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no.1
위 그림은 우리 집 안방 벽에 걸려있는 ‘어떤 화가’의 작품이다. 난해해 보이기도 하고 역동성이 느껴지기도 하다. 밤하늘에 수놓은 불꽃같기도 하고 고뇌에 빠진 한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떤 관점으로 그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작품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 화가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 작가는 바로 봄봄(둘째)이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는 안방의 벽지다. 벽! 지! 다시 보고, 또 봐도 정말 어이가 없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봄봄이는 유치원 입학 선물로 파스텔 톤과 재질을 갖추고 잇는 색연필을 받았다. 색감이 매우 예쁘고 그릴 때 느낄 수 있는 촉감 때문인지 도담(첫째)이와 봄봄이는 그 색연필을 자주 사용했다.
유치원 하원 후 집에서 저녁 식사를 끝내고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도담이는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봄봄이는 우리의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혼자 잘 놀고 있겠지’라며 생각을 하긴 했지만, 폭풍 전야와 같은 무서운 침묵이 느껴지긴 했었다. 방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가끔씩 거실로 나올 때면 나와 엄마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봄봄이가 어떤 행동을 하며 아빠, 엄마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곧 사고를 치고 있다는 의미(그녀는 무자신이 혼날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무서울 정도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흡사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와 같다.
나는 순간 ‘일이 터졌구나’를 직감하고 곧바로 안방으로 달렸다. ‘잡았다 요놈!!!’ 봄봄이는 색연필을 들고 안방 벽에다 본인의 작품 no.1을 그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 이후의 과정은 모두 다 알 것이다. 여느 집에서와 같이 엄마에게 혼나고 울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이야기했다(물론 아이의 천재성을 발견했다며 무한 칭찬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휴지와 물티슈로 아무리 닦아봐도 지워지기는 커녕 더욱 번지기만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낙서를 다 가릴 수 있는 크기의 세계지도를 구매해 벽에 붙이며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오늘 이 사건 이후로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아이가 어떤 행동(사고)을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 것인가가 그 고민이다.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태도로 인해 ‘틀에 갇힌 경직된 사고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다양하게 접근하고 바라볼 수 있는 창의성을 부모가 앞장서서 키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린 결론은 또다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쪽이었다. 창의성은 다른 방법으로 키워줘야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