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 프로방스 Apr 01. 2023

  잘 차려입고 갈 데가 없다?(2)

                   은퇴자와 광야체험

은퇴자는 광야 같은 현실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마음속엔 어둡고 무거운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를 시작으로 현실에 대한 낙심과 미래를 향한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에이징 커브의 생물학적 쇠퇴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행복은 대개 혼자서 찾아 오지만 시련의 방문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한다.


이들 모두가 은퇴자들에게 이웃 맺기 하자며 난리들 친다. 봄 꽃을 떨궈가는 시샘추위만큼이나 달갑지 않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런 상황 속에 처한 사림들을 가리켜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 이름했다.


맞다! 은퇴자들은 대개의 경우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광야 같은 현실 속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이다. 물론 이와는  다르게 소수의 예외적인 이들이 있긴 하지만.


 100세를 살아야 하는 시대다.

선택이 아닌 시대적 사명이자 부과된 숙제라며 매스컴마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있다.


듣고 있자면 안개가 자욱한 아침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더해진 시계제로의 상황만큼 답답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차려입고 갈 곳이 많은 인생을 스스로 열어 가야 한다.

  

언젠가 성지순례 여정으로 광야 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집트를 출발해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는 여정이었다. 목적지는 시내산 정상이었으나 프로젝트의 하드코어는 어디까지나 광야횡단 체험에 있었다.


섭씨 40도를 넘는 사막의 햇볕은 살인적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마다 메마르고 건조한 땅이 외치는 선언문을 들어야 한다.


이곳 어디에도 생명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지나온 삶의 이력이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에 붙은 제목을 나도 모르게 반복하며 걷고 있다.


그때 "꼭 그래야만 했을까?( muss es sein )". "그럼 그래야만 했지(es muss sein)".

그렇다면 지나온 삶은 정당했나?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바람 소리는

모래의 지평선 너머 허공으로 들어가고


참회와 후회의 노랫소리는 신기루의 사막을 맴돌며 날아간다.


참회의 눈물이 건조한 땅에 떨어진다.

광야의 시간은 지나온 삶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을 향한 탄식과 눈물이며 위로의 시간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를 사는 사람은 광야의 무대를 오버랩시키면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타임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있다. 은퇴자는 이 시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인생의 도약을 꿈꾸는 것이다.


여기서는 조금만 걸어도 목이 타 들어간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원하여 강렬한 더위를 싣고 오는 시로코 바람은 숨통을 끊어놓을 만큼 고통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광야의 선배 과거 유대인들의 고백을 공유하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 그들이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시편 107장 4절).


광야에서 단 몇 시간이라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인생의 그 무서운 현실을 절절히 느끼는 것 말이다.


홀로 있음, 절망의 밑바닥을 타고 흐르는 극단적 소외감, 마치 미래세계에서 온 사이보그 터미네이터를 만난 것처럼 섬뜩해져 솜털이 곤두서는 공포감.


이 모든 부정적 감정의 테러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학습 센터가 곧 광야다.

 

광야는 사방으로 열린 공간이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폐쇄된 영역이기도 하다.


광야는 감사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다.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다 해도 여기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서다.


그 어떤 경우라도 광야에 비하면 생각만큼 지옥은 아니다. 그러니 고달픈 현실을 마주할 때도 감사하며 살 수 있음을 배운다.


광야의 어느 곳을 지나고 있을 때 모래폭풍이 다가와 눈을 못 뜨게 가로막았다.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기다림 속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머지않아 나쁜 상황이 다 사라지니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오월의 미풍이 새싹을 만지고 지나가듯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여름날 뙤약볕을 안고 불어오는 시련의 바람을 맞으면서 성장도 했었다.


이제는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열매를 맺을 우리의 삶이 아닌가?


겨울의 칼바람이 오기 전 은퇴자들은 결단해야 한다.

나만의 아름다운 삶을 살기로.



이전 02화 잘 차려입고 갈 데가 없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