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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r 21. 2024

수선화 이야기

전국에 수선화 축제가 한창이다.

바닷가길을 따라 저만치 걷다 보면 노랗게 피어오른 수선화 군락을 마주할 수 있다. 해마다 2월에서 3월을 지날 때면 일편단심 기다려 주는 고마운 꽃들이다.


네덜란드는 과거 17세기경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문화의 꽃은 배부른 땅에서 피어난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화려한 꽃들은 자칫 탐욕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잘 나가던 네덜란드인들에게 튤립 광풍이 들이닥쳤다. 관상용 재배를 넘어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튤립 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자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훗날 그 광풍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당시 유럽 귀족사회에 끼친 튤립의 경제적 가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현재까지도 네덜란드는 튤립 왕국의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데 죄다 이런 이유에서다.


나리마다 환경과 상황은 다르다 해도 일정한 공유점은 있는 법이다. 18세기 조선사회에  대단한 수선화 열풍이 일고 있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튤립 홀릭에 빗댈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은 수선화가 조선없다고 생각하여 전량을 중국에서 수입해 왔다. 임원경제지를 저술하여 작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실학자 서유구가 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논평은 수선화 가격폭등에 일조했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엔 수선화가 없다.

    근래에 들어서야 비로소 중국 시장에서 들여온 것이다.

    호사가들이 뿌리를 나누어 화분에 얹어

    서가에 놓아두고 기이한 감상거리로 뽐낸다.

    하지만 값이 비싸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생 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서유구의 금화경독기)


이 글로 미루 보아 수선화는 아무나 집안 들일 수 있는 꽃이 아니었던 같다. 권력의 정점에 올라 경제적 풍요를 누린 사대부 명가나 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미였음이 분명하다.


거문고가 걸린 벽에 서책글로 가득한 권세가들의 방 안에서 수선화의 은은한 향취가 퍼져 나갈 때 조선 최고의 예술가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망명 길에 올라야 했다.


그에게 십 년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급스러운 음식에 길들여진 그의 입맛은 제주의 질박한 밥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섬 특유의 풍토병과 척박한 환경은 이미 글로벌 명사의 반열에 오른 추사의 상처 난 자존감에 식초를 뿌리듯 괴롭혔다.



인생사에 역경이 있으면 위로도 멀지 않다. 유배 시절 추사는 제주의 바닷길을 걸으면서 이 섬이 주는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제주의 향토와 자연을 관조하면서 이를 시로 읊조리며 무심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봄이 오는 들녘을 찾아 나선 그를 반갑게 맞이한 건 노란빛 수선화였다. 서울에서는 보기 조차 힘든 귀물인데 이곳에선 지천에 널려 있는 것 아닌가.  


제주의 토착민들은 마치 소와 말의 먹이로 쓰기 위해 풀을 베어내듯 이 꽃을 원수 보듯 한다고 추사는 탄식했다. 무엇이든 넘치면 대접받지 못한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얼굴을 활짝 펴니

    신선 인연

    끝끝내 인색한 게 아니로다.

    호미질로 내다 버린 귀한 꽃 수선화를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 놓고 공양하네".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추사 김정희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수선화 한 다발을 꺾어 들고 유배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었을 한 천재의 모습 말이다.


수선화 하면 자연스레 그리스 신화를 떠올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날 숲 속을 떠돌며 사냥하던 나르키수스는 몹시 목이 말랐다. 맑은 샘가에 다다른 그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하며 그 사랑을 쫒고 동시에 사랑에 쫓기는 자가 되고 말았다. 이는 신이 그에게 내린 형벌 때문이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려 허상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었다. 밥 먹는 일도 잊다가 굶어 죽고 말았단다. 숲의 요정들이 그의 장례를 위해 시신을 찾았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데.


그가 죽은 자리에는 흰 꽃잎이 노란 암술을 싸고 있는 꽃 한 송이만 있을 뿐이었다.


나르시스(narcis). 곧 수선화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수선화에 이토록 슬픈 이미지가 덧씌워졌는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르시스 이야기는 오늘 공주병 왕자병 등 자아도취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향한 경종으로 들린다.


 그해 겨울 나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프로방스에 겨울이란 없다. 영원한 봄 영원한 여름만 있을 뿐이다. 꽃들의 천국인 그곳에서 수선화는 화려한 축에 들지 못한다.


장승처럼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낡은 풍차 옆에서 다만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상처받을 일도 없다.


고고함이나 귀족적 우아함과도 거리가 멀다. 내가 만난 수선화는 그런 자태였다.


수선화는 인간이 벌이는 탐욕의 광풍을 알지 못한다. 나르시스 이야기에 아무 관심도 없다.


봄이 찾아 오면 무심한 듯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프로방스 어느 오지에서 저만치 홀로 피어 있을 수선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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