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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Apr 23. 2023

외로움 k의 하루 일과

             외로움 k의 탄식


외로움 k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영국인지 뭔 지하는 나라에서 고독장관을 세웠다고. 나 원참 세상 말세야 말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벌레 씹은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던 외로움 k.

얼마 안 가 그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감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 외로움의 대제국을 어떻게 건설했는지 알아? 어디 가서  한 번 물어봐. 세상은 내가 부리는 노예들로 가득 차 있어.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란 말이야.


들판에 지나는 바람에 풀이 고개 숙이듯 내가 가는 곳마다 경배를 표하지.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단 말이야. 그까짓 고독장관 한 놈 세워 내게 반역을 꾀한다 해서 무한한 내 영토가 한 뼘이라도 줄어들 일은 없어.


감히 토끼 한 마리가 호랑이 수염을 만지는 꼬락서니라니. 어림도 없지. 암 그렇고 말고.


투덜거리기도 잠깐 외로움 제국의 황제 k는 비서실장 낙심한테 서둘러 전화를 했다.

그는 k가 남달리 신임하는 부하직원이었다.


이봐 미스터 낙심, 자네 빨리 글로벌 의료센터에 연락해.

의사들한테 말이야 약발이 아주 센 치료제를 쓰라고 해.


외로움 k가 지시한 치료제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안정제였다.


              자포자기 메디컬 센터


세상 어딜 가나 외로움 제국에서 운영하는 대형 병원들이 수두룩하다. 병원의 이름은 자포자기 메디컬 센터로 알려져 있는데 간첩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 병원 의사들은 하나 같이 우울이라고 새겨진 가운을 걸치고 다닌다. 그들이 사용하는 처방제는 몇 개 안 되지만 그 효과는 탁월하다.


자포자기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무조건 무기력이란 영양제 주사부터 맞아야 한다.


화학 성분이 치매로 알려진 알약도 주는데 하루에 여섯 차례씩 복용한다. 증세가 심한 환자의 경우 더욱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오는 링거를 처방받는다. 링거의 수액 안에는 알츠하이머 성분으로 가득 차 있고.


자포자기 병원은 연중무휴로 하루 24시간 쉼 없이 운영되고 있다. 놀랍게도 병원은 고객들로 차고 넘친다. 입원 신청자들이 어찌나 많은 지 예약을 했어도 최소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특이한 건 이 병원 환자들 모두 외로움의 황제 k를 향해 절대적 존경을 표한다는 점이다.


               항상 바쁜 외로움 k



외로움 k는 언제나 분주하다.

잠도 없이 일을 할 정도로 말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새벽 시간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그의 수첩에는 하루동안 방문할 장소와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목록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그는 하루일과의 시작을 가정집으로 잡는 편이다. 최근 들어 은퇴한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외로움 k의 얼굴이 달빛처럼 환해졌다. 외로움 제국에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 k는 아침 늦게까지 자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둔다. 오전 열 시 이후에는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무료함과 따분함으로 친구 삼고 지루함의 밥을 먹으며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시든 시골이든 이런 미끼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외로움 k는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이들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증정을 잊지 않을 만큼 k의 성품은 자상하다. 선물은 늘 그렇듯 낙심과 좌절 옷 한 벌이다.


외로움 제국의 마크가 새겨진 이 옷을 입으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사는 게 힘들어진다며 이구동성으로 떠든다. 그래서 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온종일 잠에 곯아떨어져 심각한 무기력 증세를 달고 사는 것이다.  


               외로움 k가 미워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k는 공원 근처나 한적한 장소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햇살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외로움 k는 이런 곳을 가장 경멸한다.

 

어떻게든 저들이 못 움직이도록 해야 해.

혼자있게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건 온통 쓸쓸하고 황량해야 돼.

어둠 어둠. 내 제국엔 오직 어둠만이 있을 뿐이야.


알아듣지 못할 독백을 되새김질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k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댄다.


저들만 없으면 우리 제국은 더욱 완전해질 텐데 저걸 막을 방법이 없을까.


아 역겹다. 저들의 환한 웃음과 떠드는 소리 땀 흘리며 운동하는 저 모습을 보라고.

난 저들을 보면 살 맛을 잃고 말아.


           외로움 k에게 사랑받는 사람들


오후에 접어들면 k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회사나 학교 공공기관 등이  그가 찾는 주요 일터다. 일하는 현장에서 심한 스트레스가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k는 분쟁이 심한 환경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저녁 술자리까지 동행하는 일은 그가 누리는 큰 기쁨 중 하나다. 초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갈 곳은 많은 외로움 k다. 그는 어디든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 나선다. 뻔뻔함이 그의 특기이자 생존수단이니까.


비탄에 잠겨 투덜대는 사람들 상사를 비난하는 사람들 돈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 자식 걱정 생계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고 나 밖에 없다며 절규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불평을 들을 때마다 k에게 힘이 불끈 솟는다. 모두가 외로움 제국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길 모퉁이를 지난 k가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뿌연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다. 외로움 k가 몹시 흐뭇해하는 장면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외로움의 제국에서 스페셜판으로 담배를 출시해 대박을 치지 않았던가. 값도 저렴한 데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단다.


그러나 외로움의 황제 k에게도 고민은 있다. 흡연공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탈인 것이다. 제국의 안녕을 해치는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결책이 뭐 없을까. 아 맞아 그게 있지.


k가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마약시장에도 손을 뻗어 외로움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계획 말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외로움의 제국을 더욱 번성하게 해 줄 비책이다.


외로움 제국에서 만든 담배는 타사의 제품과는 크게 다르다.

한 대 피울 때마다 허무감이라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그 냄새는 중독성이 워낙 강해 간접 흡연자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정도다.


일단 허무감의 연기에 취해버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일만큼이나 어다. 외로움의 제국에 속한 사람들은 이렇게 허무감의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의 황제 k의 야망


이제 외로움 k를 기다리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남아 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세상은 온통 외로움의 제국 것이 된다.


어둠은 외로움의 황제 k가 즐겨 먹는 불로초와 같다. 그는 언제나 어둠에 목말라 있다. 어두움의 사자 외로움 k는 각 가정을 방문하여 저들이 잠자는 시간까지 지켜보고 있다.


외로움의 가정에는 항상 다양한 꽃들이 놓여 있다. 색 다른 건 꽃의 색깔이 모조리 검은 데다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는 점이다.


불안의 꽃 카네이션, 낙심의 할미꽃, 좌절의 매화꽃, 우울증의 꽃 철쭉, 공황장애의 꽃 국화, 무기력과 불면증의 꽃 라일락 등등. 놀랍게도 꽃들의 향기는 더욱더 외로움을 가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번개 같은 속도로 모든 가정방문을 마친 k는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절망의 검은 커튼을 내려주는 일 말이다.


현재 외로움의 제국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흡사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하다. 이 나라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망이다.

이런 전략으로 k는 외로움의 글로벌 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아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는 이 무서운 세력을 어찌하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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