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잔치라도 여는 것일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옛날 궁중에서 임금님의 잔치가 벌어질 때면 연주되던 음악이 장중하게 울려온다. 여민락일까? 궁중의 무희들이 형형색색의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출 것만 같다. 멀찍이 떨어져 앉은 곳에서 왕실의 가족들이 음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마당에선 악공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음악을 만들어내고 아리따운 여인들이 둘러서서 울긋불긋 물든 소삼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을 것만 같다.
붕 뜬다. 마음이 뜬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머뭇거림 없이 달려가 구경이라도 하고픈 마음이 든다. 어디일까? 두리번거려보지만 도통 보이질 않는다. 손을 꼭 잡은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잔뜩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 초조한가 보다.
여기는 어디일까? 도대체 어디일까? 소리만 들려올 뿐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술렁거릴 뿐 바람조차 불어오지 않는 것이 마치 진공포장 된 비닐 속 같다. 새도 없고 나비도 없는 곳, 광활함이 느껴지면서도 납작하게 엎드린 것 같은 곳, 후텁지근한 기운이 사람의 몸을 타고 뱅뱅거리며 들러붙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바닥이 흔들린다. 바람이 일고 모래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잔잔한 호수에 나뭇잎 하나 떨어져 이는 파문 같던 물결이 이내 돌멩이 하나 떨어져 넓게 퍼지는 파문처럼 모래들은 구름 되어 퍼지고 구름 속 어디선가 위잉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둥그런 무쇠가 바닥에 내려앉는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여인들에게서 향기가 풍겨 나온다.
“올라서시오. 낭자를 모시고 오라는 상제님의 분부가 있어 왔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살포시 웃으며 말을 건넨다.
붙잡을 곳이 없다. 다만 손을 꼭 잡고 있던 사람을 의지할 뿐인데……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이 없다. 부드러운 말씨에 온화한 표정, 은은하게 풍겨오는 여인들의 향기에 취할 듯 하면서도 두리번거리는 눈빛은 낯선 두려움에 휩싸인다.
“꽉 붙잡으시오.”
붙잡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붙잡으라는 말을 한다.
순간, 둥그런 무쇠가 퉁 소리를 낸다. 쿨렁, 몸이 기우뚱한다. 무쇠 가장자리로 유리가 내려온다. 옥빛이 도는 유리문 안으로는 허리를 기대고 서도 좋을 봉이 둘러쳐진다. 위잉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다 왔으니 내려서시오. 저곳으로 들어가시오.”
여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난간이다. 하늘의 다락이라 해야 할까. 잘 다듬어진 누각의 난간처럼 난간동자 칸칸마다 궁창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고, 그 궁창을 법수가 꽉 틀어쥐고 있다. 신선들이 놀음하던 누각의 옥빛난간처럼 매우 아름다운 무늬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어떻게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올라설 계단이 없는데…… 붙잡고 늘어지기라도 할 그 무엇도 없는데 저곳으로 들어가라며 손짓을 하고는 붕 떠서 어디론가 가버린다. 난감하다.
손을 뻗어본다. 도대체 닿을 수 없는 곳이다. 한껏 뛰어봤댔자 한 뼘 이상을 넘을 수 있는가.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난간에 매달려 있다. 두 손을 쭉 뻗어 올리고는 난간법수가 틀어쥐고 있는 궁창에 매달려 발버둥치고 있다. 밑을 내려다본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곧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에 버둥거리는데 손이 내려온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을 붙잡고 버둥거린다. 어느새 올라선다. 솟을대문 앞에 선다.
문지방을 넘어서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루마다 상이 차려져 있고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음식들을 먹으며 술을 마신다. 거나하게 취한 얼굴마다에 웃음이 가득하다. 종적없이 사라졌던 사람이 말을 건넨다.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에 들떠 있는 저들이 모두 여자의 권속들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알든 모르든 저들은 모두 여자와 인연이 닿아 식구로 맺어졌다 흩어진 유혼(幽魂)들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천상에 오른 오늘이 가장 좋은 날로 생기복덕일이라 여자의 조상님들 모두 불려나와 저렇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 모든 것이 꿈인가. 꿈속에서도 생각한다. 자신의 육신 깊숙한 곳에 구슬처럼 뿌리박혀 있던 푸른 정령이 빠져나간 기억이 없는데…… 한참을 늙어 기력을 다한 지 오래 되었고, 뼈마디 삭신이 안 아픈 데 없이 구석구석 다 저리고 시린데…… 웬수놈의 가래는 왜 그리도 끓어대는지 원. …… 잔기침은 수시로 나와도 목구멍이 빼빼 말라 성만 가시지 시원하게 한 번 뱉어내지도 못한 지 고닥 오래는 되었어도 아직은…… 죽기 전에 여기저기 둘러도 보고, 막둥이 희수놈 장개도 들이고 해야는디…… 어찌까! 내 몸이 벌써 죽어졌단 말인가. 무언가 모를 낭패감이 가슴을 휘젓고 지나간다. 아,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만 깨어나려고 어둠을 밀쳐낸다.
오지게도 질긴 꿈속에서 짙푸른 언덕을 올라간다. 그 언덕 가장자리를 빙 둘러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뭇가지들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송이송이 무더기로 피어 흩날리고 있다. 매화다. 향기는 눈부시게 하얀 빛깔이 휘감아 코끝까지 다가오지 않는다. 눈부시게 흩날리는 햇살 속에서 하르르 내리는 꽃잎 그 향기는 열여덟 고운 소희의 눈가에서 진다.
눈처럼 휘날리는 꽃잎들 사이 저만치에 고깔을 쓴 이가 앉아 있다. 새하얀 장삼에 붉은 가사를 두른 이가 다소곳하게 앉아 하얗게 쌓이는 꽃잎에 눈을 주고 있다. 낯익은 모습, 자신의 뒷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저것은 분명 자신의 모습이다. 여자의 나이 스물셋인가부터 시어머니 성심이를 따라 배우며 서른을 넘고 마흔을 넘어가던 고갯마루에서 청룡 한 쌍 새겨진 종을 두들기며 뭇 사람들의 복을 빌어주던 업(業)살이 시절 물리도록 입었던 옷매무새다. 마흔을 넘어선 어느 마루에선가 다시는 굿을 하지 않으리라, 고깔도 가사도 다시는 입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맹세하였던 업살이 설움, 그러나 그것은 업이었기에 벗겨지지 않는 숙명 같은 굴레였다. 누가 그것을 자신에게 덧씌웠을까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받아들인 운명 같은 것이었다.
꽃잎 휘날리는 마당에 징이 울린다. 사바세계 모든 것들의 고뇌와 슬픔의 눈물까지를 아우를 양으로 땅심을 끌어올리는 징소리가 마당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고 ‘딱 딱 딱 딱 따따따따르르르~ ’목탁소리가 올려 나온다. 고깔 쓴 이의 두 팔이 삼라만상 온갖 것들을 끌어 모아 하늘로 뻗고 대삼(大衫)자락 정수리에 모아 땅으로 흩뿌리며 부복(俯伏)의 자세로 엎드린다. 그리고는 일시에 터져 나오는 여민락 가락에 따라 몸을 틀어 왼쪽으로 눕히고는 다시 꿈틀거리고 일어나 땅을 향해 부복한다.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물결처럼 쓸리고 다시 일어서는 동안 고깔의 몸은 가락의 마디에 몸을 꺾어 올리며 일어선다.
장중하게 퍼지는 음악과 함께 두 팔은 활짝 펴지고 대삼자락은 물결처럼 퍼져 흐른다. 그 물결은 비상을 꿈꾸는 새처럼 날개를 펴고 일어서다가 깃을 접고 다시 날개를 펴고 일어서며 돌아앉는다. 움틀움틀 일어서며 양 날개를 정수리맡에 모았다 흩뿌리고 대삼자락 길게 늘여 뒤춤에 넣고는 속 날개를 털어내며 날아오르는 자세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누구였더라. 낯설지 않은 얼굴인데……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그 사람이…… 매화 피어 눈 날리는 고운 마당에서 승려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데 고깔 사이로 비치는 또렷한 윤곽은 분명, 속일 수 없는 그 사람이다.
버선발 모아 짧게 걸으며 오른발 살포시 들었다 내리고는 날개를 접고 앉는다. 살짝 들어 올린 얼굴이, 그 눈빛이 절정의 순간 소희의 눈동자에 머물러 간다. 이슬이 맺혔던가? 모든 것이 찰나다. 도대체 그럴 리 없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순간의 윤곽…… 고깔 속의 눈동자 그 사람…… 천문이. 그 숨결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리도록 파고든다.
꿈이라면 깨지 마라. 이것이 꿈이라면 모질게도 질긴 꿈이어도 좋다. 깨지 마라.
고깔 쓴 이가 북을 향해 걸어간다. 네 개의 다리가 받치고 선 대(臺)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북은 태극이다. 가운데 둥그런 면은 천문이의 여자 소희의 가슴이다. 고깔 쓴 이가 북채를 들고 북 앞으로 다가선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뒤틀어 돌리고는 풀어 반을 돌아 둥~ 한 번 치고 반대로 돌아 둥~ 한 번 치고는 빠르게 몰아친다. 아무 일도 없는 태평한 모습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세월은 무심하게 흐르고, 몸 속 깊은 곳에 떨군 한 알의 씨앗이 열 달을 채우고 나와 첫 울음을 울던 날에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 북을 두드린다. 소희의 가슴을 두들긴다. 그 씨앗이 자라 사내놈의 골이 배겨갈 때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 놈이 버꾸를 들고 나가 춤을 출 때도 그 모습을 보아주지 않은 못난 사람, 참으로 못난 사람…… 천문이, 그 사람이 소희의 가슴을 두드린다. 북을 두드린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마당에서 북의 심장을 가르며 춤을 춘다.
아이고 대고 허허 흐으응 성화가 났네 헤~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얼 할거나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헤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님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님을 기다리건만
고운님은 오지 않고 베갯머리만 적시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헤
여자의 늙은 목에서 소리가 올라온다. 습관처럼 한숨에 섞여 앓는 소리처럼 울려나오는 노랫소리가 가을 기우는 마당 안에서 흥에 취해 흐른다. 여름은 아직 여자의 마당에 있다. 뙤약볕 아래 소담하게 피어서 진분홍 꽃잎으로 발돋음하던 맨드라미들이 저 품은 빛깔을 꼿꼿하게 세우며 가을 속에서 여름 한낮을 더듬고 있다. 이제 해 저물면 풀숲 어디에선가는 가을벌레 우는 소리에 슬쩍 숨어든 매미가 마지막 울음을 놓을 것이다. 초라한 지붕을 떠받친 기둥에 붙어 파르르 날개를 떨며 츠르르 소리를 낼 때 쌕쌕이와 베짱이, 꼽등이 같은 녀석들은 풀숲 어디에선가 눈치먹은 소리로 때이른 가을을 불러내었다. 여름은 가을을 물고 가을은 여름에 물려 겨울로 가고 있는 저물녘 여자는 굽은 허리로 밭은 소리를 내며 풀냄새 아직 축축한 문짝들을 마루 끝에 걸쳐두고는 삽짝 너머를 바라본다.
해가 일렁인다. 삽짝 아래 두어 집을 거쳐 구부러져 돌아들어선 길을 따라 기껏 담장이라고 둘러져 있으나 삿갓지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초라한 집들을 돌아 내려가 나루터 주막에 들어서면 발아래 펼쳐진 바닷가 저어 곳에 해가 아직 머물고 있다.
빠진 구석 없이 둥그런 해가 빠알갛게 물들어 구름에 가리운다. 읍으로 가는 바다, 목포로 가는 바다, 제주도로 가는 바다 먼 곳에서 물살은 밀고 들어온다.
버꾸를 들고 들뜬 걸음으로 나갔던 막둥이 희수는 아직 오지 않는다.
지금쯤이면
“엄니, 지 왔어라-아.”
삽짝을 밀고 들어올 텐데, 여태 오지 않으니 여자는 조바심이 난다. 문짝을 달아야 하고, 놀음은 잘 했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걱실걱실 말하는 양을 바라보며 흐뭇해야 할 텐데, 무엇보다도 어김없이 자신의 눈앞에 서는 모양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직 오지 않으니 여자는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입을 오물거린다. 명치끝에서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시고 쓴 물이 맵싸하게 입안에 고인다. 홱 뱉어버리고 싶으면서도 꾸역꾸역 삼키고 마는 늙은 여자의 눈에 물이 고인다. 흘러내리지도 못하고 시울 근처나 축이다가 꼬질꼬질 눌어붙고 말 것이 뜨겁게 솟아올라 여자의 가슴을 부뚜질 한다.
해는 구름을 벗는다. 위로 살짝 올라채다가 아래로 미끄러진 빠알간 해는 탱탱하게 균형을 잡으며 다시 솟는다. 하늘에 옅게 퍼진 주황빛이 짙게 물들어가고 사이사이로 보랏빛 줄이 그어진다. 두둥실 떠가는 화물돛단배 따라 밖으로 밀려 나갔던 첩첩 산들이 풍선배와 함께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잿빛 실루엣으로 의연해지고, 사람 사는 집들엔 하나 둘씩 불이 켜진다. 불안이 엄습해온다. 여자의 등은 활처럼 휘어지고 축 처진 가슴은 물컹물컹 흐물거리는 아랫배에 닿는다. 가슴과 아랫배 사이 골짜기 진 곳에 식은땀이 차오른다. 여자의 눈은 물밀려 들어오는 바다에 머문다.
“왜 여태 안 오능고오…….”
애가 탄다. 해가 저물도록 뭍에 나간 식구들이 사립 안으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습성으로 인하여 오늘처럼 짧아진 해에 어둠이 들어서면 여자는 가슴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울렁증으로 인하여 숨이 터억터억 막혀오는 것이다.
비손이 여자 소희는 입을 달싹이며 천지신명을 부르고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모쪼록 자신의 아들 희수가 아무 일 없이 사립 안으로 들어서게 해 달라고 비는 소리를 한다. 습관처럼 손을 비빈다.
저 아래쯤에서 희끗한 무엇이 보인다. 늙은 비손이의 흐릿한 눈에 아슴하게 비치는 그것은 일렁이며 다가온다. 더디게 다가온다. 잠깐 사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좀 더 크게 보이다가 사라졌다가 성큼 다가오는 그것에 순간 무섬증이 인다. 한순간 댓돌 앞까지 다가선 그것이,
“아짐, 뭐하고 그리 앉았소?”
묻는 소리에 아득한 밑바닥으로 움츠러들던 정신이 아드득 깨어난다.
“문종우 바르셨네라? 문을 달아야 쓰겄는디롸우, 희수는 아직인게라?”
“으잉. 어째 아직 안 올까이? 저문 배 들어 온 지가 고닥 된 거 같은디, 뭣허고 아직도 안 들어오는지, 걱정이구만.”
“곧 들오겄지라우. 쪼매 있으먼 막배 들올팅게 걱정 말고 기시기라우. 뭔 일이사 있을랍디여?”
“그렁게. 언지라도 해 넘어가기 전이먼 꼴을 뵈여 주는 놈인디, 오늘 왜 이리 늦는가 애가 잦는구먼.”
“그러기도 허겄지만은 또 뭍에서 허는 일이라는 것이 매양 내 뜻대로는 안 되는 것잉게 그러기도 하지라우. 걱정 마시고 저녁이나 우선 드시기라우.”
이웃해 사는 판석이 지나는 길에 들어와 돌쩌귀를 맞추어 문을 달아놓고는 돌아간다.
소개나루 물을 차고 오른 바람이 구름 속으로 파고든다. 언제나 바람에 쫓겨 모여들고 바람에 쫓겨 흩어지는 구름들은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질정 없이 모이고 흩어지더니, 빠알갛게 둥근 해를 입에 물었다. 묽은 주황빛들이 풀어헤쳐지면서 앞엣놈들은 머리를 만들고, 그 뒤로 산발한 것처럼 풀어진 놈들은 배를 만든다. 그리고 명주실 가닥처럼 흩어진 놈들은 꼬리를 만들더니 어엿한 한 마리 용이 되었다. 용의 머리 앞쪽에 물렸던 빠알간 해는 꾸르륵 꾸르륵 떠밀려가더니 용의 뱃속에서 꿈틀거린다. 빠알간 해가 용의 뱃속에 정박한 것인가. 용의 뱃속은 포구인가. 해는 그곳에서 닻을 내리려 하는가. 늙은 비손이 소희는 용의 뱃속에서 몸을 뒤채는 해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포구 한쪽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가마를 본다. 어쩌면 그것은 흑단보다 검은 빛깔의 머리에 쪽을 짓고, 금빛 산호 물결 먹인 큰 비녀를 꽂고, 도투락댕기 화려하게 수놓던 밤, 일렁이는 촛불 속에서 수줍게 떠는 족두리의 진주, 산호, 비취, 청옥, 백옥, 밀화의 떨림보다 곱던 밤을 보낸 여인이 우귀일을 맞아 타고 가는 꽃가마보다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가마, 상여였다. 그 영롱한 빛깔들은 해를 삼킨 용이 쏟아놓은 눈물인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