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호텔 방, 침대 끝에 아빠가 걸터앉아 있다. 소리를 비집고 나오는 울음에 흔들리는 아빠의 등과 어깨만 조명이 비춘다. 어린 딸 소피와 아빠 캘럼이 터키의 휴양지에서 남긴 기록이 성인이 된 딸에게서 다시 읽히는, 애프터썬의 한 장면이다. 아빠와 닮은 우울을 지닌 소피는 장면 사이에 남아 있던 아빠의 마음을 더듬듯 알아간다. 영화는 그렇게 쓸쓸한 기억을 빛바랜 색감으로 풀어낸다.
내게 이 한 장면은 영화의 모든 서사를 압도했다. 딸의 말에 대답하며 희미하게 웃어 보이던 아빠의 눈은 밀려 나오는 무언가를 별일 아니라는 듯 애써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밤, 아빠는 꺼이꺼이 운다. 무엇으로도 감싸지지 않고, 어느 소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그의 바닥이다. 그의 뒷모습이다.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 보낸 엄마가 다시 집으로 가는 날, 나는 목욕탕에 가겠다며 함께 대문을 나섰다. 갈라지는 긴 골목 앞에서 “엄마, 잘 가”하고 서로 좌우로 방향을 잡아 걸었다. 목욕 바구니를 달랑거리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른다. “막내야, 막내야.”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엄마는 우리가 헤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철없는 딸이 한 번쯤은 돌아보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까닥이고 그대로 모퉁이를 꺾어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나의 첫 뒷모습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 뒷모습도 또 다른 말이라는 것을.
지금의 딸들 나이였을 때, 나는 두렵고 절망적인 세상에 빠져 있었다. 감당할 수 없어 병원을 찾았고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무엇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잠을 자지 못하던 나에게 의사는 주사를 놓았고 잠시 뒤 다시 와서 물었다. “주무셨나요.” “아니요.” 그 후로 한동안 병원을 다녔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붙들 힘이 없었다. 나의 어느 뒷모습이다.
여린 딸아이 앞에서 아빠는 말을 들어주고, 수영을 하고, 웃는다. 체념이기에 고요한 그의 눈빛은 한때 거울 속에서 보였던 나의 눈빛이었다. 그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아빠는 딸에게 기억될 장면들만 남긴 채 사라진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나는 달려가서 그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안아주고 싶어졌다. 나도 안다고. 그래도, 같이 가보자고.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누구의 뒷모습을 마음 다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 나의 뒷모습은 어떠한가.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