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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Apr 28. 2023

외로움의 전성시대

                 외로움 장관의 등장


세계 최초의 사건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내각의 새로운 부서에 외로움 장관이 임명된 것이다.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이라니 매우 낯설고 생뚱맞아 보인다.


그로부터 삼 년 지난 2021년에 그 자리를 일본이 모방했다. 이름을 살짝 비틀어 고립고독 담당 장관이라 칭했으나 거기서 거기다.


이쯤 되면 외로움 장관이란 직책은 낯설지도 생뚱맞지도 않아 보인다. 사실상 기존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전환의 발상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앞으로 실행가능성을 열어두고 심사숙고할 처지가 된 것이다. 실로 우리는 외로움의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최근 우리의 통계를 살펴보자. 전체 인구의 87.7%가 우리 사회는 외롭다고 응답했다. 이 자료는 노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이나 일인 가구 거주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열 명 중 여섯 명은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풀고 살까. 텔레비전 시청이 일 순위며 다음으로 취침, 음악, 먹기, 영화, 산책 등이 뒤따른다.


눈에 띄는 공통점이 보인다. 외로움도 혼자서 푼다는 것.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해소한단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이열치열 작전이 등장한 게 아닐까.


2020년에 찾아온 코로나는 기존의 삶의 생태계를 모조리 바꾸어 놓았다. 대면사회를 비대면 사회로,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직장에서 가정중심으로, 공동체에서 개인으로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코로나 남긴 후유증


이는 곧 홀로 있는 시간과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됨을 뜻한다. 오늘날 외로움이라는 문제의 키워드는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생겨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필연적 산물이다. 물론 외로움이란 문제가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는 2023년 현재 의료계에도 큰 변화가 눈에 띈다. 신경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란 거다. 진료받는 이들의 대다수가 우울증 환자들이다.


이상할 것 없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예고된 일이니까. 이 시대는 외로움이 대장노릇하는 그의 전성시대다.


마스크를 벗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의 감기 우울증과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다.


오랜 시간 전염병의 진흙구덩이에서 몸부림치다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흙더미를 씻어내기도 전 또 다른 수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산 넘어 산.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인생살이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장기격리실로 바꾸어 버렸다. 인간은 만나면서 떠들고 살아야 한다. 사회적 존재 운운하며 어려운 철학을 강론할 필요도 없다.


단절되어서 혼자못 산다. 혹시 외계인이라면 모를까. 옛날 외벽진 곳으로 내몰려 외부와 단절되어 살았던 유배자의 아픔이 여기에 있다.


맘엔 썩 들지 않지만 두더지란 놈이 있다. 그에겐 햇빛이 필요 없다. 아니 거부하며 산다고 해야 옳다. 누굴 만나는 일은 두더지 일생에서 절대 금물이다.


금덩어리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온 힘과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땅만 파고 산다. 두더지니까  가능한 일이다. 땅만 파다 갈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곰보다는 호랑이가 낫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동굴을 연상시킨다. 곰과 호랑이가 견뎌야 했던 그 동굴 말이다.


두 녀석은 쑥과 마늘만 먹고 햇빛도 없이 백일 간이나 견뎌야만 했다는 데. 이런 딱한 상황은 곰한테는 가능할지 몰라도 호랑이에겐 처음부터 불가능한 이었 터.


차라리 호랑이 말고 두더지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람한테는 곰보다 호랑이가 더 친밀해 보인다. 왜냐면 호이처럼 인간도 이제 막 코로나 동굴에서 튀어나왔으니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쑥과 마늘냄새로 가득 찬 외로움의 밥을 오랫동안 먹다 보면 정신과 신체에 반드시 징후가 남는다는 것.


감자나 고구마 줄기를 쭉 뽑으면 땅 속의 열매가 주렁주렁 따라 나오듯 외로움의 시간은 우울증을 줄기 삼아 불안 공포 공황장애 절망적 감정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삶의 질을 현저히 무너뜨리는 원수다.


코로나는 외로운 사회를 집단적으로 강제했다. 이것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울증은 고립무원의 늪지대와 같다. 그는 인간 정신에 외로움의 족쇠를 채워놓고 가두어 놓는다. 이후 악순환의 사이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개인을 넘어서 있다. 사회나 국가의 경계를 지나 글로벌한 문제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외로움의 문제는 온 인류가 떠안고 가야 하는 공통의 과제가 된 지 오래다.


                 21세기 신종 전염병


전통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형태는 세 가지를 통해서였다. 전염병과 영양보충 여기에 의료기술이 더해진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 온 지구 생명체에게 외로움이라는 치료영역이 더해졌다. 21세기 신종 전염병 외로움 말이다.


외로움은 경쟁사회가 토해낸 찌꺼기인 엔트로피와 같다. 사람으로 가득 찬 지구 안에서 엔트로피가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가 되었든 외로움이나 우울증이 되었든 모든 건 인생들이 만들어낸 찌꺼기이며 잉여물질이다. 신체적 전염병인 코로나와 그에 따른 엔트로피, 고독과 우울증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 외로움의 전성시대를 사는 이 시점에 다행인 것도 있다. 맘을 편하게 해주는 위로의 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다. 이것만으로도 위로받기에 충분하지 않까.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다른 사람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고 이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그러니 자신이 외롭다고 너무 슬퍼할 일도,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할 일만도 아닌 것이다.


운전할 때 사이드 미러의 반경을 조금만 조정해도 드라이빙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마음의 방향을 조금만 돌려놓아도 삶은 더욱더 선명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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