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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Apr 05. 2023

의외로 금수저도 불행하네

          양배추와 황금


두 황제의 은퇴 스토리는 오늘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바가 매우 크다.


양배추 하나로 만족했던 사람과 탐욕에 물들어 인생을 마감한 다른 한 사람의 차이는 비교불가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권력은 자리 곧 지위에서 나온다.


지위를 통해 얻는 것이 죄다 권력이니까 말이다.

누구든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동안 누렸던 힘의 부재를 체감한다.


은퇴한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은퇴 이후 변변한 공부도 없이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개인사업 등으로 귀중한 자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소식이 종종 들린다.


잃어버린 권력의 부재를 다른 데서 급하게 채우려다 빚어진 참사에 다름 아니다.


막시미아누스 에피소드는 결코 남 얘기로 끝나선 안된다.


황금 곧 돈이란 놈은 요물이어서 너무 가까이하면 뜨거워서 타 죽고 너무 멀리 하면 차가워 얼어 죽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를의 황금 따위에 눈독 들이지 말자. 욕심은 금물! 말하면 무엇하랴.


은퇴자들이 가져야 할 귀중한 덕목 중 하나는 탐욕을 멀리하는 것이다.


          프로방스 아를과 론 강에서


몇 해 전 남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을 둘러보았다.   

 

프로방스는 영원한 봄이요 여름이다.

깨질 듯 파란 하늘 아래 고대의 성과 수도원이 굳건히 서 있고 로마시대의 유적지는 광활한 벌판을 채우고 있다.


수백 년 수령의 플라타너스 잎사귀는 대도에 그늘을 이루고 그 녹음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막아준다.


길게 뻗은 가지는 오가는 방문객들을 배웅하면서 말이다.


산등성이를 오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앞다퉈 피어 장관을 이룬다.


쇠락한 마을 뒷산 다 쓰러져 가는 풍차와 고독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 있다.


수줍은 듯 고개 숙여 인사하는 황색의 수선화도 낯선 이방인을 맞는다.


프로방스는 로마 유적지들을 포함한 고대 유물의 전시장과 같은 곳이다.


봄날의 미풍이 살갗을 어루만지고 지나던 어느 날 오후 아를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세잔의 아틀리에를 들른 후 고흐와 고갱이 함께 했던 노란 집을 빠르게 지나 원형경기장에 이르렀다.


잠깐 숨을 돌려 미로와 같은 옛길을 벗어나자 성벽이 나타났다.


아를의 성벽! 이제는 일부의 폐허만 남아 막시미아누스의 최후를 숨 가쁘게 증언하고 있었다.


이곳에 한참을 머무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은퇴황제 막시미아누스!

아를의 성벽 앞에 선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대체 여기에 얼마나 많은 황금이 있었던가.

영원토록 금수저를 물고 싶었나.


막시미아누스의 말년을 보면 분명 금수저라고 다 행복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아를의 성벽 앞에선 엄청난 무게감이 실려 다가온다.


다만 지금 이곳엔 황제도 황금도 모두 사라지고 폐허의 성곽 한 조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덧없는 인생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프로방스의 하늘에 노을이 불타고 있다.


서둘러 론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겨 어느 벤치에 앉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막시미아누스를 처단하기 위해 리옹에서 군대를 몰고 이 강을 가로질러 오지 않았던가.


역사의 강 론 강변 어귀에 황제의 군사들이 배에서 내린다.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아를의 성벽을 때리며 되울리고 있다.

아를의 황금은 사라지고 막시미아누스 죽음을 맞는다.


아 나는 잠깐 동안 환영을 본 것일까.

사실상 사람이 머무는 시간이란 강아지 한 마리가 문 틈을 지나듯 짧은 순간일 뿐이다.


모든 건 환상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어느새 휘영청 둥근달이 떠올랐다.

론 강의 성긴 가로수잎 사이로 달빛이 통과하며 물결 위에 반짝이고 있었다.


달빛을 실은 론강의 거센 물줄기는 지중해를 향해 가파르게 사라질 터이다.


그날 밤 론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폐허가 된 성채와 달빛 만이 삶의 의미를 되새겨 주고 있었다.


문득 채근담의 금언 한 토막이 섬광처럼 떠오른다.


                 "쉽게 탐욕을 채울 수 있는 게 보이는가?

                           잠깐이라도 손을 대지 말라.

             한 번 손을 대면 곧바로 만 길 수렁에 빠지고 만다".


          행복의 가치


은퇴 이후의 삶을 말할 때 행복의 가치를 다시 묻게 된다.

분명한 것 하나는 이것이다.


욕망의 절제야말로 참 행복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점 말이다.


두 말할 필요 없이 현재의 삶에 대한 자족과 감사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비결이다.


은퇴자의 삶은 잘 차려입고 갈 데가 없을 만큼 단조로운 삶이 되기 쉽다.


그러나 길은 항상 찾는 자에게 열리는 법이다.

할 일 없음을 핑계로 호숫가에 노니는 우아한 백조를 온종일 넋 놓고 바라볼 일은 아니다.


몸통에 가려진 수면 밑의 움직임에 주목할 때 전체 그림이 완성됨을 잊어선 안 되겠다.


지금껏 미처 알아채지 못한 수면 아래 가려진 진짜 내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은퇴자 만이 누리릴 수 있는 정당한 특권이다.


은퇴 이후 나이 든 연령대가 가진 두드러진 장점은 무엇일까.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아니겠는가.


지금까지의 경험은 산을 움직일 만한 지렛대로 쓰일 수 있다.

반대로 따분하고 지루한 삶에 젖어 놀고먹으면 그 산도 말아먹기 쉽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린치핀 같은 역할을 찾아내어 이제부터는

잘 차려입고 어디든 가는 새 길이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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