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째 날
시골쥐 부부의 수난의 밤
상견례 하루 전날,
먼저 한국에 와 있던 나는 의성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대학 후배와 저녁을 함께하고, 달게 마신 마차라떼가 화근이었다.
평소 유제품을 잘 못 먹는 체질인데,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그걸 단숨에 들이켰는지.
락토 톨러런스 없는 내 몸은 즉시 반란을 일으켰다.
기진맥진한 채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를 수십 번.
그 시각, 저가항공으로 한국에 들어오던 남편은 한밤중 공항에 도착했다.
외국인 입국심사에만 한 시간 반이 걸렸고, 무거운 캐리어 두 개와 배낭까지 짊어진 채 리무진버스에 올랐을 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강남 쪽으로 오는 버스는 이미 끊겼고, 휴대폰 배터리마저 닳아가는데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서울의 어느 낯선 한 귀퉁이에서 그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저녁도 못 먹고 장거리 비행에 지쳐 있을 남편이 떠올라,
나는 비를 맞으며 호텔 밖으로 나가 컵밥과 찐계란, 그리고 우산을 사 왔다.
프런트에 콜택시를 요청해 두고,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차마다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콜택시는 감감무소식.
카카오 앱으로 택시를 불러봤지만 외국인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또 실패였다.
겨우 통화가 연결된 남편은 “숙소까지 걸어오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끊겼다.
걸어서 40분 거리였다.
쏟아지는 빗속,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남편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도를 열고 남편이 내렸다는 정류장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비는 여전히 퍼부었고, 새로 산 구두는 젖어 발뒤꿈치가 까져 쓰렸다.
구두도 젖고 바지도 무릎까지 축축하게 물들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술에 취해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과 다정한 연인들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남편도 외면하고, 나도 무시하며 달아났던 택시들이, 바로 이 거리 한복판에 다 있었구나.
‘예약’이라는 푸른 불빛이 깜박이며, 웃음과 술렁임으로 흥청거리는 서울의 새벽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야속한 택시 같으니라구!
그들의 취기와 술렁이는 웃음 사이로, 나는 젖은 구두 속 퉁퉁 불어 터진 발을 끌며 걷고 또 걸었다.
결국, 우리의 길은 엇갈려 버렸고 한참을 서성이던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는 남편의 연락을 받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서울의 빗길을 두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새벽 3시 반.
드디어 우리 부부는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재회했다.
상견례 때 신으려던 구두는 걸레가 되고, 뒤꿈치는 까지고, 다리는 부어올랐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만났다는 안도감에 아무래도 좋았다.
피로에 쩔은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눈이 말똥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찐계란과 일회용 북엇국을 데워 먹으며 밤을 꼴딱 새웠다.
비 오는 서울의 그 밤,
우리의 첫 상견례 전날은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시골쥐 부부의 수난의 밤’으로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시골쥐 한 쌍이,
고단하고 남루한 서로를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