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형용사이다

어느 초민감자의 큐비즘

by 에우름

어느 날, 아빠와 점심을 먹고 온 민경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나더러 '황영희스럽다'고 해.”

식당 주스를 맛보라며 내민 딸의 빨대를 무심코 썼다가 핀잔을 들은 민경이 아빠가 툭 던진 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군가와 물병조차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를 설명하는 단어는 언제나 형용사였다.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민감하다는 말들.


그 형용사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징후로 출몰한다. 흐린 날에도 자외선을 피해 커튼을 닫고 어두운 조명 아래 머문다.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고음보다 첼로의 낮은 음색에서 마음이 놓이고 피부에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카디건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한다. 향수나 방향제에는 쉽게 메스꺼움을 느끼고 무색무취를 선호하며 익숙하지 않은 질감과 향의 음식은 피하게 된다. 소갈비를 앞에 두고 문득 소의 눈이 떠올라 젓가락이 멈추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한결 나아졌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식당의 젓가락을 쓰지 못해 며칠을 거의 굶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한 번쯤 물에 헹군다. 때로는 괜히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꾹 참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깔끔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예민함이 감각의 표면으로 떠오를 뿐이다. 감각의 민감함은 이제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였다.


대화 중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내가 이 말을 괜히 했나?”

“그때 웃어줬어야 했는데….”

만남이 끝난 뒤에도 상대의 표정과 말투, 그 분위기의 잔향이 오래 남는다. 관계에 지치지 않기 위해 나는 거리를 두는 법을 익혔다.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숨어 있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성향을 그저 ‘독특함’이라 넘기기엔 나이가 들어버렸다. ‘나잇값도 못 한다’는 자괴감이 따라왔고 아직도 ‘나’를 다스리지 못한단 말인가 자문했다. 어긋나 있다고 믿어온 나를 바로잡고 싶었다. 읽었던 많은 책들과 되풀이된 깊은 고민들, 그 시간들은 마음을 오래도록 소진시켰다.


몇 달 전, 나는 한 단어를 처음 보게 되었다. “초민감자.”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를 읽었을 때, 마치 누군가가 나를 정확히 설명해 놓은 것만 같았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초민감자인 작가 주디스 올로프는 그 민감함에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진단 테스트에서 나는 23문항 중 20개의 문항에 체크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었다. 왜 이렇게 넉넉하지 못할까 자책하며 보낸 시간이 몇십 년이었다. 그것은 나의 무능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사소한 부족함마저 날을 세워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던 날들, 뭉뚱그려진 감정을 메스로 가르듯 한 꺼풀씩 들춰내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단순한 평면 위에 펼쳐놓고 '정상'의 범주로 구겨 넣으려 애썼던 날들이었다. 이제는 스스로를 꾸짖던 굴레에서 비켜서 나를 조금 더 느슨하게 바라본다.


달라진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그 민감함으로 빚어진 수많은 단면들이 나를 만들어오고 있었다.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나, ‘큐비즘의 나’로. 이제 나는, 이대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