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훌쩍 넘긴 형부는 환갑이 되던 해, “이제는 충분하다”며 운영하던 개인 병원을 정리했다. 더 늦기 전에 꿈이었던 트래킹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소아과 의사였던 형부는 아기들에게 직접 주사를 놓고 항생제도 꼭 필요한 만큼만 처방할 정도로 일에 대한 기준이 확고했다.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형부는 주변의 만류에도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이후 형부는 여러 트래킹에 나섰고, 그중에는 세 번의 히말라야 등반도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일정은 일흔의 나이에 오른 6000미터가 넘는 빙벽 코스였다. 가족들은 걱정했지만 그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이미 두 차례 히말라야를 다녀왔던 그도 불안한 마음에 체력과 장비를 철저히 준비했다. 나는 언니와 함께 형부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얼마 뒤 형부는 핼쑥하고 까만 얼굴로 히말라야의 고지에서 서울 아파트의 일상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는 깊이 20미터에 이르는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흔들 다리 위에서 발이 굳어 한 걸음이 나오지 않았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강단 있는 형부조차 그 순간에는 생사의 경계에 서 있었다.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형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이번에 알았어. 자신의 최선을 넘어선 욕망은 만용이야.”
나는 형부의 열정을 여전히 존경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 역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평범한 아침 식탁에서 히말라야의 빙벽과 크레바스, 칠흑 같은 밤하늘의 별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나에게 묘한 대리만족이 되기도 한다.
욕망과 한계를 스스로 가늠하며 자기 선택을 끝까지 밀고 가는 형부의 삶을 본다. 일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히말라야의 높이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끝내 행동으로 옮기는 그 투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