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열 여섯째 날

by 도린


대구, 부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의성으로 왔다.

여독이 남긴 했어도 고향집이 푸근했다.

저녁상 물리고 며칠 전부터 몸살 기운이 돈다는 큰언니 옆에 전기장판 펴놓고 담요를 깔아 나란히 누웠다.

나는 대구, 부산 여행담을 들려주고 언니는 어릴 쩍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밤늦도록 나눈 이야기 가운데 가물가물하던 옛 기억 하나를 소환해 본다.



숩실감


어릴 적 빛깔도 곱고 알이 굵어,

보기만 해도 달 것 같던 감.

한 입 베어 물자마자, 혀끝을 덮치는 떫은맛에

오만상을 찡그리곤 했습니다.


엄마는 그 숩실종 감을 깎아 실에 꿰어

곶감을 만들기도 하고,

뜨끈한 소금물에 삭혀 단감을 만들어 주셨지요.


'올해 숩실감이 잘 됐다 ' 하면

'올해 곶감 농사가 잘 되겠다 '는 뜻으로 통할 만큼

의성엔 숩실감이 흔했습니다.


엄마는 이른 새벽 기차역 앞에서

잘 삭힌 숩실감을 접으로 떼다가

부산시장에 내다 팔곤 하셨어요.


앞에서 몇 접씩 떼어 낸 감 중,

무르고 상처 난 것들을 골라

우리 사 남매 몫으로 보자기에 쌌습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공공칠 작전!

엄마는 새벽기차를 타기 전날 밤,

사 남매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인숙이네 밭머리쯤 기차가 지나갈 낯에,

단디 서 있거래이."


졸린 눈을 비비며 언니, 오빠 손을 잡고

기차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마침내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

엄마가 창문을 열고 힘껏 던진 감 보자기가

허공을 가르며 우리 쪽으로 날아왔지요.


우르르 떨어진 삭힌 감을 주워 담는 사이,

기차는 멀리 부산으로 엄마를 데려갔어요.


옹기종기 삭힌감을 나눠먹던 그 아침,

사 남매의 입안엔 달콤함이,

가슴엔 엄마의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고생했던 엄마,

달콤했던 감,

가슴이 미어지는 추억이

가을빛에 서러워집니다.


어린 시절 기다리던 것이

감인지 엄마였는지,

이른 아침 언니야 오빠야 손을 잡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는,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잘 삭힌 숩실감을

따뜻한 구들목에 앉아

엄마와 정답게 나눠 먹고 싶습니다.



덧말


감나무는 가지가 연해, 아무리 굵어도 조심해야 합니다.
대부분 장대로 감을 따지만, 어느 해 늦가을 무서리가 내린 날,
엄마는 서둘러 굵은 감나무 가지에 올라 감을 따다가 그만 가지가 부러져 겨우내 몸져누우신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