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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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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3화. 점바치 석구네 박꽃분이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더덩 더덩 더덩 덩덩’ ‘덩기 덩기 덩기 덩기 더덩 더덩 덩기 덩기’ 느린 장단이 나온다. ‘쾅 쾅 콰앙 콰앙 쾅쾅쾅’ ‘콰광 콰광 콰광 쾅쾅’ 서서히 일어서는 장단의 뒤를 따라오며 흥을 올린다. 오른손으로는 장구를 두드리고, 왼손으로는 징을 두드린다. 장구 소리는 흡사 북의 소리이고, 징의 소리는 꽹과리의 소리가 곁들여진 자바라의 소리다. 두 개의 자바라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처럼 벌어진다. 냄비뚜껑의 모습과 흡사한 자바라의 소리가 방석이 놓인 땅 속으로 파고들어 그 속 울림까지 길어 올리려는 것처럼 바닥으로 퍼지는 소리가 공중으로 퍼진다. 단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천문이가 두 손으로 각기 다른 악기를 두드리며 법문을 외는 소리가 느리게 길게 물결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사방으로 퍼진다. 평상시 영신(靈神) 제자 홀로 앉아 북과 징을 두드리며 신도들을 위해 축원하는 자리로는 제법 호기롭게 널찍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날받이 씻김을 굿으로 펼치는 날 불 밝힌 신당의 자리로는 한 사람 돌아앉기에도 좁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오늘도 천문이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업의 천명(天鳴), 세습무로서의 울음을 시작한다. 열려진 문 사이로는 하얀 몸통에 검은 날갯죽지 사이로 드문드문 검은 점을 가진 새가 개울에서 날아올라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 들려오는 곳에서 푸른 하늘은 서리서리 감아놓은 한 폭의 구름을 떼어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발원하는 젊은 당골네 소희의 소리를 오늘도 듣겠노라 미리 응감하는 것처럼 오고 간다. 열려진 문 안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과 적(炙)과 전을 부치고, 시루떡과 찰떡이 익어가는 부엌 안을 들여다보며 내심 흐뭇한 웃음을 머금고 간다. 

  이미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앉은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는 때아닌 젊은 처자를 주워다가 공을 들이더니 기어코 각시로 얻은 천문이에게 하늘이 복을 주었다는 웃음엣소리가 들려온다. 곱기도 고운 것이 하얗게 핀 찔레꽃처럼 춤을 출 때면 멀리서 보아도 그대로 하늘에서 두레박 타고 내려온 선녀가 아닌가 한다는 탄성에 젖는 소리들도 뒤섞여 나온다. 

  점바치 석구네 집 마당에 차일이 쳐져 있다. 마루 밑 토방을 내려선 자리에 병풍이 세워진다. 여덟 폭짜리 병풍엔 이 마을 사람 누구도 쉽게 읽어낼 수 없는 한자로 된 문장의 글귀들이 줄 맞춰 정갈하게 씌어 있다. 먹물의 농담(濃淡)이 어느 문사(文士)의 손끝에서 희롱을 당했는지 이 마을 사람들이야 알 리 없지만, 획 하나하나 아주 사소한 삐침에 이르기까지 붓의 터럭이 모자란 데  없이 오고 간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대로 두고 보는 여백 사이에서 검은빛 현란하게 어우러진 글귀들은 당골네의 사설에서도 빼놓지 않고 읽혀지는 공자씨 맹자씨의 말씀들일 것이다. 그 거룩한 글귀들 위로 망사시(무구의 하나로 혼령의 몸이 실린다는 색종이)가 걸린다. 젊은 태양의 정열에 기죽은 붉은빛이 은하수 강물에 멱을 감고 나와 늘어진 품새로 구멍 난 가슴을 바람에 날리운다. 울울창창 소나무 숲 앳된 송진으로 물든 푸른빛이 물푸레나무 우거진 곳, 노련한 수달이 덩치 큰 물고기를 덥석 물고 가는 강물에 몸을 씻고 온 품새로 구멍 난 가슴을 바람에 날리우고 있다. 명주실 한 올 한 올 사이로 스며들던 치자물이 가난한 이승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이웃집 경계에 선 담장을 타고 오르며 노란 꽃 봉울봉울 피워 올리는 호박넝쿨에 몸을 씻고 온 품새로 구멍 난 가슴을 너실너실 바람에 날리우고 있다. 그것을 두고 점바치 석구네는 오늘 씻김의 망자가 타고 날아갈 바람꽃, 혼령의 몸이란다. 가난한 점사와 가난한 굿마당에 저승의 강을 건널 용선(龍船)이 없으니, 대신 타고 갈 혼령의 몸이라고 말을 한다. 무엇이 서러울까. 죽어서도 벗지 못하는 가난의 질곡이 서러울까,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덧없음이 서러울까. 속속들이 알고 지낸 이웃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을 찾아와 날을 받고, 씻김을 청하는 그 인연이 못내 서러운 모양이라. 영신제자의 슬픔일레라. 


  이제 천문이가 외는 법문은 오늘 초대될 망자들이 살아 있던 날들의 이름을 부르고, 살아 있는 가족들의 이름을 부른다. 이미 저승의 원혼으로 제 갈 곳을 찾아갔을 것이지만 좋은 곳으로 들지 못하고 음습한 곳에 영혼의 형상을 두어 등나무 줄기가 칡넝쿨의 줄기를 만나 서로 엉키고 비틀어져 공중으로 솟는 것처럼 벗어날 길 없는 고통의 늪에 빠져 허덕일지도 모르고, 먹을 것을 찾지 못하여 메마른 언덕에 앉아 멍한 눈으로 풀풀 날리는 먼지를 바라보고 있을는지도 모를 영혼들을 한자리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땅 속으로 들어간 몸은 이미 육탈이 되고도 훨씬 넘어 사대육신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느낌조차 없이 그저 놓인 그대로 한없는 세월 속에서 녹아 없어졌을 것인지도 모른다. 신당에서 신들을 모시고 듣기 좋은 음성으로 예를 갖추어가며 장구를 두드리고 징을 두드리는 천문이에게 지금 이 순간들은 천문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천문이의 살아 있는 의식과 살아 있는 몸속을 흐르는 피는 펄떡거리는 심장 박동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신을 영접해 오는 사신의 것이다.


  철이 들어가던 무렵부터 천문이는 어머니 성심이의 구슬픈 음성에 실린 넋풀이와 어머니 곁에 앉고 서며 장구를 두드리고, ‘우우우우, 어어허어어허허어, 에나데야, 어어어어- -’구음을 넣어가며 신명을 넣고, 귀신을 구슬리던 아버지 백수의 시간들을 무척이나 거세게 거부해 왔었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서 자식 낳고 길러가며 오순도순 살라고 이름 지었다는 아버지 백수의 일이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때로는 더럽고, 때로는 공포스럽고, 때로는 환멸이 일던 것들이었다. 작은 아버지와 장가 안 간 삼촌까지 징을 두드리고, 젓대를 불며 귀신을 달래어 저승으로 보내며 산 사람들을 위무하던 숙명의 시간들이 어린 천문이에게는 머리털 곤두서고 등골에서 차가운 땀이 솟도록 무섭게 서러운 일이었다. 

  “천문아, 니 이름이 왜 천문인 줄 아냐?”

  길게 잘라놓은 창호지를 반으로 접고 또다시 반으로 접으며 귀퉁이 어긋난 데 없이 꾹꾹 눌러 접어가던 손길을 잽싸게 놀리던 백수가 지나가는 말로 묻고 있었다. 

  “알고는 있어라우. 근디 내는 이 이름이 싫구만이라.”

  “뭐여, 싫다고? 니 이름이 왜 싫은디?”

  삐뚤빼뚤 가위를 굴려가며 종이를 자르던 손을 멈추며 묻는다. 말끝이 위로 올라간다. 

  “하늘 천짜에 들을 문짠게, 하늘의 소리를 들으란 것인디, 저 멀디 먼 곳에 있는 하늘의 소리가 듣는다고 들릴 것도 아니고, 들린다고 해도 그놈의 소리가 아부지가 허고 어매가 허는 일을 나헌티도 허라는 것일 틴디, 참말로 싫구만이라.”

  “그리여……? 싫겄제. 무섭기도 허겄제. 나도 너 만 헐 때는 이 일이 죽살나게 싫었어야. 나도 이 일이 좋아서만 허는 것이 아니다아. 달리 말허잖에 타고난 팔짜가 이것뿐잉께 허는 짓이고, 먹고살 길이 이것뿐잉게 허는 짓이다만, 그렇다고 달리 할 것도 없잖으냐?”

  “없기는 왜 없어라우? 찾아보믄 참말로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인디, 꼭 이 일로만 먹고사는 것을 해야 쓴단 말인기라우?”

  “그리여. 많이 있겄제. 조도 사람들 사는 것 보믄 닻배 몰고 칠산바다 나가서 조구도 그물 한가득 잡어오고, 가학 사람들, 가치 사람들 장도 저어 섬에 가서는 매루치도 잡어오고, 소포뻘 사람들 모치(어린 숭어)도 잡고 숭애도 잡어오드라만…… 그렇다고 그 일들이 내가 허고 살 일은 아니더라 그 말이여. 어디 소포뿐이겄냐? 마사든 거제든 보전이라고 다를 것 없고, 금노까지도 말할 것 없제. 물 빠진 뻘에 가서 죽겄다고 삽질허고 뻘질허고 손꾸락 집어넣어갖꼬 대가리로 뻘 속 쑤셔감성 내빼는 낙지놈 쭈욱 잡아 빼갖꼬 그놈을 살아 있는 채로 잘잘잘 썰어서 참기름에 둘러 먹는 사람들 말이다, 그 맛이 일품이라 몇 날이고 입 안에 착 달라붙어 주저앉은 소도 일으켜 세울디끼 기운이 뿔떡뿔떡 솟게도 한다지만 말이다아……, 그란디 말이여, 그 일은 내 아부지가 할 수 없었던 일인 것맹이로 나도 할 수 없었는디 말이여, 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다 타고난 분복대로 살다 가는 것이제. 별 것 없다아는 말씀이여.”

  “왜 못헌다요? 허면 허제. 어매 같은 아짐네덜도 비쭈깨(전복) 껍데기 한 조락(대바구니) 들고 가서 바우끝 바닥에 붙어 있는 돌파래도 긁고 가시리도 긁어 오는디, 조새(굴 까는 도구) 들고 가서 바우에 붙은 굴쪼가리들만 따도 하루 세 끼 굶지는 않을 틴디, 날마동 귀신들 넋이나 불러내어 얼르고 달개는 것보담은 깨끗허고 당당헐 것 같소라.”

  넋두린지 타령인지 제풀에 흥에 겨워 가위가락 신명 내던 백수는 따박따박 말을 받으며 어린 속을 펼쳐놓는 천문이를 눈이 찢어지게 찡겨본다.

  “멋이여? 좇 달고 나온 사내새끼가 그래 부러뵐게 없어 아짐네덜 옹개종개 앉아갖꼬 비쭈깨 깍작거리는 것이나 부러뵌다고 하냐? 에라이 빙신 같은……, 쩟, 못난 놈…….그것이 그리 당당허게 부러뵈냐? 쩌그 뒤엄자리 남새밭 너메 파밭이 가서 넘 안 보는디 좇 띠어부러라. 이 오살헐 놈아.”

  “아따따아. 뭐언 아들을 보고 그리 막말을 헌다요? 오살이 뭐요, 오살이. 그저어 헌다는 소리마다 쯧……. 그리 안 시키도 때 되먼 지 알어서 다 헐 것인디, 머엇 헌다고 그리 쪼사쌓소. 할 일 징허게 없소이. 고러고 한가허면 토지(토방)에 앉어서 젓대나 한 번 더 불어봇시오.”

  “아, 배워야 헐 것 아니여? 산 사람 애간장을 졸였다 풀었다 헐라믄 지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야 허고, 삼현육각 귀신 숨넘어가게 뜯고 밀고 헐라믄 지가 연습 안 허고 되간디. 저놈의 대글빡 속이는 머엇이 들었간디 샛바람 찬 소리만 허고 사람 심 팽기게 허는지……쩟. 참말로 깝깝허구만.”

  하던 일을 내던지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쩟쩟 혀를 차는 백수를 노려보던 천문이가 소리를 지르듯 말한다. 

  “아새끼덜이 손꾸락질 험성 놀린단 말이여라.”

  “…… 놀리기는 어떤 놈이 놀린단 말이여?”

  “누구라고 말해주믄 별 수 있능기라? 내 지나갈 때마다 짜식놈들이 당골네 새끼 지나간다고 손꾸락질 허고 놀리고 지들끼리 얼굴 맞대고 빙글거림서 놀린단 말이요. 내는 싫소. 그 일은 내 일이 아닌기라. 하늘 소리고 땅 소리고간에 내는 소리 듣기 싫응께 들으라고 해쌓지 마시기라.”

  “빌어준 정이라고는 에헤, 아이구우…… 칠팔월 복더우에 손 씻디끼 싸악 씻어버리고 사는 놈들의 시상, 썩어 자빠질 놈들의 시상잉께……. 그리도오, 아무리 저그들이 달린 손꾸락으로 가리킴성 비웃을 것 같어도, 그놈들 말이다, 쳇, 기도 안 차제이. 우리 같은 사람들 없이먼 당장에 낼모레라도 눈앞이 캉캄허다고 메칠씩 데리러 댕길 것잉게 넘 설워 말어. 어쩌네 저쩌네 히도 이 일을 하먼 그 놈들 집구석들맹키로 굶는 날보다는 배부른 날이 더 많을 것이여. 구신도 목어본 놈허고 못 먹어본 놈은 때깔부터가 다릉께……. 그랑께 잔소리 허들 말고 따라댕김서 씻김허는 어무니 도와서 허드렛일도 허고, 북, 장구 치는 것도 배우고, 뿔피리고 대금이고 부는 것을 연습히야. 어쩠든지 이유 없이 아퍼서 죽겄다고 나자빠지고, 애기 낳는다고 빌어달래고, 크는 애기 무병장수 빌어주래는 디는 니 어매랑 내가 댕김시로 허면 되겄지만 혼 건져 올리고 넋 씻어서 존 시상 가게 허는 디는 남자가 있어야 항께 뒷소리 허들 말고 너그 어매 쓰는 용선의 꽃도 맹글고 넋전 맹그는 것도 짬짬이 도와감서 작은아부지랑 삼촌 허는 거 배워둬. 알겄냐?”

 백수의 손에서 삐뚤빼뚤 뒹굴어가며 놀던 종이 가닥들이 성심이의 손에서 머리채 잡아 묶이듯 한자리에 묶여 두툼한 지전(紙錢) 다발이 된다. 


  어느새 마당에서는 상이 다 차려진 모양이다. 대문 앞 한 귀퉁이에도 걸게 한 상이 차려지고 대문 밖에도 하얀 쌀밥에 잘게 썰어진 두부가 깍두기 모양으로 뽀얀 국물 속에서 기름기를 두르며 볕을 받고, 시금치 옆 옆으로는 뿌우연 속살 하얗게 드러낸 무나물이 고사리와 토란대 무침 옆에서 상긋 웃음을 짓고 있다. 노릇노릇 잘 익은 껍질 속에 하얀 속살을 바닷물 드는 결과 바닷물 나는 결 모양으로 포개어 접은 조기의 푸른 눈빛이 허공을 맴도는데, 점바치 석구네의 지시를 받은 아낙은 넓게 편 면포 위에 짚신 세 켤레와 검은빛의 질베를 올려놓는다. 얇은 검은빛의 질베가 뜨겁게 쏟아지는 볕을 받아 하르르 타들어갈 듯하다. 성질머리 고약한 손님의 비위를 맞추어주고 혹시라도 모를 부정을 미리 닦아내려는 것이다 보니 정성이 손님 상(바깥상)치고는 후한 것인데, 아낙은 순간 무섬증에 한기가 솟는지 후루루 떨더니 목을 조아리며 종종걸음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둘러앉아 거하게 차려진 밥과 음식을 먹는다. 상에 차리고 남은 시루떡과 절편 따위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입안으로 들어가고, 들이켜고 삼키는 소리가 걸게 잘 차렸다는 덕담과 함께 들려온다. 장구와 징을 들고 나오는 천문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어쩜 그리 경문을 잘 읽느냐는 칭찬의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팔월 한낮의 마당 후미진 곳에는 주황의 서광이 푸지게 늘어진 풀줄기 속에 피어 있고, 키 작은 분꽃이 꽃분홍 나팔 모양으로 늘어져 담장 아래 짙푸른 그늘을 만든다. 그냥저냥 놓여진 돌 틈에 뿌리를 박고 두 해째 붉은 대가리를 뻣뻣하게 세우며 건들거리는 맨드라미를 향해 참빗살나무 위로 올라가던 더덕꽃이 향내 나는 종을 울린다. 호로롱 호로롱 작은 종소리가 병풍 위로 늘어진 망사시를 훑고 지나갈 때 울바자를 타고 넘던 능소화 붉은빛이 잠깐 멈추어 한줄기 눈물을 보이고는 고개 들어 정오(丁午)의 뜨거운 하늘을 향해 눈을 감는다. 마디마디 피어난 꽃들을 두 손에 모으고는 위를 향해 올린다. 누구를 위한 기도일까. 누구를 위한 보시일까. 주황빛 날개 가득 검은 물방울 찍고 하얀 벼슬 곧게 세운 맨드라미 위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펴고, 편 날개 다시 접던 나비 한 마리가 이제는 붉은 벼슬 위에 앉아 파닥이고는 키 작은 도라지꽃 위로 옮겨 앉는다. 천문이의 소리를 받은 신들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려와 둘러보는 사이 한 많은 사람들, 죽어서도 넋으로까지 슬픈 영혼들 각자의 자리에 모여 앉아 따가락 따가락 차려진 음식으로 호강을 한다. 저도 모르게 한(恨)이 쌓여 원(怨)이 된,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 그 넋들의 소리가 점바치 석구네의 목을 타고 올라온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님이 오시려나 

  삼경(三更) 되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님을 기다리건만 

  고운님은 오지 않고 

  베겟머리만 적시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눈물도 한숨이요

   한숨도 넋이로구나

   이날 이리 생겨나서

   무슨 영화 보려고 앞뒤 제자 되었던가

   오늘 이리 제자 되고 보니

   이 길 가는 것이 고생이로구나

   무슨 죄가 그리 많었일까

   이 집 조상 저 집 조상 받고 보니

   고생이 끝이 없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새야 새야 앵무새야

   말 잘하는 앵무새야

   우리 님 계신 곳을 너는 응당 알 것이니

   내게 그 길 좀 알려주오

   이 세상 인간 세상 많다 허여도 

   내가 절로 아는 것은 없으니

   우리 님 계신 곳을 내게 말해다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마당을 빙 둘러앉은 사람들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흥에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더러는 흥에 겨운다는 것이 술에 겨워 끄윽끄윽 트림을 하고, 더러는 호기심에 겨운다는 것이 알 수 없는 곡절의 충동질에 휘말려 쿵덕쿵덕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불그레 꽃 핀 얼굴들 저마다에 오늘은 어떤 혼령들이 불려 나와 한풀이 넋풀이를 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에 젖어 두리번두리번 눈알을 굴린다. 

  왁자하던 소리들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당으로 점바치 석구네가 나온다. 다리를 절룩이고 어깨를 양쪽으로 기우뚱거리며 지전다발을 들고 차려진 상 앞으로 나온다. 하얗던 모시 저고리는 빛이 바래 누런빛이 돌고 얼금숨숨한 베올 사이로는 볕에 그을린 늙은 여자의 처진 세월이 가무스름하게 비쳐 나온다. 모시도 아닌 다만 하얀빛을 먹었을 뿐인 치마를 보고는 “이것은 속치마가 아니고, 긍께 이렇게 입어도 되는 치마여. 어찌 모시가 아니라서 좀 그러긴 한디, 그리도 이것은 흐응 속치마가 아니여.” 부끄러운 탓인지 슬며시 불어오는 바람에도 넉살 좋게 너울거린다. 

  살았을 적에는 그저 그랬을 장삼이사(張三李四)들, 죽어서는 신이 되어 불려 나오리라. 걸쳐 입은 쾌자가 호사로다. 화사한 빛깔이 눈부시게 어여쁘다. 붉음은 파란을 머금었고 파란은 붉음을 머금었다. 노랑은 연두를 안았고 연두는 노랑을 안았다. 붉은 비단 속으로 잡혀 들어간 나비들은 저 아래 고샅에 피어 있는 꽃들을 찾아 날아들고, 파란 비단 속에서 자잘하게 피어난 꽃들은 저 언덕 위에서 날아드는 나비를 향해 웃음 짓는다. 자르르 윤기가 돋는 노랑과 연두가 꿈꾸는 세상은 둥그런 세상인가. 등을 타고 내려와 허리에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동그라미 판을 그리고, 갖가지 꽃과 새를 수놓은 언덕 골짜기에서 노랑과 연두는 손을 맞잡아 석구네의 신명을 세운다.

  늙은 점바치 석구네가 지전 다발을 두 손에 모아들고 혼령들 앞에 선다. 천문이의 장구가 딱 따다다다 딱 따르르르르 울고, 작은아버지 천수의 아쟁이 애애앵 애애애앵 애애 비벼 올리는 활을 따라 비트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소희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소리로 징을 매긴다. 점바치 석구네는 동남서북 각 방위를 둘러가며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배꼽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소리를 끌어낸다. 장가를 들어 이미 자식을 둔 지 몇 해가 지났어도 천문이에게는 아직도 삼촌인 종수가 삐이이 삐이이이 삐이삐이삐이이이 힘을 주어가며 뿔피리에 숨을 몰아넣고, 그 좁은 통 안으로 밀려들어간 숨을 다시 끌어낸다. 삼키었다 토해내는 뿔피리의 소리가 석구네의 가슴을 조였을까.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 소리도 님의 소리’ 흥타령이 긁는 소리를 내며 끌려 나온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리는 님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까치소리만 들려오니 애닯다 어이 하리, 올 것인데 올 것이지만, 아니 오시네, 탄하는 여인의 애절한 속울음이 살아 있는 가족들의 부름을 받고 되살아나올 돌아간 가족들을 부른다. 끌려 나오지 않으려 꽁꽁 힘을 쓰고 뒤로 물러가는 혼령들의 손을 붙잡고 목을 부여잡으며 이승의 굿마당으로 끌어내온다. 코뚜레 비틀어 잡고 끌어내보지만 발을 땅에 붙이고 뒤로 버팅기는 소를 끌어내는 것 같은 당김과 늘임이 석구네 목줄기 안에서 배뱅거린다. 신물이 가득 올라오는 살구를 입에 물었는지, 풋 소리가 나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는지 질끈 감은 눈에서 아린 눈물이 뜨겁게 솟고, 좁은 이마와 툭 튀어나온 광대뼈 사이에 퍼져 있던 주름의 굵은 줄기가 모두 눈가로 몰려들어 솟는 눈물을 마중한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후렴이 모두의 입에서 나와 마당을 채운다. ‘허어, 그렇지. 어어 으으, 베갯머리만 적시네에 그리여어’ 구음을 넣으며 소리에 기름칠을 하던 천문이와 마당을 둘러싸고 앉아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음색으로 소리를 더한다. 흥타령 한 소절 한 소절이 있어 살아낼 수 있었던 섬사람들의 억센 설움이 개울물 소리로 돌돌돌 흐른다. 


  석구네 본래 몸에는 석구네 혼자만 살았었다. 이웃집 잘생긴 오빠야를 몰래 훔쳐보며 자라날 때 분명 꽃분이는 박꽃분이 홀로 살았다. 농사라고 해봐야 있다고도 못할 그런 집에 여덟이나 되는 형제들 속에 끼어 태어난 죄가 많아 “꽃분아, 애기 봐라.”하면 애기의 몸으로 애기를 들쳐업고 대문 앞을 서성거렸고, “꽃분아, 밥 안 앉히고 멋허냐아?” 성화가 불같으면 뽀르르 부엌으로 달려가 커다란 솥단지에 물을 둘러 씻어내고 밥을 앉혔다. 그러나 그것은 시집살이가 아닌 분명 자기를 낳아 준 엄마의 소리였다. 눈을 째리고 입을 오물거리며 뭐라뭐라 뱉어낼 것 같아도 제 엄마의 제가 듣던 소리였으니 괜찮았다. 어쨌든 제 몸 속에는 응당 저 혼자만 살았으니 성가시거나 무겁고 찌뿌둥할 일이 없었다. 다만 이웃집 잘생긴 오빠야가 학교 간다고 동네를 떠난 뒤로 박꽃분이의 하루에도 맥이 빠져 싱거운 나날 기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인생의 의미 따위나 삶의 고역 따위는 엄마의 것이었지 꽃분이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꽃분이의 이름이 석구네로 변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던 어느 날부터인가 석구네의 몸속에는 누군가 들어와 함께 사는 것 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휘둘림은 석구 아버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석구아버지의 몸은 따스하다. 나름 정에 들어 맞춤해진 것이다. 쉴 짬이라는 것도 특별히 없었다. 그 이름이 아예 없었다. 그저 눈뜨면 일하고 또 일하고, 다시 일하고, 무엇이든 눈에 보이면 일이 되고, 손에 잡히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 그네의 삶이었다. 그래도 밤이 깊어지고 코 고는 소리 살짝 들리는지 마는지 할 때면 수시로 쓰윽 옷 속을 파고 들어오는 손이 있었다. 그 손은 여기저기 괭이가 박혀 까칠하고 투박해도 눈에 익은 것이고 살에 익은 것이니, 나름 거칠어진 숨소리에 은근하게 귓가를 간질이는 손이 어디를 가든 그것은 살가운 것이었다. 옆에 누워 자는 어린것들 들리지 않게 가만가만 조심하다가도 훅 밀고 들어왔다 훅 쓸려 나갈 때에 남겨지는 뜨끈한 물이 곧 쏟아져버릴 것 같아 곤혹스럽지만 그 끈적거림은 돌아눕는 것도 귀찮을 만큼 고단한 노동의 일상에 회복제가 되는 까닭에 때때로 누리는 생의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모를 일들이 자꾸 벌어졌다. 자꾸자꾸 으슬으슬 추워지고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퀭한 눈으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듣기 민망한 욕을 하고, 멀쩡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며칠 후면 죽겠네, 씨부렁거리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 것 잃고 난 뒤에도 잘 참아내더니만……, 잊어버릴 때도 됐고만 요새 왜 또 저러까이?” 수군대고 슬슬 피해 달아났다. 약은 없었다. 어렵사리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아도 특별히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 훅 누군가 치고 들어오고, 한동안 눌러앉아 있으면서 헛구역질이 올라오게 했다. 매스꺼움이 목 위로 올라오고, 눈물이 핑 돌면서 어질어질해지는 느낌, 그것을 누가 알랴. 다만 자신의 몸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대로 둘 수밖에 없고, 싫어, 싫어 미친 듯이 고함을 쳐보지만 뱉어지지 않는 꽉 막힌 그 무엇, 그것은 신증(神症)이었다. 어느 날은 어린 것 탯거리를 하며 비실거리고, 어느 날은 뒷짐을 지고 걸으며 노인네 모양으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허허 웃고, 하는 날들에 견뎌내기 어려웠던 석구아버지가 이웃 동네 무녀를 찾아갔다. 

  생월생시를 묻고, 석구아버지 하는 말들을 주워듣던 무녀의 말을 들어 결국 신내림 굿을 했다. 그런 것이 어느새 십 년을 훌쩍 넘어 이십 년 이짝저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점바치라 부르지만 오늘처럼 날받이 씻김을 하고, 재수굿을 하는 날에는 씻김을 받기 위해 불려 나온 조상신과 살아 있는 자손들의 일이 잘 풀려나가게끔 조상신에게 아뢰고, 조상신의 말을 후손들에게 전달해 주는 머리굿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겁먹은 후손들은 조상신의 입을 빌린 점바치로부터 속 시원해질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오늘 석구네에게 슬픔이란 무엇일까. 속 아린 설움이란 무엇일까. 당자의 굿이 아닌 바에야 당자가 아플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솟구쳐 올라온다. 한탄이 밀려 나온다. ‘눈물이 한숨이요 한숨이 넋이라’고 말한다. ‘무슨 영화를 보려고 앞뒤 제자 되어 고생길을 가는가’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유 없이,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고 들어와 버린 신들의 음성을 거부하지 못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이 언제나 굿판에 설 때면 스르르 나오고 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던 신증의 그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가슴의 소리, 꽉 막힌 답답한 세월이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 헤’ 고개 마루로 올라선다. “산다는 것은 설운 것잉께”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누가 뱉는 소리일까. 둘 데 없는 시선을 끌어 모으며 온 힘을 다해 ‘새야 새야 앵무새야’ 말 잘하는 앵무새를 부른다. 목놓아 부른다. 입 언저리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반으로 접는 모양을 하고서 배꼽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심장에 닿아 터져 버리도록 있는 힘을 다해 앵무새를 부른다. 그리고는 응당 알고 있는 우리 님 계시는 곳을 알려 달라 애원한다. 자신이 가질 소식은 없는, 무릎 꿇고 앉아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저 사람들에게 응당 들려주어야 할 무정한 소식을 자신에게 들려 달라 애원한다. 쫓아가고 넘어지고 일어서다 멈추어서 한 손 땅을 짚고 한 손 들어 올려도 닿지 않을 혼령을 부르는 소리가 고개 마루에서 펼쳐진 들판에 울려 퍼진다. 들판 너머 너르게 너르게 퍼져 흐르는 뱃놈의 들판 저 푸른 바다에서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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