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지지

큐어와 케어 2

by 도린

일러스트레이터 인 둘째가

거실에서 밤새 작업을 했나 보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증기시계탑으로 유명한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한

‘개스타운’ 거리를 따뜻한 색감으로

아이패드에 그려 놓았다.


19세기를 재현한 듯한 거리.

한 시간마다 시간을 알리고,

15분마다 증기를 내뿜는

세계 최초의 증기시계탑 주위에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세련된 카페,

아기자기 한 기념품 가게들이

정겹게 어울려 있고

언제나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역사적인 거리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면 마약에 잠식된 좀비거리, 화려한 도시와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난다.

눈을 의심케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처참한 현실이, 같은 거리에 버젓이 공존한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마치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방금 주사를 투약한 사람들은

관절이 꺾인 채 뻣뻣이 서 있기도 하고,

땟국물로 절여진 옷 가지며, 짐보따리를 짊어진 채

오물이 가득한 거리 구석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집 없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홈리스(homeless people)’ 들이다.


홈리스, 말 그대로

집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지만

‘홈’이란 단어가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만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공간.

그런 것이 ‘홈이라면,


지금 우리 시대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홈을 상실한 채

‘홈리스(homeless)’ 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웃과 단절된 사람들,

고독한 노인들,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성소수자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만 남은 채 파괴된 가정들.


남편과 나는 캐나다에 와서

오랫동안 홈리스 피플을 위한 점심 나눔 봉사를 했다.

마약에 중독된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캐나다 원주민 들이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밴쿠버,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국의 또 다른 민낯이다.


우리는 봉사를 하던 중 마약중독자들의 회복을 돕는 “리커버리 센터” 관계자들과 만나 그들의 사역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리커버리센터를 거쳐간

중독자들 가운데 완전히 회복되어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은 극히 작다고 했다.

일단 한번 중독되면 평생을 걸쳐 회복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소망 없이 죽어가는 거리 곳곳에

밑빠지독에 물 붓기 식의 미미한 성과이지만

많은 기관들과 사람들이

한 줄기 등대가 되어 그들을 섬기며 돌보고 있다.


대가 없는 care(돌봄)와 support(지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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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초기에

무료로 제공되는 이민자 영어 클래스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11학년 영문학 수업이었는데,

기말 과제로 자기 나라의 시 한 편을 골라 영어로 번역하고 시의 의미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듣던 시절.

감기에 몸살기까지 겹쳐

무조건 짧은 시를 고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선택한 시는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였다.


“엄마와 누나는 영원한 고향 같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품,

‘홈’과 같은 곳이죠.

강변은 평화로운 안식처이고요.”

횡설수설 설명을 마치고


모두에게 눈을 감고

평화로운 각자의 ‘홈’을 떠올려 보라 하고는

노래를 불렀다.


> “엄마야 누우 나야 강변 사알자

뜨으레는 반짝이는 그음 모랫빛

뒤잇문 밖에는 가알잎의 노오오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사알자”


고요하고 그윽한 열창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덕분에 겨우 낙제를 면할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그 노래를 불러본다.

시인이 그리워하고 갈망하던 ‘홈’,

돌봄과 지지, 따스함으로 감싸 안아주는

엄마 같은, 누나 같은 존재를 떠올리며,


그런 존재가

이 메마른 시대 곳곳에 더 많이 있어 주기를,

지친 이들의 곁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작은 '홈'들이 되어주기를,

내가 그 ‘존재’의 작은 파트가 되기를,


하나님은 왜 그들을 당신의 능력으로

다 고쳐주고 회복시켜주지 않고

남겨 두었는지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하늘에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너에게 힘과 능력을 줄 테니

돌봄과 지지의 손길'로 그들과 함께 하라"고, "소외된 그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나의 손이 나의 발이 얼마나 응답하며 살고 있는지,


딸아이가 그려 둔 ‘개스타운’을 물끄러미 감상하다 아침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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