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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13. 2023

베를린 리포트, 히틀러와 유대인.


                     베를린은 영광과 굴욕의 도시다.


현대인은 이 도시에 진 빚이 많다. 과학과 기술문명, 학문과 예술 등. 현대 문명의 인프라를 깔아놓은 건 베를린 천재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유대인들이었다.


 20세기의 여명이 싹틀 무렵 베를린은 문화와 예술이 끓어오르는 용광로와 같았다. 뭔가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은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방향이 어두운 쪽으로 비틀려 나고 말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시작되었다. 극과 극의 두 명암을 어떻게 조합시킬 수 있으랴. 한쪽에는 문명의 빛을 사한 유대인들이 있다. 다른 한쪽엔 그들을 척결하려는 세력이 서 있었. 


유대인 학살 문제는 독일을 넘어 전인류에게  떠넘겨진 숙제다. 잠시 베를린을 방문하면서 그 흔적을 찾아 나선다.



독일 동북부에 자리 잡은 도시 한복판으로 슈프레 강이 흐른다. 이 지역엔 호수들이 많다. 숲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 청정구역이라 할만하다.


베를린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운터 덴 린덴' 거리가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란 뜻인데 이름답낭만적 분위기다. 거리 중앙엔 산책로가 들어서 있다. 쉼과 낭만이 있는 풍경화 한 컷이다.



                                       

                              독일 음악의 성지


운터 덴 린덴 거리를 걷다 보면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일 음악과 예술의 상징물이다.


 독일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칼 마리아 폰 베버, 베토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가 연중 쉼 없이 무대에 올려졌을 터.


독일인들에게 음악은 예술의 한 장르를 훨씬 뛰어넘는다.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로 바그너가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의 추종자 히틀러는 그걸 교리강론처럼 받아들였고 게걸스레 암송하며 실행에 옮긴 인물다.


 낭만의 거리 운터 덴 린덴에서 방향을  바꿔본다.

보리수나무의 낭만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전경이 등장한다. 음침한 광경이 시야를 넓혀주면서.


이 도시가 어째서 굴욕의 장소인지 여기 건축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유대인 학살 추모 기념관이다. 갑자기 공기가 나빠진다. 매캐한 미세 먼지가 정신 속에 침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방인들 마다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춘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콘크리트로 세워진 2711개의 비석 같은 조형물들이 장승처럼 도열해 있다. 죄다 검은색뿐이다.


왜 여기에 이토록 흉물스러운 추모비가 서 있는 걸까. 그것도 베를린 한 복판에 말이다. 광화문 광장에 이런 게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움이 스무 살 김태희 얼굴이라면,

베를린의 엄숙한 무드는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 같다.


 묵직하고 사색적인 그저 심각한 분위기. 아마도 이런 건축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수도 한복판에 기념비 몇 개 세워 놓았다 해서 지워질 죄상이 아니다.


시시포스의 신화를  상기해 보자. 바윗돌을 짊어지고 올라가 굴리고 다시 짊어지고 다시 굴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기이한 형벌.



신화는  독일인들과 그 후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지워지지 않을 주홍 글씨를 사정없이 내갈긴다.

아 독일의 슬픈 운명이여! 그러나 착각은 금물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자행된 인종학살 사건. 수천 만의 영혼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던 사건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고 말았.


 사건은 독일의 울타리를 넘어 전세계를 항해 기소장을 발부한다.


희생자들의 대다수는 유대인들이었다. 가해자는 누구일까. 히틀러와 독일인? 아니다. 전 인류가 가해자다.



                          유대인 문제는 세계의 문제


 유대인 문제는 세상 전체의 문제요 유대인의 역사는 온 세계의 역사다. 이는 논리의 비약이 결코 아니다.


유대인과 홀로코스트 학살 문제는 깊고광활하다. 정글 속에 한 발  잘못 들여놓으면 거기에 갇히고 만다. 유대인 문제가 꼭 그렇다.


유대인 시리즈물은 언제나 상위 랭크를 차지한다. 유대인의 성공 비법, 부자가 되는 비결, 교육 모델 등등.


갈매기들이 어선 주위를 맴돌 듯 유대인 문제는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너무도 피상적이라 결코 그들 문제의 핵심에 이를 수 없다. 이것이 딜레마다.


                                  

                             베를린, 폐허에 묻히다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을 소련군들이 에워쌌다. 총성과 화염이 비처럼 쏟아졌다. 도시는 삽시간에 초토화되어 갔고. 위대한 베를린의 영광이 잿더미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히틀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베를린 지하 벙커, 바로 거기서 독일 총통은 애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 과연 히틀러다운 엽기적 발상 아닌가. 웨딩 마치도 생략한 신랑신부는 서둘러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피로 물든 벙커 안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장송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이 장면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일평생 히틀러가 그토록 숭배했던 거인. 그의 음악을 들으며 맞이한 종말.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허무한 종말이었

지만.



 오페라 '신들의 황혼'이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남긴 놀라운 작품이다. 이 음악의 마지막 장면은 대단히 흥미롭다.


여주인공 브륀힐데가 활활 타오르는 불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로써 신들과 인간들이 꿈꾼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불에 타 사라져 버린다.


이제 남은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파괴를 통한 해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그너가 그린 세계상이다. 어찌하랴. 히틀러는 이 정신을 정치에 도입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나치다.


                 히틀러와 바그너, 그 마법의 수수께끼여!


히틀러는 바그너의 몽상적 이상을 꿈꾸고 실현시키려 한 인물이었다.


이 세계는 완전히 파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세상이 오니까. 이를 위해 거대하고 야심 찬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중심은 반드시 베를린이어야 한다.


베를린은 히틀러가 꿈꾼 새로운 왕국 '게르마니아'의 수도였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 하나가 있었으니.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히틀러의 이상을 방해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하여 반드시 그들을 전멸시켜야 했다.


유대인들을 청소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대학살 )가 치밀하게 계획되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일련의 학살 수용소들이 건설되어 갔다.


 히틀러는 거대한 스케일의 정치설교자였다.

교회가 아닌 야외 정치강단이 무대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종교적이라 치켜세웠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 여호와와 독일 민족의 신 오딘 간의 종말론적 전쟁은 필연적이라는 것.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은 선지자로 왔다는 것이다.


망상이나 미치광이의 횡설수설이라고? 절대 아니다. 그러기엔 그의 논리가 비범하리만큼 정교하고 신학적이다.


탄탄한 신학적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바그너 음악의 옷을 걸쳐 입은 사람.


독일 전통 민속 신앙으로 무장하여 독일인의 혈통과 그 위대성만을 고집한 사람. 그가 바로 인간 아돌프 히틀러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바그너 음악이 재평가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히틀러의 야외 연설이나 조명장치를 동반한 군중집회, 나아가 대군중을 끌어들인 마성적 힘의 원천은 바그너의 음악을 떠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히틀러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세상의 온갖 추악한 죄들이 다 들어차 있었다.


이는  유대 역사 전문가 폴 존슨이 내린 진단이다. 치료에 앞서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함은 상식에 속한다.


이 논리가 맞다면 유대인 학살의 문제는 분명 인간의 죄의 문제다. 아무도 비켜갈 수 없다.


유대인 학살은 인간 죄의 극한과 악마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돌프 히틀러는 맨 앞에 서 있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다


베를린 리포트는 이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이제부터 풀어가는 유대인 이야기의 첫 장일뿐이다. 

히틀러와 유대인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사의 첫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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