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호모 파베르’다.
도구를 만들고, 다루고, 결국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
돌멩이를 갈아 창끝을 만들고, 바퀴를 굴려 문명을 이루었다.
이성과 언어, 사유의 능력과 함께, 우리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해 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도구를 쓰는 인간의 손을 특별하게 여긴다.
연장을 든 농부의 손, 붓을 든 화가의 손,
키보드를 두드려 첨단 기술을 컨트롤하는 손끝까지—
그 모든 손이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고, 의미를 빚어낸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믿음을 조용히 흔드는 존재가 있다.
바로, 까마귀다.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의 한 까마귀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벌레를 꺼낸다.
때로는 낚싯대처럼 구부리고, 때로는 잎을 떼어내고 다듬는다.
그 작은 부리로 만든 도구로, 나름의 세계를 뚫고 들어간다.
도구를 ‘만들고’, ‘저장하고’, ‘가르치기’까지 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축소판 호모 사피엔스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보다 더 능숙하게 본능과 필요를 연결시키는 존재처럼 보인다.
도구를 쥔 손이 꼭 인간의 것이어야만 할까?
때로는 부리도, 발톱도, 지느러미도
세상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고, 인정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애쓰려 하지 않고,
쓰레기통을 뒤져 정크푸드로 배를 채우며,
시조새만 한 몸집으로 비만해져 가는 도심의 까마귀들을 보며—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편리만을 추구하다
속이 텅 빈 채 파괴된 ‘호모 파베르’의 빈곤을 마주한다.
인간도, 까마귀도
본질로 돌아가는 지혜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내 안의 ‘의지박약’을, ‘메마름’을
따스한 6월 햇살에 조용히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