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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04. 2023

다산 정약용, 그가 몹시 그립다.

               생가를 방문한 후 얻은 생각

지난 주말 다산 정약용 생가에 다녀왔다.

적당히 내리는 봄비가 숲과 나무에 초록빛을 더하고 있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한참을 달리면 실학 박물관과 다산 정약용의 생가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구역은 정약용의 유적지 전체를 담고 있다. 생가인 여유당을 비롯하여 선생의 묘와 문화관 기념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건물 실학박물관이다.


주변의 자연경관 또한 매우 아름답다. 인근의 남한강은 양평을 지나 여주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 달린다.


드라이브하기에도 좋은 지형이다. 강줄기를 따라 자리 잡은 카페들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다. 주말 가족나들이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은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매혹적이다. 나아가 충격적이다.


나는 그에게서 배워 삶을 사는 지혜를 얻고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그가 남긴 저작에 깊이 감동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건  아니다. 무엇보다 그처럼 살기를 열망했다. 다산이 몹시 그리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강진 유배생활 18년을 마친 후 다산은 이곳을 안식처로 삼았다. 집 이름이 여유당이다. 여유란 겨울에 살얼음 위를 걷듯이,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매사를 조심하란 뜻이다.


이름 속에 다산의 생애를 관통했던 시련과 역경의 역사 묻어난다. 정치라는 살벌한 정글 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였다.


조심조심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지혜임을 알았으리라. 그래서 여유당이다.



생가는 아담한 한옥이다. 방을 들여다보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떠난 지 거의 이 백 년, 그 시간이 공간을 작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아닐 거고 소박했던 삶의 한 측면일 거다.


다산은 당진 유배 18년을 마치고 이곳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가 최후까지 붙든 공부는 마음공부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마음공부교과서로 '심경부주'라는 책이 있다. 그동안  다산이 수 없이 읽었던 서책 아닌가.


생의 남은 시간을 마음공부에 바쳤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사랑방 한 구석에 앉아 글을 읽었을 다산의 모습이 들어온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이 방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지난 생애를 돌아보았고 자신과의 화해를 시작했을 터였다. 아마도 육십을 넘어선 어느 때였을 것이다.


매몰차게 몰아세우며 살았던 자신을 용서로 감싸 안은 것이다.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시대가 나를 휘감고 내가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삶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다산의 고백은 현재를 사는 내게도 얼마나 큰 용기와 위로를 주는지. 생각해 보니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하고 몰인정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어른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다산을 통해 깨닫는다. 이 시대 가 지향하는 철학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른이고 뭐고가 중요하지 않다. 돈만 많으면 어른도 될 수 있고 어른노릇도 할 수 있단다. 슬프게도 이는 사실이다.


다산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여유당 주변을 걸으면서 문득 일어난 생각이다. 이 집에 머무는 시간에도 외로움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을 때도 부단한 자기 관리는 계속되었다.


사람이 방에 홀로 앉아서 자신이 했던 일을

묵묵히 되짚어 보면 양심이 드러난다.

어두운 곳에서 스스로를 반추했을 때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지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히 악을 행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악은 늘 사람과 함께 하는 곳에 있다.



긴 세월 유배로 보낸 후 또다시 찾아온 고독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생가를 둘러보면서 다산이 겪었을 아픔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여유당을 나와 다산이 묻힌 묘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 집 농부의 밭에서는 농사가 한창이다. 어느 날 다산은 제자 황상에게 이런 가르침을 내린 적이 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하는 일은

매우 낮고 더러운 법이다.

힘들어도 참아야 하고 수틀려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집 주변에 과수원과 채마밭을 마련해

과일나무와 채소를 가꾸는 일은 맑고도 고상하다.

호미 들고 삿갓 든 채 비지땀 흘려도 그보다 귀한 일은 없다.


이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말로 들리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더러운 일도 견뎌내야 한다.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제자를 향해 욕심을 버리고 잔잔한 삶을 주문하는 스승의 따스한 사랑이 묻어난다.



여유당 뒤쪽 야트막한 산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다산과 그의 아내 홍 씨가 합장된 무덤이 보인다. 저 멀리 남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다산은 모진 유배생활 중에 감행한 엄청난 공부로 유명하다. 복사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고 머리카락과 이는 다 빠져버렸다.


치열한 그의 공부는 불굴의 역작을 탄생시켰고 오늘의 후손들에게  선물로 남겨놓았다. 그의 정신과 육신이 얼마나 수고로웠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제야 비로소 다산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몹시 그리워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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