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아홉째 날

by 도린

윷놀이



시댁에서 추석 차례를 마치고, 어제 늦게 의성에 도착한 둘째 조카 가족과 함께 윷판을 펼쳤다.

형부, 조카사위, 조카 손자가 한 편,

큰언니, 나, 조카딸, 조카 손녀가 한 편.

판이 깔리자마자 세기의 승부가 시작된다.


“모야! 모야! 모야!”

“윷이야!”

“백도! 백도! 백도!”

“한번 더! 한번 더!”

“살리고, 살리고!”

“무조건 걸! 걸! 걸!”

“도나 개나, 걸이나, 아무거나 해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 윷판 위로 휙휙 날아가는 윷가락, 업고 제치고, 쫓고 쫓기며 잡고 잡히는 혼돈의 세계.


엘리트 코스답게 정석대로 달리는 윷말도 있고,

멀리 돌아온 끝에 허망하게 잡히는 윷말도 있다.

큰언니가 사위를 제치며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동안, 나는 조카 손주에게 대패를 당하고, 형부는 조카딸에게 굴욕적인 역전패를 맛본다.


어른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들썩들썩 응원의 열기를 더하고,
아이들은 윷가락을 쥔 손끝에 온 세상의 운이 달린 듯 숨을 죽인다.

"할아버지, 내가 져줄까?"
던졌다 하면 모 아니면 윷이 나와 신이 난 조카 손녀의 의기양양한 말뽄새가 사랑스럽고 앙증맞기 그지없다.

그런가 하면, 판판이 지고만 있던 조카 손자도 제법 의젓하게 사태를 수습한다.
"할머니, 져도 울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게 사나이다운 거지요?"
실망 가득한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뒷발차기로 상대 윷말을 단숨에 제압하는 묘기,

순식간에 판 밖으로 튕겨 나가 낙방의 고배를 마시는 순간, 웃음과 긴장이 교차하는 그 한판 한판이,

사람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구나 싶다.

잘 던졌다고 늘 이기는 것도 아니고,

못 던졌다고 끝이 아닌 게 인생이랄까.

뒤집히고 굴러, 때로는 엎어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결국엔 제 자리로 돌아오는 윷짝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굴곡지게 익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윷놀이를 마치고 방앗간 처마 밑으로 모였다.
지글지글 숯불 위에 올려진 오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상추, 깻잎, 열무, 조선오이, 풋고추, 의성마늘에
큰언니의 시그니처 쌈장까지 —
허리둘레의 긴장을 단숨에 무장해제시키는 쌈맛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후식으로는 망고맛 팥빙수 위에 고소한 콩가루까지 솔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음이 피어나는 달콤한 시간이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도, 조카 손주들이 졸라대서 10판도 넘게 윷놀이를 했니더. 이기면 신이 나서 한판 더, 지면 이길 때까지. 꼬맹이들의 강철 체력에 장단 맞춰 나는 최고 인기쟁이 할매가 됬으요. 막내 이모할매 인기 유지하기 참말로 쉽지 않네예!"


윷판 위의 승패가 뭐 그리 중요하랴.
온 가족이 함께 왁자하게 웃고, 달뜬 신명 난 하루가 쉰 목소리로 나직이 저물어 가고, 둥근달이 둥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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