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r Valentine

by 도린


브런치 신사 숙녀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아~ 오늘 다들 안색이 아주 화사하시네요? 특히 저기 앞줄에 계신 분, 유난히 반짝반짝해 보이시는데... 혹시 오시면서 초콜릿이라도 하나 까 드셨습니까?
​사실 그래요. 우리가 친절함이나 상냥함 같은 게 무슨 대단한 인격 수양에서 나오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탄수화물과 당에서 슬그머니 배어 나오는 것이더란 말이죠!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배고프고 당 떨어져 보세요. 철학? 인내? 그런 거 다 36계 줄행랑입니다. 일단 짜증부터 확 올라오는 게 우리네 본성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매년 2월 14일만 되면 서로에게 "제발 좀 상냥해져라!"하고 강요하듯 초콜릿을 퍼붓게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달콤한 날의 시작이 사실은 아주 살벌한 **‘결혼금지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때는 바야흐로 3세기 로마 제국! 전쟁이 난무하던 시절,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고민에 빠집니다. 전쟁터에 나가야 할 군인들이 자꾸 집에 있는 마누라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하니 군 사기가 바닥을 치는 거예요. 이때 공감 능력 상실한 'T'형 황제가 아주 기막힌 결론을 내립니다.


​“아니, 결혼을 하니까 자꾸 집이 생각나는 거 아냐? 그럼 오늘부터 로마에 결혼은 없다! 다들 칼이나 갈아!”
​아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라! 그 말 한마디에 로마 전역에 결혼 금지령이 떨어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불법이 되고, 사랑하던 청춘남녀들은 하루아침에 남남이 되어 로마 골목마다 눈물바다가 넘실거렸던 것이올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눈물 젖은 로마에, 마치 저혈당 환자 앞에 나타난 초콜릿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이름하여, 발렌티누스 신부님!
​아아~ 이분,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분이었어요. 황제가 "결혼하지 마!"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뒤에서 몰래 커플들을 불러 모읍니다.
​“쉿— 황제한테는 비밀이닷. 자, 검은 머리 파뿌리... 아, 요즘 파값이 금값이라 이건 패스하고. 아무튼 여기 사인해! 너흰 이제 부부가 됨을 선포하노라!”


​결국 어떻게 됐겠습니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신부님은 체포되어 사형을 기다리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짧은 편지를 남기죠. “당신의 발렌타인으로부터.” 그게 바로 2월 14일, 사랑을 지키다 삶을 '로그아웃' 하신 날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 희한하지 않습니까? 그 처절했던 죽음의 날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어떻게 변했냐고요! 사형 집행장 대신 맛집 레스토랑이 예약되고, 피 대신 딸기 시럽이 뚝뚝 흐르는 날이 됐으니, 이거야말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과거가 현재를 떠받치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가끔 편의점에 쌓여 있는 하트 상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신부님이 이 광경을 보시면 허허 웃으시면서,
“그래, 내가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랑을 지켰더니 니들은 참 달콤한 세상에 사는구나. 근데 말이다... 초콜릿 좀 작작 먹어라. 이가 남아나질 않겠다 이놈들아!”


​자,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발렌타인 하면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하는 긴장감 넘치는 날로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여기 단풍국 캐나다는 좀 다릅니다.
​여기는 연인들만 유난 떠는 날이 아니에요. 학교 친구, 선생님, 이웃집 아저씨까지 초콜릿을 두루두루 나눕니다. "나랑 사귀자"가 아니라 **"네가 내 곁에 있어서 참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죠. 어쩌면 발렌티누스 신부님이 지키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연애 감정보다 더 넓은,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그 다정한 온기 말입니다.


​아아~ 그러니 여러분! 오늘 집에 가시는 길에 초콜릿 상자 하나 집어 들 때 이것만은 기억합시다.
우리가 지금 칼 대신 사탕을 들고 누구에게 줄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는 걸요. 연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입니까?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서로의 발렌타인이 되어 조금 더 달콤해지면 그만인 것을!


​자, 다들 다이어트 걱정은 잠시 접어두시고!
오늘 하루 당차게! 당 든든하게! 서로 사랑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발렌타인, 도린이었습니다!

"Happy Valentine’s Day!"



덧말.

이번 글은 ​생전에 만담을 참 좋아하셨던 엄마를 그리며 만담형식으로 써 보았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선생님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처럼 귀를 기울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평소엔 말수도 적고 표현도 인색하셨지만, 만담을 들을 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아, 엄마는 저 웃음으로 이 팍팍한 세상을 견디고 계시구나' 하고 어렴풋이 짐작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과장도 섞고 농담도 버무려 만담꾼 흉내를 내보았습니다. 엄마 손에 초콜릿 하나 쥐여 드리고 곁에 앉아, “엄마, 이 얘기 한번 들어볼래?” 하고 넌지시 말을 거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오늘만큼은 엄마도 그곳에서 누구보다 달콤하고 다정한 발렌타인데이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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