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Day!

딸의 질문

by 도린


지난 크리스마스, 가족들에게 줄 카드를 쓰다 말고 아려오는 손과 팔을 문질렀다. 고작 카드 몇 장 쓰는 일이 무에 그리 힘드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보니 가장 어려운 숙제 중 하나는 좋은 딸, 좋은 아내,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어 ‘좋은 가정’이라는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 숙제의 무게를 새삼 실감했던 건 작년 추수감사절 무렵, 밴쿠버의 한 중국 레스토랑에서였다. 둘째의 결혼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출산과 자녀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첫째가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기가 약하고 아프게 태어나면 버리는 부모도 있다던데, 왜 엄마 아빤 나를 안 버렸어?”
순간 식탁 위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당황한 나는 태연한 척 “하도 울고 말을 안 들어서 몇 번이나 버릴까 생각은 했지” 하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한숨 고르고 첫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널 버리려고 할 때마다 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찌나 예쁜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
사실 그 질문 뒤에 숨겨진 나의 진짜 고백은 더 아픈 것이었다. 널 버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네가 약하고 아플 때마다 ‘나보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몰래 품어 보았던 미안함.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너무 큰 사랑과 고통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한 부모의 간절한 기도이자 아픈 가정(假定)이었다.


2월 셋째 주 월요일, 캐나다는 ‘Family Day’로 지킨다. 이민 26년 차인 지금, 나는 이곳에서 가족의 의미가 조금씩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한국에서의 가족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 같은 혈연의 무게라면, 이곳에서는 삶을 함께 나누며 돌보고 책임지는 ‘선택’의 관계가 더 열려 있는 듯하다.
이민자로 살아오며 멀리 한국에 있는 가족의 빈자리는 때로 팍팍한 삶을 더 시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긴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가족 못지않은 곁이 되어 준 사람들이 생겼다. 안부를 묻는 이웃들, 커피를 마주하고 속내를 내어놓는 친구들, 독서와 글쓰기, 여행을 함께하는 벗들까지. 다민족이 모여 사는 이 나라에서 가족의 경계는 느슨해 보이지만, 오히려 더 넓게 퍼져 나간다. 나의 가족은 그렇게 한국에 둔 뿌리를 잊지 않은 채 새로운 인연들을 삶 속으로 들이며 확장되었다.


돌아보면 그날 딸의 질문으로 가족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답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족은 완벽해서 함께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약함과 두려움까지 끌어안고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다. 울 일도 생기고 웃을 일도 생긴다. 할 수만 있다면 비껴가고 싶은 순간마저, 결국 함께 건너기로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아빠를 꼭 닮아 참 예쁜 첫째.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엉뚱함은 아마 나를 닮은 덕분이겠지. 그런 너를 통해 나는 지금도 엄마로 자라는 중이다.
매번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겠지만, 폐부를 찌르던 그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리고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넓고 단단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오늘도 감사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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