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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Apr 04. 2023

            황제도 조기은퇴?!

          스플리트의 양배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역사에서 처음으로 조기은퇴를 감행한 인물이었다.


그것도 순전한 자원은퇴 말이다. 그의 권력의 마무리는 지금 생각해도 찬탄을 금할 만큼 깨끗하다.


오늘날 발칸반도는 버킷 리스트로 꼽을 만큼 인기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사 세기경 이 지역은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다.

은퇴식을 마친 황제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현재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 여장을 풀었다.


은퇴 이후를 대비해 그곳에 한 장소를 예비해 놓았던 것이다.

사방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성채는 한눈에 봐도 압도적이다. 이곳을 가리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 부른다.


궁전의 남쪽 건물은 아드리아 바다를 면하고 있다.

은퇴한 황제는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당 텃밭을 손수 일구고 양배추를 심었다.


그는 어느새 질박한 시골 농부로 변신하여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황제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발칸의 시원한 바람이 식혀 주는 사이 세월은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권력자들의 정계복귀 권유가 빗발쳤다.

왜 그렇게 성급한 결정을 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단다.

"만일 스플리트의 정원에 있는 양배추의 단맛을 당신들이 맛볼 수 있다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걸세".


이만 하면 성공한 은퇴생활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은퇴황제


그 당시 로마제국의 권력구조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제국의 영토는 동방과 서방으로 양분되어 각기 두 명씩 총 네 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이들은 다시 정제와 부제의 시스템으로 서열화되었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방의 정제를, 막시미아누스가 서방의 정제를 맡고 있었다.


막시미아누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서 자원은퇴를 권유받고 흔쾌히 은퇴를 결정했다.


이로써 로마역사상 두 명의 황제가 동반 자원은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한 해고가 아니었다. 단지 제국의 안녕을 위한 충심 어린 결단이었으니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은퇴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우선 그는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으로 내려가 거처를 잡았다.

막시미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적적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성미에다 무엇이든 충동적인 기질을 가지고 덤벼드는 성품만 봐도 그렇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누구처럼 배추나 심고 살 그럴 위인은 처음부터 아니었으니까.


벌들이 벌집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윙윙거리듯 사람에게 권력이란 벌집의 단맛과 같아 그걸 떠나기란 당최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막시미아누스는 다시 권력의 주변을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은퇴는 했으나 사실상의 은퇴를 거부한 셈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큰 사고 치기 십상이다.


모략가 기질이 농후했던 전직황제는 당시 로마의 떠오르는 별 콘스탄티누스를 만나 자신의 딸과 정략결혼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를의 황금


남프랑스의 프로방스에 있는 작은 도시 아를에서 콘스탄티누스의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감사표시인지는 몰라도 사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장인이자 전직황제인 막시미아누스에게 아를지역의 통치권을 위임했다.


이때 라인강 너머에서 전쟁이 발발했는데 현직 황제가 반드시 출정해야 할 만큼 긴급상황이었다.


성채가 비어있는 틈을 타 장인은 사위의 권좌를 탐을 내 쿠데타를 일으키고 만다.


이런 못된 짓을 감행한 결정적 배경은 아를의 성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보물이 제공했다.


황금이 전직황제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집 나간 토끼 몇 발자국 못 가는 법이다.


전열을 정비하고 아를에 들이닥친 사위의 정예군대는 굶주린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 사냥하듯 장인의 쿠데타를 손쉽게 잠재워 버렸다.


체포된 그는 자결을 권유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은퇴황제의 끔찍한 엔딩이었다.


동료 은퇴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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