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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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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2화. 상생의 꽃 피었네 필봉필봉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붉게 상기된 얼굴에 하얀 이를 고르게 드러내고 웃던 희수의 얼굴빛도 물들어가는 하늘빛 아래서 복숭아물빛으로 젖어 들어 가고 있다. 아무래도 팔딱거리는 가슴이 누그러들기에는 아쉬운 모양이다. 서른도 중반을 넘어선 지 이태가 지났건만 철들지 모르는 시절의 아이처럼 헤벌쭉 웃으며 툼벙거린다.  

  흰 저고리에 흰 바지를 입고 앵두빛 더그레에 ‘가세침복’ 차림으로 빨간색 띠와 초록색 띠를 양쪽 어깨에서 허리로 질러 묶고 노란색 띠를 허리에 대어 뒤로 묶은 상쇠영감의 전립(戰笠) 위의 부포는 꽃으로 피었다 꽃으로 지고, 해로 떠올랐다 해로 기울었다. 검은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 섞여들던 하얀 머리털이 앞뒤꼭지로 번져 이제는 아예 하얀 갈대꽃 흐드러진 언덕이 되어버린 영감의 얼굴은 여기저기 검버섯이 돋고 이마와 눈가에서 굵은 줄기로 흘러내리던 주름들은 양쪽 볼에서 작은 웅덩이를 만나 입술 언저리로 밀려들었다. 주기적으로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바다의 가슴패기처럼 세월의 강을 거스르지 못한 상쇠 영감의 팥돔부콩빛 얼굴도 오늘은 꽃으로 피었다 해로 지고, 해로 떠올라 꽃으로 지더니, 이제는 숫제 달빛으로 피어나려 한다. 목포 선착장 나루터 주막집에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막걸리를 들이켜고선 쇤 가지 무침을 가무스름한 입안에 몰아넣고 우물거린다. 그리고는 텁텁한 낯빛으로 쉰소리 나게 웃는다. 미투리 안에서 뛰는 주인 따라 천방지축 땅을 울리며 깨금깨금 지긍지긍 툼벙텀벙 뛰어오르던 버선이 튀어 오른 흙 사이로 끼어들어 말라버린 검불을 뒤집어쓴 채 거친 손아귀에 잡혀 쓸린다. 발가락 끝으로 가는 손아귀에서 발뒤꿈치로 가는 손아귀를 따라 머물다가 발바닥 가운데에서 톡톡 두드리는 매를 맞는다. 위로 치솟았다 아래로 내리닫는가 싶더니 다시 위로 솟아올라 아래로 향하는 그네처럼 상쇠 영감의 손 안에서 얼룩덜룩 때에 전 버선의 하루도 눅눅하게 젖어 기울어간다.

  희수의 눈은 황홀했다. 귀는 흥겨웠다. 가슴은 울렁거렸다. 몸으로 가슴으로 몰려드는 흥겨움의 물결은 핏줄을 타고 오줌통으로 몰려들어 질금거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굿 치는 소리, 내뱉는 탄성, 깃발을 세우고 꽹과리와 북, 장구, 소고 사이에서 출렁거리는 고깔 위 꽃들의 흥분에 취해 변소에 가는 것조차 수월치 않았다. 

 전국 팔도에서 모여들었다는 농악대들의 규모는 거창했다. 희수네 소금꽃 피는 마을 소포리의 걸군농악대만 하더라도 그 수가 마흔이 넘고, 따라나선 마을 사람들만 하여도 여럿이라 근 육십을 넘어서는가 마는가 했다. 그런데 팔도에서 지역마다 작게는 마을 농악대까지 몰려들어놓으니, 그 큰 운동장이 사람들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고, 구경 나온 관중석의 사람들까지 섞여드는 통에 쇠굿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을 나온 꼴로 흥청거렸다.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붉은 띠에 푸른 띠, 노랑 띠를 두르고 울긋불긋 꽃을 달아놓은 고깔을 쓰고 있으니, 가을의 높은 하늘은 한껏 치솟아 우물처럼 깊고, 두 번 물들고도 섭섭해 세 번째 물을 들이는 쪽빛 하늘은 사람들 고깔 위에서 람실(藍實) 남실거리는데,


  굿마당으로 한 패의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이웃 마을에 걸궁굿 치러 갈 때, 마을 어귀에 들어선 걸궁패의 나팔수가 세 차례에 걸쳐 나팔을 부는 ‘나발삼초’ ‘훌—’ 소리가 뱃고동 소리처럼 울려 퍼지자 운동장 한켠에서는 ‘개갱  갱 갱 갱 갱 … … … ’ 굿 내는 가락이 힘차게 울려 나온다. 굿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상쇠가 굿가락을 맞춰보는 것인데, 그 가락의 울림이 심상찮게 느껴진다. 질굿을 시작하기 전에 상쇠가 쇠를 두드리며 치배들을 각자의 위치에 서게 하고 긴장을 풀며 서서히 제 가락을 풀어내게끔 준비하는 것이다. 시작이면서도 아직 시작이 아닌 어름에 상쇠의 쇠울림을 감싸며 우렁차게 폭을 가르는 장구와 북, 그리고 ‘덩 덩 덩 덩 덩 … … …’ 소고가 징소리에 안기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필봉마을 사람들은 한자리에 둘러서서 상쇠의 지휘에 따라 어름의 뒤를 이어 휘몰이로 빠르게 몰아치고 된삼채로 들어선다. 본가락 ‘갠 지갠 지갠  개읏개’에 ‘개갱 갠 지갠 개읏개’를 치고, 변주가락 ‘갠 지갠 지갠 뜨리갱’ 1에서 3을 번갈아 치고 ‘갠 지갠 지갠 개읏개 개갱 뜨리갱 갠 개읏개’ 변주가락 4를 반복적으로 치는 동안 물이 오른 흥은 휘몰이로 밀려든다. 

 웅성웅성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모이고 사람들의 얼굴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들떠 수런거린다. 자기 팀의 순서를 기다리는 희수도 우물 밖 세상에서 보는 생경한 것들에 대한 신비로운 동경에 취한 듯 얼이 빠져 보이기까지 한다. 

  무대의 들머리에 도포를 잘 차려입은 사내가 우뚝 선 모습이 보인다. 그 사내에게서 쇄납의 가늘고 높은 소리가 울려 나온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애간장을 쥐어짜며 인간의 오장육부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앙금이 하늘로 솟는 연기처럼 눈물과 한숨의 비탄 속에서 애가 잦게 우려 진다. 구경 나온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거대한 용이 깃발 속에서 포효한다. 삼십여 척이나 되는 대나무에 올라탄 사내가 온 힘을 다하여 판을 쓸어낸다. 깃대 끝에 매달린 꿩의 꼬리가 비질을 하려는 듯 판 위로 내려서는가 싶더니 곤두서며 공중으로 솟구친다. 푸른 용틀임이 좌중을 압도하며 푸른 물빛을 쏟아놓는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흠칫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탄성을 쏟아놓기도 한다. 검은 이빨을 바람에 날리는 지네발들이 푸른 용을 옹위하며 판을 넘보던 사악한 악귀들의 음산한 기운을 죄다 쓸어 문밖으로 던져버린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식이 끝난 침묵의 판 위로 청 · 홍의 영기(令旗)가 들어서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 큰 기(旗)가 나온다. 상모에 부포를 달아 머리를 흔들며 나오는 상쇠와 그 뒤를 따르는 부쇠와 중쇠, 끝쇠가 오방에 오간을 갊아 넣은 깐치동 소매로 쇄납의 눈물과 한숨, 비탄을 꽹과리의 쇠달금 속으로 들이붓는다. 상생을 일깨우는 것이다. 태양이 솟는 곳 동방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은 청색의 기운으로 생동하는 봄을 양껏 뿜어내고, 쇠를 금(金)이라 함에도 백색으로 두어 서방에서 가을로 흐르게 한다. 

  봄은 움쑥움쑥 돋아나는 볕으로 쓱싹쓱싹 베어내어 곳간을 채우고 허기진 뱃속을 불러오게 하는 추수의 계절을 향해 기우는 것을 천명(天命)으로 안다. 양과 음이 만나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약속의 시간 속에서 사람은 여름을 견뎌야 한다. 남방에서 작열하는 태양은 중천에서 하루를 오가며 사람의 정수리를 타고 흘러 등을 달구고 발목을 뜨겁게 휘감는다. 그러나 붉은빛의 화(火)가 어우러짐의 시(詩) 화(和)를 일궈내기 위한 시간, 여름은 잉태의 계절이라 벼들이 뜨겁게 수런거리는 논배미의 물속에서 쉬익쉬익 숨을 몰아쉬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는 동안 황색의 공간, 땅 위에서 황금들녘을 꿈꾸는 만두레(세벌 김매기)의 굿을 친다. 

  그러나 봄과 여름, 가을은 겨울을 두고 갈 수 없다. 북방이 없고는 북두칠성의 기원이 없고, 겨울의 몸을 핥는 골짜기의 물이 흐르지 않고는 봄의 생동이 사람의 몸속에 움트지 않는다. 겨울을 검은빛이라 하는 것은 쉼의 시간, 멈춤의 시간이라 하여 상징으로 놓은 것이겠지만, 사람들은 그 검은빛 시간에도 소를 먹이고 돼지를 키우며,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짠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속으로 파고들어 땅 속 깊은 어느 마을에서 찬란하게 눈부신 봄의 꽃을 피우리라. 그 꽃이 질 무렵 대지를 차고 올라와 찬란하게 눈부신 봄의 꽃을 피우기 위한 북방의 매서운 계절, 겨울의 하얀빛에 가려진 검은빛이 없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희수는 필봉마을 상쇠와 쇠잽이들의 깐치동에 나란히 줄박은 오방색들의 상극, 그것들의 상생을 생각하며 깨금깨금 을자형 질굿을 나서는 앞치배와 뒷치배들의 장구와 북의 두드림을 듣는다. 그리고 오방색 사이에 줄박은 오간을 본다. 꽹과리의 쇠달금이 무엇이던가. 대장장이의 거친 숨소리가 툭툭 볼가져 나온 팔뚝의 굵은 핏줄과 가는 핏줄 사이에서 뛰는 맥박의 혼(魂), 그 울림이 아니던가. 대장장이의 성냥간에서 뜨겁게 달구어지고 두들겨지고 차가운 물속에 처박히고, 다시 분출하는 용암의 구덩이에서 막 건져내 온 것처럼 이글거리는 불 속에 들어가 지져지면서 풀무가 불어대는 바람에 미친년 널뛰듯 나불대는 광기 어린 불 속에 처박혀 기겁했다가 들려 나와 내려치는 망치에 두들겨 맞다가, 다시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널브러지기를 반복했던 화탕지옥의 고통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얼마나 죄를 지으면 이와 같은 형벌을 받을 수 있더란 말인가. 꽹과리가 되고 징이 되는 원초의 물질들에게 어느 한순간이나마 작은 티끌만큼의 죄가 있었더란 말인가. 오방색은 모두가 서로에게 상극이었다. 그런데 그 상극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서로 다름으로 만나 둘 같은 하나가 되어 셋이 되고, 넷이 되어 무한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화(火)가 화(和)하여, 화(華)의 세계에 이른 것이리라. 결국 빛깔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닮아간 까닭에 녹(綠), 벽(碧), 유황(硫黃), 자(紫), 홍(紅)을 낳게 된 것이다. 거느림보다는 나란히 서는 빛깔로 오방 사이에서 오간은 가을 하늘의 청명한 햇살 아래 물이 오르고 있었다. 

  희수는 문득 어머니 소희를 생각한다. 무슨 죄를 크게 지었을까마는 꽹과리의 쇠달금처럼 달구어지며 얻어맞고 널브러지던 여자, 소희는 어쩌면 상쇠의 손바닥에 실려 꼭두서니 물들인 붉은 빛깔의 너설을 달고 쇠를 내리치는 매를 맞으며 온 세상 사람들의 업(業)을 씻어주는 비손이의 업(業)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병이 났네 병이 났네 

   빈지레기가 병이 났네

   화랑기한테로 점하러 간께 

   꼬막삼춘이 들었다고

   운조리 나와서 피리를 불고

   쑥대기는 장구치고

   짱뚱이는 펄떡 뛰고

   징을 지리징징 울리느니

   뻘떡게는 춤을 추고

   갈포래는 넋을 놓아

   울 밑에 소라삼촌은

   막걸리 한 잔에 홱 틀어졌네     


  “어매, 나는 왜 아부지가 없어?”

  “…….” 

  “어매, 말혀봐. 나는 왜 아부지가 없냐고 물었잖여.”

  “허튼소리.”

  소희의 멈칫하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옆집 달손이도 아부지가 있고, 뒷집 대석이도 아부지가 있는디, 나는 왜 없냐 말이여?”

  “또 어떤 놈이 놀리드냐?”

  “왜 어매는 죄가 많어서 내 아부지를 죽게 했드냐 말이여? 왜 물에 빠쳐 죽게 했냐 말이여.”

  찰싹, 뺨에서 불이 일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 없이 자랐던 희수의 뺨에 비릿한 갯내음이 묻어났다. 물이 빠지고 난 후 말랑해진 갯가에 나가 낙지를 캐고, 바지락을 캐 와서는 물에 씻으며 손질을 하고 있던 소희의 뻘흙 묻은 거친 손이 희수의 뺨에 가 붙었다. 가지런하게 검던 눈망울이 순간 흔들리며 불이 일었다 스러진다. 좀처럼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던 그네였다. 특히 희수에게만은 얼마간의 잘못이 있어도, 동네 아이들과 쌈박질을 하고, 맞은 아이의 어미가 달려와 구살을 떨어도 성가셔하거나 화를 내어 말을 하지 않던 그네였다. 섬이 아니던가. 제주와 거제 다음으로 큰 섬 옥주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억센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섬냄새, 갯내음이 나는 속에서도 어딘지 뭍냄새 풍기는 모습으로 살아오던 그네였다. 그런 그네의 눈빛에 순간이었지만 푸른빛이 돋고, 말아쥐었다 펴진 손이 흙을 개어 할퀴고 간 것이다. 

  차가운 물의 기운과 얽혀 있던 흙이 어린 뺨에 와닿으며 손톱이 스치고 갔다. 어머니의 다정함과 맹목에 가까운 온화 어디에서 그처럼 모질고 사나운 기운이 뻗쳐 나왔던가에 대한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채 몇 해를 보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지금 이 마당에서 난단 말인가. 희수의 가슴이 우둔거린다.      


  “나 좀 보드라고. 가희 오매, 집에 없당가?” 

  “아짐, 어찌 또 그라요?”

  기명물 함박을 들고 나오던 가희가 우뚝 멈춰서며 묻는다.

  “아이 내가 너 불렀냐? 니 어매 좀 보잔단 말이여.”

  “울 어매는…… 몸이 좀 아퍼서 누웠구만이라.”

  “아따메 시상에나, 당골네도 몸이 아프다냐? 신령님은 어디 기시간디 당골네 아픈 줄도 모르신다냐?”

  “아짐, 뭔 말씀을 그리 험하게 허신다요?”

  기명물을 수챗구멍 쪽으로 흩뿌리며 말을 한다. 

  “아잇, 가시나 성질머리 한 번 사납네. 아예 입고 있는 옷에다가 쫙 찌끄러벌지 그러냐?”

  여기저기 튀어 붙은 물을 털어내며 눈을 부라린다.

  “아니, 수챗구멍에다 뿌렸는디……오는 말이 하도 험항께 물도 놀래갖꼬 그랬는가비요.”

  “너그 동생 희수란 놈이 우리 동철이 얼굴을 이리 찌그려 놨는디…… 내 말이 험하다고야? 니도 눈깔 있으먼 한번 쳐 봐라. 어뜨케 애기 얼굴을 이렇게 깨키라 놓는다냐, 어엉?

  “미안허게는 됐는디라, 동철이가 매번 우리 희수를 놀링께 그란거 아닌가라.”

  “뭐,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헝거 말이냐? 그것이 말짱 헛말은 아니잖냐. 아이, 샛서방 둔 거 아니라믄 몰라도 너그 아부지 죽고 없능 거는 사실 아니냐? 넘의 집 삼대독자 얼굴을 이렇게 맨들어 놨는디……봐라, 봐라. 니 같으먼 열불 안 솟겄냐?”

  한 손으로는 아들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삿대질을 해가며 욱대긴다.

  “아짐, 아무리 우리 아부지가 안 계신다고 해도 그렇제, 근다고 그렇게까지 씨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잖은가라?”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목소리에 울음이 밴다. 

  “아이구메야, 당골네 새끼들은 그라고 말을 잘한다냐?…… 맨날 굿이나 허면서 살아강께 허는 짓거리로 사람 치는 것도 잘 허고 말도 잘 헌다이.”

  그때 작은방 문이 벌컥 열렸다. 쏟아지는 불빛을 거느린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찰싹 뺨을 부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거푸 울리는 소리에 사위는 고요해졌다.

  “그래, 우리 어매 당골네다. 그리서? 우리 어매가 당신 집에 해코지 한 거 있습디여? 당신도 하루 세끼 먹고, 우리도 하루 세끼 먹고 사는데, 우리가 당신네 집구석 곳간을 털었드냐, 당신네 집구석 몽당 빗자루 하나를 허투루 썼드냐? 니가 뭔데 우리 어매를 깜보고 지랄이냐? 너그 놈의 집안 선영 앞에 앉아 빌어주는 정도 모르고 씨불거리는 혓바닥 갖고 자식 키운다고, 그리서? 느그 새끼는 아부지 있는 자식이라 그렇게 막되게 키웠더냐?”

  우렁우렁 치받는 말을 내뱉는 큰아들 기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이빨을 찌그럭거렸다. 

  다된 저녁에 밥술이나 뜨려던 이웃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수군거리는 사이, 얼이 빠져 있던 동철네가 절로 분이 나는지 뭐라고 뭐라고 욕지거리에 고함을 쳐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큰방의 문이 열렸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윗목 구석에 오도카니 서 있는 장구를 쏘아보고 있던 소희가 멀뚱히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 말이 없다. 다만 바라다볼 뿐 이렇다 저렇다 내색이 없다. 어두운 방에 마루의 불빛이 밀려들어 먼 산 바라보듯 앉아 있는 소희를 훤히 비추어 주었지만, 표정 없이 앉아 있는 소희의 모습에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오싹하게 끼쳐오는 서늘함에 엉거주춤 걸어 나가던 동철네에게

  “내동아짐, 신경을 좀 쓰셔야 할 겝니다. 물 위에서 도둑귀신을 만나 귀한 목숨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잔잔하던 물이 바람이나 만난 듯 집을 나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안에서 냉기가 돌면 온기를 찾아 볕드는 마당으로 나서기도 하는 것마냥 싸리문 열고 꽃 찾아 나서는 바깥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싸리울을 나서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몰아넣은 소희의 방에서 겁에 질려 멀어져 갔다. 요란스럽게 짖어대던 동네 개들의 소리도 지는 땅거미 속으로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긴길사 돈닷돈 긴기리사 돈닷돈” 입장단으로 질굿을 지켜왔던 필봉 사람들이 만든 판 가운데에서 춤추는 저 여인은 오늘 빛깔이 고와 한 무더기 꽃 속의 나비가 되어 날고 있다. 꾀꼬리빛 저고리에 앵두빛 붉은 치마를 입고서 춤을 춘다. 치배들의 바깥쪽에서 양반나리와 나란히 흥을 돋우며 뱅글거리다가 창부(倡夫)들과 대포수, 조리중 사이에 끼어 은근슬쩍 판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제는 아예 판을 주무르며 춤을 춘다. 한쪽 팔을 접었다 펼치고 한쪽 팔은 둥글게 위로 말아 올렸다 구부려 내리며 나비춤을 춘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은 고깔 위에 두고서 앵두빛 치맛자락 살짝 들추어 꽃잎처럼 스친다. 꾀꼬리빛 노랗게 우러나는 속엣치마를 부풀리며 꽃을 피운다. 흑장삼에 송낙을 쓰고 바랑을 멘 조리중의 맨드름한 웃음에 콧방귀를 날린다. 여기저기 참견을 하며 대장노릇을 하는 대포수의 춤사위를 곁눈질해가며 춤을 추는 여인에게서 희수는 풍물의 오간을 본다. 오방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견뎌낸 끝에 비로소 일어나는 빛깔 오간, 그것은 정제된 균형이고 치열한 조화다. 채상모를 돌려가며 물빛 원을 그리고 애기단풍잎 하나 떨어진 자리에 동그랗게 이는 파문을 그려내는 소고잽이들의 몸짓과 ‘덩 기덩 기덩 따 쿵’ 깨금 뛰어 뱅그르 돌고 깨금 뛰어 뱅그르르 돌며 판을 감싸는 장구잽이들의 몸짓에 두둥실 실리는 넋꽃인지도 모른다.

  “호호” 평음을 받아 “허허” 쳐올리는 치배들의 소리를 “허허”, “호호” 이마저도 엇갈리게 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꽃과 나비 그리고 사람들, 잡색이 만들어가는 물결은 태극을 이룬다. 상쇠를 따르는 쇠잽이들과 징잽이들의 뒤를 따라 너울춤을 추는 그들은 장구와 북, 소고잽이들의 둥글게 퍼지는 소리와는 반대로 돈다. 먼 곳에서 흘러온 물들이 강에서 만나 한 곳에서 굽이친다. 중삼채 가락을 서서히 조여 겐지갱 가락과 휘몰이 가락으로 몰아가는 상쇠의 신명(神明)을 울리는 소리가 짝드름굿 싸잽이로 모아진다. 필봉 마을 사람들을 휘몰아가는 가락은 강물을 세차게 몰아 방울 모양의 진(陣)을 쌓게 한다. 높고 험준한 산을 깎아 만든 귀틀집에서 하루치의 꿈을 구워내던 사람들이다. 농사지을 땅마저도 변변치 않아 걸궁굿을 치던 사람들, 숯을 구워 내다 팔며 낮은 담장 꿈을 넘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마을에서 울려 퍼졌을 당산굿이나 철륭굿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어우러짐을 그만하게 지켜주려는 천지신명의 울림굿이 쌍방진보다 큰 삼방진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두레두레 모여 앉아 성명자를 주고받으며 텁텁한 막걸리 한 잔을 돌리던 인연으로 서로를 조밀하게 알아보게 되는 것이 희수에게도 끈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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