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쪽으로

by 에우름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치유를 다룬 미드가 있다. 버진 리버(Virgin River). 넷플릭스에서 시즌 7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보는 가장 큰 이유는 흐르는 강과 울창한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이다. 폭이 넓은 강이 특히 좋다. 그 안정된 유속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나는 바다보다 강을 좋아한다. 멀리 수평선을 보면 가슴이 트이고 하얀 파도의 철석이는 소리는 설렘을 준다. 하지만 나는 강의 다양한 모습에 더 끌린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가 플라이 낚시를 하던 강이 있고, 카약을 탈 수 있는 빠른 급류도 있다. 정선 아리랑 아우라지처럼 교통의 통로가 되었던 강도 있고, 천만 도시 서울의 생명줄인 한강도 있다. 파리의 센강처럼 역사적 건물 사이를 흐르는 로맨틱한 강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에 더해 내가 강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강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에 나는 동의한다. 어제의 물은 이미 지나갔고 오늘의 흐름은 결코 어제와 같지 않다. 강물은 매 순간 변화한다. 삶도 그러하다. 나는 강가에 앉아 시름을 흘려보내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다가올 흐름을 기다린다. 이 순간에도 강물은 제 흐름을 이어 간다.


얼마 전 만난 형부는 말했다. “잔잔한 강물도 홍수가 나면 굉장한 힘을 보여주며 위협적으로 변하지. 그저 하나의 물방울도 이렇게 바뀔 수 있어.”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강물에서 늘 “흐른다”는 생각만 떠올렸지 다른 통찰을 얻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부는 본질은 같아도 사건과 상황 그리고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강력한 힘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삶도 강물처럼 흘러가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받아들였다.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의 출발점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은 마치 머릿속에 새로운 공기가 스며드는 듯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강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드라마의 장면 사이로 보이는 시원한 강의 흐름은 답답함이 밀려올 때 효과 있는 자연 치료제다. 이야기는 반쯤 흘려듣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약동하듯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주인공 멜처럼 성큼성큼 달리는 상상을 한다. 마음도 다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