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집돌이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매우 다를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있듯 생각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단위인 가족 구성원이 서로 끈끈하게 응집하기 위해 추구하는 가치 또한 가족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가족의 결속력이 단단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는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파생되는 추억'이다. 서로가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 직조물처럼 견고하게 얽히고설켜 기초를 만든다면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부터 나는 자발적인 집돌이 역할(내향적인 성향도 한몫한다.)을 하고 있다. 집돌이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퇴근 이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야만 한다. 옷을 갈아입혀주어야 하고, 간식 먹고 싶다고 하면 챙겨줘야 한다. 양치질과 샤워는 물론이고 놀아달라고 하면 놀이동산 역할도 해주어야 한다. 이 밖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다 기록할 수가 없다. 특히, 우리 집처럼 자녀가 두명일 경우에는 아이들의 요구사항이 2배 이상이 되기 때문에 아빠나 엄마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일 경우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상당하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육아를 하면 조금은 덜 힘들고 덜 지친다.
지금은 도담이(첫째)가 7살, 봄봄이(둘째)가 5살이 되어 손이 조금은 덜 간다. 이제는 퇴근 이후에 아이에 대한 관심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해도 괜찮아졌지만, 나는 여유가 생긴 그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감에 따라 아빠(혹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등하교를 아빠 없이도 할 수 있으며,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빠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재미있어지고, 학년이 계속 높아질수록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증가한다. 즉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독립을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가 바로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자녀가 어렸을 때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 많고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면, 위에서 언급한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독립하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어렸을 때 함께 구축한 굳건한 토대가 있기에 아빠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만들어 놓은 추억이 없는 상태에서 청소년이 된 자녀에게 갑자기 다가가 관심을 보인다면 자녀는 아빠가 나에게 다가오는 상황을 '관심'이 아닌 '간섭'으로 볼 가능성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자발적 집돌이가 되기로 했다. 나는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친밀한 관계가 꼭 친구 같은 아빠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이런저런 잡담을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사이면 충분하다. 도담, 봄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서로 기댈 수 있고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면 재미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