한 두레 안에 깃들어 사는 것처럼 이물감이 적을 터였다.
잃어버렸다.
아들 하나를 잃어버렸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맑은 눈빛을 가진 젊은 인재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황망히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빠진 데 없이 예쁘고 고운 아이, 둥그런 어깨가 부드러워 어질고 현명한 아내가 되고도 충분할 아이, 밖을 닮고 안을 닮아 건실하게 자라서 백년대계 동량이 될 아이들을 길러낼 것인데, 이제 딸자식은 청상이 되고……이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상실의 아픔, 깊어가는 상처, 무심하게 찾아들 겨울은 그래서 뼈가 저리는 통한의 계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 예측이 장익태의 등허리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 잦아들게 흐느끼는 소리, 차마 바라볼 수 없어 숙인 고개 더욱 수그리다가 눈물을 쏟고 마는 여아의 작은 어깨를, 흑단보다 검은 머리카락에 하얗게 내린 눈이 온 천하를 뒤덮다가 불어오는 북풍에 얼어붙어 빙설(氷雪)이 되고 만 것보다 하얗게 차가운 옷을 입고 앉은 모양을, 차마 눈으로 목도할 수는 없을 일이었다. 차마 목도케 할 수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