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에게

by 도린

여보!

8년의 열애 끝에 결혼한 우리,

데이터 상으로 가장 덥다는

대구의 여름에 신혼을 시작했지


허니문 베이비로

당신을 쏙 빼닮은 첫딸을 낳았어.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


하지만,

여느 엄마 아빠처럼 기뻐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함께
빛이 닿지 않는 긴 터널을
끝도 없이 걸어야 했지.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뺀

종일을 울어대던 아이를

밤새 돌보다 깜빡 잠이 들면,

당신은

젖병은 소독해 놓고

기저귀는 빨아 널어놓고

물 한 주전자 끓여놓고,

공부하러 (신학대학원) 떠났지.


나는 가만히 일어나

울다 지쳐 잠이 든 아가를 두고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

배춧국 끓이고 콩나물 무쳐놓고

서울 지하 단칸방에서 당신을 기다렸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한 채

수시로 경기하며 악을 쓰며 울어대던 첫째.

병원 지하 MRI 기계에 넣어놓고

당신도 나도 숨죽여 울다가,


아이가 움직였다고

수도 없이 수면제를 주사한 끝에

온몸이 땀과 오줌으로 절여져

축 늘어진 채 검사 끝나고 나오는

작디작은 몸뚱이를 품에 안고

당신도 나도 오열했던 기억,


아직도 절절해.


어디가 불편하고 아픈지

종일 울어대는 바람에

온통 내 귀엔 환청이 들리고

당신이 없을 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차려진 밥도 못 먹을 만큼의

힘든 시간을 보냈지.


당신도 고단했을 텐데

이런 나를 위해

매번 지키진 못했지만

‘주부 퇴근 제도’를 만들어

밤 10시 이후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해 준 당신.


그때 읽었던 책 한 소절,

아름다웠던 노래 한 구절,

정겹고 따스했던 시들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고단했던 나를

살게 해 줬어.

살아 있게 해 줬어.


설교할 때 쩌렁쩌렁 울리던

당신의 백만 불짜리 목소리.

가슴을 뻥 뚫리게 하던 찬송가 소리.

그 소리에

답답했던 내 마음이 열리고,

나의 신앙도 함께 자랐지.


어느덧 당신의 빽빽하던 머리숱은

가을 낙엽처럼 성성히 흔들리고,

홍안엔 얼룩덜룩 잡티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어

눈꼬리도, 입꼬리도

겸손해진 당신.


그렇게

청년에서 장년을 지나

초로의 입구까지 데려다준 세월이

당신을 또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


그 세월이 앞으로

당신을 더욱 겸손하게 빚어가도,

똑같은 속도로

당신을 닮아가는 내 곁에

여전히 함께해 줄 당신에게


땡큐!

울 것만 같아서

그저,

웃으며 땡큐!


P.S.

가늘어진 팔다리와

두리뭉실한 배를 가려주는

수트발은 여전히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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