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케어보다는 큐어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랬다.
세계 어디든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교회가 세워진다.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에도 한인 교회가 셀 수 없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의 구성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안에 있다.
조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며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넓게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더 좁은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어 없이도 살아지는 한인 사회, 그 안에서도 교회라는 더 작고 편협한 공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닫혀 있는 공동체라는 무리 속에서 가끔 자신만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너무 빨리 선을 긋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속에는 편협함과 선입견이 없는지를 돌아보곤 했다.
어느 해 겨울, 밴쿠버의 두 한인 교회에서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자를 각각 초청해 집회를 연 적이 있었다. 한 교회는 ‘치유의 은사’로 알려진 장로님을, 다른 교회는 말씀을 통해 삶의 변화를 강조하는 목회자를 초대했다. 결과는 뻔했다. ‘치유 집회’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는 후문을 들었었다.
큐어는 언제나 강력하다. 눈에 띄고, 극적이며, 빠르다. 사람들은 병이 낫고 온전하길 원한다. 더는 아프지 않기를,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적처럼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나도 그랬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더 간절했다.
목을 가누지 못하고, 말은 어눌하고, 도움 없이는 스스로 걸을 수도 없어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아이.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나는 수도 없이 기도했다.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믿음으로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절름발이가 걷게 되었다는 그 기적들이 딸에게도 일어나기를.
큐어, 그것은 나의 기도 제목이자 절박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나는 조금씩 다른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지만, 함께 살아주진 않는다. 큐어는 증상을 없애주지만, 그 삶의 긴 여정을 동행할 순 없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병을 고칠 수는 없어도 끝까지 곁에 있을 수 있다. 함께 울며, 웃으며, 견디며.
물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역할이 케어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오랜 시간 끝에 ‘치유’라는 단어를 다르게, 좀 더 의미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느려 터지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많은 이민자들이 철마다 건강검진을 받을 요량으로 한국을 찾을까.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다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큐어’ 중심이라면, 캐나다는 느리지만 ‘케어’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설사 난치나 불치병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고, 그 과정에 여러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연결되어 도움을 주려 애쓴다.
의사가 진료를 마치면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소셜워커(사회복지사)를 통해 조율하고 지원하도록 연결한다.
이러한 연계적이고 통합적인 의료 시스템 덕분에 우리 딸도 다리에 차는 보조기, 휠체어, 핸디바이크, 목욕의자 등을 펀드나 후원자를 통해 지원받았고, 학교에서는 항상 어시스턴트 선생님이 함께해 주었다.
그뿐인가. 그러한 세심한 돌봄과 지원 덕분에 마침내 딸에게 맞는 약을 찾았고, 스스로 걷고, 일상생활을 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맛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기적 같았지만, 실은 오랜 시간의 ‘케어(돌봄)’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아니 우리 모두에게 더 필요한 건 빠른 치유보다 오래된 돌봄이라는 걸 나는 딸을 통해 조금씩 깨달아 갔다.
인간은 부르면 대답하는 존재다. 말이 더딘 내 딸도 내가 부르면 대답해 주었다. 여느 아이들보다 훨씬 늦었지만, 처음으로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안엔 수천 번의 눈 맞춤과 수만 번의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겐 의미 없을 수도 있는 그 한마디 소리가, 나에겐 ‘부르면 대답하는 존재’로 인정받기에 충분하고 넘치는 기쁨이 되었다.
성장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누구는 빠르게, 누구는 더디게. 어떤 아이는 곧고 튼실한 가지처럼, 또 어떤 아이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며 가녀리게 자란다.
내 딸은 더디 자랐지만 분명히 자랐고, 어제는 못 했던 혼자 옷 입기를 해냈고, 오늘은 먼저 내 손을 잡아주기도 했으며, 내일은 또 어떤 작은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누구는 튼튼하고, 누구는 조금 약할 뿐이다. 다르다는 건 틀린 것이 아니고, 늦는다고 해서 멈춘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케어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부모님의 손길이 그러했고, 친구의 격려와 위로, 가족의 헌신,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을.
큐어는 박수받지만, 케어는 조용히 우리 삶을 지탱하고, 큐어는 기적처럼 일어났다 끝날 수 있지만, 케어는 삶 속에 지속된다는 것을.
결국 살아가는 일은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걷는 일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함께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누군가의 케어를 받으며, 누군가를 케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